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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페르귄트'모음곡 중 '솔베이그의 노래'.MP3
노래는 이건데, 글이 너무 길어서 싱크로가 안맞을듯... 원래 3편으로 나눠서 올려야 맞는데.
규칙으로 규제되어 있더라고요 ㅇㅅㅇ...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맑았다.
머리까지 깨끗해 지는 것 같은 맑은 세상
"하아."
나는 푸른바다를 바라보았다. 하얀 거품이 생기며 순식간에 밀려오는 시원한 파도...
수많은 외국의 아름다운 바다를 보았지만 한국의 바다가 그에 필적할 정도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보니 동해의 푸른 바다도 퍽 아름다웠다.
"와아아!"
괜스래 소리친다. 후후, 이렇게 있으니까 정말 세상에 살아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아름다운 것들은 어디든지 널려있다.
보고싶다. 그저, 보고싶었다.
모든 것을 보지는 못하겠지만 죽을때까지 그런 것들만 보면서...
"그러다가 죽는거지 아름다운 것, 맛있는 것, 새로운 것을 맛보며, 세상을 미련없이 떠난다."
후후, 얼마나 좋은 생각인가?
아, 그러고보니...... 어제 받은 편지를 아직 안버렸다.
쳇, 한국에 들어왔다는 소식은 언제 접하신거지......
나는 품속에서 깔끔하게 포장된 편지를 꺼내어 갈기갈기 찢었다. 그리고, 바다에 파편들을 날려보냈다.
"나중에 , 이 종이가 해류를 타고 세상을 한바퀴 돌아 다시 나에게로 온다면 돌아오라는 그 말 따를지도."
물론, 불가능하지는 않다. 월래 바다란건 세상을 한바퀴 돌아서 다시 그 자리에 돌아온다고 하니깐 물론, 2000년이란 시간을 내가 살아있다면 말이야.
"하하하하하핫..."
그렇게 한참 바다를 감상하다 문득 배가 고파진 나는 홀로 조개구이집에 들어갔다.
야외에 내놓은 테이블을 한자리 차지하고 바다를 본다.
"여기 모듬 조개구이랑 소주 한병 주세요."
"참이슬 프레쉬로?"
"음? 예, 그걸로 주세요."
억척스럽게 생긴 아주머니가 순박한 웃음을 지으며 주문을 받는다.
"근데, 이곳엔 혼자 온거요?"
"예."
"하핫, 의외네, 총각 얼굴보니 여자 꽤나 따라다닐 것 같은데 말야."
"실은 얼마전 차였거든요 그래서 궁상떨면서 이별 여행이나 다니는 중이죠."
"허참, 총각같은 사람을 차다니, 그 사람 눈이 삐었나보네."
"아주머니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정말, 사람보는 눈이 없다니까요."
"그러게, 나한테 남은 딸이라도 있었으면, 당장 만남을 주선해 줄텐데."
나는 그냥 미소를 지어주었다. 시간이 지나자 여러모양을 가진 조개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불판위로 올라갔다.
쩌억- 하고 벌어지는 입, 나는 술병에 소주를 한잔 따르고, 조개와 함께 쭈욱 들이켰다.
" 캬아- 역시 조개구이엔 소주가 최고야."
수많은 와인과 양주도 마셔봤지만, 역시 혼자먹는 소주에는 딸리는 감이 없잖아 있다.
헌데, 이 좋은 술을 못마시게 하다니, 세상의 재미를 다 가져갈 셈인가. 하핫...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갑작스레 어울리지 않는 검은색 외제차가 조개구이 집앞에 떡하니 멈춘다.
쳇, 어떻게 알았지...
우락부락하고 정장을 떡하니 차려입은 사내들이 2, 3명 내앞에 선다.
"도련님, 사모님의 편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또 가져왔어? 이제, 질리지도 않나..... 안간다니깐."
"받아보시지요. 안보시면, 후회 하실겁니다."
