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기행문을 올리기 시작한 지 10주년이 되었다.
그러나 긴 기간에 비하면 올려진 글의 양은 적은 편이다.
워낙 공백 기간이 길었던 탓이다.
그래서 그런지 수많은 버스터미널 사진은 10년 전에서 멈춰있다.
다시 이야기하자면 10년 동안 한 번도 업데이트를 하지 않은 곳이 너무나 많다는 뜻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수도권을 중심으로 프로필을 다시 써보고자 한다.
오래된 정보를 바꾸고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리는 목적이 있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을 스스로 리마인드 해보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다시 쓰는 프로필, 그 첫 번째 장소는 바로 화정버스터미널이다.

새벽을 지나 이미 온 세상이 노을로 붉게 물든 시점에 화정으로 다가왔다.
내가 사는 지역이라 이렇게 이른 시간이 올 수 있었는데, 하필이면 출근시간과 맞물려 엄청난 인파에 고생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주어진 시간에 최대한 많은 것을 담아내려면 조금의 무리가 필요하다.

일장기 문양으로 논란이 된 화정역 광장에서 바라본 번화가의 모습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개발된 고양시 덕양구의 상업 중심지로서,
덕양구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한 번쯤은 와본 적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 역시도 십수 년 전 이곳으로 학원과 학교를 다닌 적이 있기에 누구보다 익숙한 장소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활동 반경이 축소되다 보니 화정은 자연스레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화정에 다시 온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고, 지나간 시간만큼 달라진 부분이 알게 모르게 곳곳에 눈에 밟힌다.
역 중앙에 횡단보도가 생긴 것과 역 북부에 높은 오피스텔이 들어선 것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진다.
어릴 적의 기억으로는 항상 어딘가 모자란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화정은 왠지 빈틈이 있어야 더 익숙하다.

나에게는 화정버스터미널도 그중 하나로 여겨졌다. 즉 화정에 몇 안 되는 '빈틈'이라고 느껴진다.
외부로의 교통을 책임지는 버스터미널이 왜 빈틈이라고 하냐 질문한다면,
신도시 상권의 전형을 보여주는 화정역 일대에서 드물게 낡고 비좁은 시설 규모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덧붙이면 지하철로 단 두 정거장 거리에 고양종합터미널이라는 최신 시설이 있기 때문이다.
고양시 인구가 이제는 100만 명을 넘는 거대 도시로 성장했지만,
서울의 위성도시라는 한계 때문에 왠지 두 개의 버스터미널은 Too Much하게 느껴진다.

실제로 고양종합터미널 개업 이후 화정버스터미널은 지속적으로 노선과 수요가 감소했다.
고양터미널 이후 화정에는 단 세 개의 고속버스 노선만이 남아 아주 제한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으며,
다소 노선이 늘어난 지금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일까, 가뜩이나 조그마한 버스터미널 건물에는 정신없는 간판들만 가득하다.
버스터미널을 알리는 간판은 현수막으로 덧붙인 정상영업 소개가 전부이다.

건물 안쪽의 대기실은 예나 지금이나 거의 변한게 없다.
하지만 내부 사정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적자가 계속 누적되면서 2018년 6월 1일부터 9월 3일까지는 매표소 없이 운영되기도 했었다.
단골 이용객들의 거듭된 항의로 매표업무를 다시 시작하여 다시 없는 일이 되었지만 말이다.

다행히 고양종합터미널이 개장된 지 7년 가까이 흐른 지금에도 이곳은 꾸준히 운영되고 있다.
심지어 건물 안의 상점들도 거의 그대로 있으며 공실률이 매우 낮다.
겉보기와는 달리 꾸준히 고정적으로 수요가 유지되고 있다는 뜻이다.
규모 있는 버스터미널이라면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렌트카마저 있을 정도니까.

