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놈의 에펜네가 서방이 집에 들어오면 아는 채라도 혀야지 시방 뭣 허고 있는 거여, 응.]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서던 남편은 한 손을 허리에 두르고 다른 한 손으로 삿대질을 하며 고함을 지른다.
그 소리에 김여인은 마치 솔개 만난 병아리처럼 목을 움츠린 채 조심스레 몸을 돌린다. 지렁이 잡기에 몰두하다 남편이 들어오는 것도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평소 한 번 화가 나면 숨돌릴 틈도 없이 쏟아 붓는 성격을 잘 알기에 아무 대꾸 없이 묵묵히 듣고만 있다.
[아니 그 꼴은 또 뭐여? 자네 지금 지 정신여? 사람이 나일 먹으면 나이 값을 해야지. 이건 갈수록 영….]
한 손을 허리에 올리고 아내의 몰골을 위, 아래로 훑어보며 노망난 사람 대하듯 말한다.
[아 저 나무 좀 보랑께요. 요번에도 저리 말라 가는 걸. 저게 모다 흙의 양기가 부족해서랑께요.]
김여인은 남편의 화를 조금이라도 달래려는 듯 자신의 몸에 묻은 흙을 허둥지둥 떨며 변명을 늘어놓는다.
[아, 그래서 만복이네 집에서 한약 찌꺼기 얻어다 줬잖어? 그거 안 묻어줬어?]
남편은 점퍼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여 한 모금 빨아들인 뒤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말한다.
[그거야 벌써 묻어줬죠. 근디 그걸 묻어줘도 아무 소용이 없더랑게요. 저것 잠 보쇼. 저리 삐쩍 말라가며 비틀어지잖소. 나물 살려 볼라꼬 애 쓰는 나가 하도 안 돼 보였는지 누가 그럽디다. 그시랑이가 양분을 다 뺏어먹어 그런다고. 나무가 먹을 양분을. 생긴 것도 징상스럽게 생긴 것이 흐는 짓도 어쩜 그리 징상헌지.]
김여인은 지렁이에 대한 원망을 주절주절 늘어놓는다.
아내의 대답에 남편은 오른 손 엄지로 오른 쪽 콧구멍을 누르고 팽 하니 힘을 주며 코를 풀고는 엄지손가락을 바지에다 쓱 닦으며 말한다.
[아, 이 사람아. 예로부터 지렁이는 토룡공자라 혀서 땅 파 먹고사는 사람들은 그걸 얼매나 귀하게 대허는디 어떤 놈인지 몰라도 좆도 모르는 놈이 헌 말을 듣고 지금 그러고 있는 것여. 뭔 말을 듣더라도 지대로 듣고 혀.]
[이것 잠 보쇼. 이 많은 그시랑이 땅 속에서 살며 그 난리를 치니 나무가 지대로 견뎌요. 더구나 꽃집을 허는 사람이 헌 말잉게로 정확헌 말 아니것소.]
김여인은 자신의 말을 증명하려는 듯 남편 발 앞으로 양동이를 옮긴다.
[아니 어떤 시래비 아들놈이 그런 소릴 혀. 좆도 모르는 놈이 불알보고 탱자탱자 한다더니 기껏 꽃송이나 포장해서 파는 놈이 무슨 땅에 대해 안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여 지껄이길. 아, 이 사람아. 귀가 두 개인 것은 그런 쓰잘대기 없는 소리는 한쪽으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라고 있는 것이여.]
남편은 양동이 속을 흘낏 바라보고는 침을 튀기며 역정을 낸다.
꽁초를 바닥에 던지고 발로 비벼 끄고는 마당 오른쪽 집으로 들어서며 빨리 밥이나 차리라는 남편의 타박을 말 그대로 한 귀로 흘리며 힘없이 부엌으로 걸음을 옮긴다. 부엌에 들어가서 쌀을 바가지에 퍼 옮기다 말고 거실로 가서 전화기를 집어든다.
[쌍둥이 아버지 들어오셨다. 오늘 저녁은 자네가 준비혀. 얼른.]
김여인은 상대방이 듣든지 말든지 하는 말투로 자신의 말만 전한다.
그 동안 아무리 몸이 아파도 남편의 밥만은 꼭 자신이 지어 왔는데 갑자기 온 몸의 힘이 다 빠져나간 것만 같다. 동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만큼 기묘한 동거를 해 오면서도 자신만이 남편의 속옷 빨래와 밥을 지어 올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버텨왔던 것이다. 집안의 다른 일들은 작은집에게 떠넘기고도 지금껏 해 오던 그 일이 오히려 귀찮고 짜증스럽게 다가온다.
