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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奉柱 시조집 『광화문 촛불』 평설>
시대의 아픔을 촛불로 昇華한 사랑의 美學
野城 이도현(시조시인,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이사)
1. 序言
박봉주 시인이 다섯 번째 시조집 『광화문 촛불』을 발간한다. 축하를 드린다.
박시인은 1995년 「현대시조」에서 ‘청령포에서’로 등단하고 1998년 충청일보에 ‘설악산 낙엽’으로 신춘문예에 당선한다, 지금까지 네 권의 시조집을 간행하였으며 대전문인협회 사무국장을 역임하고 현재 가람문학회 회장을 하고 있다. 2000년에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으로부터 한국의 우수작가로 선정되었으며, 2005년에는 대전문인협회에서 대전의 우수작가로 선정되는 등 많은 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지금도 꾸준히 시조를 갈고 닦아 시조시단은 물론 우리 고장 문단에 활력을 불어넣는 중진으로 활약하고 있다.
또한 대전광역시교육청 중견 공무원으로서 유능한 행정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일찍이 시인이자 유머리스트로서 교육기관, 대학교, 군부대, 기업체, 리더십센터 등에서 시와 한자와 유머로 재능을 기부하는 유명강사로도 알려져 있다.
시조(時調)는 멀리 신라시대 향가에서 연유하여 고려 말에 그 시형이 정착되고 조선시대에 꽃을 피워 오면서 지금까지 전해오는 대한민국 고유의 정형시(定型詩)요, 성문문학(成文文學)이다. 그러기에 시조는 ‘시(詩) 중의 꽃’이라 불릴 만큼 천 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전통문학으로 각광을 받는다. 우리 조상의 슬기와 넋이 고인 정제된 노랫가락이기에 더욱 값지다.
잘 알다시피 2016년도 노벨문학상은 미국의 유명가수 밥 딜런에게 주어졌다. 1901년 노벨문학상이 수상된 이래 가수가 노벨문학상을 받는 건 처음으로 밥 딜런의 음악이 ‘귀를 위한 시(詩)’로 미국 음악에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하였기에 수상했다고 한다. 밥 딜런은 반전 메시지 노래들 곧 저항과 반전운동으로 상징돼 노래하는 음유시인으로서 “가사도 문학이다.” “가사 수준을 문학으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 가락인 시조도 시절가조(時節歌調)의 줄임말이며 가조(歌調)란 “노래의 곡조, 노랫가락”을 의미한다. 이런 우리의 시조는 시대적 기쁨과 아픔을 ‘노래하는 시(詩)’, ‘창(唱)으로 읊는 시(詩)’, ‘귀를 위한 시(詩)’로 노랫가락을 중시하여 오다가 1920년대 육당 최남선, 1930년대 가람 이병기 선생의 시조혁신운동으로 창(唱)에서 멀어지면서 노랫말인 가사는 고도의 문학성을 추구하는 갈래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현대시조가 고도의 문학성을 추구한다 하여도 시조 본래의 특성인 음악성을 전연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번 박봉주 시인이 발간하는 시조집 『광화문 촛불』은 시대의 아픔을 달래고 조국발전의 동력(動力)으로 작용할 민초들의 함성을 촛불로 승화시킨 사랑의 노래로서 마침 우리 문학의 세계화를 부르짖고 있는 때에 즈음하여 우리 시조(時調)가 한국의 가락을 중시하는 대표적인 전통시로 세계화에 가장 적합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라 하겠다. 따라서 『광화문 촛불』은 많은 독자들로부터 각광을 받으리라 본다.
시조집 『광화문 촛불』은 한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고 미래 한국의 발전을 위하여 기도하는 ‘촛불 시조’가 주종을 이루었고 그 외 시인의 고향사랑, 대전사랑, 그리고 우리 고장의 역사와 문화, 예술의 영역까지 망라한 달빛사랑, 다산(茶山)사랑 등 69편의 사랑 노래가 담겨 있다. 이제 그 나라사랑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2. 광화문 촛불(나라사랑)
떨어진 나라의 꼴
곧추 세워 일으키려
두 손으로 잡은 촛불
비바람에 더욱 일렁
이 생명
보듬고서도
꺼질까봐 품은 조국
촛불도 불이라면
거룩하게 타올라라
폭력 대신 봉지 들고
욕설도 주워 담고
백만 개
촛불을 안고
별로 빛난 나라의 격
-<국격(國格) - 광화문 촛불·4>전문
<광화문 촛불·4>이다. 대통령 비선 측근인 한 여인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지난 겨울 나라가 온통 혼란에 빠져 국격(國格)이 무너지고 나라의 체통이 떨어지는 등 온 국민이 분노와 울분, 그리고 좌절과 어둠의 긴 터널에서 빛을 찾아야만 했다.