그러나 꾸준한 수요가 있다고 해서 현재 상황이 아주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앞서 말했듯이 잠시나마 매표업무가 중단된 적이 있을뿐더러,
건물 구석의 공중전화 부스와 그 옆에 있는 스위치 전등에는 이런 낙서가 적혀있다.
관리자분께서 쓰신 문구겠지만, 내용을 보면 관리가 아주 철저하게 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매표소 모습도 예전과 거의 다를게 없어 보이지만, 이미 한번 물 건너온 전적이 있다.
이렇게 겉모습만 보면 멀쩡하지만 최근에 홍역을 제대로 치른 곳이라는 점은 많은 의미를 가진다.
매표업무를 계속하기엔 적자가 심한데 그렇다고 철수시키자니 아직 이용객은 많고...
사업자가 굉장히 고민되는 부분이 이러한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이용객 입장에서 보면 다시 이곳에서 표를 끊고 버스를 탈 수 있으니 다행이라 하겠다.
이처럼 화정버스터미널이 지금까지 유지되는 데에는 이용객의 힘이 컸다.
애초에 이곳은 고양종합터미널이 개장되면 폐지될 입장이었다.
그러나 덕양구에서 결사반대를 외친 끝에 존치되면서 결국 고속버스 노선만 남겨두게 되었다.
예상처럼 큰 폭으로 승객이 빠지면서 주기적으로 폐지 논란이 지역 사회에 올라왔으나,
그럴 때마다 덕양구 주민들의 비호로 터미널이 유지되고 오히려 하나 둘 시외버스 노선까지 유치하였다.
즉,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조금씩 입지를 다시 넓히면서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래서 현재는 고속버스 노선 다섯 개, 시외버스 노선 다섯 개를 보유하고 있다.
화정버스터미널 존치가 이기적이라는 의견은 외지인들을 중심으로 자주 나온다.
그러나 속사정을 보면 이기적이라고 무턱대고 비난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덕양구와 일산구는 생활권이 달라 상호 교통이 다소 불편하기 때문이다.
덕양구에선 화정, 행신동 정도가 일산신도시를 오가기 수월한 편이고,
원당이나 능곡만 가도 한 번에 가기 힘든 사각 지역이 곳곳에 있다.
삼송이나 화전에서 일산을 가는 것은 경기남부권 기준으로 이웃 도시를 가는 것과 비슷한 시간이 걸리고,
벽제, 고양동 및 지축 일대에서는 아예 한 번에 연결되는 교통수단이 없다.

게다가 백석동은 그간 일산의 관문 역할을 해왔을 뿐, 딱히 유동인구가 많거나 상권이 발달한 지역이 아니었다.
지금처럼 백석동 상권이 커진 것은 고양종합터미널 개장 이후로서,
단순히 두 터미널 간 거리가 가깝다는 것만으로는 둘의 관계를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즉, 화정버스터미널은 고양종합터미널을 보조하는 현실적인 이유 말고도,
덕양구 주민들이 내면에 가지고 있는 자존심이기도 하다.
일산 위주로 개발되는 것에 대해 강력한 반발심을 갖는 덕양구 주민들에게 있어서,
(일산에는 킨텍스-한류월드-영상단지, 덕양에는 소각장 및 장묘시설 같은 혐오시설만 들여온다는 반발심과 소외감)
화정버스터미널만큼은 꼭 지켜야 한다는 심리가 있다. 일종의 심리적 저지선 같은 것이다.

