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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6월 27일 주산들, 유채기름으로 달리는 경운기
친환경 농사짓기의 필요성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당연한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구 생태까지를 생각한다면 환경을 지킬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생각이 머무르게 된다. 농촌에서 쓰는 기계나 가정에서 사용하는 전기조차도 자연에서 얻을 수 있다면 생태적인 삶으로 바꾸어 나가는 보다 진전된 결과가 될 것이다.
석유 없이 농사를 지으려면 산업혁명 이전으로 돌아가야만 가능한가? 농기계를 사람으로 대체하면 논 한 두마지기 정도는 경작할 수 있겠지만 현 농업 구조에서는 불가능한 이상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농촌에도 기계가 많이 사용되는 지금, 기계에 사용되는 동력을 위해 석유만 사용해야 할까 하는 고민을 오래 전부터 해왔다. 석유 아닌 대체 에너지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다. 멀리 볼 것 없이 우리의 논과 밭이 에너지를 캘 수 있는 유전(油田)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
석유를 전부 수입에 의존하고 이산화탄소까지 하늘에 뿜어대는 지금, 탈 탄소 농사를 짓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경유 사용 농기계는 트렉터·콤바인·광역방제기·경운기이다. 휘발유 사용 농기계는 이앙기·살분무기·예초기·배토기, 석유 사용 농기계는 건조기 등인데 이들 농기계에 연료와 윤활유를 대체하거나 아예 사용하지 않으면 환경 농업이 가능하다.
여기에다 화학비료나 화학농약 그리고 제초제도 탈 탄소 대안이 있어야 한다. 전기도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이어야 한다. 농자재 또한 우리가 사는 지역의 산물이어야 하며 비유전자 조작식품이어야 한다는 생각 속에서 경험하거나 실험 중인 얘기를 여기에 담고자 한다.
주산에서 친환경 농사를
주산의 배메산은 석산 개발이라는 돌 채취로 날로 형체가 뒤틀리고 있었다. 그런데 배메산에는 백제시대의 많은 돌방무덤이 산재에 있음에도 조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서 돌 채취에만 몰두한다. 사업자나 이들에게 사업 승인을 해주는 지자체가 어떤 절차로 이런 일이 가능하게 했는지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서울에서 귀농한 김영표와 함께 ‘배메산 살리기 운동본부’를 만들어서 1999년 9월 1일 주산중학교에서 열린 주산면민의 날에 석산 반대 서명을 받았다. 주위에서는 잔칫날에 이게 무슨 꼴이냐는 원성을 듣기도 했지만 공감하는 사람도 상당했다. 석산 반대만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 속에서 그 해 12월에는 ‘주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들었다. 내용으로는 친환경 쌀과 축산 등의 분과로 구체화했다.
친환경 쌀농사를 추진하여 유기농을 확산하기 위해 화정 마을에 시범단지를 만들어 2001년도에는 다른 마을로 확산하는 등 의욕을 보이는 과정에서 2003년에 부안에 핵 폐기장 문제가 터졌다. 핵 폐기장 반대에 몰입하면서도 친환경 농사를 위한 실험과 노력은 끊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좋은 후배이며 동지인 김영표가 유명을 달리한 것은 지금도 가슴에 큰 상처로 남아있다.
유채를 심고 땅에 되돌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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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4월 26일 주산들, 주산에서 녹색 희망을 보다
농기계는 이산화탄소를, 화학비료는 아산화질소를, 축분(가축 배설물)은 메탄을 발생시켜 지구온난화를 심화시킨다. 그러고 보면 자연 질서를 따라 농사를 짓는 농촌에서도 지구를 심각하게 오염시키는 오염원이 산재돼 있는 것이다.
유기농 실험 논은 유채박(유채씨를 기름 짜고 남는 찌꺼기)으로 화학비료를 대신하여 넣어 1년에 벼와 유채의 이모작이 가능하도록 한 논이다. 풍년새우가 사는 논에 바이오디젤유 트랙터로 써레질 할 계획으로 여기에 사용될 폐식용유 10말을 모아 두었으나 2009년 초봄 어느 양상군자께서 가져가버려 가을로 미루었다. 벼 수확 때 콤바인과 이모작 유채 재배 시 트랙터에 유채로 만든 바이오디젤유를 넣어 트랙터를 사용할 수 있어 ‘석유 없이 농사짓기’를 실험하였다.
