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독일에 점령됐던 네덜란드에서 부역한 것으로 의심되는 42만 5000명의 명단이 온라인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고 영국 BBC가 2일(현지시간) 전했다. 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린 지 80년이 흐른 이제야 이런 일에 나서는 것이냐는 의문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일본 제국주의와 식민지 잔재 청산에 미진함이 적지 않았던 우리 역사에 반면교사로 삼을 것이 있을까 싶어 이 기사에 주목했다.
먼저 이번 명단은 네덜란드에서 2차 대전 종전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던 특별 사법 시스템을 통해 조사된 개인들이 포함돼 있다. 이들 가운데 15만명 이상이 일정한 형태의 처벌에 직면했다. 이런 조사를 통해 얻은 모든 기록들은 헤이그의 네덜란드 국립 문서보관소(아카이브)를 찾으면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아카이브를 디지털로 꾸미는 데 도움을 준 하위헌스(Huygens) 연구소는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지속된 네덜란드 점령을 연구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거대한 장벽이었다고 말한다.
하위헌스 연구소는 "이 아카이브는 현재와 미래 세대에게 모두 중요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면서 "아버지가 전쟁 중 했던 일들을 알고 싶어하는 자녀들부터 협력(부역)이란 회색 지대를 연구하는 역사학자에 이르기까지"라고 밝힌다.
이 아카이브에는 전쟁범죄자들과 독일 육군에 자원 입대한 2만명 남짓, 국가사회주의운동(NSB, 네덜란드 나치 당) 멤버들의 파일을 담고 있다. 하지만 무고한 것으로 확인된 사람들 이름도 들어가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그 아카이브가 1944년 부역자로 의심받는 이들을 조사한 특별 사법권(Special Jurisdiction)으로부터 나온 파일들이기 때문이다.
흐로닝언(Groningen) 대학의 역사학 교수 한스 렌더스는 BBC에 이들 사례의 약 15%만 법정으로 갔고 약 12만명은 사례가 각하됐다고 전하며 "따라서 (아카이브에) 이름이 올라 있더라도 그 인물이 잘못했다는 것은 확실치 않다"고 덧붙였다.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는 용의자의 이름과 생년월일 및 태어난 곳만 포함돼 있으며 특정 개인 정보를 사용하여 검색할 수 있다. 특정한 인물이 죄가 있는지, 아니면 어떤 유형의 부역으로 그들이 의심받는지를 특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용자들이 국립 아카이브를 방문하면 이 정보를 보기 위해 어떤 파일을 요청해야 하는지 알려줄 것이다. 실체 파일에 접근하는 사람들은 그것들을 보는 합당한 관심을 설명해야 한다.
위트레흐트(Utrecht) 대학에서 20세기 전쟁을 연구하는 역사학자 토마스 보텔리어는 BBC에 다른 나라들에서도 비슷한 위원회가 있었다며 지금까지 네덜란드 기록들에 대한 접근은 "과거 전쟁 시기를 둘러싼 논란이 훨씬 많았던" 이탈리아보다 "많은 제약"이 뒤따랐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이어 이렇게 기록들을 디지털로 만드는 프로젝트가 원래 계획한 대로 이뤄지면 네덜란드를 다른 유럽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감한 시기의 역사를 담은 개인 정보가 자유롭게 이용된다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시선이 네덜란드에 있어 처음에는 온라인으로 공개되는 정보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부친이 NSB 멤버로 사람들을 나치 수용소로 추방하려고 만들어진 캠프 웨스터보크에서 일했던 린케 스메딩가는 네덜란드 온라인 매체 DIT에 "난 아주 역겨운 반응들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었다"면서 "그것을 예상해야 한다. 사회적 실험의 일환으로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네덜란드 사람 다섯 중에 한 명은 부역자의 자녀가 공직에 있는 것에 불편을 느끼며, 8%는 친구나 동료가 부역자 친척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불편해 한다. 렌더스 교수는 "NSB 멤버의 자녀에게 과거는 때로 트라우마"라며 "한편으로 그들은 아무런 잘못을 범하지 않았는데도 비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버지나 어머니가 전쟁 동안 한 일에 대해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23년 네덜란드에서 실시된 조사에선 제트(Z) 세대(1990년대 중후반생부터 2010년대 초반생)의 25%가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를 미신으로 간주하고, 네덜란드 시민 53%는 네덜란드가 홀로코스트 피해 지역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네덜란드에서도 약 10만명의 유대인이 학살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 아카이브의 톰 데 스멧 소장은 DIT에 부역자와 점령 피해자 친척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 뒤 "부역은 여전히 중요한 트라우마이다. 많이 얘기되지 않았다. 아카이브가 열린 때 금기가 깨질 것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지난 달 19일 의회에 보낸 편지를 통해 에포 브루인스 문화부 장관은 "아카이브의 개방성은 (네덜란드의) 어렵게 공유된 과거의 영향을 직면하고 한 사회로서 처리해내는 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온라인에서 얼마 만큼의 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가는 주어진 프라이버시 우려를 제한하게 할 것이며 몸소 아카이브를 찾는 이들은 사본을 만들 수 있도록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더 많은 정보를 공적으로 공개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으면 하는 바람을 피력했다.
온라인 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는 아직 생존해 있을지 모르는 사람들 이름은 게재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