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깨달음과 수행자의 깨달음은 어떻게 다른가
불법의 깊은 뜻은 대승불교의 법신부처님에 있습니다.
대승불교의 법신부처님이어요.
대승불교 경전을 보면 법신이 많이 나와요.
《능가경》을 위시해서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읽어보면 모를 거예요. 무슨 말인지 몰라요.
그리고 이 보신 이야기를 이렇게 설명한 적은 부처님 이후로 처음이어요.
무착ㆍ세친 대에 삼신불 사상이 정립되지만, 당신들이 불과를 증하지 못했기 때문에
해석이 어색해요. 아니어요. 불안정하고 충분하지 못해요.
안 그렇습디까? 충분하지 못해요. 오리무중(五里霧中)이어요.
그러니까 부처님의 참뜻은 대승불교의 법신부처님이다.
법신부처님을 몰라가지고는 불교를 설할 수가 없어요.
불교를 설법할 수가 없는 거예요.
설법해서는 안 되어요. 궁극을 알아야지요.
끝까지 알아가지고 법을 설해야 되는 것인데
눈 먼 중생을 상대로 법상에 올라가서 법 아닌 말을 하면 큰일 나는 거예요.
큰 과보를 받는 거예요.
사후세계가 없다든지, 윤회를 말이 안 된다고 설한다든지,
불ㆍ보살이 없다고 한다든지 하면 안 되어요. 그 사람들은 알 수가 없지요.
깨달은 분상에 가가지고도 모르는데, 깨닫지도 못한 학승들이 올라가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막 이야기한다고요. 큰일 날 일이지요.
부처님의 삼밀(三密), 신밀(身密)도 모르면서, 부처님의 신밀, 즉 법신ㆍ보신ㆍ화신,
이 몸의 신비로운 소식을 모르면서 어떻게 법문을 합니까?
큰일 나는 거예요.
다음 생에 나오더라도, 무간지옥에서 사람으로 몸 받아 오더라도
삼중고(三重苦)ㆍ사중고(四重苦) 받아 나온다. 이게 맞습니다.
부처님 말씀이어요.
그래서 이렇게 정법 문중에서 말하는 만자(滿字)의 경지에 가지 않고서는
함부로 법문하면 안 됩니다.
TV에 나가기를 좋아하는, 말 잘하는 스님들이 있어요.
나가서 말하는 것을 보면 큰일 날 말을 한다고요.
1시간 하면 큰일 날 말이 몇 개나 잡힌다고요.
그래서 전번에도 이야기했잖습니까?
이 수행승의 깨달음과 부처님의 깨달음, 깨달음이 똑같은 줄 알고
부처님을 각자(覺者)로 해석해서 깨달은 사람들이 ‘자기나 나나’ 그런다고요.
오히려 조사(祖師)를 부처님 위에다가 놓는다니까요.
어제도 말했지만, 그건 아니어요. 큰일 납니다.
자, 깨달음이 뭔지 압니까?
이 본체, 우주의 본체, 혹은 선(禪)에서 말하자면 마음이지요.
본체하고 마음은 좀 다르지만, 지금 선에서는 그것을 몰라요.
마음은 본체 플러스(+) 나 당체(當體)예요. 이것이 마음이어요. 불성이어요.
그런데 이 본체를 보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하는 거예요. 깨달음이라고 해요.
여기에서 나왔으니까, 모든 것이 이 본체에서 나왔으니까.
이것을 보는 것은 대단해요.
그런데 그 깨달음의 경계가 확~ 뒤집혀가지고
온통 세상이 허공과 같이 되어버리거든요.
깨달을 때의 경계가 그렇습니다.
환~한데 허공과 같아요.
청정하고 허공과 같이 텅~ 비어 있는데 이 수행자의 마음은 그렇게 즐겁단 말이어요.
그러니까 부처가 다 된 줄 알지요. 거기가 끝인 줄 알지요. 이 깨달음은 그렇습니다.
수행자의 깨달음은 그럽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깨달음은 여기서 백천만리나 더 올라가요.
부처님의 깨달음은 《화엄경》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스님 말씀을 듣고《화엄경》을 보면 아주 쉽습니다.
깨달으면 어떻게 되느냐?
부처님이 깨달으면서 당신의 진불이신 청정법신 비로자나불과 일체가 되어버려요.
하나가 되어버리는 거예요.
얼마나 어마어마한 줄 압니까? 여기는 본체를 보는 정도가 아니어.
본체를 보는 것이 아니고, 부처님과 본체하고 나유타겁 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합된 합일된 인격체, 자기 법신과 하나가 되어버린다니까요.
하나가 되면서 절대계에 있는, 상적광세계에 있는 보신(-자기 보신)과
셋이 하나가 되어버리는 거예요.《화엄경》에서는 둘이 하나가 된다고 했는데,
셋이 하나가 됩니다.
《화엄경》에서는 둘이 하나가 된 것으로 되어있지요?
자, 보신(-자기 보신)도 하나가 되어버립니다.
보리수(菩提樹) 아래에 있는 이 몸하고 절대계에 나유타겁 전에
불과를 이루어서 생긴 저 불신(-보신불)하고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하나가 되어버린다니까요.
그러면서 깊~은 삼매에 들어가 버립니다.
해인삼매 적정삼매에 들어가 버리는 거예요.
그러자 하늘에서는 만다라화 만수사화의 꽃비가 내리는 거예요.
부처님께서 좌정하고 계신 보리수 그 근방의 바운다리에다가 1미터 정도의 두께로
그~ 아름다운 너무너무도 아름답고 깨끗하고 청정한 꽃들이 막 뿌려진다고요.
축하하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삼천대천세계가 육종진동을 한다고요. 어마어마하잖아요.
그러면서 딱 선정에서 나와서 삼매에 나와서
삼천대천세계를 무량광 빛으로 비춰주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 보리수를 중심으로 해서 그 세계는 정유리세계가 되어버리는 거예요.
정유리세계가 되어버린다니까요.
《화엄경》〈세주묘엄품〉을 보세요. 내 법문을 듣고 봐요. 그렇게 쉬우니까요.
정리정돈을 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되요. 그
런 사람이 없으면 교학도 절대 앞으로 못 나갑니다.
눈이 탁 터져야 폭 나가요.
그래 지금 우리 교수님들 수준이 대단한 거예요.
나무에서도 꽃에서도 방광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삼천대천세계의 세주(世主)들이 모두 달려온단 말이어요.
불‧보살님들 성중들 천인들이 와서 찬탄하느라 그 숫자가 수천 만억을 헤아려요.
경배드리고 찬탄하는 거예요.
부처님의 정각(正覺)과 수행자의 깨달음이 어떻게 됩니까? 비교하겠습니까?
지금은 저 사람들이 몰라요.
깨달음을 수행자의 깨달음이나 부처님의 깨달음이나 똑같은 것으로 알지요?
내가 오늘 이야기한 것은 정말로 최초 법문인 거예요.
출처:2013년 자재 만현 큰스님 법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