유기농 자재 중 산과 들의 풀로 만든 효소제나 부엽토 이외는 유기농 원료로 적합하지 않다. 참깨나 들깨를 직접 생산하고 동네 기름집에서 기름 짜고 남는 유박은 믿어야 하지만 시중에서 구입한 유기농 퇴비에 섞인 유박은 거의 수입된 것으로 전통 농산부산물인지 GMO(유전자조작식품)인지 구별하지 못한다. 배합사료나 조사료도 대부분 수입이며 유기축산 인증 농가 이외의 것은 신뢰가 가지 않았다.
유채박 50㎏을 2,000평에 밑거름으로 뿌렸는데 유채는 농촌진흥청 바이오에너지작물센터(구 목포시험장)에서 전통 육종한 비유전자조작식품이며, 이름은 선망으로 2009년 부안에서는 200만 평에 노란 유채꽃을 피워 벌과 나비를 불러들였다. 또 고정종인 탐라유채를 가을에 200평의 밭에 심어 2009년 6월 낫으로 베고 손으로 털었다. 그해 가을 종자를 남기고 6㎏의 탐라유채로 2.5㎏의 식용유도 만들어 가족들과 먹고 있으며 유채박 3㎏도 얻어 웃거름으로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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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망유채는 F1이며 정부 보급종으로 해마다 구입(1㎏/10,000원/300평)해야 한다. 시험장의 수량은 10a(300평)당 448㎏이다. 2009년 부안에서는 퇴비를 많이 뿌린 농가의 밭에서도 겨울·봄 가뭄도 이겨내 시험장과 비슷한 수확량을 보였는데 화학비료만 준 논과 밭에서는 절반 이하가 생산되었다.
탐라유채는 고정종으로 농가에서 채종해 다시 파종해도 같은 수량(300㎏/10a/바이오에너지작물센터)을 낸다. 선망유채의 수량보다 적지만 농가에서 채종과 보관이 쉬우며 불포화지방산 비율이 식용유에서 단연 으뜸이다. 2008년 9월, 밭 200평에 유채박만 30㎏을 뿌려 수확한 유채는 56㎏으로 아주 형편없었다. 앞으로 유채박 살포량을 2배 이상 늘릴 계획이다.
유채대(생초)를 사료용으로 재배해 한우에게 먹이는 실험을 2008년부터 하고 있는데 칡·고구마줄기·콩대·볏짚·뽕잎·깻대·팥대·무시래기 등을 함께 줄 때는 배합 사료량이 하루 평균 1마리당 2㎏였고 유채생초를 섞어 먹일 때는 배합사료가 1㎏으로 줄었다. 이렇게 실험으로 키우는 한우는 현재 11마리다.
논에 왕우렁이를 넣다
유기농 논은 수렁이 많아 논을 고르게 만들기가 매우 어렵다. 깊고 높은 곳을 해마다 삽질로 논 고르기를 해야 한다. 유기농을 하던 논이라 울치나 지렁이(부안 말로는 그시랑)는 있었다. 지렁이는 땅을 기름지게 하는데 물이 고이면 땅 속으로 들어가고 물이 없으면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울치는 드렁허리의 부안말로 지렁이 등을 먹고 산다 하는데 암수 한 몸으로 그 생태가 속 시원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5년 정도 휴경하는 동안 논에는 올방개(부안 말로 까치밥), 줄, 갈대, 버드나무 등이 번성했다. 까치밥은 거무딩딩한 덩이줄기 안에 하얗고 연한 속이 있는데 까치가 아주 좋아하며 왕우렁이는 그 줄기를 잘 먹어 다음해엔 볼 수 없었다. 왕우렁이는 단백질 공급원으로 수입된 식용 우렁이었는데 풀을 먹고 자란다는 것을 안 뒤에는 논에 풀어서 풀을 제거하는 기능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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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에 다들 우렁이를 넣지 말라고 자기 경험까지 들어가며 극구 말리는데 써레질 후 다음날 왕우렁이를 200평당 3㎏ 요량으로 방사했다. 모심기(2009.6.28) 엿새 전이다. 써레 직전 선망 유채박 50㎏을 손으로 뿌렸고, 삼덕벼 모판은 2,000평에 140판 소요됐다. 50주에 1~3개의 모를 심게 이앙기 조절을 했으나 많이 심어진 포기는 7~10개 씩도 있다.