그렇다고 직접 대면하고 부탁하면 그 동안 수시로 자신의 고유영역을 침범하던 작은댁이 얼씨구나 하구 낚아채 갈 것만 같았다. 조강지처로서의 존재 근거인 속옷 빨래와 밥 짓는 것 마저 빼앗긴다면 그것은 산송장 꼴이 될 것 같아 말하기 싫었다. 그러나 남편의 급한 성격을 잘 알고있는지라 애써 불편한 마음을 감추고 태연하게 말했지만 그것은 김여인의 생각일 뿐 입김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끊는다.
아이들 걸음으로도 몇 발짝이면 끝이 날 정도로 작은 마을에서 함께 자란 두 사람은 서로의 몸에 점이 몇 개인지도 알 정도였다. 그런 까닭에 기와집을 고집하는 남편의 마음을 모를 리 없는 김여인이었다. 고향이란 말을 떠올리면 눈앞에 그려지는 기와집. 마을에 단 한 채뿐이던 그 기와집은 창신 부락이란 마을 이름을 기와집 골로 대신 할 만큼 화려하고 대단한 규모의 집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공통된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만의 기와집을, 고향의 기와집을 소유하는 것일 정도였다.
결혼 첫날밤 남편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나중 집을 장만하면 꼭 그 기와집을 장만하겠다'고 나직하게 말하며 거세게 끌어안았다. 몸이 쪼개지고 정신을 잃을 것 같은 열풍 속에서도 남편의 나직한 음성이 귓가에 맴돌았다.
복덕방 주인의 감언이설에 이끌려 들어선 집은 제때 수리를 하지 못한 탓인지 마루는 군데군데 썩어 있었고, 지붕에는 기와의 깨진 틈으로 잡풀이 돋아나 마치 흉가와 같아 보였다. 당연히 처음 장만하는 집으로는 마음이 가질 않았다. 그러나 운동장만큼 넓은 마당과 가지가 찢어질 정도로 열매가 달린 감나무의 풍성함이 김여인의 토라진 마음을 유혹했다. 고향의 그 기와집만은 못했지만 그래도 자신들의 집을 장만했다는 것이 너무도 행복했다.
비좁고 허름한 창고 방에서 기와집으로 이사온 그날 밤. 두 사람은 지금의 행복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은 꿈과 함께 뜨거운 입김을 토하며 지샜다. 결혼하면 도시에서 살 수 있다는 아버지의 협박 반, 권유 반에 쫓기듯이 남편과 식을 올린 것도 벌써 칠 년 전 일이다.
이불 두 채와 사기그릇 두 벌을 나무궤짝에 담아 하나씩 짊어진 초라하고 볼품없는 형편이었지만 그래도 자신들을 기다리는 공장으로 향하는 발걸음만은 가벼웠다. 시아주버니의 보증으로 공장 창고를 세를 얻어 방으로 꾸미고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허름하고 비좁았지만 낯선 타향에서 따뜻하게 잘 수 있는 것으로도 두 사람에겐 고마운 일이었다. 실상 농사란 것이 새벽부터 밤중까지 힘들여 일하고도 비가와도 걱정, 안 와도 걱정인 것이었다. 뼈빠지게 일하고도 하늘만 바라봐야 하는 근심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농사꾼의 처지였다. 그런 속에서도 가을에 대한 소망으로 견뎌냈지만 막상 수확을 하고 나도 남는 것은 늘어나는 빚과 연장된 배고픔뿐이었다.
그런 처지에서 비하면 제 날짜에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는 공장 일은 어쩌면 한가로운 신선 놀음 같기도 했다. 이런 행복한 현실을 언제까지나 붙잡고만 싶었다. 공장 창고 방에서 살기 때문에 다른 공원들처럼 출근할 필요가 없던 남편은 일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작업 도구를 꺼내 놓고 동료들을 맞이하고, 퇴근 뒤 작업장 청소 역시 언제나 남편이 도맡아했다. 동료들은 그런 남편을 '그런다고 월급을 더 받는 것도 아닌데 왜 유별나게 구냐'며 곱지 않은 눈길로 대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농사일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라' 말하며 빙그레 웃고 말뿐이었다. 공장 사장은 '방세를 받지 않겠다'는 말로 남편의 성실함을 인정했다.
