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떼가 달려간다
- 이 대 흠
소나무숲으로 염소떼가 달려간다 염소들은 맨 앞의 염
소를 믿는 버릇이 있다 우리는 힘차게 달려가는 염소들 중
한 놈을 고른다 어쩌면 저놈은 살아남을지도 모른다 예측
가능한 삶이란 이미 죽은 자의 것이다 살아 있는 염소떼가
달려간다 검은 몸의 사내는 익숙한 솜씨로 무리 속에서 한
마리를 잡는다 몸이 묶여 허공에 매달린 염소 살아남은 자
들은 뿔을 앞세우고 일제히 한 방향으로 달려간다 우리 모
두 절벽을 향해 달려가버릴까? 염소떼 지나간 뒤 꺾인 소
나무 가지에 수액이 맺힌다 생의 마디마디 눈물 아니더냐
상처에 대한 기억으로 저 나무 더 많은 솔방울을 달지도
모른다 염소떼가 달려간다 염소의 털에 묻은 풀씨들이 달
려간다 바람이 불어간 쪽으로 댕댕히 꽃머리를 겨눈 개망
초 쑥부쟁이 희게 날리는 억새의 꽃들 뜨거우리라 바람은
한사코 잎사귀의 문장을 읽고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는
다 염소떼가 달려간다
- 이대흠 시집 '귀가 서럽다'(창비, 20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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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목 상태에 있는 염소떼라 할지라도 무리를 이끄는 지도자는 있기 마련입니다
앞서서 냅다 뛰면 따르는 무리들도 마구 뜁니다
왜 뛰어야하는지는 생각도 않는 것이지요
지금 우리들도 비슷하지 않은가요?
4대강이 그렇고, 세종시가 그렇습니다
지자체수장이나 의원들을 어느 정당이 공천한다는 사실도 그러하다는 생각입니다
그저 제자리 지키며 서있던 개망초 쑥부쟁이 억새들만 멀거니 두 눈 뜬채 멍하니 바라봅니다
그것을 되짚어내는 이들의 문장은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못합니다
이래서 현대시는 쓴 사람 말고는 아무도 그 뜻을 짚어내지 못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한 두줄에 눈길 둔채 고개만 끄덕이고
속엣말을 이죽거리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