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진도 사이 해협 ‘울돌목’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 승전지 영화 ‘명량’의 촬영지로도 알려져
해남 우수영국민관광지, 진도대교 건너 진도타워 오르면 울돌목 소용돌이와 다도해가 한눈에
휴식과 추억 쌓기는 여행의 기본이다. 여기에 역사의 흔적을 밟아보는 경험까지 얹는다면 더욱 완벽한 여행이 되지 않을까.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장소를 찾던 중 때마침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28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더 고민할 것 없이 목적지를 정했다. 세계 해전 사상 가장 위대한 전투로 기록된 명량대첩의 무대이자 영화 <명량>의 촬영지인 전남 해남·진도다.
명량대첩 승전지로 알려진 울돌목. ‘소리 내어 우는 바다 길목’이란 뜻으로 울 ‘명(鳴)’에 대들보 ‘량(梁)’을 써서 ‘명량’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곳을 방문하기로 마음먹은 후 한가지 고민이 생겼다. 울돌목은 전남 진도와 해남 사이를 흐르는 좁은 바닷길, 즉 명량해협인데 두 지역 중 어느 곳을 가야 명량대첩의 감동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다. 고심 끝에 결론을 내렸다. 두곳 모두 가보기로.
첫번째 목적지는 울돌목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해남군 문내면의 우수영국민관광지다. 이곳에 들어서니 ‘솨아~솨아’ 하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소리를 따라 울돌목 주변에 조성된 수변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 갔더니 아우성치며 소용돌이치는 바다가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이름을 울돌목으로 지었는지 알 것 같았다.
장엄해 보이기까지 하는 바다의 몸부림을 보다가 한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고뇌하는 인간 이순신’ 동상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성웅 이순신이 아닌 인간 이순신을 표현한 동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동상은 갑옷 대신 평상복을 입고, 손에는 칼 대신 지도를 들고 있다. 동상은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울돌목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눈길을 따라 바다 쪽으로 눈을 돌렸다.
1597년 발발한 정유재란 당시 압도적인 열세에 모두가 패배를 예감하는 상황에서, 이순신 장군은 울돌목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실제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는 감히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대신 영화 <명량> 속 긴박했던 전투장면이 떠올랐다.
“죽기를 각오한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 죽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최민식 분)은 명량해전을 앞두고 두려움에 떠는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이라고 두렵지 않았을까. 그 역시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두려움을 이겨내고 울돌목의 조류 및 지형적 특성을 활용해 결국 대승을 거뒀다.
한참 동안 영화 속 장면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파도 소리가 조선 수군의 함성처럼 들리는 착각이 들 즈음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해가 지기 전 다음 장소로 이동하려고 서둘러 발걸음을 뗐다.
진도타워에서 한쌍의 연인이 전남 진도 앞바다에 펼쳐진 풍광을 감상하고 있다.
우수영관광지에서 나와 진도대교를 건넜다. 섬이었던 진도를 해남과 연결해 뭍으로 만들어준 고마운 다리다. 이내 한눈에 진도·해남 앞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진도타워에 닿았다. 60m 높이의 전망대에 올라가서 보니 울돌목의 거친 몸짓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조금 전 지나온 진도대교도 바다 가운데 서서 위용을 뽐냈다. 좀더 멀리 시선을 옮기자 올망졸망 떠 있는 다도해가 그림처럼 펼쳐졌다. 한없이 평화로운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순신 장군, 조선 수군, 그리고 백성의 희생이 만들어 낸 평화였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뒤섞인, 복잡한 심경이 됐다. 이런 마음도 모른 채 진도 앞바다는 마냥 아름답게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