지난해 말 국회가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결의하여 헌법재판소로 이송, 탄핵심판을 선고하기까지 매 주말마다 광화문에서 켜든 촛불은 백만 명이 넘어섰는데도 비폭력 평화시위로 세계가 놀라고, 함께 한 시민들도 감동을 받았다. 드디어 국제적인 화두로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이 작품에서 촛불은 나라사랑의 촛불이다. 첫수에선 국정농단으로 실추된 나라의 꼴을 곧추세우려 촛불을 들었다는 것이고, 둘째 수에선 폭력 대신 봉지를 들고 쓰레기를 주워 담으면서 질서 있는 행진을 전개함으로써 떨어진 국격을 다시 올려 세웠다는 역설적인 내용으로 시위문화가 폭력을 배제하고 민주적인 질서 있는 평화행진으로 전개하고 있음을 국내외에 과시한 행동이 되었다.
이로 인해 한국은 성숙한 민주시민의 나라로 재조명 받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촛불이
흔들리는 건
흔들린 기본 때문
촛농이
떨어지는 건
떨어진 국격 때문
가슴이
뜨거워지는 건
뜨거운 사랑 때문
-<뜨거운 사랑 - 광화문 촛불·6>전문
작품 <뜨거운 사랑 - 광화문 촛불·6>에선 촛불을 켜든 이유를 촛불의 상황에 따라 각 장별로 말하고 있다. 나라의 기본이 흔들리기에 촛불이 흔들리고, 나라의 국격(체통)이 떨어지기에 촛농이 떨어지고, 나라를 걱정하는 사랑 때문에 촛불이 뜨거워진다.(가슴이 뜨거워진다)라고 하여 한 나라의 기본, 국격, 사랑이라는 관념을 흔들리는 촛불, 떨어지는 촛농, 뜨거워지는 가슴으로 형상화(形象化) 하고 있다. 참으로 놀라운 발상이며 신선한 은유다. 또한 ‘때문’이란 단어를 각 장의 끝에 반복 병치시킴으로 음악적인 효과를 고양시키고 있다.
이 짧은 단수 안에 광화문 촛불의 의미와 불을 켜든 까닭과 이미지가 모두 함의(含意)되고 있지 않은가? 여기서 시조의 정제된 가락과 압축미를 맛보게 된다.
촛불 한 개 밝혀지면
한 가정의
빛이 되고
촛불 한 개 모아지면
한 동네의
달이 되고
백만 개 촛불의 뜻은
한 국가의
길이 된다.
-<빛·달·길 - 광화문 촛불·7>전문
작품<빛·달·길 - 광화문 촛불·7>에서 광화문 촛불의 의미와 이미지가 한층 심화되고, 승화된다. 광화문 촛불을 빛과, 달과, 길이라는 다른 사물로 환치(換置)하면서 가정, 동네, 국가의 영역으로 그 의미를 확장한다.
각 장마다 ‘~되고’ 라는 어미를 반복하여 리듬을 살리고 빛, 달, 길이라는 사물로 그 의미를 점층 시켜 그것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광화문 촛불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빚어내고 있다.
이 작품의 특징은 시조의 리듬을 살리면서 장(章)마다 다른 사물을 동원하여 의미를 점층 시키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독자를 다의적으로 재해석이 가능하도록 끌어 들이고 있다. 어디 시조가 막힌 데가 한군데나 있는가? 활달하게 경(境)을 열면서 조국의 미래를 밝은 전망으로 열고 있는 가작(佳作)이다.
촛불의 온도를 가볍게 보지마라
권력도
명예도
한 순간에 태워버리는
작아도
천도가 넘는
잿더미의 씨앗이다.