왕우렁이 넣는 시기를 모심은 후 5일 이내로 권장한다. 다만 써레질 완료한 날로 열흘을 넘기면 풀밭을 가꾸니 써레 완료 후 10일 이내를 매우 강조한다. 모심고 다음날 왕우렁이를 논에 방사하면 모 잎이 물에 닿거나 제대로 심어지지 않거나 또는 물에 아예 잠긴 벼는 왕우렁이가 좋아하는 식사꺼리다.
여기서 또 다시 농가들에게 강조하는 말은 논 고르기 전에 논이 깨끗하면 왕우렁이를 줄여서 넣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 왕우렁이에게 배추잎 등 풀잎을 매일 주어야 한다. 누에에게 뽕잎 주듯 말이다. 왕우렁이는 먹을 게 없으면 벼를 먹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 심은 지 이레가 되어 가는데 깊은 곳의 벼들이 자꾸 없어진다. 왕우렁이를 일찍 넣어 풀을 죄다 뜯어 먹고 먹을 게 없으니 벼를 밥으로 삼은 것이다.
풍년새우, 울치, 지렁이, 백로랑 같이 살기
농부들은 모 때우기를 대여섯 번 하는 중간 중간에 논의 물이 하루가 멀다고 어디론가 빠져나갔다. 논에 구멍을 뚫어 놓은 것인데 울치란 놈 짓거리여서 화도 내지 못한다. 울치가 뚫은 구멍을 막는데 울치가 어찌나 많은지 사람을 봐도 나 좀 잘 나오게 사진 찍어줘용 하듯 도망치지도 않는다. 논 주인은 찰칵찰칵 몇 번 하고 울치가 논 속으로 들어가는지 또 논두렁 구멍 뚫으려 가는지 관심 없이 지 일만 한다.
백로, 황로, 왜가리가 떼로 날아와 우렁이를 다 잡아먹는다고 이웃집에서 걱정해 주는데 “지들도 먹고살라고 하는데 냅둬요, 그래도 풀은 없어징게!” 참 싱겁다. 고마운 이웃에게.
이러구러 모내기 22일 째 아예 논을 말려야겠다. 물이 들고 나는 곳으로 왕우렁이는 몰리는 습성이 있다. 물이 없으면 왕우렁이는 맥을 못 춘다. 미처 나오지 못한 놈들은 논흙에 반 쯤 들어가 죽은 듯이 있거나 아예 흙 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비가 오거나 물을 넣으면 왕우렁이들은 조용히 제 살 길 찾는다. 그리고 포도송이 같은 왕우렁이 알은 15일 정도에 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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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논 배토기로 휘발유를 써야 하나 고민 없이 유채박과 유채박 발효 액비로 시험 재배 중인 집 옆 목화, 아주까리, 야콘, 유채 등 열 가지가 넘게 심어진 여기저기 밭에서 풀을 뽑다 틈틈이 만들다만 논골따기를 들고 논으로 갔다. 논골따기는 나무와 함석으로 올해 처음 만들어 사용하는데 다른 이는 몰라도 쓰는 나는 기분이 좋다.
첫날은 땀으로 멱을 감고도 남아 논에 물댈 정도였다. 두세 번 고쳐가며 사흘째 손잡이를 두 개로 달았더니 힘없이 논에 물고랑이 잘 만들어진다. 예초기는 대학 2학년인 아들 선우보다 세살 더 많은데 6월 초순 고장나 부안읍내 열 집 넘게 수소문 했으나 하도 오래된 것이라 부품이 없다. 주산소재지의 후배 털보카센터가 “형님! 배터리로 풀 깍는 거 있는디 갔다 쓰쇼” 하며 45암페어 배터리까지 딸려 준다. 충전이 잘 된 배터리로 풀을 베는데 세 시간은 너끈한데 등에 매고 하는 작업이라 어깨가 너무 뻐근해 한 시간 넘게 작업하기가 어렵다. 읍내의 백룡오토바이 형님이 준 5암페어 배터리로 풀을 깎는데 힘이 없고 풀이 예초기 날에 자꾸 엉켜 작업이 아예 되지 않는다. 다시 45암페어 배터리를 논두렁에 놓고 10여 미터 풀 베고, 다시 옮겨 10여 미터. 현재까지 낫질 포함해 네 번 깎았다. 배터리 충전은 트럭과 DD모터를 발전기로 개조해 만든 자전거 발전기로 하는데 주로 트럭이다. 지금은 태양광 발전기로 충전한다.
