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0 오스트리아 인스브룩을 거쳐서 독일 퓨센의 노이반슈타인성에 왔다. 비가 많이 오는데도 불구하고 한바퀴 돈다음 캠핑장을 찾아 나섰는데 비가 그치질 않는다. 우리가 있는 노이반슈타인성에서 가장가까운 캠핑장을 찾아갔더니 풀북킹이라고 다른곳에 가보라고한다. 그래서 결국 멀지 않은 곳인 볼차노 캠핑장이라는 곳에서 짐을 풀었다.
독일 일정은 이곳 퓨센뿐이고 내일은 바로 스위스로 간다. 여행의 막바지에 다다르니 짐이 약간 줄기는 했다. 차의 제일 뒷좌석 한줄 의자를 빼고 짐을 실게 했는 데도 공간이 부족해서 처음출발할 때는 차에 짐을 겨우 꾸겨넣고 꽉꽉 눌러야 차의 뒷문을 닫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차문을 쉽게 닫을 수있게 됐다.
인제 그동안 애껴먹었던 고추장, 된장, 까나리 액젓, 자반김등을 남은 기간동안에 다 처리해야 되겠다. 우리 음식들이고 이곳서 살수 없는 것들이라 도중에 떨어지지 않게 애껴왔던 것들이다. 애써 가져오긴 했는 데 남기면 다시 한국으로 들고가기는 어렵고 버리기도 너무 아깝다. 이곳서 살수 없는 것들이라 그동안 애끼고 아껴 꼭 필요할 때만 조금씩 써왔는 데, 절대 버릴수 는 없고 남은 기간 쓰다가 한국사람 만나면 주고 가든지 하기로 했다.

인스브루크(Innsbruck)는 오스트리아 티롤 주의 주도이다

알프스의 풍경과 경치가 아름다운 곳으로 서유럽에서 가장 인기있는 겨울 스포츠 관광지이다.

1964, 1976년 동계 올림픽을 개최, 이는 굉장히 이례적으로 2회 이상 올림픽을 개최한 도시는 세계 세 곳 뿐이다. 이외에 1984, 1988년 동계 패럴림픽이 2회 연속 개최되었다.

2012년에는 제 1회 동계 청소년 올림픽의 개최지로 선정되어 대한민국의 김연아 선수가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대회 진행에 참여했다

해발 574m의 알프스 계곡에 있는 인스부르크는 '인 강(Inn)에 놓인 다리(Bruck)'라는 의미라고 하는데,

지형상 오스트리아에서 서쪽으로 길게 튀어나온 탓에 남․북으로 이탈리아․독일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오히려 수도 비엔나와는 거리가 멀어서 국제적인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인구 약13만 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 인스부르크는 현재 티롤(Tirol) 주정부의 소재지이지만, 수도 비엔나, 그라츠(Graz), 린츠(Linz), 찰츠브르크(Salzburg)에 이은 5대 도시로서 13세기 이래 19세기 초까지 약600년 동안 유럽을 지배했던 신성 로마제국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전등 곳곳에 그 유적이 많은 고대도시다.

그런데, 근래에는 알프스 중턱에 위치하여 항상 기온이 선선할 뿐만 아니라 남쪽으로 샤를리제, 북쪽으로 노르트케테(2,334m) 등 알프스산맥의 산에는 일 년 내내 만년설이 쌓여 있는 지리적 이점으로 1964년과 1976년 두 차례나 동계 올림픽을 치른 스포츠 도시로 변모했다.

독일 퓨센으로 왔다. 알프시 호수가에 노란색 그림 같은 성이 보인다. 이것이 호엔슈방가우성(Hohenschwangau)으로 루드비히 2세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루드비히 2세의 아버지 막시밀리안 2세가 버려져 있던 성을 1832년에 사서 네오 고딕양식으로 개축하고 여름 별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또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두 성 사이에 있는 알프시 호수다. 호수에서 백조들이 노닌다.

백조의 호수다. 하얀 털의 우아한 어미 백조와 함께 아직 회색 솜털을 덮은 새끼들이 종종 떠다니는 모습은 한폭의 그림이다.



이 성은 전망이 예술이다. 이곳에서 보는 노이슈반스타인성도 좋고, 이곳을 포함해 알프시(Alpsee) 호수와 알프스 산자락을 보는 풍광이 좋다.



호엔슈방가우 성은 바이에른의 왕이자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건립한 루트비히 2세의 아버지인 막시밀리안 2세가 19세기 초엽에 개조를 거쳐 건축한 네오고딕 건축 양식의 성이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바이에른의 왕 루트비히 2세가 지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이다.
'신 백조 석성'의 의미이다. 독일 바이에른 주 퓌센 근교의 호엔슈방가우에 위치한다.

그의 부왕이었던 막시밀리안 2세는 '백조의 성'이라 불리던 폐성 호엔슈방가우 성을 사들여 고딕 양식으로 개조, 재건축하였고, 바이에른 왕 루트비히 2세가 이곳에서 자랐다. 때문에 루트비히 2세는 어렸을 적부터 건축에 대해 깊은 관심과 열정을 갖고 있었다.

또, 그는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바그너는 게르만 민족의 신화를 토대로 한 오페라 작품들을 썼고, 이 때문에 루트비히는 게르만 민족의 신화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호엔슈방가우 성은 게르만 민족의 신화를 모두 담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였고, 이에 걸맞은 새로운 건축물들을 건설해야겠다고 다짐하였다이 기획은 1862년 그가 18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게 되면서 실행에 옮겨지게 되었다. .

루트비히 2세는 성이 관광지 따위로 전락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고 자신이 죽으면 성을 부숴버리라고 유언했다. 물론 성은 관광지로 최고였으므로 부서지지 않고 지금도 바이에른의 훌륭한 관광 자원이 되어 있으며, 디즈니랜드의 신데렐라성도 이 성을 본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