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포스팅은...
'헐리우드의 킹'이라 불리우는 전설의 배우 클라크 게이블(William Clark Gable)이다.
처음 그를 알게된 건,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였다.
레드 버틀러역은 매력덩어리 그 자체였고, 클라크 게이블은 전세계의 여성들의 가슴에 남게된다.
세계 영화사의 명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남자주인공 레트 버틀러 역을 맡았던 클라크 게이블은
할리우드에서 30년 동안이나 인기를 누렸던 명배우였다.
멋진 콧수염과 훤칠한 키, 여성을 유혹하는 능글맞은 성격, 눈빛 속에 숨어 있는 야망과 패기.
뭇 남성은 그를 부러워했고 뭇 여성은 그를 좋아했다.
서른세살 나이에 찍은 영화 <어느 날 밤에 생긴 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후보에도 여러 차례 올랐다.
할리우드의 아름다운 여배우들과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 염문도 많이 뿌렸지만 결혼식을 올릴 때마다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는 한 평생 할리우드의 미인들 곁에 둘러싸여 살다간 행복한 인생이었을까?
광부인 아버지는 아내가 게이블을 낳은 지 7개월 만에 죽자 얼마 안 되어 재혼하였다.
아들이 걸음마를 막 시작한 두 살 때였다.
생모에 대해 아무런 기억이 없는 게이블은 새엄마의 신경질도 지독한 가난도 지겹기만 했다.
그가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던 것은 밴드부에서 나팔을 부는 데 낙을 붙였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을 뛰쳐나와 백화점 점원, 신문 보급소 사환, 전화 설치공 등을 했지만
배고픔조차 해결되지 않는 것이었다. 떠돌이가 되었다.
달리는 화물열차에 뛰어올라 마음 내키는 곳에 내려 타이어 공장 일이건 목재인부 일이건
며칠 하다가 훌쩍 기차를 타고…몇 년을 그런 식으로 보냈다.
1923년 크리스마스였다.
기차가 삼림이 울창한 로키산맥을 달리는데 황혼이 지고 이윽고 밤이 왔다.
그 밤에 그와 친구가 지니고 있던 것은 콩 통조림 하나와 담배 두 개비가 전부였다.
“오늘이 크리스마스인데 우리 저녁 식사가 콩 통조림 하나라니 하느님도 무심하시네.”
친구의 말에 게이블은 이렇게 말한다.
“다 자업자득이지 뭐. 난 10년 뒤에는 반드시 가족과 함께 만찬을 즐길 거야. 두고 봐.”
이 말을 한 게이블은 친구한테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열차 틈새 바깥으로는 차가운 달빛 아래 나무들뿐. 그는 그때 굳게 결심한다.
내... 이제부터는 인생을 이렇게 탕진하지 않으리라고. 따뜻한 불빛이 비치는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리라고.
그 결심은 지방을 순회하는 작은 극단의 심부름꾼 노릇을 할 때도,
단역을 맡았을 때도, 영화에 엑스트라로 출연했을 때도 흔들리지 않았다.
사실 그는 세계에 남은 명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만나지 못했을 수 도 있었다.
그 당시에도 소녀떼들은 있었는지 그를 출연시켜달라고 팬들의 성화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제작사는 이미 MGM 영화사 소속이었던 그를
수익금의 반을 떼주는 조건으로 빌려와서 겨우 찍게 되었다는 것.
헌데 이미 유명한 스타였던 그가 출연을 거절했었고,
절친한 친구가 그런 그를 보며 조롱한 것에 마음을 고쳐먹었다고한다.
이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대단한 스타였고, 자부심 또한 어느 정도 였는지 상상할 수 있을 정도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中 클라크 게이블]
이 포스팅에서 가장 중심으로 다루고 싶은 것은 클라크 게이블의 사랑이다.
워낙에 많은 스캔들의 주인공이었으며, 무려 결혼을 5번이나 한 세기의 카사노바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그를 이해해보자.
그는 자기 감정에 충실한 주인이며, 사랑도 일도 주위를 신경쓰지 않고 쟁취해 내는 정복자이다.
1901년에 태어나 7개월만에 어머니를 여읜 그는...
이때 부족했던 모정이 그린운 것이었는지 대부분 연상의 여인들과 결혼하고 연애를 했다.
어린시절 안해본 일이 없다 할 만큼 힘들게 지냈으며,
우연히 본 연극무대에 반하여 극단에서 잡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연기를 배워나갔다.
그의 첫 부인이자, 그의 연기 선생역까지 도맡은 여인은 '조세핀 딜러'이다.
그보다 무려 14살연상이었고, 그녀를 만났을 때 클라크 게이블의 나이는 21세였다.
파릇파릇한 그를 배우로 키워낸 것 또한 그녀였다.
그녀는 그의 풀네임 윌리엄 클라크 게이블 에서 윌리엄이 배우이름으로 촌스럽다고 이름까지 바꿔주고,
치아 사이가 많이 벌어졌던 못생긴 것을 보고 의치까지 해준 그의 인생을 책임지던 선생이었다.
의치 얘기에 관한 이야기가 있는데,
당시 의술이 발달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치를 해 넣었던 그에게 헐리우드는 최악의 입냄새배우란 오명을 주었단다.
심지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키스신을 찍던 '비비안 리'는
그의 입냄새 때문에 촬영을 보이콧할 정도였다고 하니 심하긴 했나보다.
첫번째 부인인 조세핀딜러와의 결혼 생활이 지루해졌는지...
그의 두번째 부인이자 그를 후원해주던 '마리아 리아'와 두번째 결혼 생활을 한다.
그녀 역시 연상의 여인이었고, 무대를 바꾼 그에게 최고의 후원자로 여러 배역을 할 수 있게 도와준 여인이었다.
