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맞으면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깔끔하게 차려 입고 선물 구러미를 마련하여 지옥으로 표현되는 교통의 괴로움까지도 기꺼이 견디며 고향 찾아 부모 찾아 귀향길에 나선다.
설 쇠려고 이동하는 인구가 6천 4백만 명이나 된다니 이렇게 사람을 움직이는 설 문화에 경외감마저 느껴진다.
우리가 어렸을 적 설날은 목욕해서 때 벗기는 날, 설빔으로 새 옷 입는 날, 고기 맛 보는 날, 세뱃돈 받아 용돈 버는 날, 온 가족 다 모이는 날, 어디 그뿐인가, 차례 지낸 뒤 세배하고 나면 또래끼리 어울려 화투치고 윷놀이 하고 온 동네가 들썩들썩 행복한 대축일이었다.
이러한 풍속 중, 가장 아름다운 전통은 두 말할 필요없이 세배다. 설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 먼저 집안 어른께 세배한 다음, 이웃집에서 이웃집으로 온 동네 어르신께 모두 세배를 드렸다.
세배를 받으신 어르신들께서는 "밥 잘 먹어라. 공부 잘 해라. 부모님 심부름 잘해라." 등등 50년식 덕담을 해 주시며 슬며시 10환짜리 지폐를 세뱃돈으로 내밀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셨었다.
내가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새해를 맞아 축하하고 조상을 추모하며 쉬고 즐기는 나라와 민족은 더러 있어도 세배하는 민속이 전해지는 나라는 우리나라 우리 민족밖에 없다.
세배가 이해와 용서, 화합과 단결, 양보와 예절 등 사랑을 가정과 마을에 넘쳐나게 하는 미풍양속임을 생각하면 세계 유일의 세배 문화는 우리 조상들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신 자랑스러운 세계적 명품 전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우리 어렸을 때 설날, 고샅마다 부디쳤던 세배꾼들의 행렬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설날이 가까워 오면 전국이 소용돌이쳐도 세배의 행태는 마을을 단위로 하던 광역 행사에서 집안의 안방 행사로 쪼그라든 것이 현실이다.
오늘 나는 아들에게 세배를 받았다. 또 조카들에게도 세배를 받았다. 세뱃돈을 주고 덕담도 했다. 이웃에선 아무도 나에게 세배하러 오지 않았다. 나도 아들에게 이웃 어른께 세배하라 이르지 않았다.
아들과 조카들이 저희들의 작은 아빠, 고모, 이모를 쫓아다니며 세뱃돈을 뜯어내는 것을보며 세상에는 변화해야 할 것도 많지만 지키고 보호해야할 가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30~40 대까지는 설날을 맞으면 친구 부모님께 세배를 다녔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배고픈 나에게 밥을 주셨던 은혜를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이 변하는 사이 우리 부모님과 친구들의 부모님들께서 세상을 뜨시고 나도 세배하는 처지에서 세배받는 처지로 바뀌어 버렸다.세배해 본 지가 언제였던가 싶다.
그렇지만 어찌 우리가 세배드릴 어르신이 우리 주변에 계시지 않겠는가? 이웃 어른이며 은사님 등, 우리가 세배를 올리면 눈물겹도록 반가워 하실 분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실지도 모를 일이다.
세배로 이뤄지고 조절되던 사랑의 문화가 그립다. 그리고 세배를 끊고 스스로의 게으름에 편안해 하는 나 자신의 의식도 벽을 쌓고 사는 세상 변화를 따르고 있음을 깨닫는다.
우리 친구들에게 내년부터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살아계신 은사님들께 "세배 드리고 덕담 듣기 운동"을 벌이자고 상의해 봐야겠다.
첫댓글 시대가 바뀌니 세배 형태도 많이 달라졌지요. 그옛날 50-60년대 새배를 생각 나게하는 내용이지요?
지난번에 시숙부님께 세배 간다고 하니까 요즘 세배 다니는 사람이 어딨냐고 그러대요..하지만 어떤분은 '그래야지' 하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