"하? 후회? 웃기는 소리말고 앉아 김실장, 이렇게 얼굴보는 것도 오랜만인데, 한잔하자구."
"도련님......"
"괜찮아, 어차피 버림받았다면, 인연끊고 사라지는게 도리잖아? 그전에 실컷 세상 구경이나 하게 나좀 내버려두라고해."
나는 자조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 어차피 내가 갈곳은 정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평생에 한번쯤은 어머니에게 거역하고 싶었다.
그렇게 집을 떠났던게 벌써 3년쯤 된 것 같았다.
김실장은 나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저런 눈빛도 싫었다. 누구나 나에 대해서 알게되면 저런 눈빛으로 나를 본다.
싫어...... 싫다고...... 제기랄...
"...실은 유리 아가씨가 많이 아픕니다."
" 뭐......!!"
난, 갑작스러운 말에 놀라 외쳤다.
왜, 그애가 왜?
나는 다급히 편지봉투를 찢었다.
"마..... 말도 안돼!!"
익숙한 정원이 나온다.
아니, 마지막까지 익숙해지지 못했던 정원이 나온다.
그리고, 곧 세련된 의상과 각종 보석으로 치장한 중년 여성이 나온다. 그래......
" 어머니."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내 손을 잡는다. 따듯하다. 따듯한 손길과 따듯한 말....
"잘왔다, 보고싶었어. 요환아."
'분명 내가 있어야 할 곳이지만, 난 이 곳에 있을 수 없다.'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아주며 되뇌였다.
"흑, 다행이다. 정말, 정말로 다행이야."
"다녀왔습니다. 그보다... 유리, 유리는...... 어디있어요."
"정말 걱정했단다, 아... 유리는 네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어제 저택에 도착했단다. 네 방으로 올라가보렴."
어머니가 손을 놓았다.
보면...... 안된다. 안돼... 안돼! 아냐, 아니야... 봐야해, 보고...... 보고싶다.
두가지 마음이 서로 각기 다르게 움직인다. 나는 가만히 서있을 뿐 서둘러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정원의 저편에서 걸음소리가 들려온다. 뚜벅뚜벅... 나는 불안함과 기대감을 반반씩 안고 고개를 들어보았다.
"요환 오빠, 오셨군요."
"너......"
나는 그녀를 바라보자마자 할말을 잃었다.
흑단같은 검은 머리카락과 새하얀 피부, 작은키에 밝은 웃음, 소녀같은 풋풋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여전히 건강한듯 활기찬 그녀의 모습에...... 활기찬?
"제기랄, 속았군."
나는 짜증을 내면서 뒤돌아 나가려고 했다. 어머니의 울듯한 얼굴이 시야에 잡혀 마음이 아파온다.
꽈악-
누군가 나를 뒤에서부터 껴앉아 버렸다.
"뭐... 뭐야, 지금 뭐하는 짓이야."
"오빠, 가지말아요. 제 곁에 있어주세요."
나는 할말없이 멍해져서 팔을 떨구고 그대로 그녀에게 안겨 있었다.
그대로, 계속 이렇게 있고 싶었지만, 안된다. 이대로는 위험해, 나는... 나는 그녀에게 안기면 안되...
"나를...... 사랑하지마, 너도 알잖아, 난 누군가를 사랑 할 수 없다는 것을......"
"아뇨, 틀려요. 오빠는 절 사랑하잖아요, 그래서, 어떤일이 있어도 오지않던 오빠가 내가 아프다는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듣고도 달려와준 거잖아요."
나는 깍지낀 유리의 손을 천천히 풀었다.
"오빠......"
언제나 당당하고 쾌활한 그녀지만, 어느때보다 슬픈 눈을 할때가 있다. 나는 마음이 흔들렸다.
나는 일부러 담담한 표정을 짓고 어머니를 돌아보고 말했다.
"어머니, 전......"
어머니는 손을 들어 내 말을 막고 인자하게 말씀하셨다.