손가락으로 튕겨도
넘어지지 않으니
활로써 튕기는
탄핵으로 넘어갔다
심장을
겨누는 촛불
어디로 향하는가.
-<指彈 너머 - 광화문 촛불·14>전문
광화문 촛불은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고자 하는 무언의 질서 있는 시민의 항쟁이요, 함성이었다.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나라사랑의 표징이었다.
“작아도/천도가 넘는/잿더미의 씨앗이다” “손가락으로 튕겨도/넘어지지 않으니/활로써 튕기는/ 탄핵으로 넘어갔다.”
이러한 촛불의 위력은 마침내 대통령을 탄핵함에 동력으로 작용하고야 말았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요, 부끄러운 일이다. 다시는 이러한 전철(前轍)을 밟아서는 안 될 역사의 기록으로 박봉주 시인은 광화문 촛불을 예의, 주시하며 문학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3. 고향사랑. 대전사랑
설악산 주전골은
시화전(詩畫展)이 한창이다.
시 한 줄
끊어진 곳
그림 한 장
붉어지고
오늘은
선녀 내려와
시낭송도 한다네.
-<설악산 단풍·2 - 오색 주전골에서>전문
시인의 고향, 설악산(雪嶽山) 단풍 노래다. 오색 주전골은 천불동계곡, 백담사계곡과 함께 설악산 단풍 3대 코스라 할 만큼 절경인가 보다.
오색 주전골의 단풍 절경을 시화전으로 환치하고 선녀가 내려와 시낭송을 한다고 의인화(擬人化)하고 있다. 놀랄만한 상상이요, 멋진 표현이다. 설악산 단풍을 시각과 청각, 공감각으로 반죽하고 동영상으로 묘사하여 작품을 살아 있는 분위기로 연출하고 있다. 실감나는 장면 구성이다.
현대시조가 자유시와 경쟁하면서 살아남기 위해선 정형시란 형식미를 지켜가면서 현대감각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시조라는 정해진 그릇 안에 시상(詩想)을 자유롭게 늘이고, 뻗고, 풀어주고, 댕기는 기법을 연마해야 한다. 언단의장(言短意長) 곧 말은 짧고 생각은 깊은 시를 써야 한다. 박시인은 이러한 과정을 이미 소화하고 자기 시전(詩田)을 자기만의 개성으로 경작하는 중견시인으로 자리매김한다. 이러한 기법은 다음 작품에서 더욱 빛나고 있다.
얼마나 붓질해야
골이 패인 벼루 되나
겉모습 깎여나가
내면으로 흐르더니
단숨에
눈동자 찍자
용(龍) 한 마리
솟구치네
-<일획(一劃)·2 - 설악산 비룡폭포에서>전문
제목부터 걸작이다. 폭포를 일획(一劃)이라 하다니, 서예(書藝)에도 도가 튼 모양새다. 사물을 바라보고 그 특성을 찾아 끄집어내는 눈, 거기에 알맞은 언어를 찾고 주무르고 아우르는 구성의 솜씨 또한 보통을 넘어선다.
설악산 비룡폭포를 골이 패인 벼루로 보더니 단숨에 눈동자 찍자 용 한 마리 솟구친다 하였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의 경을 열고 있음인가? 시조를 정형시라 하여 형식에 매이거나 자수에 억지로 맞추려 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초장, 중장, 종장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으면서 전개한 솜씨가 명품이다.
붓 일획을 찍어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작품을 완성하는 이른바 ‘선금혁자불시보(善琴奕者不視譜)’라 거문고나 바둑에 뛰어난 장인은 악보나 기보에 매달리지 않는다. 뛰어난 연주는 악보 너머에 있고 진정한 바둑은 기보를 떠나서 있음이니, 한 번 찍어 산이 되고, 두 번 찍어 강이 되는 경지를 일컬음이다.
때문에 시조의 종착역은 바로 시라는 예술로 승화된다. 이 작품으로 하여 박봉주는 시조를 시조로 쓰지 않고 예술작품으로 창조하는 장인(匠人)의 경지에 오르고 있다 하여도 지나친 표현은 아니리라. 시조다운 진면목을 이 작품에서 본다.
