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몰운대
십이월 넷째 토요일은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지 절기였다. 날씨는 그리 춥지 않았지만 미세먼지가 야외 활동에 신경 쓰이게 했다. 그럼에도 나는 도시락을 챙겨 새벽녘 어둠속에 창원실내수영장 앞으로 나갔다. 창원역에서 용원으로 가는 첫차 운행 757번 직행버스를 타 시내를 벗어나 안민터널을 지났다. 동진해로 간 버스는 웅천을 거쳐 부산진해 신항만이 들어선 종점에 닿았다.
하단 지하철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서 녹산공단과 명지 아파트단지를 지났다. 얼마 전 녹산 해안선을 걸은 바 있어 눈에 익은 풍광이었다. 을숙도와 낙동강하굿둑을 지나 하단 지하철역에 닿았다. 1호선 지하철 하단역에서 종점인 다대포해수욕장로 가는 길이다. 겨울에 무슨 해수욕장을 찾느냐고 의아해 마시라. 겨울바다가 보고 싶었고 몰운대 산책로 소나무 숲길을 걷고 싶어서였다.
부산 지하철 1호선이 다대포까지 연장 개통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종점을 나오니 몰운대 산책로 들머리 몇몇 횟집이 보였다. 창원에서 진해를 거처 다대포 해수욕장까지 가는데 두 시간 넘게 걸렸다. 어둠 속 집을 나섰는데 지하철 출구를 나오니 다대포 항구에서 아침 해가 갓 솟아올랐다. 지하철에서 같이 내린 낚시꾼과 함께 다대포 해안 산책로를 따라 몰운대로 향해 걸었다.
다른 해안도 마찬가지겠지만 예전 몰운대 일대도 들머리 군부대 초소가 있었으나 철거되었다. 우거진 해송 숲길을 따라 걸으니 아침 산책을 마치고 나오는 이들이 몇몇 보였다. 아마 근처 아파트 단지 주민으로 매일 산책을 나오는 사람들인 듯했다. 나는 몰운대를 찾기 위해 도시락을 싸서 나선 걸음이었다. 몰운대로 향하면서도 나중 걸어갈 다대포 해수욕장 방향으로 시선이 끌렸다.
들머리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다대포객사를 만났다. 조선시대 지방으로 파견된 관리가 궁궐을 향해 초하루와 보름에 절을 올렸던 건물로 현재 남은 객사는 드물었다. 본디 다대포초등학교에 있던 것을 몰운대로 옮겨 놓았다는 안내문이 세워져 있었다. 객사를 둘러보고 주변 쉼터에서 배낭 속 곡차를 꺼내 한 모금 마셨다. 아직 더 걸어야 할 산책로와 주어진 시간이 많기에 느긋했다.
배낭을 추슬러 자갈마당 절벽 해안으로 향했다. 중간에 공원 관리사무소가 있었는데 오른쪽으로는 민간인 출입통제구역으로 군사시설이었다. 거기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 휘하 정운 장수가 순절한 장소로 그를 기리는 비가 세워져 있다고 했다. 갈림길에서 산책로를 따라 몰운대 절벽으로 나가니 갯바위에는 몇몇 낚시꾼들이 보였다. 나는 바라만 봐도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였다.
해안 절벽에 서니 솟아오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침 해에 눈이 부셨다. 바로 앞 유인도인 듯한 쥐섬엔 그림 같은 등대가 우뚝했다. 저 멀리 왼쪽으로는 영도 해안이 아스라했다. 굽어본 검푸른 바다에는 양식장을 드나드는 어선들이 보였다. 나는 고소공포가 있어 절벽 아래로 내려갈 생각이 없었다만 갯바위 낚시꾼들이 보였다, 아마 그들이 말하는 고기가 잘 잡히는 물때인 듯했다.
절벽에서 되돌아 화손대로 건너가니 거기도 갯바위 낚시꾼을 볼 수 있었다. 숲속 배드민턴장에선 동호인들이 아침 운동을 즐기고 있었다. 산책로 주변엔 여수 오동도가 그렇듯 파릇한 털머위가 자랐다. 애기동백도 꽃망울을 터뜨렸다. 아까 지나친 낙조분수로 유명한 수해수욕장으로 들어서니 겨울 바다가 운치 있었다. 저만치 낙동강하굿둑을 빠져나온 모래가 쌓인 해수욕장이었다.
사람 발길에 뜸한 모래밭은 자꾸 스쳐간 바람결에 천연 무늬가 아름다웠다. 파란 눈동자의 외국인 사내와 머릿수건을 두른 두 수녀가 산책을 나선 모습이 보였다. 노을정까지 걸어 나는 계속 산책로를 더 걸어 고니나루에 이르러 배낭을 풀어 도시락을 꺼냈다. 남겨둔 곡차도 마저 비웠다. 바로 앞에 맹금머리등을 비롯해 여러 모래섬이 떠 있었다. 도시락을 비우고 을숙도까지 걸었다. 18.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