"됐다. 이미 3년이나 흘렀구나, 한국은, 집에는 오랜만일테니 푹 쉬어라, 그리고...... 이제, 나도 너한테 강요는 하지 않을 거란다. 편지에 그렇게 썼는데, 읽어보지도 않고 버리니 원...... "
그래, 이제 포기하셨구나...... 이제는...... 크큭...... 아니면, 어머니도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아셨을까...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 이렇게 못난 아들이라."
어머니는 계속 눈물을 흘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런말 말아라......"
어머니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간신히 덧붙였다.
"요환아, 유리가 널 어찌나 그리워 했는지 모를거다."
나는 고개를 돌려 울것같은 유리에게 미소를 지으며 다가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조심히 쓰다듬어 주었다.
"오랜만에 내 방으로 갈까?"
"응!"
아아, 그녀가 미소짓는다. 이 미소 다시는 못볼거라 생각했는데...... 그래, 다신 안봐야 했는데......
어째서 난 돌아왔을까...... 그대로, 타국의 하늘아래...... 계속 있었어야 했는데......
아, 정말 오랜만이다. 이 방은...... 향긋한 꽃냄새가 풍겨오는 익숙한 계단을 천천히 올라간다.
그리고 익숙한 창가를 내려다보며 익숙한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우린 나란히 침대에 앉았다.
"오빠, 그거알아요?"
"뭐?"
"오빤 3년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요."
"그런가? 뭐, 너도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어쩐일인지, 그녀는 내 말에 뾰루퉁한 얼굴이 되어서 고개를 훽 돌려버렸다.
"칫, 조금은 자랐다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중얼거림을 듣고는 난 켁- 하고 뭔가가 걸린듯 켁켁거렸다.
"혹시, 너 아직도 그 콤플렉스 가지고 있는거야?"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푸하핫- 웃으며,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하핫, 그때 니가 몇살이였다고 자라겠어."
내가 놀리자 그녀는 얼굴을 더욱 붉히며 침대에 엎드려버렸다.
그때가 17세였으니, 아마 다 자랐을 것이다. 아마 지금도, 그때랑 비슷한 키겠지, 유의해서 보진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항상 당당한 그녀였지만, 콤플렉스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작은 키였다.
155나 될까말까 그 작은 키 덕분에 아담하고 귀여움까지 가지게 되었지만, 그녀는 그걸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하루에 우유를 10잔이나 마시고 배탈이나 병원에 간적도 있을 정도다.
나는 그녀의 옆에 엎드려서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그때도 정말 귀여웠지만, 이제는 성숙미까지 더해져서 매력 넘치는 숙녀가 다됐는걸?"
"쳇, 이제와서... 놀리지 말아요."
그녀는 화를 잘내는 성격이 아닌지라 풀어진것 같았다. 뭐,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는지 계속 엎드려서 삐진척을 했지만.....
그녀가 애교 정도로 팔을 살짝 휘둘러 나를 밀쳐낸다.
[찌릿-]
" 아..... "
정신을 감싸는 번개같은 혼미의 파노라마가 순식간에 나를 덮친다.
" 요.... 요환오빠! 오빠! "
눈을 뜨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너무 아득하고 멀어서...
외국에서도 이런 전조를 많이 경험했는데, 이 경우 나는 거의 혼절한다.
아찔한 의식속에 나는 눈을 감았다.
" 오빠......"
내가 혼미한 정신속에 눈을 뜨자 눈가에 눈물 자국이 보이는 유리의 얼굴이 가장 먼저 들어왔다.
"아, 괜찮아 가끔 이러거든 하하하......"
그녀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대로 내 배위에 엎드려서 훌쩍거린다.
"난 몰라요 정말 놀랐잖아요......"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백의를 입고 있는 의사와 어머니가 보였다.
"어머니......"
"유리야, 잠깐 나가있어주렴."
"예, 아주머니..."
유리는 훌쩍이면서, 밖으로 나갔다.
"요환아...... 흑, 흑..."
어머니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어떻게하면 좋니, 흑...... 대체 왜 이런일이..... 흑..."
