인생은 아름다워(949) - 폭우를 뚫고 탐방한 백령도와 대청도
1. 흰 새가 날개 펼치며 날아오르는 섬, 백령도
이번 주 초부터 유례없는 폭우가 서울‧경기지역을 시작으로 전국을 강타하여 많은 인명과 재산의 피해가 발생하였다. 갑작스럽게 몰려든 물 폭탄을 피할 겨를 없이 유명을 달리한 영혼들의 명복을 빌며 하늘의 위로와 평화가 함께 하기를 비는 마음이다.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한 첫날(8월 8일)부터 2박3일간 한국체육진흥회가 주관하는 서해안최북단의 백령도‧대청도 탐방계획이 짜여 있었다. 그런데 탐방전날 날씨관계로 인천에서 배가 출항하지 못한다는 연락이 왔다. 대안은 하루 늦춰 출발하는 것과 탐방일정을 취소하는 것, 한주 내내 장맛비가 예상되니 며칠 뒤로 미루는 방안이 제시되었는데 다수의 의견이 하루 늦춰 출발하는 쪽으로 모아졌다.
예보대로 8월 8일과 9일에 서울과 경기지역에 400mm가 넘는 폭포비가 내린 가운데 8월 9일 아침 인천항에서 우리가 탄 배(코리아 킹)는 예정대로 출발하였다. 궂은 날씨에도 일행(26명) 모두 정해진 시간에 연안부두의 출발장소에 도착, 배가 항구를 벗어나자마자 엄청난 폭우가 육중한 뱃머리의 유리창을 세차게 두드리고 뒤이어 거대한 파도에 휩쓸린 여객선의 몸체가 크게 흔들린다. 모두들 긴장된 상태, 지금까지 여러 차례 장거리 뱃길을 이용하면서 한 번도 멀미를 한 적이 없었는데 거세게 요동치는 충격을 견디기 힘들다. 한 시간여 지나니 가까스로 진정이 되어 다행.
인천에서 출항하는 코리아 킹에 탑승하는 일행
세 시간 넘게 달려 첫 번째 기항지는 소청도, 20여분 후 대청도 들러 네 시간여 만에 대망의 백령도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인천에서 백령도까지는 200여km, 대청도 지나면서부터 북한 땅(황해도 옹진군)이 시야에 잡히는 전략적 요충지에 첫발을 내딛는 감회가 별다르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현지 여행사의 숙달된 가이드(기사겸임)가 일행을 대기 중인 버스로 안내, 간단히 백령도 현황을 설명(여의도 1.5배 크기의 간척지를 조성하여 전국에서 여덟 번째로 크고 인구 1만 2천 명 중 7천명이 군인, 쌀이 풍부하고 까나리가 특산물)하고 이내 식당으로 향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대부분 아침식사가 부실한 터라 싱싱한 메뉴의 점심이 꿀맛이다. 식사 후 간단히 인사, 우여곡절 끝에 힘든 여정에 올랐는데 모든 일정 무사히 마치고 뿌듯한 마음으로 귀환하자.
버스에 올라 처음 찾은 곳은 심청각, 심청전의 배경인 인당수가 바로 보이는 곳에 세워졌다. 심청이 연꽃을 타고 살아났다는 연봉바위와 연꽃을 타고 왔다는 연화리 등 심청의 전설과 일치하는 지명도 여럿, 숙소부근의 마을 어귀 담장에도 심 봉사와 심청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 보이누나. 이어서 찾은 곳은 천연기념물 391호인 사곶해변, 아주 고운 모래입자가 쌓여 콘크리트 바닥 같은 단단한 모래층이 형성되었고 최근까지 항공기 이착륙이 이루어진 비행장역할을 하고 있다. 근처에 서해안최북단이라는 표지판이 세워져있기도.
관광코스에 부착한 백령도의 볼거리
백령도에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일찍 세워진 장로교회, 중화동교회(1896년 설립)가 있다. 한국기독교 100년사를 볼 수 있는 기독교 역사관과 함께. 서양문물이 들어온 초기에 이처럼 경건한 신앙의 씨앗이 뿌려진 것이 신비롭다. 철군통치의 북한 코앞에 자유대한의 기상이 뿌리박힐 것을 선각자들은 깨쳤을까. 백령도에 천안함 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2010년 북한 어뢰에 천암함이 침몰된 해역이 보이는 언덕에 설치, 여러 대원들이 입구에서 국화꽃 한 송이씩 사들고 가 헌화하며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고 묵념하였다. 천암함 침몰로 46명의 호국영령이 희생된 날은 2010년 3월 26일, 1910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지 꼭 100년이 되는 날이다. 우연인 듯 필연인 역사의 흔적을 현장에서 새기누나!
