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은 참 행복했다.
따로 나가 살고있는 두 아들이 모처럼 집에 오니 적막하던 집안이 갑자기 윤기가 돌았다.
아내랑 넷이서 극장가서 영화도 보고
주일에는 함께 교회 가서 예배를 드리니 그렇게 흐뭇하고 좋을 수가 없었다.
영화시간 맞추느라 3000원 짜리 설렁탕을 허겁지겁들 먹어치우고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넷이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노라니
애들 어릴 때 데리고 여행 다니고 구경 다니던 생각이 났다.
현실적으로 좀 골치 아프게 얘기하자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신봉자라면서 애들 앞에서 기염을 토하다가
그 자본주의에 깔려 숨도 못 쉬고 살아가는 한 <올드 보이>와,
"반통일 족벌체제에다가 수구골통들의 대변지(반대파들의 표현)"인 00일보의 병아리 기자와,
"기름때 한번 안 묻혀본 <먹물>들이 붉은 띠 매고 설쳐대는(역시 반대파들의 표현)"
00당을 째려보면서 그들보다 훨씬 쌈박한 사회주의적 유토피아를 꿈꾸는 <민주투사>와,
이 세 남자를 숙명적으로 사랑하는 한 여자가
예의 00당원인 한 젊은 감독이 만들어 대박을 터트린 영화 <올드 보이>를
나란히 앉아 보고있는 셈이다.
영화 <올드 보이>는
별 생각 없이 내뱉은 말 한마디가 남에게 씻을 수 없는 평생의 상처를 주었고
결국 "용서"의 벽을 넘지 못한 피해자가 처절하게 복수를 하고
주인공 최민식은 영문도 모르고 음모에 휘말린다는 좀 어이없는 스토리의 영화다.
출연자와 스탭들에게 영화의 줄거리를 미리 발설치 말 것을 옵션으로 걸었다고 할만큼
끝까지 궁금해서 미치게 만드는 영화의 마지막 반전(反轉)은 가히 충격적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을 맴돈 것은 최민식이 유린당해야 하는 이유가 아니라
<용서>라는 두 글자였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00대학 영어영문학과를 시험도 안보고 특차로 들어가 놓고서
공부는 제껴놓고 학생운동 한답시고 샛길로 빠져버린 둘째 때문에 엄청 속을 썩었었다.
게임도 안되는 빈약한 논리로 밤새 토론하고
눈물로 설득하고, 강제로 휴학시키고, 불같은 분노를 터트려도 보았지만 별무효과였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결국은 내가 졌다.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그의 편에 서 보았고, 마침내 나는 이 <큰일낼 놈>을 용서했다.
지금은 더욱 그를 사랑한다.
사람이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쉬운게 아니다.
용서는 그냥 용서해야겠다고 맘먹는다고 이뤄지는게 아니라 반드시 거쳐야할 과정이 있다.
우선 그 사람을 이해해야 하며 그런 다음 내가 입은 상처를 깨끗이 잊어야 하고
마지막으로 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단계까지 가야 진정한 용서라 할 수 있다.
어느 한 가지라도 빠트린 용서는 이기적인 자기 기만에 불과하다.
우리 같은 범부범부(凡夫凡婦)의 세상에서는
자기를 배반하고 상처 준 사람을 한 번 용서하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고
두 번째도 용서하는 사람은 인생을 달관한 사람이고
세 번째까지도 용서하는 사람은 성자이거나 아니면 등신이다.
안 믿는 사람은 자기 편하려고 용서하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용서받으려고 용서한다.
베드로가 예수께 물었다.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까?"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490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신 그분은
우리의 영혼과 육체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죄악을 눈같이 깨끗케 하시기 위해
491 번째 용서를 손에 들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12월 1일날 거실 창가에 크리스마스 츄리를 장식하고 점등했다.
우리가 잠들어있는 한밤에도
세상의 모든 악과 방탕과 술수가 질펀한 어둠 속에서도
용서와 화해를 권면하는 작은 불빛들은 지치지 않고 세상을 향해 깜박인다.
이제는 용서해야겠다.
고의로 부도를 내어 나를 포함한 여러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멀쩡하게 장사하고 있는
장한평의 그 "난 놈"을 이젠 용서해야겠다.
병원 응급실에 잠깐 두고 온 핸드폰을 가져 가버려서 거금을 주고 다시 사게 만든
그 "좀팽이"도 용서해 주자.
별 것 아닌 일로 사흘째 부처가 된 아내에게 내가 먼저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킥킥 웃어야지...
모두가 용서하는 12월이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화해하는 크리스마스였으면 좋겠다.
집 나가서 티켓다방을 전전하는 몹쓸 딸도 이제 그만 용서하고
젊은 여자와 나가 살다 병들어서 돌아온 남편도 눈물로 용서하고
돈 때문에 사이가 저만큼 벌어진 형제들도 이제 그만 용서하고 화해하는
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
주님께 영광! 글 감사합니다.
감동글 감사합니다.
마음에 와닿는 좋은 말이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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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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