나는 어머니의 오열에 어렴풋이 그때가 왔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침묵하고 있던 의사가 입을 열었다.
"이제...... 때가 온 것 같군요."
"쳇, 이래서 더욱 집에 안오려고 했던 것인데, 이건 뭐,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 심정이 이해가 되는걸......"
"죄송합니다. 현대 의학으로도 어쩔 수 없는 병이라..."
"아뇨, 진작에 병원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한것은 저예요, 그 때 들어가서 약물에 찌들었으면 혹시 몰랐겠죠."
의사는 초연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아요, 약물에 찌들어서 10년을 사느니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살아왔던 이 3년이 더 가치있다고 생각하니까요."
나는 어머니의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
"그러니까, 너무 슬퍼하지도, 자책하지도 마세요 어머니."
"흐어어어억, 흐흑- 흐윽....."
하아...... 이젠 그 아이만 떼어버리면, 되는건가?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한참을 내 옆에서 오열한 어머니는 왠지 더 늙어 보였다.
어머니가 비틀거리며, 물러가자 유리가 들어왔다. 하아, 강하게 나가야겠지.....?
나는 일부러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유리, 나 죽는데."
뜬금없는 이야기에 유리는 눈을 크게뜨고 더듬거리면서 말한다.
"오빠, 무...무슨 이야기를 하는거예요. 그냥 쓰러졌을 뿐이잖아......"
"무슨 이야기는... 나 죽어, 그래, 3년전부터 따라다녔던 병이 드디어 터진 모양이야. 너도 알고 있었을 텐데?"
"......"
"왜? 내가 불쌍해? 불쌍해서 견딜수가 없지? 위선의 눈물이라도 떨어뜨리지 않으면 안되겠지?"
나는 일부러 모질게 말했고 유리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내게 다가왔다.
"왜 그런식으로 말해요, 난 오빠를 정말 사랑해요, 사랑한다고......"
"날 사랑한다는 말 사실이 아니잖아, 넌 그냥 어렸을 때부터 동경했던 사람을 사랑한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야, 안그래?"
"아니예요...... 아니란 말이예요......! "
"괜찮아, 널 탓하지 않아 넌 그냥 날 오빠로서만 기억해주면 되는거야, 아주 친했던 병약했던 오빠로만..."
그녀는 더 이상 듣지 못하고 방을 뛰쳐나갔다.
내가 너무 모질게 몰아붙였을까? 아니, 괜찮아, 어차피 떠날 세상 미련따윈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하아,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언제나 맑은 하늘이..... 지금은 어두운 천장만이 내 위에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하하하..... 나는 웃었다. 추억이 담겨있는 내 방에서 그냥 웃었다.
-뚝
눈물이 한방울 두방을 떨어진다.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다고......"
좀 더 살고 싶었다. 좀 더 이루지 못한 많은 것들을 이루어보고......
좀 더 그 아이의 웃음을 보고 싶고...... 어머니의 늙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위로해주고......
그래,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귀여운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부인과 조용히 늙어가는 그런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는데...
하아, 3년의 여행을 통해 미련따윈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집따윈 오는게 아니였다.
한국에는...... 오는게 아니였다.
근데, 내가 왜 한국에 왔더라, 왜?
-울컥
속에서 무언가가 부글부글 끓는 느낌...
"으아악."
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쥐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내장 기관을 맹수의 날카로운 이빨에 모두 물어 뜯기는 듯한 그런 고통이 찾아온다.
"하아- 하아- "
병을 선고 받은후 계속되는 고통이지만,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다.
문득 나는 옛날 하얀 백의를 입은 의사가 했던 충격적인 말이 떠오른다.
[아버님은 사망하셨습니다.]
하하, 참 기구한 운명이 아닌가, 아버지도 내가 아직 어렸을때 병으로 돌아가시고...
나도 아버지의 병을 물려받아 이제, 사망 선고를 받았으니
고통이 멈추고도 난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덜컥
갑작스레 문이 열리고 들어온 유리가 헤헤 웃으면서 말을 건넨다.
