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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시대에도
여전히 신이 필요할까?
이 책에서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과학자로서 ‘중요한 모든 것의 이론’을
찾고자 했던 아인슈타인의 이론과 생각들을 토대로
이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 저자 소개
알리스터 맥그리스
알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McGrath)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안드레아스 이드레오스(Andreas Idreos) ‘과학과 종교’ 석좌 교수이다. 맥그래스 교수는 자연과학 분야에서 학문적 이력을 쌓았고, 이후 기독교 신학과 지성사에 관한 연구로 학문적 편력을 넓혔다. 이 과정에서 그는 기독교 신앙의 합리성과 타당성을 둘러싼 문화적 논쟁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맥그래스 교수는 오랜 세월 동안 교육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여러 권의 신학 교재를 집필했으며, 그가 쓴 교재들은 전 세계의 여러 학교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또한 맥그래스 교수는 50권 이상의 책을 저술한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인기 있는 강연자로서 매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학술회의와 대중 강연 등 다양한 자리에 초청되어 강연을 하고 있다.
📜 목차
추천의 글 7
한국의 독자들에게 11
들어가는 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세계가 사랑하는 천재 15
제1장 아인슈타인과의 만남: 경이로운 자연 23
1부 과학에서의 혁명
제2장 오래된 세계: 뉴턴의 시계태엽 우주 41
제3장 과학 혁명가: 아인슈타인이 1905년에 쓴 네 편의 논문들 61
제4장 일반 상대성이론: 최종 완성 그리고 실험적 확증 107
2부 중요한 모든 것의 이론
제5장 아인슈타인과 더 큰 그림: 여러 시각을 하나로 엮는 것 145
제6장 “우월한 정신에 대한 확고한 신념”: 아인슈타인과 종교 171
제7장 하나님과 과학적 대상으로서의 우주: 기독교인의 아인슈타인 읽기 203
옮긴이의 글 227
주 233
참고문헌 247
📖 책 속으로
이 작은 책은 오늘날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준 아인슈타인의 혁명적인 과학 이론에 담긴 아이디어와 그것의 중요성을 간단하면서도 이해가능한 말로 설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물론 아무리 과학 분야의 천재라고 하더라도 오류가 전혀 없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인슈타인의 과학적 지위를 고려해볼 때 적어도 우주를 이해하는 방식에 관한 한 아인슈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일 가치가 있습니다. (18쪽)
이 책이 지향하는 바를 잘 표현해주는 아인슈타인의 진짜 인용문이 하나 있습니다. “과학은 어떤 대상이 어떠한지(what is) 사실을 확인시켜 줄 수는 있지만, 대상이 어떠해야만 하는지(what should be) 당위를 말해주지는 못합니다.” 이 경구를 통해 아인슈타인은 과학과 도덕적 사유를 어떻게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자신이 이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 사유했는지 그 사유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19~20쪽)
뉴턴은 우주가 잘 고안된 기계-차갑고, 비인격적 이며, 말 그대로 기계적인-와 같다는 점을 잘 보여주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기에 아름다움이라든지 기쁨 같은 것이 있을까요? 게다가 이러한 신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처럼 보입니다. 일단 우주를 창조하고 가동시킨 다음에는 더 이상 신이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하는 자리에 남게 되니 말입니다. 아마도 신은 자신이 만든 법칙에 따라 작동하도록 만든 우주가 계속해서 운행하는 동안 정작 자기 자신은 은퇴했거나 죽었을 것입니다. 뉴턴은 의도치 않게 신 없이도 스스로 유지되고 작동하는 우주라는 개념의 토대를 마련한 셈입니다. (48쪽)
상대성이론의 기본 아이디어를 간단히 말하자면 여러분이 움직이고 있든지 혹은 정지해 있든지 근본적인 물리법칙과 물리학의 상수는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상대성이론을 상대주의(relativism)에 관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던 독자들에게는 이 말이 약간 의외로 들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상대주의란 절대적인 것은 없고, 우리 각 사람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생각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아인슈타인이 의도했던 바가 아닙니다. 오히려 사실상 상대성이론을 만들 때 아인슈타인이 추구했던 접근 방식의 가장 핵심 적인 전제는 물리법칙이 보편적으로 성립한다는 것이었습니다. (84쪽)
