註: 지봉(芝峰) 이수광(李晬光 1563~1628)의 저서 《지봉유설(芝峰類說)》 「제국부(諸國部)」에서 최초로 구라파(Europe)와 천주교가 조선에 소개되었다.
구라파 나라는 대서국(大西國)이라고도 한다. 그 대서국 사람으로 이마두(마테오 리치 Matteo Ricci)라 하는 이가 여덟해 동안 팔만 리 바닷길을 바람과 파도를 헤치며 건너와 동쪽 구석진 곳에서 십여 년을 살면서 『천주실의(天主實義)』 두 권을 지었다.
첫머리에는 천주 하느님이 처음으로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평화와 사랑의 도리로 키우고 다스리심을 논하였고, 그 다음으로는 사람의 영혼은 영원불멸하며 새나 짐승들과는 특별히 다르다는 것을 논하였고, 또 그 다음으로는 여섯 가지 세계로 윤회한다는 가르침의 잘못됨과 천당과 지옥이 선악의 응보에 따른다는 것을 설명하였고, 끝으로 사람의 성품은 원래 착하고 아름다운 것이어서 오로지 하느님을 받들어 공경하여야 한다는 것을 설파하였다. 그 나라 풍속으로 임금님을 일컬어 교화황(敎化皇)이라고 한다. 혼인하여 아내를 취하지 않으므로 세습하는 후사가 없다. 그러므로 어진 사람을 뽑아 그 뒷자리를 잇는다. 또 그 나라 풍속에는 친구를 사랑하는 우의를 매우 소중히 여기고 사사로이 재산을 저축하지 않는다. 중우론(重友論)을 지은 초굉(焦宏)은 말하기를 "서역사람 이마두는 '친구가 되는 사람은 두 번째의 나 자신'이라 했으니 이것이야말로 지극히 기특한 말이 아닌가!"하였다.
만력 계묘(癸卯 1603)년, 내가 부제학이 되던 해에 북경에 다녀온 사신 이광정(李光庭), 권희(權熺) 두 사람이 여섯폭짜리 구라파국(歐羅巴國) 여지도(輿地圖) 를 본관으로 보내왔다. 아마도 북경에서 얻은 것이리라. 그 지도를 보니 심히 정밀하고 교묘하였다.
서역부분은 특별히 상세하였고, 중국의 여러 지방, 우리나라의 8도, 일본의 60주에 이르기까지 지리의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음이 매우 섬세하여 하나도 빠뜨림이 없었다. 이른바 '구라파(Europe)'라는 나라는 서역의 가장 끄트머리 먼 곳에 있는데 중국에서 팔만 리나 떨어져 있다. 그 나라는 예부터 중국 조정과는 왕래가 없었는데 명(明)나라 때에 이르러 비로소 입공을 시작하였다. 이 지도는 그 나라 사신 풍보보(馮寶寶)가 그린 것으로 끄트머리에 서문을 지어 적어놓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거기에 적힌 글자의 우아하고 세련됨이 우리나라의 것이 없다. 이로 미루어 보면 의사소통으로 쓰이는 문자가 같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지 알겠다.
생각하건대 그 나라 사람 이마두(마테오 리치)와 이웅성(李應誠)이란 두 사람도 모두 산해여지전도(山海輿地全圖)를 만든 바 있는데 왕기(王沂)의 삼재도회(三才圖會)같은 책에도 그 사람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구라파의 땅 경계는 남으로는 지중해(地中海)에 이르고 북으로는 빙해에 이르며 동쪽으로는 대내하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대서양에 이른다. 지중해라는 말은 천지간의 한 가운데이기 때문에 그렇게 지은 것이라 한다.
출처: 심재기(沈在箕)著 《한국의 명문백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