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륜소담(車輪笑談) - 4
트렉터를 몰고 가는 사내
임성용
화물차 운전 일을 하고 있는 나는 주말이면 양주에 있는 집으로 간다. 그것도 매주 가는 것이 아니고 한 주 쉬고, 두 주 건너 뛰고, 그러다 보니 집은 나에게 간혹 생각나면 들르는 곳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내 마음 속에 자리잡은 그리움은 맨날 집으로 달려가는데, 바로 그 집에 대한 고유의 속력과 집으로 향하는 내 트럭 사이에는 언제나 실제 속도의 차이가 발생한다. 그것을 나는 아내에게 어쩔 수 없는 운행차라고 설명해 주었다. 물론 운행차는 늘 피치못할 사정 때문이 아니라 술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많다.
3월 마지막 주에, 나는 한차례 집으로 운행을 개시했다. 면소재지 시내에서 마을버스로 한 정거장 붙어있는 우리 집은 국민영구 임대아파트이다. 양주가 도농복합도시이긴 하지만 소규모로 밀집해 있는 공단지역을 빼고는 대부분이 시골이다보니, 내가 아파트에 입주했을 때, 8층 짜리 7개동이 절반 이상 비어있었다. 나라에서 집 없는 서민들에게 혜택을 주겠다고 아파트를 짓고 입주자 모집 공고를 냈는데, 막상 들어와서 살겠다는 사람들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국가에서 친히 입주를 허락해준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아파트에 들어온 주민들은 대부분 국민기초생활수급자, 저소득 주민, 독거노인, 장애인들부터 우선적으로 채워졌는데, 나도 역시 저소득 주민의 한사람으로서 나랏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받아 백골이 빠개지도록 감읍해 마지않았다. 나중에는 일반인에게도 문호가 개방되어 하우스에서 농사를 짓고 논밭을 일구는 농민들까지 하나, 둘씩 들어와 살았다. 그러다보니 넓다란 아파트 주차장에는 고추가 빨갛게 널어져 있고 경운기와 트렉터가 떡하니 대가리를 쳐들고 있었다.
달, 달, 달, 달, 달......
내가 아파트 앞 밭둑가에 트럭을 세워두고 우리 집이 있는 104동 쪽으로 걸어가는데, 트렉터 한 대가 마중을 나왔다. 102동에 사는 희철이 형이었다. 나보다 두 살 연배인 그 형은 도하리작목반에서 오이 농사를 6,000평이나 짓고 있는 사람이었다. 희철 형의 트렉터가 내 앞에 멈춰섰다.
어디 가?
집에요.
장에 가자! 오늘 장날이다.
면내에서는 근방에 꽤 알려진 5일장이 열렸고, 마침 장이 선 모양이었다. 나도 오랫만에 형을 만나 반가운 마음에 선뜻, 그의 트렉터 로타리를 밟고 올라섰다.
장터는 면사무소 뒷편으로 시내 절반을 차지할 만큼 컸다. 장에는 먹거리 장터까지 생겨 주머니돈으로도 배 불리 먹고 마실 수가 있었다. 장에 들어서자, 희철 형이 농약방 공터에다 트렉터를 몰아 넣었다. 그리고는 농약방 비료창고 옆에 있는 1톤 트럭을 끌고 나왔다. 트럭은 작목반 농장에서 쓰느 것이었는데, 짐칸에는 비료와 발효퇴비가 가득 실려있었다.
잠깐만 하우스에 이것 좀 실어다 놓고 올테니, 너 먼저 가 있어. 어물전 머리에 족발집 알지? 그집 곱창도 같이 하니까 거기 가 있어. 나, 금방 갔다 올께.
형의 하우스는 시장 밑에 있는 다리만 건너면 되는 지척이었다. 나는 그러마고, 먼저 족발집으로 갔다. 족발집에는 홍죽리, 연곡리 작목반에서도 장을 보러나온 사람들이 대여섯 둘러앉아 있었다. 거기에는 홍죽리에서 온 희철 형의 친구도 있었다. 화물차 운전을 하기 전에, 나도 한 3년간 하우스 일을 했으므로 작목반 사람들과는 안면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합세해 자리를 잡았다.
담배 두어 대 참 만에 희철 형이 왔고, 족발에 곱창에 모두들 술이 얼큰해졌다. 어느덧 저녁 해가 질 때는 소주가 열 댓병이나 돌았다.
형, 이제 갑시다.
나는 술이 과해진 것 같아 일어서려고 했다. 그러나 희철 형이 붙잡았다.
야, 엎어지면 코 달덴데 가긴 뭘 가? 술이란 말이야. 도하천 강바닥에서 소금이 나올 때 까지 열심히 퍼 마시는 거야!