(가) 한 발 한 발
오른 계단
조여 오는
극한 세계
아픔 없이 누구든
하늘문을 두드리랴
숨 한 번
고르고 서야
눈에 드는 초서체(草書體)
-<일획(一劃)·3 - 설악산 토왕성폭포에서>전문
(나) 저 정도 의관이면
장군의 위용인데
두려움 뒤로하고
앞장서서
뛰내리니
병서(兵書)를
읽지 않아도
뒤따르는 병사들
-<폭포·1 - 춘천의 구곡폭포에서>전문
시조에선 대체로 종장에 주제를 감춘다. 의미를 반전(反轉)시키거나 비약(飛躍)시키기 때문이다. 때문에 종장 처리가 그만큼 중요하다. 위의 (가)와 (나)는 일획(一劃) 3편과 함께 ‘폭포’를 소재로 쓴 시조이다. (가) 종장에선 폭포를 ‘초서체’라 하였고, (나) 종장에선 ‘뒤따르는 병사들’이라 하였다. 신선한 은유가 돋보인다. 또한 ‘초서체’ ‘병사들’이란 명사로 작품을 마감하여 여운을 남기는 기법은 독자들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다.
무엇을 마셔도 타는 갈증 여전한데
한 톨의 쌀이라도 과욕은 멀리 하라
먼 세월 묻은 전설이 식장산의 메아리로
오늘은 무슨 생각 텅 빈산을 오르는가
술 한 잔 같은 바람 댓잎을 흔드는데
비워도 너무나 많이 지고 가는 나를 본다.
-<절제의 산, 식장산(食藏山)>전문
대전사랑 작품으로 식장산을 노래한다. 식장산(食藏山)은 대전광역시 동구 대성동에 있는 산으로 삼국시대 어떤 장군이 군량미를 숨겼다는 전설과 다른 하나는 먹을 것이 쏟아지는 밥그릇이 묻혀 있다하여 식기산(食器山)→식정산(食鼎山)→식장산(食藏山)으로 부른다는 전설을 갖고 있는 산이다.
이 작품은 연시조(連時調)로 구성하고 있다. 첫수에서는 한 톨의 쌀이라도 아껴서 절제하고 과욕은 멀리하라 하였고, 둘째 수에서는 절제의 빈산을 오르면서도 정작 화자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너무나 많이 지고 가는 자신을 반성하고 있다.
오늘날 시조창작의 비중은 단수(單首)보다는 연시조(連詩調)를 많이 쓰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현대라는 삶의 구조가 복잡하기 때문에 단수로는 시상을 여유 있게 처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 연작(連作)의 완성은 단수의 3장 구조를 확대할 필연성이 있을 때 가능하다. 이를 남용하면 작품이 늘어지고 압축미가 사라진다.
도덕봉
금수봉
높은 이름 안 내세우고
수통골 계곡 이름
먼저 부르는 이유는
낮추고
조화 이루며
소통하기 위해서지
-<소통의 산, 수통골·1>전문
작품 <수통(水通골·1>은 대전광역시 유성구 계산동에 있는 명산이다.
물이 항상 흘러 소통하는 골짜기라는 뜻을 갖고 있는 산이다. 도덕봉, 금수봉이라는 높고도 멋진 봉우리가 있는 데도 수통골이라 이름붙인 이유는 자기를 낮추고 조화를 이루면서 소통하기 위해서 라고 박시인은 창조적인 해석으로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다. 기발한 발상이다.
수통(水通)은 소통(疏通)의 의미를 내포한다. 물이 흘러야 소통이 된다. 소통이 안 될 경우 막혀서 답답하다.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則不痛 不通則痛)이라 했다.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는 뜻이다. 이 세상 생명체는 통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다. 이 책의 연작 시조인 ‘광화문 촛불’도 결국은 불통(不通)에서 온 시대적 아픔(痛)을 온 몸으로 느끼고 쓴 박시인의 나라사랑 고민이다.
<수통골·2> 마지막 首에서 “사람은 산 오르고 산은 사람 오르는 산// 도전의 산이 아니라 동행하는 산이기에// 소통이 어려울 때는 수통골이 보약이다.” 라고 노래하듯 답답하고 소통이 안 될 경우 이젠 수통골을 산행하자.