논 군데군데 연한 녹색을 띄는 곳이 늘어나 유채박으로 웃거름을 준다.(2009.8.17) 유채박을 뿌리는데 주홍날개꽃 매미 한 마리가 벼 잎에 붙어 있다. 멸강충이 민가까지 들어와 이웃마을에서 한때 소동이 있었는데 대발생 때가 걱정된다.
폐식용유를 도둑이 가져간 뒤 벼베기 전까지 다섯 말을 모았다. 폐식용유는 벼베기 때 콤바인의 경유대신 바이오디젤유로 시험 사용했는데 배기가스에서 튀김집 냄새가 난다.
주산초등학교에 유채식용유를 지원하다
‘석유 없이 농사짓기’ 1년차인 2009년은 쌀 25짝(백미 80㎏), 모내기를 표면산파로 바꾼 2년차는 20짝을 수확했으며 1, 2년차 모두 70%의 달성율을 보였다. 1년차에 수확한 쌀은 2009년 11월부터 2010년 10월까지 주산초등학교에 무료로 유채식용유를 제공하는 기금으로 사용되었다. 주산초 47회 동창들이 쌀 한 짝을 20만 원에 사고, 그 중 5만 원씩을 유채식용유 무료 급식 기금으로 모은 100만 원과 나머지 180만 원은 논 주인이 부담해 1년 동안 총 11말 280만 원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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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7월, 주산초등학교 어린이들 ‘농약 안한 쌀을 먹고 싶어요’
주산초등학교를 포함한 부안군의 학교들은 콩기름을 급식에 쓰는데 한 말에 4~5만 원인 수입 원료로 유전자조작 농산물임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주산초등학교에 무료 급식으로 지원한 유채식용유는 한 말에 25만 원이니 가격에서 콩기름과는 많은 차이가 난다.
학교 급식 후 유채 폐식용유를 5말 모았는데 일부는 ‘석유 없이 농사짓기’ 실험에 쓰이고 나머지는 법이 허용한 부안군청 청소차의 바이오디젤유로 순환되어 농업의 활력과 부안의 공기가 더 맑아질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화정 마을을 에너지 자립 마을로
3년차인 올 2011년은 ‘석유 없이 농사짓기’ 완성을 바라는 해다. 그동안 여러모로 준비했던 우리 화정마을이 에너지 자립마을로 탈바꿈했는데 38세대 중 35곳에 태양광 발전기 30개, 태양열 난방기 9개, 지열 냉·난방기 3개 등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 42개가 2010년 12월 말까지 설치되어 탈 탄소를 향하는 마을로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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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너지(태양열) 자립마을로 탈바꾸한 주산 화정마을
우리 집은 태양광 발전기로 작년 12월 22일부터 올 4월까지 햇빛으로 1,529kwh의 전기를 만들었는데 2011년 4월 한 달 동안 425kwh를 생산했다. ‘봄볕은 며느리에게 쬐이고 가을볕은 딸에게 쬐인다’는 속담이 맞는가 보다. 봄이 더 햇빛이 강해서 가을과 여름보다 전기 생산량이 월등하다.
‘석유 없이 농사짓기’에서 가장 어려웠던 휘발유, 윤활유, 등유를 대체할 방법은 이산화탄소 상쇄였는데 태양광 발전기를 우리 집에 설치하고 나서 해결했다. 내가 쓰는 전기는 컴퓨터 2대, 전구 20w 2개, 김치냉장고, 텔레비전, 드럼세탁기 등으로 한 달 평균 150kwh를 사용한다. 평소 대기전력 차단과 함께 마당의 불은 200w 태양광 발전기로 배터리에 충전해 LED 6w로 밤을 밝히고 있다.
‘석유 없이 농사짓기’는 계속 진행 중이다. 농촌에서 친환경 농사를 지어서 좋은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 실생활도 친환경이 되도록 생각과 생활을 바꾸는 것이 절실함을 느낀다.
/김인택(주산을사랑하는사람들 사무국장)
<부안이야기> 4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