"오빠, 옥수수 스프 드세요."
나는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녀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당당한 걸음걸이로 내게 다가왔다.
"뭐하는 거야."
"이거 제가 만든거예요. 오래전부터 매일 요리를 연습했거든요. 먹어보고 어떤지 평가좀 해주세요."
그녀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스프를 엎어버리려다. 간신히 참으며, 그녀에게 따가운 눈빛을 보내는 것으로 대신했다.
"뭐하는 거냐고."
"왜요. 저도 제가 하고 싶은데로 하는 거잖아요, 아주머니와 주변인을 다 버리고 떠나버린 오빠가 그랬던 것처럼."
"하..... 너, 지금 그거 말이라고 하는...!"
"나...! 내가 느끼는 감정 절대 위선도 거짓도 아니예요!! 단 한순간도 오빠를 잊어본적이 없어요, 오빠가 떠나고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알아요? 3년동안 내가 오빠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오빠가 얼굴도 한번 보여주지 않고 죽어버릴까, 얼마나 두려웠는지 알기나 해요? 내가...... 오빠가 한국에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아냐고요..."
그녀가 또 울먹인다.
아...... 보고 싶지 않은데,
유리의 눈물은... 유리는 항상 밝게 웃고 있어야 하는데, 어째서... 나같은 놈때문에...
"어째서 나같은 놈을......"
"몰라... 몰라요. 책임져, 사랑하게 만들었으니 책임져요..."
우습게 느껴질 대사였지만, 유리의 입에서 나오자 왠지 마음이 갈가리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내 무릅에 파고들어 흐느꼈다.
"흑...... 흑... 좋아해, 좋아해요."
"나, 이제 죽어."
"괜찮아... 괜찮아요, 아직 살아있잖아요. 아직, 생기있는 그 눈으로 날 바라봐주고 있잖아요."
그래, 이 아이의 웃음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같이 추억의 공간을 걷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에 왔다.
나도 내 몸이 점점 더 악화되는 것을 이제, 죽을 거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일까?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서 무의식적으로 한국에 와버렸다.
욕심인것 나도 알고 있다. 이러면 안됀다는 것도 알고, 하지만.....
견딜 수 없다. 유리를 이대로 놔둘 수 없다. 너무 안타까워서...
"유리야, 일어나봐."
나는 힘들게 유리를 일으켰다.
"우리, '초가집'에 가지 않을래?"
"에...?"
유리는 갑작스런 상황 반전에 적응하지 못하는 얼굴을 했다.
나는 웃으면서 일어났다.
"기억나지 초가집? 갈거지?"
유리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미소지으며, 그녀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아, 오빠 무리하면 안돼요."
"괜찮아, 너를 만나는 것 자체가 무리니깐."
그러자 유리는 볼을 잔뜩 부풀이고 따지듯 묻는다.
"그거 듣기에 따라선 굉장히 기분 나빠지는 말이네요."
"하핫, 그런가?"
어머니는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고 순순히 '초가집'의 열쇠를 주셨다.
나는 어머니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밖으로 향했다.
"아, 김실장님 아무 차좀 빌려주시면, 안돼요?"
김실장은 나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주머니에서 차키를 넘겨주었다.
라곤 하지만...... 차키가 왜 이렇게 많아
"마음에 드는 것 아무거나 골라서 타십시오."
"어? 그....그래"
나는 의아한 기분은 바로잡으며, 정원을 나가 저택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왠지 모르겠지만, 유리는 나를 가소롭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다.
" 뭐..... 뭐야, 그 표정은?"
" 오빠, 운전 안한지 몇년이죠?"
" 그..... 글쎄?"
유리는 어깨를 살짝 들어올렸다 내리며, 내게서 수많은 차키를 강탈했다.
"환자에게 운전을 맡길수도 없으니, 제가 하도록 하죠."
"뭐? 무... 무슨소리야, 너 면허있어?"
