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경제인초청포럼
규제 피하려고 성장 멈춰서야…기업 뛰게 하는 정책 고민할 때
서울대총동창신문 제549호(2023.12.15)
추광호 (계산통계86-90)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산업본부장
경제 전망 100% 신뢰해선 곤란 건강 가꾸듯 국가경쟁력 키워야
“2001년과 2022년 시가 총액 기준으로 우리나라 상위 기업을 나열해 보면 거의 변동이 없습니다. 지금 유명 대기업은 그때도 유명 대기업이었죠. 미국은 다릅니다. S&P 500 시가 총액을 보면 아마존, 메타,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30~40년 전엔 존재하지도 않았던 기업들이 증권시장의 상위 그룹을 차지하고 있어요. 경제의 역동성 측면에서 기업에 대한 규제 개혁을 고민해 봐야 합니다.”
관악경제인회가 2023년 12월 7일 더플라자 호텔 4층에서 조찬포럼을 열었다. 이희범(전자공학67-71) 명예회장, 서병륜 (농공69-73) 수석부회장, 조완규(생물 48-52) 전 모교 총장 등 동문 70여명이 참석한 이날 포럼에서 추광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산업본부장이 ‘2024년도 경제전망’을 주제로 연단에 섰다.
추광호 동문은 모교 졸업 후 미국 포드햄대 로스쿨에서 법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한국경제연구원 기획조정실장, 한국기업연합회 사업지원실 기획팀장 등을 겸임하고 있다.
추 동문은 두 장의 사진을 스크린에 띄웠다. 한 장은 1900년에, 또 한 장은 1913년에 뉴욕에서 열린 부활절 퍼레이드를 찍은 사진이다. 1900년엔 단 한 대의 자동차만 있고 모두 마차 행렬이지만, 불과 13년 후엔 마차가 한 대뿐이고 모두 자동차로 채워졌다. 20세기 초입의 산업과 그에 따른 사회변화가 이 정도라면, 21세기 4차 산업혁명을 맞아 달라지는 세상이 이보다 느릴 수가 없을 터. 그러나 정부의 규제정책은 산업계의 변화 발전을 못 따라가는 실정이다.
“기업의 자산 규모가 커질수록 규제도 급격히 늘어납니다. 2008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엔 자산 규모 2조원대부터 대기업에 해당하는 규제를 가했고, 이후엔 5조원대부터 규제를 했습니다. 2 조원 턱밑에 몰려 있던 기업집단이 5조 원 턱밑으로 옮겨갔죠. 규제 폭탄을 맞느니 스스로 성장을 멈추겠다는 뜻으로 보여요. 이처럼 국내에선 규제 때문에 기업이 성장을 꺼리는 ‘피터팬 증후군’이 뚜렷합니다.”
미국과 EU의 코로나19 대응을 비교해 보면, 규제가 성장에 끼치는 영향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EU의 GDP는 2012년 12조7035억 달러, 2022년 14조 1691억 달러로 11.5% 성장했지만, 미국 의 GDP는 2012년 16조2540억 달러에서 2022년 25조4627억 달러로 56.7% 성장했다. 이렇듯 미국과 EU의 격차가 더 커진 것에 대해 추 동문은 “미국이 경제 구조를 시장 자율에 맡긴 데 비해 EU는 규제 중심으로 정책을 폈던 게 컸다”고 말했다.
“코로나가 터졌을 때 미국은 팬데믹 영향으로 도산하는 기업을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회사가 망해 직장을 잃은 실업자들에게 실업급여를 줬죠. 실업자들은 실업급여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스스로 직업 훈련을 하거나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코로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지기도 했고요. 반면 유럽은 해고가 쉽지 않기 때문에 기업이 망하지 않도록 보조금을 줬습니다. 똑같은 재정 정책인데 방향이 달랐던 거죠.”
추 동문은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근로자로 하여금 자기 능력을 더 발휘하는 쪽에 취직하도록 유도하고, 기업의 새로운 시도를 장려하며, 국가 전체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또한 파견제, 기간제, 비정규직, 노사갈등, 최저임금 등 노동시장을 둘러싼 여러 쟁점들이 결국 유연화로 귀결된다고. 근로자에 대한 검증이 쉽지 않은데 한 번 뽑으면 해고가 어려우니 기업 입장에선 다양한 편법을 동원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면 불가피하게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정부 정책은 기존에 기득권을 누렸던 사람들의 피해를 보호하는데 너무 집중돼 있어요. 자동차가 등장했는데 말을 더 빨리 달리게 하려고 채찍을 뾰족하게 가는 마부들의 권익을 마냥 옹호할 수 있습니까? 변화된 산업구조에서 더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게 돕는 편이 바람직하죠. 법률이나 정책에서 금지한 행위가 아니면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로 옮겨가야 합니다.”
내년 경제 전망에 대해선, 투자는 좀 나아지고 소비는 좀 더 위축될 거라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고금리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기업의 투자 여력은 상당히 부족한 상황이다, 국내 경제 상황을 부문별로 나눠 설명하면서도 “사실 밝게 보면 밝게 보는 대로, 어둡게 보면 어둡게 보는 대로 근거는 충분하다” 며 “매년 경제 전망이 나오고 여러 전문가들이 한마디씩 보태지만, 100% 신뢰하긴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예측할 수 있었습니까?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요? 솔직히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전망해서 다 맞힐 수 있다면 누구나 큰 부자가 됐겠죠(웃음). 개인이 건강하려면 면역력을 키우고 꾸준히 운동하고 잘 먹고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하는 것처럼, 국가 경제도 건강하려면 열심히 연구 개발해 상품경쟁력을 키우고 유지하는 한편 외부 환경의 변화에 적응해 나가야 합니다. 그때그때 땜질식 전망과 처방으론 어림없어요.”
관악경제인회는 이날 참석한 동문 전원에게 추 동문의 추천 도서이자 권태신(경제68-72) 동문의 신간 ‘대한민국은 선진국인가’를 선물했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