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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은 인간 안에 잠재된 죄를 들추어내는 것이었습니다
로마서 7: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율법은 온통 하라, 하지 말라로 인간에게 주어지는 듯합니다. 이 말씀을 들은 인간은 문자 그대로 이해하여 율법을 행할려하고 또한 행하지 않을려고 하는 행위를 내놓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배워서 터득한 깨달음을 진리로 이해한 깨달음에서 나오는 행위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의 행함을 성경은 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롬7;15-17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사도바울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고 하는 그 마음으로 행한 것이 결과적으로 죄가 바울을 움직이게 하여 내놓은 행위였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위해 살기를 원합니다.
누구나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성경은 죄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왜 인간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죄냐라는 반문을 할 수 있겠지만 인간이 선행을 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할 존재가 못된다는 것입니다.
롬11;35-36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인간이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을 존재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인간은 그 하나님으로부터 섬김을 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조물주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아야 하는 존재가 도리어 조물주 하나님께 공급할려고 하니 하나님이 종이 되어 버리고 인간이 주인이 되어버리는 모양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이 하나님을 잘 섬겨볼려고 하는 그 마음의 근원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7;21-23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속 사람은 인간 안의 마음을 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인간 안의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법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 안의 마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려고 하는데 이 마음의 법과 싸움을 거는 존재가 “한 다른 법“인데 이 다른 법은 인간의 마음과 싸우게 되는 법으로서 성령의 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성령이 인간의 마음과 싸워 이기게 되는 것이 진정 인간이 살아나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항상 자기의 원함을 정당하고 소중하며 가치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지만 성령이 인간의 마음과 싸움을 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소망이 생기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인간은 죄의 법으로 살고 있었던 존재였음이 노출된다는 것입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사는 인간은 늘상 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려는 일에 최선을 다하사면서 그것이 진정한 정의인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태평시대를 사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율법을 세상에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는 인간의 죄를 들추어내려고 하심이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5:20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미 죄로 살고 있는 인간들에게 너희들의 상태는 이미 죄인으로 살고 있기에 그 죄인으로 계속 살게 되면 영원한 멸망이다를 가르치시려 하심이었다는 것입니다.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의인으로 착각하고 있는 자들에게 율법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병든 세상에 의인(율법)을 보내어 병든 자를 고치시려 함이었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세상에 주어짐은 먼저 종이성경으로 주셨고 두 번째 사람성경(예수님)으로 주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7: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할찌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율법(성경)이 아무것도 온전케 못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율법은 종이성경과 사람성경으로 나눌 수가 있지만 이러한 율법이 필요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성경을 갖고 교회출석하는 자들은 성경이 없었다면 하나님을 위한 열정이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또한 사람성경(사람의 마음에 성령을 부은)은 그 종이성경으로부터 건너오는 자들을 받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종이성경을 통하여 사람성경에 이르게 되고 그 사람성경(예수님)을 통하여 최종적으로 하나님께로 연결되는 과정으로서의 성경(율법)이 반드시 필요하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종이성경과 사람성경이 구원을 주는 존재가 아니었고 오직 하나님만이 구원하시는 존재였기에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하지 못한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앙하였던 바리새인들은 그 종이성경에 머무르면서 말씀성경(예수님)에게로 건너가지 못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결과로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종이성경은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었고 예수님은 그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종이성경=>사람성경(예수님)=>하나님).
요한복음 5:39-40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오늘날 세상에서 성경을 듣고 다니는 모든 교인들은 그 종이성경을 통하여 사람성경을 만나는 것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하나님을 만나는) 정상적인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자들(성도)에게 율법이 효력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죄를 깨닫게 하는 효력이라는 것입니다.
즉 범죄를 더하게 하는 것인데 이 말씀의 의미는 인간이 죄를 지어서 더욱 더 죄인이 되라는 말이 아니라 이미 인간 안에 존재하고 있던 그 인간의 마음은 죄의 종이 되어 죄로 살고 있었던 자들이었다를 노출시키는 역할을 율법(사람성경=사람의 마음에 성령을 부음받은 자)이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율법(사람성경=예수님)이 세상에 파송되어 맡게 된 역할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에 의해 맞아죽는 역할이었던 것입니다. 선도자는 먼저 시범케이스가 되어 죽는 모습을 먼저 보이게 됨으로 영접하는 제자들은 그 예수의(율법) 죽음을 나의 죽음으로 영접하는 것이 성도의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4:2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율법은 범죄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형벌이기에 그 형벌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죽임당하는 것은 살아나는 길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죄로 살던 인간은 성도라면 이 땅에서 한번의 심판은 반드시 겪어야 할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물론 그럴 리가 없는 가정이긴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없었다면 제자들에게도 살아나는 그 부활이 없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성공을 기원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도리어 자신의 죽는 이야기로만 제자들의 기를 꺾었을 뿐입니다.
마태복음 16:21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주님(예수님)이 죽는 모습을 보고 제자들의 마음도 더불어 죽어가는 그 모습이 성도의 진정한 죽는 모양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함(인간의 마음이 죽임당함)은 선도자 예수님께서 먼저 죽으시는 모양으로 더불어 제자들에게도 동일한 죽음으로 완성되는 그림이 하나님의 땅에 씨뿌리심으로 거두시는 추수행위라는 것입니다.
한알 예수라는 씨앗을 뿌리시고 제자들이 예수님과 한셋트가 되어 구원받는 모양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이 되신 예수님이 세상에 주어지지 않았다면 죽는 모양도 볼 수 없고 존재할 수도 없어서 죄를 죄로 알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세상 사랑으로 율법을 주심은 죄인으로 살면서 죄인인 줄을 모르는 자들에게 죄를 알게 하심으로 율법(사람성경)을 세상이라는 밭에 뿌려 심겨져 죽는 모양으로 죽게 되면 그 밭에서 싹 이삭 곡식으로 열매맺는 차서와 모양으로 하나님의 구원행위는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을 사는 모든 인간은 자신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할려고 하는 본능으로 살고 있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하나님을 기쁘게 할려는 이 마음은 결국 죄였음을 알리려 하시는 방편이 먼저 종이성경으로 다음으로 사람성경(예수님, 천사)으로 세상에 뿌리시는 것입니다.
인간 안의 마음은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거스리는 존재였음을 알게 하심이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2: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본성으로 행하는 자들이 이방인(하나님과 관련없는)으로 자기 생각으로만 사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세상에 대한 공의는 심판을 실행하여 살리시기 위함이 그 원래 목적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그 심판(사랑을 위한)을 받지 못하면 영원한 심판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율법을 보내어 그 율법에 의해 심판을 받고 살아날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첫댓글 이 땅에서 심판을 받지 못하면 영원한 심판으로 떨어지므로 율법을 보내어 율범에 의해 심판을 받고 살아날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라는 글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