유리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면허증을 내게 보여준다.
그리곤 빨간색 오픈 스포츠카에 다가가서 하나의 차키를 딱 골라내더니 문을 연다.
"타세요."
"으응..."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옆자리에 탔다.
"저, 도련님을 이대로 보내셔도......"
"이제,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할지, 내가 할일은 그저, 저 아이가 하고 싶은대로 놔두는거야."
남자는 약간 걱정스럽다는 목소리로 말한다.
"사실은 사모님, 이회장에게 전화가......"
"뭐?"
"여긴 그대로구나."
나는 감탄하듯이 말했다. 이 나무에 둘러쌓인 아름다운 거리...... 변하지 않았어
"그러게요, 오빠가 한국을 떠난 3년동안 변하지 않은게 여기 또 있었네요."
"또? 그럼 다른것도 있어?"
유리는 운전대에서 오른손을 떼더니 가슴에 얹고는 말했다.
"내 마음이요."
나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당황했다. 쟤가 왜저러지.....?
"너, 혹시 뭐 잘못 먹었니?"
"쳇, 그런눈으로 쳐다보지 마요, 전 나름대로 욕구 불만이라 어쩔 수 없다고요."
"욕구 불만?"
내가 되물었지만, 유리는 묵묵히 운전을 했다. 유리의 얼굴이 약간 붉어진 것 같기도 하다.
"이야, '초가집'은 여전하네?"
나무로 지어진 예쁜 펜션에 도착했다.
어렸을 때부터, 이곳에 자주 놀러오곤 했는데, 어린 내가 초가집의 뜻도 모르고 이 펜션을 그렇게 불러버린 바람에
어른들도 장난삼아 그렇게 불렀다. 그러다보니 펜션의 애칭은 초가집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자, 그럼 들어갈까?"
유리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어머니에게 받은 펜션키로 문을 열었다.
그대로였다. 옛날 추억 그대로의 물건들...... 하아, 정말 옛날 생각난다.
어렸을 때부터... 유리의 집안과 우리 집안이랑 자주 놀러왔던...
"하아, 추억도 잠시, 전쟁부터 해야겠군."
펜션은 인류 최대, 최악의 적, 먼지가 너무 많이 쌓여있었다.
"유리야 청소부터 할까?"
"예, 오빠."
유리와 나는 정말 열심히 닦고 치우고..... 몇시간이 지났을까?
집은 어느정도 깨끗해졌고 나는 쇼파에 벌러덩 누웠다.
"휴, 열심히 청소했더니 배고프네."
내 말에 유리가 눈을 번쩍 빛내며, 대답한다.
"식사..... 준비하죠, 창고를 보니까, 여분의 식량이 보관되어 있더군요."
사뭇 진지한 그녀의 말투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끄덕였다.
따끈한 쌀밥과 콩자반, 시금치 무침, 감자 조림과 된장찌개..... 조촐하지만, 소박한 맛이 있었다.
"유리야, 너 요리 꽤 잘한다?"
유리는 얼굴을 붉히며 말한다.
"기억 안나요? 오빠 이상형은 요리 잘하고 상냥한 여자라고 그랬잖아요. 그 동안 제 나름대로 노력했는 걸요."
그랬었나.....? 나는 괜히 할말이 없어져서 감자 조림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입에 넣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린 창문을 열고 밖에 발을 내놓은체로 야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앗, 저건 별이죠 오빠?"
나는 유리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하늘에서 빛나는 것을 보고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글쎄, 인공위성 아닌가?"
"쳇, 무드없게..... 이럴땐 별이라고 말해주는 거라고요."
우리 둘은 그렇게 한동안 별인지 인공위성인지 모를 반짝이는 것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유리가 내게 몸을 기대온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오빠......"
야릇한 기분이 느껴지는 밤, 그녀의 숨결이 왠지 모르게 엄청난 자극제가 되어 나에게 오고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유리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유리의 눈을 바라본다.