백령도와 대청도 소청도 일대는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곳, 10억년의 세월을 견딘 기암괴석이 눈길을 끈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서해의 해금강이라 불리는 두무진(명승 제8호, 마치 장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는 것 같다고 해서 붙인 이름), 배를 타고 해안을 40여분 돌며 살피는 경관이 웅혼하고 그 앞의 물속에서 노니는 점박이물범(천연기념물 제331호)이 살짝 고개를 내밀어 일행을 반긴다. 해안 절벽에서 몸을 뒤틀며 승천하는 용의 형상으로 억겁을 버틴 용틀임바위도 볼만하고. 선박으로 두무진 해안을 한 바퀴 돈 후에는 트레킹코스로 조성된 언덕길을 30여분 걸었다.
저녁식사 때 한 자리에 모여 여흥을 즐겼다. 쾌활한 성품의 가이드는 관광시즌 지나면 육지에 나가 마술학원을 운영하는 재주꾼, 여러 가지 마술을 선보이고 차안에서 일부 기술을 일행에게 익혀주기도. 봉사활동도 하며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
백령도 둘째 날, 아침에 일어나니 비바람이 그치고 쾌청한 날씨다. 산책길에 숙소주변을 돌아보니 외딴 섬에 설치된 기상관측대가 우뚝하고 들판에 농작물이 풍성하다. 아침 식사 후 첫 번째로 찾은 탐방코스는 용기포 등대해안, 10억년의 자연을 담은 지질공원의 웅혼한 기상이 넘친다. 이어서 찾은 곳은 남포리 콩돌해안(천연기념물 제392호), 콩알처럼 동글동글하고 알록달록한 자갈이 해변을 가득 메운 특이한 해안경관이다. 암석들이 침식과 풍화작용으로 부서진 후 파도와 바람의 마찰로 오색영롱한 콩알처럼 둥글게 변한 모습이 명품, 무단반출을 금하는 방송이 크게 울려 퍼진다.
오색영롱한 콩돌해안에서
두 곳의 탐방 후 들른 곳은 백령도 특산의 쑥 하수오 영농법인과 토산물 매장, 11시경에 점심식사를 한 후 선착장에 이르니 낮 12시다. 출발시간은 오후 1시 반, 여유시간에 부두 주변을 살폈다. 옹진군청이 만든 백령도 관광안내판 에서 정리한 백령도의 이모저모는 이렇다. ‘백령도는 고대 이래로 한반도와 중국의 산동 반도를 잇는 황해 해양 실크로드의 거점 도서였으며, 서해바다에 우뚝 솟아 우리나라의 영토를 사수하는 최북단의 끝 섬이다. 북한의 황해도 장산곶을 지척에서 볼 수 있는 백령도에는 남북분단의 한을 품고 사는 실향민들의 아픔이 진하게 배어 있을 뿐 만 아니라 천암함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어려 있는 곳이다. 백령 흰나래길 문화생태탐방로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백령도의 아름다운 자연생태경관을 느끼고, 분단의 아픔이 담겨 있는 생활문화를 체험하며 사랑과 평화에 대한 염원을 흰 새의 날개 짓에 담아 보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백령이 흰 새의 날개인 것을 이제야 알았네!
2. 자연이 채색한 환상의 섬, 대청도
8월 10일 오후 1시 반에 백령도를 출발한 여객선 코리아 킹은 20여분 만에 대청도에 도착하였다. 선착장에서 살핀 대청면 안내 팸플릿의 표제는 ‘자연이 채색한 환상의 섬’, 백령도 4분의 1 크기인 대청도에서 과연 환상적인 경관을 체험할 것인가. 대청도의 간략한 소개, ‘인천에서 북서쪽으로 200여km, 북한 황해도 장산도와는 19km 거리의 전략적 요충지다. 면적은 15,56k㎡이고 주봉인 삼각산은 343m의 높이, 특산물은 우럭과 전복, 흑염소’ 현지 여행사의 가이드(기사 겸임)가 덧붙인 설명, 대청도는 인구 1,200명에 군인들이 1,000여명 거주하는 아담한 섬으로 어업이 주된 생업이고 홍어가 많이 잡힌다.