남편의 성실함은 다시 입사한 지 사 년만에 반장이란 직책으로 인정받았다. 반장이 되서도 공장 일에 대한 태도는 변함없었지만 가장으로서의 태도는 날이 갈수록 늦어졌다. 부하공원들에게 잔소리라도 한 날이면 퇴근 후 위로와 다독임을 잊지 않았다. 그런 자리는 자연스레 술자리로 이어졌다.
[여보. 그렇게 마셔대면 몸이 견디것소. 지발 몸 생각 좀 허먼서 댕기쇼.]
김여인은 술 냄새를 풍기며 들어서는 남편을 볼멘소리로 맞이했다.
[아, 이 사람아. 세상일이 어디 그리 간단헌 줄 알어. 세상은 말야 다 사람의 정으로 돌아가는 것여. 또 그 정을 쌓으려면 서로 허심 없이 얼굴을 맞대허고 지내야 허는 것여. 그러다 보면 자연 술 한잔 빠질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고. 내 말 알것어?]
남편은 선거 유세하는 사람처럼 손을 올렸다가 내려치기를 반복하며 김여인의 투정을 달랬다.
그렇게 지내던 남편도 기와집으로 이사 온 후로는 가급적 일찍 귀가해 집 안팎을 돌보며 유다른 애정을 기울였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평소와는 달리 걸음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술에 취해 돌아온 남편은 옷도 벗지 못한 채 이불 위로 쓰러진 뒤 '다른 집들은 부부가 잠만 자도 애가 들어선다는데 어찌 우리는…? 밭이 안 좋은가, 씨가 부실 헌가?. 밭이 안 좋으면 밭을 싹 갈아엎고 씨가 나쁘면 종자를 바꿔야지. 안 그런가?'라며 얼굴을 이불에 묻은 채 읊조렸다. 웅얼거리듯 분명하지 않은 남편의 음성은 이상하게도 김여인의 귓속으로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그 말은 평소 둘 사이에 아이가 없는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을 갖고 남편을 대해 온 자신의 가슴에 칼에 찔린 아픔보다 더 아프게 다가왔다. 외출복을 입은 채 잠이 든 남편을 바라보며 쏟아지는 눈물과 함께 아침을 맞았다.
아침밥을 지으면서도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 때문에 몇 번이나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혹시나 자신의 눈물을 남편이 볼까봐 고개를 돌린 채 밥상을 들여놓고 서둘러 부엌으로 나왔다. 밥상을 물린 남편은 부엌으로 따라 나가 말없이 김여인을 안았다.
남편의 품에 안기자 밤새 그토록 자신의 가슴을 후벼파던 서러움이 또 다시 눈물 되어 흘러 내렸다. 그 동안 건실하게 살아온 남편의 갑작스런 변화가 아이에 대한 간절함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아이를 갖지 못한 자신의 처지가 새삼 원망스러웠고 또 그 동안 잘 참아와 준 남편이 가슴이 새삼 넓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을 나서는 남편의 뒷모습은 어딘지 모를 쓸쓸함에 물들어 있었다.
공장에서 살던 첫 해 겨울. 김여인은 첫 애를 가졌다. 남편은 기껏 밥 한 끼 배불리 먹은 것 만한 김여인의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이 뱃속에 내 새끼가 들어있어' 하며 방에서는 담배도 피우지 않았고 한 겨울 새벽에 돼지 족발이 먹고 싶다는 유난한 입덧도 군말 없이 받아주었다.
[여보. 아이 이름은 뭐로 질까? 꼬추 달고 있을까?]
남편은 김여인의 손과 배를 쓰다듬으며 주문 같은 소망을 되풀이하며 잠이 들곤 했다.
그러나 그런 행복은 채 석 달을 넘기지 못했다. 남편의 소망을 꺾어 버린 유산이 자신 탓인 것 같아 남편 대하기가 너무도 미안했다. 남편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김여인을 두 팔로 안으며 등을 두드렸다.
[괜찮어. 우선 당신 몸이 건강혀야지. 얘는 또 가지면 되지. 뭐. 안 그런가?]
남편은 방안이 울리도록 큰 소리로 위로했지만 그것이 김여인을 더 힘들게 했다. 손자에 대한 기대가 꺾인 시어른들은 그 아쉬움을 보약으로 대신하며 다음을 기대했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소리도 못 들었어? 그냥 우리 둘이 살면 되지 자식은 무슨 …….]
남편은 세 번째 아이마저도 잃고 병실에 누워 있는 김여인의 손을 잡으며 말끝을 흐렸다.