이러한 일산과 덕양의 갈등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화정버스터미널의 존재 이유를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고양시가 인구 100만 명이 넘는 거대도시로 성장했음에도 일산과 덕양의 갈등은 현재 진행형이며,
사뭇 다른 두 도시가 한집살이를 하는 어색한 구조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비록 구성남과 분당, 안양과 평촌의 갈등만큼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도 엄연히 가지고 있다.
화정버스터미널은 만성적인 적자로 자력 생존이 어려울 지경에 내몰렸으며,
현재 역할도 고양종합터미널의 중간 정류장에 머물다 보니 대부분의 시설이 불필요해져
쓸데없는 시설 유지비로 막대한 지출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무리하게 노선을 존치하려 하다 보니 일산IC를 사이에 두고 지나간 길을 또 지나가는,
비효율적인 노선 운용에서도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고양터미널 이용객들 입장에서 큰 불만이자 갈등 요소이다.
또한, 고양터미널이 고양시의 대표 버스터미널로 완전히 자리잡는 데에 있어서 방해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정치적인 이유와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화정버스터미널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지금의 분산 정책이 유지되리란 법은 없다.
과연 화정버스터미널이 자력으로 일어설 수 있는 시기가 오게 될까.
고양종합터미널과 더이상 엮이지 않고 독자적인 대표성을 지닐 수 있을까.
회의적인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면에서 바라보고 싶다.
다시 쓰는 프로필의 첫 번째, 화정터미널의 생각은 이렇게 마침표를 찍는다.
첫댓글 화정터미널은 지금 다시보면 평범한 상가같은 느낌이 납니다. 그리고 화정역은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변화된것이 특징이라고 볼수 있죠.
어릴적 처음 화정터미널을 알게 되었을 때, 터미널 앞에 가서도 터미널이 어딨는지 몰라 한참을 찾았던 기억이 나네요. 시내버스는 왜 안들어가는지도 의문이었고요.
아주 깊다고 하긴 어렵지만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 곳이 화정이라 관심이 많이 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신도시 같지만 일산이라는 더 큰 신도시의 그늘이 살짝 드리운 느낌이 갈 때마다 들기도 하고요. 그런 그늘이 터미널에도 드리운게 아닌가 여겨집니다. 화정이 현재도 택지가 계속 개발되는 삼송, 원흥지구와도 가까우면 터미널 수요를 끌어모을 여력이 있을 것 같은데 그러기에는 입지라든가 배후수요에서 부족한 면이 많아 보입니다. 화정에 가까운 행신에는 제한적이나마 KTX가 출발하고, 3호선 지하철로 백석과 화정이 동시에 연결되면 버스 수요는 차편이 다양한 백석동 신터미널로 옮겨갈 확률이 크니 진퇴양난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고양터미널 개장 이전에도 노선이 많지 않아 서울역, 강남고속터미널에 의존하는 경향이 꽤 있었는데 고양터미널이 자리를 잡으면서 입지가 더 애매해졌죠. 두 터미널이 가깝기 때문에 더 애매한 면이 있는데, 그래도 덕양구 안에선 꾸준하게 고정수요를 가져가는 모양새입니다.
꼭 대전청사-대전복합 이런 느낌이네요
비슷하지만 대전보다 고양의 두 터미널 간 거리가 더 가깝지요. ^^
터미널 규모는 비슷한 느낌인데 대전청사정류소는 승객이 꽤나 많은거 같더군요. 둔산동 한복판에 있으니
원주구터미널-신터미널 느낌일까요..
하차만이라도 터미널 바깥에서 했으면 좋겠는데 승차홈 사이에 들어가서 하차하고 나오시던데요,
심지어 한번에 후진도 안되더군요
맞습니다. 주차장이 참 좁죠. 다만 하차를 터미널 바깥에서 하면 안 그래도 복잡한 화정역 앞 도로가 더 막힐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한동안 통 버스탈일이 없었다보니 그 사이에 매표소가 다시 부활했네요...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
2001년 3월, 청주-고양(일산) 개통 하던때가 기억납니다. 당시에 세이브존이 있었죠?
주말마다 이용객들이 몰려 증차 민원이 많았었고 청주에서 국립암센터 이용객도 많았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사진 잘 봤습니다..
세이브존은 지금도 잘 살아있습니다~ ㅎㅎ
카페를 최근 글부터 읽다보니
고양터미널보고 화정터미널순으로 봤는데
차이가 상당하네요.
잘보고 갑니다^^
화정터미널은 시골 버스터미널같은 느낌이 조금 있죠 ㅎㅎ
화정터미널은 폐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폐쇄 하지 않으면 곤란한 상황이 생깁니다. 백석동 터미널과 화정터미널 들려서 가는 바람에 운행시간 늘어나고 운행중지하는 곳이 늘었습니다. 광주가는 고속버스 운행횟수도4회정도 줄었습니다. 아주 심각합니다. 적자가 불가피 합니다. 어쟀든 고양종합터미널로 통합을 해야하고 최성 전 시장이 질질끄는 바람에 일산에 있어서가 아니라 덕양구에 생겼어도 마찬가지 입니다. 고양시에 두개의 터미널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운행구간 늘리고 덕양구 주민 이용할수 있게 화정터미널과 고양종합터미널간의 셔틀버스 운행등 접근성을 원활히 할수 있는 방안이 최적 입니다.
충분히 합리적인 의견입니다. 두 터미널이 나뉘어서 노선 중복으로 불편함을 끼치는 부분이 상당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