흔들리는 맑은 눈동자, 흑단같이 부드러운 머릿결, 달콤한 숨결과 뇌리로 전해지는 짜릿한 체향-
서서히 나는 그녀에게 다가선다.
유리는 그대로 눈을 감는다.
부드럽게 닿는다. 그리고, 부드럽고 달콤한 입술을 통해 느껴지는 그녀의 미세한 떨림...
나는 참지 못하고 그녀를 안아버렸다. 가까이 붙어있어 서로의 숨결이 머릿카락을 날려버린다.
"첫키스예요."
유리는 얼굴을 붉히며, 뭔가 귀여운 말을 했고, 나는 이성이 끊어져 그대로 그녀를 바닥에 눕혔다.
"꺄악..."
-꿀꺽
마른침을 삼키고 유리를 바라봤다.
20세지만, 아직 소녀같은 얼굴과 새하얀 피부가, 그녀만의 짜릿한 향기가 나를 자극한다.
유리가 눈을 감는다. 왜? 왜...... 아냐, 이러면 안돼......!
나는 간신히 떠나간 이성을 되찾아 침착하게 그녀의 위에서 내려왔다.
유리가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본다.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나요?"
하아, 그렇다면, 이렇게 괴롭진 않겠지
"아니, 넌 너무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을 만큼."
"오빠가 정말 날 사랑한다면, 지금 안아줘요."
나는 안는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다.
유리는 요염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마치 나를 유혹하듯이......
나는 다시 그녀를 만진다. 얼굴, 목, 등...... 그리고 옷을 벗겼다.
그녀는 낮선이의 감촉에 움찔거리면서도 내가 이끄는대로 따라왔다.
"상냥하게 해주세요, 나...... 처음이예요."
그녀의 말이 내 사고를 정지시켰다.
이게, 이게 뭐하는 짓이야 임요환......!
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하아, 세상에게 버림받은 자가 안기엔 넌 너무 아름다워."
"......"
그녀는 울듯이 나를 바라본다.
"왜, 망설이지 마요, 오빠라면, 괜찮아요. 내가 원하는 거니깐."
"아니, 넌 내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야, 그래서 할 수 없어, 사라질 내가 너에게 남겨줄건 상처밖에 없잖아, 그래서 더욱
너를 아끼고 싶은거야. 언젠가 나 말고 정말로 좋은 사람이 나타날테니, 너도 몸을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다. 유리야."
"......"
그녀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떨리는 손으로 내 얼굴을 어루만지며, 그저 그렇게 눈물을 흘렸다.
나는 울다지친 그녀를 안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유리의 아버님이신 이회장님이 손수 '초가집'까지 찾아와 유리를 데리고 가버렸다.
아마도 화가나신 모양이다. 하하, 나라도 화를 냈을것 같은 상황이라 이해하지 못하는건 아니지만......
소중한 딸애를 곧 죽을 비실한 놈이랑 단둘이 지내게 할 수는 없지...... 고럼고럼 말도 안돼지.
어머니는 집으로 오라고 하셨지만, 나는 계속 '초가집'에서 생활했다.
몇일이 지났을까?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유리의 얼굴을 못본지도...
그러다가, 나도, 이제 보이기 시작했다. 꺼져가는 등불의 앞날이......
고통의 주기는 점점 짧아졌다.
괜찮다고 생각하면, 아파오고......
이젠 정말 괜찮다고 생각해도, 순식간에 다시 아파오고......
그 속에서 나의 정신은 너무 빨리 지쳤나보다.
"어머니, 내일 와주실수 있어요?"
"니가, 왠일로......"
"글쎄요, 불안해서요, 그래도 가는 마지막 길은 어머니 얼굴이라도 봐야하지 않겠어요?"
"......."
죽음, 그것이 찾아오고 있었다. 난, 본능적으로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하아...... 더 이상 괴로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 순간 가장 아쉬운건 그녀의 웃음을 더 이상 보지 못한다는 것
"올리 없겠지......"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는데 갑작스레 찌릿- 하고 고통이 온몸을 파고든다.