힘없이 돌아서는 남편의 어깨가 흐릿한 말끝처럼 처져있었다. 아랫배를 가르는 듯한 아픔보다 아이에 대한 기대를 상실한 남편의 가슴이 더 아플 것 같았다. 그 동안 임신에 좋다는 약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먹었지만 아이가 뱃속에서 자리 잡을 때쯤 되면 덜꺽 유산이 됐다. 근동에서 용하다는 점쟁이한테 날을 받아 남편과의 잠자리를 갖기도 했고, 그러다 임신이 되면 태아에게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해봤지만 석 달을 넘기지 못하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기와집에 이사온 뒤로 김여인은 꿈을 자주 꿨다. 남편과 둘이 꽃밭을 거닐 때 어디선가 나비 두 마리가 날아와 남편의 어깨에 내려앉는 꿈, 어디에서 구해왔는지 두 갈래로 갈라진 대추나무를 마당에 심는 꿈 등. 동네 아낙들과 수다를 떨다 슬그머니 꿈을 말하면 다들 태몽이라 하며 김여인의 임신을 축하했다. 그 말을 믿진 않았지만 그래도 은근히 기대했었다.
[여보. 낼 나랑 지경 장에 좀 댕겨옵시다.]
경칩이 지난 며칠 뒤 김여인은 저녁상을 치우고 남편에게 말했다.
[왜? 뭐 살 거 있어? 별안간 지경 장엔?]
남편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무 살려고요. 넓은 마당이 너무 허해 보여 나무 몇 개 심었으면 해서.]
김여인은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으며 말했다.
[좋지. 근데 뭔 나물 심으려구. 나무도 아무 것이나 심는 것이 아닌 벱여.]
남편은 담배를 물며 말했다.
[그건 또 첨 듣는 말이네. 나무 심는 것에 무슨 법이 있다고.] 김여인은 뒷머리를 고무줄로 매듭지으며 [그럼 뭘로 심어야 혀요?]라고 선생님께 질문하는 초등학생처럼 물었다.
[저 마당에 있는 것이 감나무잉게 대추나무를 심어 보드라구. 명절이나 제사 때 요긴하게 쓸 수 있응께. 아무튼 낼 함께 가 보자구.]
말을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조그만 규모의 장이었지만 차량과 사람으로 뒤엉킨 탓에 돌아오는 길은 거북이 걸음이었다. 차창에 비친 햇살의 따스함에 잠깐 졸던 김여인은 또 다시 이상한 꿈을 꾸었다. 자신이 심은 대추나무가 여름날 널어놓은 빨래처럼 바짝 말라진 채 시들어 갔지만 마당 한 쪽에 누가 심은 지 알 수 없는 대추나무는 짙푸른 잎이 무성했다. 마치 자신의 나무를 비웃기라도 하듯 바람에 가지를 흔들면서. 그 때 손에 도끼를 들고 나타난 남편이 자신의 나무를 향해 몸을 움직였다. 남편의 몸짓 한 번에 나무는 두 동강이 났다. 갑자기 급정거를 한 탓에 잠에서 깬 김여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배어 있었다.
장에서 사온 나무를 길가 담 가까이 심고 하루에도 몇 번씩 물을 주며 정성을 쏟았다. 봄이 완연해지자 나무는 김여인의 정성에 보답하기도 하려는 듯 싹을 틔워냈고, 하루가 다르게 푸르러 갔다. 그러나 여름이 다가오면서부터 나무의 상태가 이상해졌다. 감나무의 넓고 푸른 잎새는 날이 갈수록 푸르러만 가는데 대추나무의 작고 푸른 싹은 더 이상 자라질 않고 그 상태로 말라갔다. 결국 대추나무는 꿈속에서처럼 남편의 손에 뽑혀졌다. 그 다음 해 봄에도 나무를 심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장마가 끝나고 무더워가 시작되면 그 고비를 못 넘기고 또 다시 시들었다.