끄억, 형은 많이 취했는데도 계속해서 술을 마셨다. 그럼, 뭐 소금이 나오나, 금이 나오나, 어디 한번 해 보자. 나도 덩달아 술잔으로 삽질을 하기 시작했다. 형은 사람이야 더 없이 좋은데 술을 마시면 물황태수였고 술 주사가 좀 심한 편이었다. 눈이 한쪽으로 빼틀, 돌아간 형이 괜히 낫살이나 먹은 연곡리 사람에게 티격태격 시비를 붙다가,
여보! 주모, 여기 당장 손님 바꿔줘!
어쩌고, 하면서 깽짜를 놓자, 작목반 사람들이 슬그시 술자리를 떴다. 마지막 까지 결국은 형과 나만 남았다.
밤 열 시가 넘어, 족발집이 천막을 걷고서야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시장에서 아파트 까지 걸어가면 5분 거리인데, 희철 형은 비틀비틀 몇 걸음 걷다 면사무소로 향했다.
왜 걸로 가요?
으음, 여기 마당에 차 대놨어.
형은 농장에 비료 싣고 갔다 온 트럭을 면사무소에서 몰고 나왔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차를 탔다. 멀리 갈 것도 아니고 농협만 돌아서면 바로 집이였으므로, 나도 면에서 술 마시면 늘상 차를 끌고 다녔다.
농협 창고를 지나 아파트 정문이 보이는 곳에서, 갑자기 나는 오줌이 마려웠다.
형, 오줌 좀 쌉시다!
그래? 나도 싸야지.
우리는 아파트 경비 초소를 끼고 있는 철책 담벼락 아래, 시동을 켜 놓은 채 트럭을 세우고 도로변 밭에다가 오줌을 쌌다. 그렇게 사이 좋게 둘이서 오줌을 싸고 아직 허리띠도 잠그지 못했는데,
아저씨들!
등 뒤에서 누가 불렀다. 돌아보니 정복 차림의 경찰관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아저씨들, 볼 일 다 보셨습니까?
예? 뭔데요?
그런데, 경찰관 한 사람이 불쑥, 한 손을 내 코 밑으로 내밀었다. 음주측정기였다.
실례지만 음주측정 좀 하겠습니다.
나는 바지춤을 올리고, 뭐 이런 씨발, 아니 신발이 있나 싶었다. 그렇잖아도 빠진 머리털이 전부 돋아나도록 열이 확 솟구쳤다.
아니, 여기가 우리 집인디, 뭔 놈의 음주측정이여? 아니, 집 앞에서.....
안이고 바깥이고 얼른 부세요!
아니, 참말로 환장하겄네. 음주단속은 쩌그 큰 길에 나가서 해야지, 왜 남의 아파트까지 와서 이 난리야? 이것 불법 아니요?
불법이라뇨? 안 그래도 이 아파트 앞 삼거리에서 지난 장날에 음주사고 났어요.
경찰은 측정기를 바싹 들이댔다. 그 때, 희철 형이 나를 잡아 뒤로 밀쳤다.
니에미! 밭에다 오줌 싸는디 음주단속을 해? 내 차는 저기 서 있잖어?
내가 나서서 굳이 운전을 안 했다고 밝힐 필요도 없었다. 희철 형이 트럭을 가리키며 자기 차라고 했으니. 제 입으로 자신이 운전자임을 말한 꼴이었다.
그래요? 아저씨가 운전자입니까?
그래, 근데 내가 지금 운전하고 있어? 집에 온 사람한테 이거 왜 이래?
차 시동이 켜 있네요?
음? 켜 있네? 그럼 꺼야지. 그거야 끄면 되잖아!
그러니까, 아저씨가 여기까지 운전을 하고 오신 거잖아요?
에잇! 참 사람들 머리가 거꾸로 도네. 저기가 본래 내가 차를 대놓는 자리야.
만약, 차 시동이라도 꺼져 있었으면 희철 형의 그런 변명이 어떻게 어거지를 쓰더라도 통하겠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우리가 순찰 돌다 아저씨 차 봤어요. 방금 차 몰고 들어와서 소변 보고 계셨잖아요?
경찰은 나에게 겨누었던 측정기를 희철 형에게 들이댔다.
자, 어서 부세요! 안 그래도 장날이면 농사 짓는 분들이 술 마시고 운전 많이 해요. 지나 번 사고도 요 아파트 뒷마을에 사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특별단속 중입니다.
니에미! 그럼, 뒷마을로 가야지!
희철 형은 니에미, 니에미, 거푸 욕을 하면서 침을 퉥, 뱉아냈다.
빨리 불어요!
잠깐만! 음..... 잠깐만 기달려봐.
형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당신이야? 나야. ......얼릉 경비실 앞으로 나와봐. ......응? 지금 음주운전 걸렸거든...... 뭐라고? 아, 이 상놈의 새끼들이 글쎄, 집 앞에 와서 오줌 싸고 있는디 잡아가지고선...... 그러니까, 당신이 지금 나와서, 당신이 운전했다고 해! .....알았지?