4. 달빛사랑. 다산사랑
가으내 익어가는 오십 줄의 끝자락에
생각에 생각 더 해 금강물은 반짝이고
발길은 갈밭에 쌓여 그리움만 커집니다.
아직은 서투른지 썼다 썼다 또 지우고
내 사랑 그리워 손 내밀고 쓰던 편지
달빛도 궁금하였나 꽃등 걸고 읽습니다.
-<달빛사랑 - 서천 달빛문화갈대축제>전문
우리 고장 충남 서천 ‘달빛문화갈대축제’장에서 갈대밭을 거닐면서 오십 줄의 끝자락 연치에 오른 시인이 과거를 회상한다. 만추의 달빛을 감상하면서 회억에 젖고 있는 시인의 정서는 금시 그리움으로 물든다.
금강물은 유난히 반짝이고 갈대는 머리칼을 흔들며 사각 사각 소리 지른다. 옛사랑이 그리워 쓴 편지, 달빛 꽃등을 걸고 읽는 순간이다.
갈대밭을 거닐면서 달빛에 젖는 정경은 파스칼이 아니어도 ‘생각하는 갈대’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비워져라 맑아져라
투명한 하늘같이
세우고 펼쳐 오신
꽃 한 송이 그 미소
어둠에
꽃등을 달자
공(空)으로 떠오른 달.
-<연꽃·2>전문
<연꽃·2> 전문이다. 충남 부여 궁남지에선 매년 여름 ‘연꽃축제’를 벌인다.
‘비워져라 맑아져라’라는 불법(佛法)을 ‘꽃 한 송이 그 미소’로 떠 올리고 있다. 석가 세존이 제자들을 모아놓고 연꽃 한 송이를 들고 불법을 설교하였다. 그때 다른 제자들은 알아듣지를 못하였으나 가섭(迦葉) 제자만은 그 뜻을 깨닫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것이 ‘염화시중(拈花示衆)의 미소’다. 곧 어떤 경전이나 언어에 의하지 않고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전한다는 뜻이니 여기서 시인은 가섭(迦葉)의 경지에 들었음인가? 작품의 종장에서 ‘어둠에 꽃등을 달자’고 부르짖는다. 불법은 각자(覺者)요, 번뇌를 버리고 안정을 찾는 이 곧 깨달음이라 하였다.
‘공(空)으로 떠오른 달’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니 이 세상 만물은 공허(空虛)일 뿐 그 달빛을 꺾어서 무엇 하리. 연꽃처럼 자기를 비우고 태우고자 하는 불심(佛心)을 노래한다. 깊은 불심을 비유한 달빛사랑, 연꽃사랑을 담은 가락이 잘 다듬어진 시조미학으로 빛나고 있다.
하늘을 믿는 것도 천형의 죄라서
남도의 붉은 땅 끝자락에 닿으니
싸늘한 유배의 바람 해도 뚝뚝 지는 밤
좌절과 슬픔의 땅 한기 드는 시절에
사람이 그리운가 다산초당 나서니
백련사 차와 동백향 바장이던 사색의 길
붓질도 천 번이면 강물이 흐른다지
복사뼈 세 번이나 구멍이 뚫리도록
천주의 멍에를 지고 실사구시 꿈꿨네
이 시대 매 들자는 수령인가, 백성인가
다향(茶香)에 익힌 생각 목민의 꿈 일으켜
궁벽한 다산초당에서 새 시대를 그렸네.
-<다산초당에서>전문
박시인은 충남대 대학원에서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연구하여 논문을 쓰고, KBS-1TV에 출연한 바 있는 다산학(茶山學) 연구자이다. 어느 날 박시인은 우리나라 남도 끝자락에 위치한 전남 강진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유배지인 다산초당(茶山草堂)을 둘러본다. 다산초당은 다산 선생이 40세 때인 1801년(순조 1년) 천주교 탄압인 신유사옥(辛酉邪獄)사건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유배되어 18년을 머물면서 실학(實學)을 집대성한 ‘실학사상의 산실’로 이곳에서 제자를 가르치고 『목민심서(牧民心書)』 등 500여 권의 저서를 집필한 다산 실학의 성지이다.