김여인이 대추나무에 유난한 애정을 쏟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식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보통의 부부가 결혼 후 폐백 드릴 때 시부모가 며느리에게 덕담을 하며 건네는 것이 대추와 밤이었다. 대추와 밤을 건네는 것은 그것들처럼 많은 자손을 낳아 집안을 이어가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자신은 가난 때문에 물 그릇 올려놓은 상 앞에서 절 한번으로 끝낸 결혼식이었기에 당연히 폐백도 생략되었다. 어찌 보면 자신이 아이를 갖지 못하는 것은 그 때 대추와 밤을 받지 못해서 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 해의 결실을 맺는 가을이면 가지를 찢을 것처럼 풍성히 열리는 대추를 보며 자신도 저렇게 수 많은 자식을 낳고 기르는 상상을 했다. 탐스럽고 윤기 있는 대추의 붉은 빛깔은 사내의 귀두 같아 보였고, 가시로 뒤덮인 껍질 안에 빛깔 고운 알밤을 품고 있는 것은 성인 여성의 성기처럼 보였다. 자신이 여자이니 당연히 남자성기를 닮은 대추를 좋아하고 또 그 나무를 아끼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생각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저 나무가 자신의 소망을 이뤄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도 했다. 남편은 나무 심기를 포기하라고 했지만 김여인의 집착에 가까운 행동을 만류하진 못했다.
기와집에서 세 번째 봄을 맞이한 김여인은 임실 임업 장에까지 가서 임업 사에게 사흘 굶은 사람 구걸하듯 매달려 그 곳에서 제일 좋은 품종의 나무를 사왔다. 거기에 덤으로 나무를 관리하는 방법까지. 그런 정성에 감동했는지 해마다 자신의 속을 태우던 여름을 이겨내며 땅콩 만한 열매를 훈장처럼 매달기 시작했다.
김여인의 몸에서도 전과는 다른 변화가 일어났다. 매달 때가 되면 조그만 생리대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쏟아지던 생리가 끊긴 것이다. 날짜를 헤아려보니 지난 번 생리한 날이 두 달 전이었다. 그토록 바라던 임신과 대추나무의 생존이 동시에 이루어진 것을 생각하자 그 동안 살아오면서 오늘처럼 즐겁고 기쁜 날은 없었던 것 같았다. 자신보다도 더 간절하게 자식을 기다리는 남편과 시댁에도 알리고 싶었다. 그러나 말로 알리는 것보다는 바가지를 엎어놓은 것처럼 부풀어 오른 배로 자신의 임신을 당당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침저녁으로 찬 기운이 스미는 가을이 다가오자 나무 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예전처럼 서서히 말라가기 시작했다. 거기에 임신인 줄 알았던 기쁨도 생리불순이라는 진단 앞에 무참하게 꺾여졌다.
[며칠 내로 고향에 한 번 댕겨와야 쓰것어. 채비 좀 해 놔.]
그 참혹한 가을의 기억도 간간이 퍼붓는 눈에 쌓여 잊혀지던 겨울 어느 날. 밥상을 물린 뒤 담배 불을 붙이고 내뿜은 연기와 함께 슬그머니 꺼낸 남편의 말이었다.
[무슨 일 있당가요? 난데없이 고향엔 왜 간다고?]
김여인은 밥상을 들고 부엌으로 나가려다 도로 내려놓고 남편 앞에 앉으며 대꾸했다.
[아, 남자가 허는 일에 그리 꼬치꼬치 캐묻는 것은 또 어디서 배운 버릇여? 시간도 있응께 고향 친척 어른들 찾아뵈고 겸사겸사 바람이나 쐴까 허는 것이지. 일은 무슨?]
남편은 김여인의 눈길을 슬며시 피하며 벌꺽 화를 냈다.
세월이 변하면서 남편의 직장도 점점 흘리기 시작했다. 가위의 주된 소비처인 맞춤 양복점은 대량으로 생산되는 기성복의 물결에 떠밀려 났다. 시내 요지에서 불빛을 밝히며 존재의 당당함을 뽐내던 양복점들은 불황과 수익 감소라는 파도에 휩쓸려 거의 다 망해 갔다. 겨우 명맥만 유지하던 곳들도 점점 외지고 어두운 동네 귀퉁이로 밀려나 교복이나 옷 수선을 하는 세탁소로 변신을 해야 했다. 그나마 줄어든 양복점 숫자만큼 새로이 생기기 시작한 미장원에 기대했지만 공장 기계가 멈추는 날이 늘어나더니 끝내는 문을 닫고 말았던 것이다.
실직한 뒤 처음 몇 일은 출근을 서두르다 김여인의 의아한 눈길을 받고는 자신이 실업자라는 사실에 힘없이 자리에 주저앉는 남편이었다. 그런 날이면 마루에 앉아 연신 담배만 피워댔다. 공장 일이라면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남편에게 실직이란 현실은 사지 멀쩡한 사람을 밧줄로 꽁꽁 묶어 놓는 것보다 더한 괴로움이었다.