자연이 채색한 환상의 섬, 대청도 안내판
곧장 숙소로 이동하여 여장을 풀고 이내 인근에 있는 지질 명소로 향하였다. 북쪽으로 백령도가 선명하게 보이고 모래사장이 넓은 농여해변에 들어서자 가까운 곳에 고목나무를 닮은 고목바위, 10억년의 나이를 고스란히 간직한 것에 착안하여 이름붙인 나이테바위가 눈길을 끈다. 현장에 이르니 지질공원의 해설사가 지층이 수직으로 선 바위의 생성경위, 풍화와 침식으로 현재의 색깔과 모양이 된 과정을 설명해준다. 100년도 감감인데 억겁의 세월을 어찌 측량하랴.
얕은 바닷물 저편으로 넓은 모래사장 풀등이 펼쳐진다. 더러는 슬리퍼 차림으로, 운동화 차림의 나는 체격이 준수한 일행의 등에 업혀 풀등순례에 나섰다. 장난기 많은 회원이 일행들에게 모래판에서 훌쩍 뛰기를 제안하며 이를 화면에 담기도. 동심으로 돌아간 듯 모두가 유쾌한 표정이다.
한 시간 여 농여헤변을 둘러본 후 이동한 곳은 해안사구, 옥죽동 해변 뒤쪽에 ‘한국의 사하라’로 불리는 모래사막이 있다. 작은 섬의 해안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오랜 세월 많은 모래알들을 쌓고 쌓아 작은 산과 골짜기를 모래물결로 만들어 놓았다. 사막의 정취를 담아 만든 목조 낙타 등에 올라 사막에 온 정취를 느끼기도.
이어서 들른 곳은 야트막한 언덕에 해송이 운치 있게 욱어진 모래올해변, 1km쯤 길이에 폭 100여 미터의 백사장을 걸으며 담소하는 해안이 조용하고 아름답다. 더러는 시원한 바닷물에 발을 적시기도.
귀로에 식사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오니 저녁 6시 반, 일행 모두 벤치에 모여 간담의 시간을 가졌다. 대부분 백령도와 대청도 나들이가 초행, 벼른 끝에 나선 여정이 일기불순으로 불안하였으나 직접 체험하니 알차고 행복한 코스라며 이구동성 만족감을 나타낸다. 이를 확인하듯 하늘에 무지개 뜨고 저녁노을이 황홀하다.
어느새 2박3일의 마지막 날, 오전의 일과는 삼각산 줄기에서 뻗어 내린 광난두정자각에서 출발하여 고도 100여 미터의 서풍받이 수직절벽 지나 천혜의 바다낚시터 기름아가리 거쳐 돌아오는 3km남짓의 트레킹, 비온 후 미끄러운 산길을 조심스럽게 걸어 돌아오는 두 시간여의 발걸음이 가볍다. 걷기회원들의 투지와 열정을 한껏 발현한 마무리코스. 트레킹 후 버스에 올라 선착장에 여장을 풀고 식당에 들러 식사하는 것으로 백령도와 대청도의 탐방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오후 1시 50분에 두 섬 오가며 탔던 코리아 킹 편으로 대청도 출발, 우리가 탄 배는 20여분 거리의 소청도에 잠시 기항 후 인천항을 향하여 순항한다. 올 때와는 달리 바닷물도 잔잔하여 쾌적한 항로, 시작은 불안하였으나 나중은 평안이로세!
광난두정자각에서 서풍받이 오가는 트래킹코스의 경관
순항 끝에 인천항에 도착하니 오후 5시 반, 배에서 빠져나와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눈 후 일행과 헤어져 각기의 처소를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친애하는 동호인들이여,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기회에 또다른 즐거움으로 만납시다.
* 오가며 기항한 소청도는 대청면에 속한 대청도 4분의 1 크기의 작은 섬, 주민 200여명이 살고 있단다. 그 작은 섬에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의 소청등대(1908년 설치)가 유명하고 천주교의 성인으로 추대된 김대건 신부의 상이 예동마을 성당 뒤 동백나무군락에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