일반 상대성이론을 통하여 우리는 시공간을 휘게 만드는 태양과 행성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태양 주변을 돌고 있는 행성은 실제로는 태양으로부터 인력을 받는 것이 아니라 태양에 의해서 변형된 시공간의 굴곡을 따라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을 천체물리 학자 존 아치볼드 휠러(John Archibald Wheeler)는 “물질은 시공간이 어떻게 휘어지는지 말해주고, 시공간은 물질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를 말해준다.”라는 말로 멋지게 표현하였습니다. 따라서 아인슈타인은 중력에 의한 상호작용으로 묘사되던 물리학을 시공간의 기하학으로 전환시킨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15쪽)
양자역학의 이러한 확률적 특징 때문에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의 성공 가능성에 대하여 심각한 의혹을 품었고, 신은 우주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는 유명한 (그리고 종종 오해를 받는)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특수한 경우로서 포괄하는 더 크고 완전한 이론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경험적 사실들의 총체”를 아우르는 더 큰 이론을 찾는 것이야말로 아인슈타인에게는 일생일대의 목표였습니다. (140쪽)
과학이 우리로 하여금 특정한 일을 하게 만들 수 있다고 해서 그 일이 도덕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일이 도덕적인지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과학 외부로부터 발생한 가치 체계가 필요합니다. 아인슈타인에 의하면, 과학자는 도덕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하지만 과학 자체가 도덕적 지침을 준다거나 우리의 도덕적 가치를 형성시켜 주는 것은 아닙니다. …… “객관적인 지식은 특정 목표를 성취하는 데 강력한 도구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목표와 그것에 도달하고자 하는 열망은 다른 원천으로부터 와야 합니다.” (165~166쪽)
종교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이와 같은 생각은 부분적으로는 조직화된 종교에 대한 혐오, 특히 종교 기관들이 권위와 특권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논쟁과 갈등에 휘말리는 모습에 대한 반감으로부터 생겨난 것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생각한 종교의 형태는 여타의 신앙 체계에 대해서도 회의적입니다. 그가 생각한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이 보여주는 위엄과 아름다움 앞에서 느껴지는 경외감입니다. (183쪽)
이것이 사실이라면 아인슈타인이 보기에 과학과 종교는 갈등적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과학은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그리고 종교는 사실 및 사실들 간의 관계를 다루지 못합니다. “과학은 어떤 대상이 어떠한지(what is) 사실을 밝혀낼 뿐, 그 대상이 어떠해야만 하는 지(what should be)를 알려주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아인슈타인이 보기에 종교가 ‘과학의 영역’에 개입할 때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 성경을 일종의 과학책으로 다루는 경우가 그러한 예입니다. 한편, 과학이 인간의 ‘가치와 목적’을 만들어내려고 시도할 때에도 갈등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191~192쪽)
그렇다면 우리는 ‘두 권의 책’이라는 은유를 통해 어떻게 과학과 종교에 관한 대화 속으로 아인슈타인을 참여시킬 수 있을까요? 아마도 가장 중요하게 강조해야 할 점은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이 두 권의 ‘책들’이 공통의 저자를 공유하기는 하지만 각기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통용된 생각으로 표현하자면, “자연의 책book of nature”의 모토는 Deus dixit et facta sunt(하나님이 말씀하셨고, 존재하는 것들은 창조되었다)입니다. 한편, “말씀의 책book of Scripture”의 모토는 Deus dixit et scripta sunt(하나님이 말씀하셨고, 존재하는 것들은 기록되었다)입니다. 따라서 상보성 또는 보완이라는 생각은 이 은유에서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218~219쪽)
이 책에서 저는 오직 기독교만이 객관적 세계와 주관적 세계를 서로 연결하여 사물을 보는 방식을 제공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오만하고, 또한 옳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기독교가 이 둘을 하나로 묶는다는 사실, 그리고 이 둘을 서로 분리되어 있는 사유의 두 영역이 아닌 더 큰 전체의 부분으로 바라보게 만든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복잡한 세계에서 현명하게 살고 싶다면, 그리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우리에게는 중요한 모든 것의 이론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아인슈타인의 도움을 받아서 실재에 대해 본인만의 ‘큰 그림’을 발전시키고 견고하게 종합할 수 있을 것입니다. (225쪽)
🖋 출판사 서평
『맥그래스, 아인슈타인에 답하다』는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신앙의 역할이 무엇인지(더불어 과학의 역할이 무엇인지) 이해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책이다.