실직의 충격과 무료함을 집 안팎 수리와 정리로 달랬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일이었다. 멀쩡한 집을 허물고 다시 짓기 전에는 마땅히 할 일도 없어 하루에도 몇 번씩 짜증을 냈다. 자신 역시 남편이 집에 있으니 여러 가지로 불편했기에 갑작스런 남편의 외출을 배웅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여. 한 사나흘이면 올 것 잉게 혼자 있다고 끄니 거르지 말고. 내 후딱 댕겨올게.]
마당을 지나며 건네는 남편의 말이 새삼스레 따뜻했다.
삼, 사일이면 온다던 남편이 집에 돌아온 것은 그 날로 정확히 보름이 지난 후였다. 집에 돌아온 남편은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김여인과 눈조차 마주하지 않은 채 지냈다. 더구나 밤이 되면 친구를 만난다는 말만 던진 채 나가서는 아침이 지나서 들어오는 날이 빈번해졌다. 거기에 결혼식장 갈 때나 입던 양복을 꺼내 방바닥에 내던지며 새 양복을 맞춰달라고 짜증을 부렸다.
[당신이 무슨 새 양복이 필요헌 일이 있다고 멀쩡헌 옷을 이리 내팽개치고 난리요. 필요하면 점잖게 얘기 허면 누가 뭐라 헌답디까?]
남편의 태도가 어딘지 미심쩍었지만 직장도 없는 남자가 입성조차 허름하면 무시당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런 짜증을 받아냈다.
씀씀이도 점점 헤퍼져 돈을 요구하는 날이 잦아지고 그럴 때마다 고성이 오가는 일이 반복되었다. 할 일없이 담배나 피워대던 옛날의 남편이 아니었다.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났을까.
[여보. 이리 앉어봐. 내 헐 말이 있응께.]
아침상을 물리고 담배를 피워 물면서 건네는 남편의 말투가 어딘지 모르게 떨리는 듯 했다.
김여인은 평소와 다른 남편의 말투를 귀 담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여전히 담배만 피워대는 남편의 얼굴이 왠지 붉게 변해 있었다.
[당신 무슨 일 있소? 뭔 일이요? 아 그리 답답허니 있지 말고 뭔 일인지 씨원허게 말씀해 보쇼.]
치맛귀를 감싸 다리 사이에 여미고 남편 앞으로 다가갔다.
[그려. 알었어. 당신 내 말 딴 생각허들 말고 들어.]
필터까지 타 들어간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말을 꺼냈다. 재떨이에 비벼진 담배는 마지막 저항 같은 연기가 피어올랐고 김여인은 그걸 보면서 이어질 남편의 말이 심상치 않을 것임을 느꼈다.
[그려서 집안 어른들이 결정한 일인디, 그것이 뭐냐 허면 ….]
말을 멈추고 혀로 입술을 축이던 남편의 손이 담배 갑으로 향했다.
[뭔 말인디 그리 뜸들인 다요? 답답헝게 후딱 말혀 보쇼.]
재빨리 담배 갑을 등뒤로 감추며 남편의 말을 재촉했다.
[그게 뭔 일인가 허면 … 집안의 대가 끊기면 안 댕께 … 아, 그 뭐냐, 작은집을 들이라는 구만.]
김여인의 눈길을 피하며 어렵게 말을 이었다.
[그게 뭔 소리랑 가요? 긍게 지금 당신이 새 장가를 들겠단 말씀이요? 워매 심장이 벌렁대서 살들 못 허것네. 긍께 시방 당신이 날 두고 새 장가를 들겠단 그 말씀이고 만. 워매, 워매.]
손바닥으로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어쩔 줄 몰라하다 끝내 울음을 쏟아냈다.
[여보. 그렇게 화만 내지 말고 내 말 좀 들어봐.]
기가 막혀 말을 못하고 있는 김여인에게 무릎걸음으로 바싹 다가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당신 똑바로 말해보쇼. 당신 뜻은 어떠요?]
자신의 손등에 닿는 남편의 손을 거세게 뿌리쳤다.
그 날 이후 두 사람은 한 달 가까이 떨어져 지냈다. 김여인의 처지에선 비록 아이는 없었지만 남편과 함께 했던 지난날들이 서러움으로 되살아나 도저히 같이 지낼 수 없던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를 이어야 한다는 명분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침묵뿐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 침묵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거센 저항이었다.