"으아아아악!"
하아...... 오늘밤을 넘길 수 있을까?
정신이 아득해진다. 무서웠다. 이 어둠에 나 혼자 있다는 두려움......
외롭다. 어둠속에 나 혼자만이... 비명을 지르고, 고통을 받는다.
무섭다. 죽는다는게 너무 무서웠다.
3년전부터, 계속해서 무서웠다. 언제 죽을지 몰라 항상 두려움을 안고 살았다.
"난 사실, 정말 죽고 싶지 않아......"
하아- 아득한 기분속에서 눈이 서서히 감긴다. 나는...... 죽는 것인가?
나는 몸을 떨었다. 두려움에...... 다시는 눈을 뜰 수 없다는 두려움에......
그리고, 서서히 온 몸에 찾아오는 아득함에 눈이 감긴다...
뚝-
뜨거운 것이 내 얼굴에 떨어졌다.
그것은 너무나도 아프고 뜨거워서 나는 금방이라도 눈을 뜰것 같았다.
아.....? 어쩐일인지 힘이 없다. 몸에 하나도 힘이 없어서 눈조차 뜨지 못하겠다.
아득한 섬광같이... 또는 부드러운 아지랑이가 귓가를 간지럽게 하듯이, 날카롭고 부드러운 음성이 뇌리에 울렸다.
"오빠...... 요환오빠..... 정신차려요....... 죽으면 안돼......"
"유리......? 유리야? "
"네...... 저, 유리예요. 이제야, 이제야 와서, 정말 미안해요... 미안해......"
요환은 유리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흐릿한 눈을 떳다. 어둠속에서 누군가 자신의 머리를 받쳐주고 자신의 얼굴에 눈물을 떨어뜨려준다.
"다행이다. 네 얼굴을 볼 수 있어서......"
두려움이 떠나간다. 그녀가...... 곁에 있어서 다행이였다.
"죽지마...... 죽지말아요, 오빠."
"응, 노력해볼게."
나는 힘겹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울지마, 너야말로 울지마,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
그녀는 떨리는 음성으로 내게 말을 한다. 무슨 말이지...... 들어야 하는데, 마지막 그녀의 말...... 들어야......
잘 들리지 않는 불안정한 음성이지만, 왠지 모르게 편안해진다. 졸립고, 편안하고...... 아늑해서......
잠이 온다.
잠이......
......
"다른 사람은 없어요. 내가 사랑하는건 오직 단 한사람, 요환오빠 뿐이예요. 이 감정이 착각일수도, 어리석은 감정일수도 있어요. 하지만, 난 당신을 사랑한다는 착각을 한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아요... 사랑해요..."
유리는 서서히 눈을 감는다.
그의 옆에서 그대로......
어쩐일인지, 두 사람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마치, 한 폭의 동화와 같이...
" 그 겨울이 지나 또 봄은 가고 또 봄은 가고,
그 여름날이 가면 더 세월이 간다 세월이 간다.
아! 그러나 그대는 내 님일세 내 님일세.
내 정성을 다하여 늘 고대하노라 늘 고대하노라.
아! 그 풍성한 복을 참 많이 받고 참 많이 받고,
오! 우리 하느님 늘 보호하소서 늘 보호하소서.
쓸쓸하게 홀로 늘 고대함 그 몇 해인가.
아! 나는 그리워라 널 찾아 가노라 널 찾아 가노라"
- 페르 퀸드 2번 중 '솔베이지의 노래'
-작가 曰
안녕하세요 ㅇㅅㅇ
인소닷에 첨으로 글올린 [왕지네]입니다.
이 단편은 몇달전에 제가 어떤분의 팬픽으로 올린것인데...
워낙 글쏨씨가 딸리는지라... 그대로 묻혀버렸죠 ㅇㅅㅇ
아쉬워서 좀 다듬어서 올렸어요.
음 처음은 우려먹기지만...... ㄱ-
두번째 세번째는 더 나아지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