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재판 지연 심화 불 보듯 뻔해"…피해는 시민들에게
주정부 "역사상 최대 행사, 불편 감수해야"…경제 효과 기대
2026년 FIFA 월드컵이 BC주 사법 시스템의 '셧다운'을 초래했다. BC고등법원은 내년 월드컵 기간 약 한 달 동안 밴쿠버 등 4개 주요 법원의 모든 형사 재판과 민사 배심원 재판을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세계 최대 스포츠 행사를 위해 사법 정의의 구현이 전례 없이 지연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번 조치는 2026년 6월 12일부터 7월 8일까지 밴쿠버, 뉴웨스트민스터, 애보츠포드, 칠리왁 법원에 적용된다. 이 기간 동안 판사 단독 재판을 포함한 모든 형사 사건의 심리는 열리지 않으며, 재판을 기다리는 피고인과 피해자 모두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BC고등법원은 이번 결정이 '고육지책'임을 분명히 했다. 법원이 밝힌 재판 중단의 핵심 이유는 월드컵으로 인한 '예측 불가능한 수준의 사회적 혼란'이다. 수백만 명의 관람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로워메인랜드 전역의 경찰 인력이 대회 보안과 질서 유지에 총동원된다. 이로 인해 피의자 호송이나 법정 경비와 같은 기본적인 사법 지원 업무에 심각한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또한, 극심한 교통 대란으로 인해 보안관, 증인, 배심원단 등이 법원에 제시간에 도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으며, 이들을 위한 숙박시설 확보 역시 '하늘의 별 따기'가 될 것이라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사실상 정상적인 재판 진행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BC 주정부는 이번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주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국제 행사를 치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는 설명이다. 주정부는 막대한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는 한편, 2010년 동계 올림픽 당시에도 주민들이 불편을 감수했듯이 이번에도 어느 정도의 혼란은 감내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법원 측과 긴밀히 협력해 사법 공백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법조계의 우려는 깊다. 이미 만성적인 인력 부족과 사건 적체로 신음하는 사법 시스템에 이번 조치가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법조계 인사는 "한 달간의 재판 중단은 이후 몇 달, 혹은 몇 년간의 재판 지연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결국 그 피해는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당하는 시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재판 당일에 임박해서가 아닌 1년 전에 미리 공지해 대비할 시간을 준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BC고등법원은 이번 조치에도 불구하고 긴급 사안 처리를 위한 최소한의 사법 기능은 유지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월드컵 기간 동안 재판 운영에 필수적인 경찰과 보안관 인력의 대규모 차출이 예상되는 만큼, 일반 재판 업무의 축소는 피할 수 없는 선택임을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