봄이 되자 김여인은 이번만은 하는 간절한 심정으로 또 다시 대추나무를 구해왔다. 나무를 심기 전 선창에서 얻어 온 생선 내장을 흙 속에 파묻은 뒤 나무를 심었다. 거기에 간혹 고향 근처를 지나는 남편에게 부탁해서 퇴비를 얻어다 묻어주며 전보다 더 간절한 마음으로 나무를 대했다.
그렇게 봄이 지날 무렵. 항아리 두 개를 맞대놓은 것 같은 몸에 도수 높은 안경을 낀 낯선 여자가 시고모의 손에 이끌려 마당으로 들어섰다. 시고모의 호들갑스런 부름에 남편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방에서 달려 나왔다. 요란하게 할 것 없다는 시고모의 말에 따라 마당에 차린 상위에 술잔 두 개와 청홍색 보자기로 감싼 닭 한 마리를 올려놓는 것으로 잔치 준비는 끝이 났다. 시고모의 주문에 따라 항아리 두 개를 맞대놓은 것 같은 여자의 절이 끝나자 뒤이어 기쁨 반, 기대 반 섞인 남편의 얼굴이 숙여지는 것으로 그들만의 잔치는 끝이 났다.
새로운 생활에 흥이 났는지 아니면 자식에 대한 기대로 기운이 솟았는지 남편은 용달차를 구입해 생선 운반 일을 시작했다. 영광, 삼천포 등 전국 각지의 어시장으로 차를 몰고 가 물건을 싣고는 새벽시장에 배달하는 일은 젊은 사람들도 버거워하는 일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작은댁이 거주할 집을 짓는 일에도 열성을 기울였다. 바람이 불어 고기배가 출항을 못한 날이면 인부들과 뒤섞였다. 하루가 다르게 높아 가는 양옥집만큼 남 몰래 흘린 김여인의 눈물샘 역시 날이 갈수록 깊어만 갔다. 더구나 자신의 유일한 위안이었던 대추나무를 공사에 지장이 된다며 뽑아낼 때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했다. 그렇게 소중한 나무를 새 여자의 집을 짓는다는 이유로 뽑아버리니 참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남편에게 있어 그 나무는 그저 흔한 나무일뿐이었다. 그렇게 행복의 근원지 하나 하나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며 한숨 쉴 수밖에 없었다.
남편과 말씨름을 하던 대추나무 앞에 서 있던 김여인의 눈에 작은댁의 모습이 들어온다. 뜀뛰기를 하면 얼굴에 닿을 것처럼 출렁대는 젖가슴과 그 가슴을 지탱하기에는 위험해 보이는 잘록한 허리. 그런 불안을 해소하려는 듯 간장항아리처럼 넓은 엉덩이를 씰룩이며 분주히 집안으로 들어간다. 작은댁의 출렁이는 젖가슴을 떠올리며 '젖가슴이 저 정도래야 쌍둥이를 먹여 키울 수 있었지, 안 그러면 새끼들 굶겼을 거'라는 생각을 떠올리며 지난 해 봄부터 피우기 시작한 담배를 주머니에서 꺼낸다. 한숨처럼 내뿜는 담배연기가 눈앞을 뿌옇게 가린다.
퇴근하고 저녁상을 물린 뒤 남편의 발길은 자석에 끌린 쇠붙이처럼 자연스럽게 양옥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침상을 차린 뒤 김여인의 부름에 눈을 비비고 나오는 것을 반복하던 몇 달 후. 작은댁의 임신이 온 집안을 들뜨게 했다. 김여인의 눈치를 살피느라 내놓고 기뻐하진 못했지만 퇴근 할 때면 남편은 등뒤로 감춘 봉투를 들고 슬그머니 양옥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옛부터 딸을 얻으면 오동나무를 심어 시집 갈 때 썼다지만 이젠 오동으로 농을 안 만등께 오동은 필요 없고, 판, 검사될 아들이나 한 댓 명 낳소.]
조심스레 딸을 안아 든 남편은 은근히 아들에 대한 기대를 나무로 대신했다. 남편은 아들을 낳으라는 의미로 대추나무를 양옥집 앞에 심었다. 그런 남편이 너무도 원망스러웠지만 아이를 못 낳은 자신의 처지에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저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며 가슴으로 울 수밖에. 그리고 가을이 될 무렵 동네 산파 할머니의 비명 같은 외침이 양옥집에서 터져 나왔다.
[워매. 쌍둥이여, 쌍둥이. 꼬치가 달린 쌍둥이여.]
작은댁은 아들을 낳았다.