경찰이 둘이나 옆에 서서 다 듣고 있는데, 형은 아주 큰소리로 떠들었다. 형수는 남자 못지 않게 덩치도 크고 트럭 뿐만 아니라 트렉터 운전까지 하는 사람이었다.
누구 불렀어요?
측정기를 들고 있던 경찰이 피글피글 웃고 있었다.
응. 쪼끔 있으믄 마누라 나올거거든.
사모님은 왜요?
왜는 무슨 왜야? 우리 마누라가 이거 불 거야. 됐지?
그래놓고 형은 의기양양하게 다시, 트럭으로 돌아가 차 문을 열었다. 경찰관이 형의 어깨를 잡았다.
어디 가시려고요?
어디 가긴? 집에 가야지.
차 몰고 가게요?
그럼! 여기가 바로 우리 집이라니까.
형의 팔은 이미 측정기를 들고 있던 경찰에게 야무지게 붙들려 있었다. 그러나 형은 막무가내 집으로 가겠다고 하고, 경찰은 음주측정기를 불어라 하고, 그런 와중에 형수가 종종 뛰어나왔다. 그런데, 이 눈치 없는 형수가 손이 발이 되고 발이 손이 되게 빌어도 모자랄 판국에 대뜸, 경찰에게 따지고 들었다.
집 앞에서 무슨 음주단속을 한대요? 해도 너무 하네 진짜, 이게 말이나 돼요?
형수의 말에 경찰관의 태도가 돌변했다.
지구대로 갑시다!
경찰이 순찰차의 문을 열었다. 일이 아주 꼬여버리자, 형수가 사정 아닌 사정을 했다.
내 참 더러워서..... 동네 사람한테 너무한 거 아녜요? 순경 아저씨, 글지 말고 한 번만 봐줘요, 네?
차라리 더럽다는 말을 하지나 말던지, 봐달라고 사정하면서 더럽다는 말을 할 게 뭐람. 여기에 희철 형이 숫제 곤조를 부렸다.
이 동네 촌사람들 물로 본다 이거지. 아무리 우리 동네에 까치가 많아도 완전 조까치네!
형수가 뒤늦게 통사정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희철 형은 꼼짝없이 순찰차에 태워졌다.
아저씨도 같이 술 마셨죠?
나에게 처음 음주 측정을 하려고 했던 경찰관이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불안하게 눌린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 본능적으로 꽁무니를 뺐다.
아뇨! 나는 같이 안 마셨어요.
같이 차에서 내렸잖아요? 음주운전 동승자도 처벌 받는다는 것 모르세요?
나도 그런 소리를 들은 바가 있었다. 그렇지만 실제로 당해보진 않았고, 더구나 화물차로 밥벌이를 하는 나는 음주에 걸렸다면 그대로 끝장이었다. 그럴 땐 또 평상시엔 잘 안돌아가던 머리가 회전초밥 접시처럼 기가 막히게 돌아갔다.
나는요, 장에서 술 먹고 혼자 걸어오다가 농협 위에서 이 형 만났어요!
나는 괜히 재수없게 얼쩡거리다가는 나까지 코가 한두릅으로 꿰일 것 같아 뒤도 안 돌아보고 돌아서버렸다. 속으로는 희철 형에게 왠지 미안했다. 사실, 아파트로 그냥 들어와버렸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텐데, 그까짓 오줌을 참지 못하고 내가 먼저 오줌을 싸자고 해서 음주에 걸린 것이니까. 희철 형은 정말로 오줌발에 옴 붙은 것이었다.
형은 지구대에 가서도 정신 못차리고 깽판을 친 모양이었다. 음주측정을 거부하고 경찰관 멱살을 잡고 뭘 때려부셨는지, 음주에, 기물 파손에, 공무방해에, 골고루 엮여 들었다. 다행히 동네 이장까지 나서서 형의 구출을 돕는 바람에 쇠고랑 차는 것은 면했지만, 벌금이 무려 350만원이 떨어졌다고 했다. 형은 나랑 같이 술 한 번 잘못 먹고 오이 하우스 두 동 값을 날린 것이었다.
지난 주말에 차를 몰고 면내로 들어서자, 반대 편에서 1톤 트럭이 앞서고, 그 뒤에 트렉터 한 대가 따라왔다. 희철 형 내외였다. 면허를 취소 당한 형은 트렉터를 몰고 형수가 트럭을 운전하고 있었다.
농장 가요?
차 문을 열고 내가 인사를 건넸다. 형은 어이! 하면서 손을 흔들었다.
트렉터는 면허증 없어도 되남?
그러나 형은 얼굴을 꼬부라진 오이순처럼 감아올리며 웃고는 내 곁을 지나쳤다.
달, 달, 달, 달, 달.......
버켓이 고장난 희철 형의 고물 트렉터 소리가 오래도록 귓전에서 울렸다.
--- 08. 4. 9. 총선 날. 투표하고 와서, 임 성 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