하지만 서서히 스타가 된 그는 헐리우드 여러 여인들과 스캔들을 뿌리고 다녔고, 두번째 이혼을 맞이하게 된다.
내가 제목에 사랑을 먹고 살아간 남자... 라는 수식어를 붙여놓은 까닭은 세번째 부인인 '캐롤 롬바드'란 여인 때문이다.
08년 겨울 우연히 이승현의 시네타운 라디오를 청취하고 있었다.
그 날은 배우의 일생에 대해 얘기해주던 코너였는데, 이 때 주인공이 바로 클라크 게이블이었다.
들으면서 어찌나 가슴을 울리던지 그의 영화같은 사랑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캐롤 롬바드'는 클라크와 연예시절 기자회견때 그와의 잠자리에 대해 깎아내리기도 하였고,
분장실로 저속한 편지와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결혼 후 그녀는 대외적으로는 정숙해졌으며 잠자리에서는 그와 다양한 방법으로 사랑을 나눈
헐리우드의 최고커플이 되기도 했다.
1942년 1월 16일 유명한 코메디 여배우로 이름을 날리던 '캐롤 롬바드'와 결혼을 한지 3년째 되던 해,
클라크는 둘만을 위한 파티를 준비했다.
둘만의 멋진 저택에 클라크는 풍선을 불어 장식하고, 그녀가 오면 놀래켜줄 초장식도 꾸며놓았다.
그녀가 도착하기도 전에 미리 켜놓 양초가 타들어 가던 8시경 문을 열고 들어와야 할 그녀는 안오고 전화 벨이 울렸다.
전쟁 기금을 모으던 그녀가 그의 곁으로 오기 위해 탔던 비행기가 라스베가스 교외에 추락하여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는 비보였다.
그녀를 하늘로 보낸 클라크의 삶은 의미가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인, 단 3년만에 끝나버렸던 상실감으로 그의 열정은 그녀와 함께 사라져버렸고
지표를 잃었던 그는 결국 전쟁중이었던 그때,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군인으로 지원하게 된다.
그것도 비행기를 모는 공군에..
공군 생활 중 비행기를 몰던 그는 마라(캐롤 롬바드의 애칭)가 추락했던 라스베가스 산으로 무작정 향했다.
착륙 후, 비행기 잔해들 사이에서 그녀의 흔적을 찾아다녔고, 그녀의 유품 하나를 건져서 돌아왔다고 한다.
3년 군생활 후, 영화계에 복귀했지만 혼을 잃은 사람처럼 연기는 빛을 잃었고,
이후 사별한 부인과 비슷한 여인들을 찾아다니며 사랑을 하지만 역시 그 마음을 채우지 못한다.
그런 그의 마지막 사랑이 찾아왔으니, 다섯번째 부인'케이 윌리엄스'를 만났다.
'케이 윌리엄스'는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그가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 그의 곁에서 떠나질 않고 그를 사랑해줬다.
클라크는 그녀에게서 '캐롤 롬바드'의 대리만족을 느꼈고 '케이 윌리엄스'는 죽은 그녀의 그림자로 그의 곁에 남아주었다.
그의 사랑어린 뒷바라지로 망가져가던 그가 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
3년의 불꽃같은 결혼생활을 하게 해준 여인 '캐롤 롬바드' 는 '클라크 게이블'의 일생을 영화로 만들었고,
그의 마지막까지 곁에 남았던 여인 '케이 윌리엄스'는 '클라크 게이블'의 일생을 사랑이란 이름의 그림자로 곁에 남아 주었다.
그의 일생 전부를 독차지했던 '캐롤 롬바드'가 행복할까?
그의 마지막을 함께했던 '케이 윌리엄스'가 행복할까?
이는 절대 비교 될 수 없을 것이다..
[번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나오고 아카데미 시상식이 있던 해에는
인종차별이 심해서 하녀역을 맡아 열연했던 '해티 맥대니얼'이
참석할 수 없게 되었다. 함께 연기했던 '클라크 게이블'은 말도 안된다며,
그녀를 오지 못하게 한다면 자신도 참석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고
그 덕분에 둘 다 시상식에 참여 할 수 있게 되었다.
그에 힘을 받아 '해티 맥대니얼'은 여우조연상을 수상하였고,
최초의 흑인 수상자가 되는 영광을 마련해준 것이다.
그녀는 하녀연기의 표본이 되었고
(당시에 흑인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이런 것 뿐이었다)
06년에는 그런 그녀를 기념하는 우표까지 생겼다고 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中 비비안리 와 해티]
첫댓글 유일한 이상형인데...새해에 만나다니 ^^ 해와님 감사해요따만큼 받으세요
복 이
해달님 새해부터 감사해요~
오..아침드라마 여자를 몰라 중에서 극중 클라클 케이블이라고 닉네임을 가지 사람이 있는데 오..여기서 나왔던 남자군요..
ㅣ이름은 몰랐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그 남자는 알겠는데///자식 결혼 한번만 하면 안됐나ㅣ!!!
크라크 케이블= 콧수염 만 생각나네요...
울 엄니가 살아생전에 유일하게 좋아하셨던 영화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였는데..
크라크 케이블도 가고 울 엄니도 가시고..
이렇게 기억속에서만 추억하게 되네요..감사합니다.
삶도 영화 같았군여!~~
와우~~~
해와달님 넘 머쪄요~ㅎ
크라크 케이블의 여인은 케롤 롬바드였군요~
최고의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행운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건 아닌가봐요.
어떤 사람은 스쳐 보낸후 뒤늦게 깨닫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겐, 많은 사람을 사랑해버린 후에 찾아오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