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번째 순례
음성 천주의 모친 성당
신성근 신부(성사전담사제)
「설성의 기억 위에 세워진 믿음의 공동체」
충북 음성군의 중심인 음성읍을 걷다 보면
오래된 이름 하나가 자꾸 눈에 띈다.
설성로.
그리고 붉은 벽돌로 지어진 소박한 성당,
음성 천주의 모친 성당이다.
설성(雪城), 오래된 이름 하나
지금은 모두 ‘음성’이라 부르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설성(雪城)이라는 이름이 살아 있다.
눈 설(雪), 성곽 성(城).
눈 덮인 성이라는 뜻의 이 이름은
참으로 서정적이다.
겨울이면 눈이 오래 머물던 고을.
그 눈 속에서도 삶을 이어 가던 사람들.
그리고 말없이 세월을 견디던 마을의 시간이
그 이름 안에 담겨 있다.
전쟁의 상처 위에 세워진 성당
음성 본당은
1954년 10월 22일 설립,
1955년 6월 29일 노기남 주교님께서 성당을 봉헌하셨다.
한국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던 시절
신자들은
가장 먼저 성당을 세웠다.
그것은 단순히 건물을 세운 일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믿음의 고백이었다.
그래서 오래된 성당을 바라보면
건물보다 먼저
그 안에 쌓인 사람들의 시간이 보인다.
사람의 삶을 품는 공간
성당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세례로 신앙의 삶을 시작했고,
혼인성사로 새로운 가정을 이루었으며,
또 누군가는
마지막 삶을 하느님께 맡겼을 것이다.
그리고 성소가 싹트고 사제를 여럿 배출했다.
주교님도 탄생했다.
눈 덮인 뜰에서 꽃이 피었다.
그렇게 성당은
한 사람의 생애와
한 지역의 시간이 함께 머무는 공간이 된다.
그늘 속에서 더 깊어지는 믿음
음성(陰城).
그늘 음(陰).
사람은 누구나
밝은 곳만 바라보며 살아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삶은 늘 그렇지 않다.
병들고,
지치고,
외로워지고,
넘어지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그런데 신앙은
바로 그 자리에서 더 깊어진다.
아무것도 의지할 수 없을 때
비로소 하느님을 찾게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그래서인지
음성 천주의 모친 성당은
화려함보다 따뜻함이 먼저 느껴지는 성당이다.
크고 웅장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정겹다.
「눈처럼 조용히」
이라는 이름을 떠올려 본다.
눈 덮인 城.
눈은 소리 없이 내린다.
그러나 그 눈은
메마른 세상을 덮어 주고,
차가운 땅 위에도
새로운 숨결을 남긴다.
신앙도 그렇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바꾸지는 못할지라도
지친 사람들의 마음 위에
조용히 내려앉아
다시 살아갈 용기를 준다.
오늘도
음성 천주의 모친 성당은 그렇게
설성의 오래된 기억 위에서
사람들의 삶과 기도를
묵묵히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