오늘날 과학과 기술은 우리의 삶과 생각이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그야말로 과학의 시대이다! 과학이 모든 것의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시금석이 되었다. 과학으로 해석한 세계만이 참된 세계요, 보편적이고 공적인 세계요, 모두가 따라야 하는 세계이다. 그렇지 않은(과학으로 해석되지 않는) 세계는 가짜 세계요, 특수하고 사적인 세계요, 개인이 은밀히 행해야 하는 세계이다. 이러한 과학의 시대에 과연 종교 또는 신앙이, 특히 기독교 또는 기독교 신앙이 발붙일 곳이 있을까?
아인슈타인은 오늘날 과학의 시대에서 가장 사랑받는 과학자이자 동시에 가장 권위 있는 과학자이다. 따라서 그런 그에게서 그가 평생 추구했던 ‘큰 그림’, 곧 ‘중요한 모든 것의 이론’에 관하여, 그리고 과학과 종교(신)에 관하여 이야기를 듣는 것은 과학의 시대에 과학과 종교가 각각 어떤 특징과 한계를 지니며, 우리의 삶과 생각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살피는 데 큰 유익을 줄 것이다.
사실 아인슈타인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관해 사려 깊은 통찰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만일 우리가 아래와 같은 중요한 질문들에 관해 진지하고 고민한다면, 인류 최고의 지성으로 일컬어지는 아인슈타인의 말에 귀기울일만한 가치가 있다.
첫째, 과학은 우리가 던지는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있을까?
둘째, 인생에서 종교가 왜 중요할까?
셋째, 과학과 신앙을 어떤 식으로 조화롭게 엮을 수 있을까?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21세기 최고의 복음주의 신학자로서, 옥스퍼드 대학교의 ‘과학과 종교’ 석좌교수로 수많은 강연과 저술 활동을 통해 과학과 신학 사이의 대화를 이끌고 있다. 그런 그가 이 책에서 아인슈타인의 삶과 그가 과학 분야에서 남긴 업적을 재조명하는 동시에 아인슈타인이 남긴 과학적 성취가 왜 중요한지 그리고 과학과 종교, 삶의 의미에 관하여 아인슈타인이 믿었던 것과 믿지 않았던 것이 무엇인지를 탁월한 시선으로 고찰한다. 뿐만 아니라 맥그래스는 아인슈타인이 미처 해결하지 못했던 질문(우월한 정신, 큰 그림, 모든 것의 이론 등)에 대해 나름의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아래는 〈옮긴이의 글〉 중에서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과연 우리가 ‘과학’이라는 ‘인간의 활동’에 대하여 잘 이해하고 있는지, 과학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혹 편협한 것은 아닌지를 반성적으로 돌아보게 되는 것도 이 책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소중한 기회라고 본다. 사실 교회 안에도 과학을 나쁜 것으로 간주한다든지, 이성적인 근거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무조건 배제하는 식의 반(反)지성주의가 은밀히 퍼져있다. 또 성경의 모든 내용을 과학적으로 변증할 수 있다고 믿는 잘못된 지성주의도 존재한다. 교회 밖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자연과학적 방법에 따라 검증된 지식만이 실재에 대한 온전한 지식이라고 믿는 소위 ‘과학주의(scientism)’를 ‘과학(science)’과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도 위험한 지성주의의 한 예라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지성주의와 반지성주의라는 두 괴물 사이에서 충분히 정립되지 않은 불완전한 시각을 가지고 과학의 시대를 위태롭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통해서 기독교인이든 무신론자든 혹은 그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독자라도 과학에 대하여 저마다 확신하고 있던 것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 책을 번역했다. 더 나아가 과학과 신앙이 서로 풍성한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이 작은 책이 귀한 마중물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