그것도 남편의 기대를 두 배나 만족시킬 쌍둥이 아들을. 예언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자 김여인의 가슴에서도 대추나무에 대한 기대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아직도 월경 때면 이상스런 열기가 몸을 휘감고 있었기에 매번 '이번에는' 하는 생각으로 나무를 심었던 것이다.
오늘 일도 그런 자신의 마지막 기대가 무너지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번번이 말라 가는 나무를 지켜보는 것이 마치 몸에서 수분이 다 빠져버리는 것과도 같은 고통이었기에 동네 꽃집으로 달려간 것이다.
[아주머니. 나무라는 것은 원래 땅 속의 양분을 제대로 빨아들여야 뿌리도 좋고 제대로 살아나는 것이란 말입니다. 근데 아주머니가 심는 것은 왜 그러는지 아세요? 지렁이 때문에 그래요. 지렁이. 그것들이 나무 뿌리에 들러붙어서 나무가 먹을 양분을 다 뺏어 먹으니까 그렇게 말라죽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빨리 가셔서 그것들을 잡아내세요. 빨리.]
김여인의 귀에는 꽃집 남자의 목소리가 지렁이에 대한 자신의 증오와 분노에 공감하는 것처럼 들린다.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장독대로 달려간 김여인은 소금항아리에서 소금을 바가지 가득 퍼 들고 허겁지겁 대추나무로 걸음을 옮긴다. 양동이에 소금을 붓고 두 바가지의 물을 퍼 담는다. 양동이 바닥에는 아직 녹지 않은 소금이 쌓여 있다. 그것을 손으로 휘휘 저은 뒤 바가지로 퍼 들고 대추나무 밑동에 쏟아 붓는다. 한번 더 소금물을 퍼부은 뒤 호미를 찾아 들고 대추나무 주변 흙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호미가 흙을 헤집을 때마다 검붉은 지렁이가 꿈틀대며 나타난다. 갑자기 햇빛에 노출된 지렁이가 흙 속으로 파고들려 하자 손에 든 호미로 내려찍은 뒤 그것을 소금물 양동이에 집어넣는다.
김여인의 나무에 대한 집착은 따지고 보면 자식을 낳지 못한 자신의 처지에 대한 원망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 원망의 원인으로 지목된 지렁이에 대한 분노가 남편이 들어오는 것도 듣지 못하게 한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온갖 기대와 희망이었던 나무 앞에 마치 임종 예배 때 기도하는 성직자처럼 엄숙히 서 있던 김여인은 손을 뻗어 자신의 턱밑까지 닿을 듯이 자루가 긴 삽을 집어든다. 대추나무 좌우로 삽을 놀려 밑동이 보이도록 파낸 흙더미 위에 삽을 꽂아놓고 '칵' 하고 끌어올린 침을 손바닥에 뱉어 쓱쓱 비비고는 두 손으로 대추나무를 잡는다. 좌우로 흔들고 위로 잡아당겼다 놓기를 서너 번 하다가 삼일 변비 해결하려는 듯 끙하고 힘을 준다. 대추나무가 뽑힌 공간에 꿈틀거리는 지렁이들을 그저 묵묵히 바라볼 뿐이다
[그려. 다 밭이 부실한 탓이지. 씨가 아무리 좋아도 밭이 나쁘면 나무고 뭣이고 살들 못 허는 것은 당연헌 이치지. 그시랑이도 생명인디 그것들을 탓헌다고 죽은 밭이 다시 살아나진 못 허는 것이지.]
김여인은 손에 들린 대추나무를 바라보다 넋두리 같은 말을 흘린다.
이미 생명의 가치를 상실한 대추나무를 들고 개밥 끓이는 아궁이로 걸음을 옮긴다. 신문으로 밑 불을 붙인 뒤 나무를 집어넣자 마지막 저항과도 같은 연기가 피어난다. 판자 조각을 주어들고 아궁이에 부채질을 하자 나무는 서서히 붉은 불꽃에 휩싸인다. 몇 번을 반복해왔던 일이건만 오늘 따라 가슴이 매어진다. 그 동안 제대로 결실도 못 맺고 한 줌 재로 사라진 대추나무가 마치 자신의 뱃속에 잠시 머물던 아이의 운명과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형님. 저녁 준비 다 됐는데 빨리 들어오세요.]
창문을 열고 작은댁이 소리친다.
그러나 작은댁의 소리를 못 들었는지 김여인의 눈길은 아궁이 속 대추나무가 흘리는 붉은 눈물을 묵묵히 바라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