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여중 영어 ‘배움의 공동체’ 공개수업 장면.
무기력한 아이들, 피곤한 몸을 책상위에 늘어뜨리고 자는 아이들, 이 아이들을 깨우기 위해 교단에 서 있는 교사의 목소리는 복도 창문을 뚫고 지나가 복도에 쩌렁쩌렁 울린다. 더러는 더 이상 교사를 존중하지 않는다며 아이들을 탓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들은 수업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며 교사에게 책임을 돌리기도 한다. 교실의 이러한 붕괴는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온 일이다.
모둠으로 때론 발표수업으로
복도에서 보는 교실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칠판에 서 있어야 할 교사가 없다. 아이들은 4~5명씩 모둠으로 앉아 자기들끼리 뭔가를 쓰며 떠들고 있다. 더러는 진지하게 듣기도 하고, 또 더러는 뭔가를 종이에 쓰기도 한다. 교사는 이런 학생들을 모둠 속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가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 볼 뿐이다. 잠시 후 한 학생이 일어나 발표를 한다. 교사가 질문을 던진다. 무리 속에서 또 다른 학생이 툭 던지는 한마디를 한다. 교사는 이것을 놓치지 않고 또 질문을 한다. 갑자기 진지해진 아이들은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서로 주고받으며 때로는 모둠으로 때로는 발표수업으로 배움을 만들어간다. 이런 모습은 지금 강원도 행복더하기 학교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수업혁신 ‘배움의 공동체 수업’이다.
배움의 공동체는 일본 사토 마나부 교수에 의해 주장되고 실천되어 온 교육운동이다. 사토 마나부 교수는 “학교교육에 관련된 사람들(학생, 교사, 학부모, 교육행정 담당자)의 연대를 기초로 구성되는 학교라는 장소를 사람들이 공동으로 서로 배우고 성장하는 공공적인 공간으로 재구축”하는 개혁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배움의 공동체’로 재생하기 위해서는 우선 일상의 수업을 통해 교실이 배움의 공동체로 재생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배움의 공동체 연구회 회원으로 활동 중인 설악여중 윤석 교사는 “지식의 전달자로서의 교사의 역할은 이미 사라져 버렸다”며 오늘날과 같은 지식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교사란 “아이들이 주변에 널려 있는 지식들을 안내해 주는 조력자”라고 말한다. 그는 “교사가 이런 조력자, 안내자의 역할을 잘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수업의 성찰과 수업 연구회를 통해 배움에 대한 통찰력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이번 여름방학 서울에서 개최된 사토 마나부교수의 ‘제2회 배움의 공동체 연구회 세미나’에 윤 교사를 포함한 속초지역 9명의 교사들이 참석해 의견과 질문들을 나누며 바쁜 시간을 보냈다.
함께 참석했던 속초여중 김상기 교사는 “모둠활동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지만 그 속에서 해 왔던 활동들은 전혀 다르다”며 “이미 교사가 조직해 놓은 모둠은 활동자체가 구조화 되어 있어 자연스럽지 못하고 배움을 억지로 강요하는 반면, 사토 마나부교수가 말하고 있는 모둠활동은 학력수준에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의견을 나누고 토의하며 문제를 해결해 가면서 배움을 경험하도록 한다”고 말한다. 그는 속초여중에서 사회수업을 ‘배움의 공동체’에 기초해 진행하고 있지만, ‘공동체’가 아니라 ‘혼자’해야 하는 수업개혁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며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배움의 공동체’ 학부모·학생 연수 부족
‘배움에서 한명의 아이도 소외되지 않는 협동적 교육’을 바탕으로 하는 ‘배움의 공동체’가 아직은 많은 교사들에 의해 도입하지는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국가정책으로 주도되었던 ‘열린 교육’, ‘탐구학습’과 같이 교육정책이 일종의 유행처럼 지나가 버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와, ‘배움의 공동체’ 수업은 곧 ㄷ자 수업, 활동수업, 모둠수업 등 ‘좋은 수업’, 혹은 ‘최고의 수업’을 하는 위한 방법이나 기술로 잘못 이해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학부모 역시 ‘배움의 공동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아직도 교사 연수만이 강조될 뿐 학부모나 학생들에 대한 연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배움의 공동체’에 대한 신뢰나 지지보다는 작은 불편함(고개가 아프다, 책상 돌리기가 귀찮다 등)에도 불평을 쏟아내게 된다.
설악여중 1학년 원보연 학생은 “ㄷ자로 앉는 거 좋아요. 일단은 친구들 얼굴을 더 많이 볼 수 있어요. 모둠활동이 모두 잘 되지는 않을 때도 있어요. 그래도 대부분 수업이 모둠활동으로 이루어지고 모르는 문제를 친구들과 함께 해결해 갈 때는 정말 수업이 재미있어요.” 라고 말한다.
중국의 대표 문인 루쉰은 희망에 대해 ‘없던 길을 함께 가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배움의 공동체’는 아직은 오솔길에 지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의 걸음이 필요하다.
이영선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