다산초당 근교엔 만덕산으로 둘러싸인 백련사(白蓮寺)가 있다. 차와 동백꽃으로 이름난 이 사찰 길을 가끔은 대학자 다산은 혼자 거닐면서 유배생활에서 오는 좌절과 슬픔을 달래면서 깊은 사색에 잠기기도 하였으리라. 때로는 붓질도 천 번, 복사뼈 세 번이나 구멍이 뚫리도록(과골삼천·踝骨三穿) 학문을 탐구 연찬하여 실사구시를 일군 역사의 증인으로 불후의 대표작 『목민심서(牧民心書)』를 집필한다. 공자가 『주역』을 읽다가 가죽 끈이 세 번 끊어졌다는 위편삼절(韋編三絶)이 생각나는 시상(詩想)이다.
이 작품은 다산의 유배생활 18년간의 방대한 평전을 4수의 연시조로 압축한 작품으로 역사의 현장, 인간문화재를 재조명하는 중요한 기회를 독자들께 제공하고 있다.
주막의 한 노파가
무슨 꿈이 있으련만
나라의 죄인이라
모두들 피하는데
강진만
따뜻한 마음
보듬고 돌았네.
노파의 마음속에
천주님이 계셨을까
서로가 죄인 되어
가슴조인 저승의 꿈
한두 평
뒷방을 주고
하늘을 보았으리.
-<강진 사의재(四宜齋)에서>전문
작품 <강진 사의재에서> 전문이다.
사의재는 강진에 있는 주막 이름으로 당시 나라의 죄인을 누가 거들 떠 보았으랴? 모두들 피하였으나 주막집 노파의 도움으로 4년간 이 곳에 머물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제자를 가르치며 『경세유표』등을 저술했던 이곳 또한 다산 실학의 성지 중 하나이다.
다산은 이곳을 ①맑은 생각 ②엄숙한 용모 ③과묵한 말씨 ④신중한 행동을 해야 할 방으로 사의재(四宜齋)라 했다고 전해진다. 노파는 어진 마음으로 다산에게 뒷방을 내주고 천주님을 섬기면서 죄인 정약용을 한국의 다산 정약용으로 키운 고마운 분이라 믿어진다.
5. 結語
시조시인이자 유머리스트인 박봉주 시인은 웃음기가 많은 사랑시인이다.
사랑은 만유(萬有)의 근본이며 인류가 추구하는 최고의 덕목(德目)이다. 사랑처럼 숭고하고 거룩하며 존엄한 것 또 있을까? 그러기에 성경에서도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하지 않았는가?
이 시조집 『광화문 촛불』은 시대의 아픔을 치유코자 하는 진정 나라사랑의 노래요, 시인이 태어난 설악(雪嶽), 고향사랑이며, 거주하고 있는 대전사랑 그리고 우리 고장 역사와 문화, 예술의 영역까지 아우르는 달빛사랑, 또한 실학의 대가 다산(茶山)사랑의 노래였다. 이 노래는 독자들로부터 틀림없이 각광을 받으리라.
이러한 노래들을 박시인은 시조라는 정형의 그릇에 담아 법고창신(法古創新), 곧 전통을 따르되 새로워야 한다는 정신으로 자기 특유의 개성을 발휘하여 시조를 시조로 쓰지 않고 예술작품으로 잘 구워내고 있었다. 요즈음 자유시가 시 고유의 특성을 잃고 산문성, 난해성으로 치달아, 독자가 이해 못할 정도로 방만해지고 있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때를 같이하여 우리 시조가 현대시의 미래라는 희망적인 긍지를 갖고 창작에 임하여야 할 것이다. 정형시라는 시조는 전통 형식을 살리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감각을 접목하여 ‘시(詩) 중의 꽃’으로 한 굽 올려놓아야 할 시대적 사명을 박봉주 시인이 그 중심에 서서 견인차(牽引車)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가장 세계적인 것은 가장 민족적인 것이라 했다.’ 우리 문화, 우리 문학, 우리 시조를 세계화해야 할 긴박한 시점에서 국민 모두는 시조를 더욱 사랑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며, 시조시인들은 치열한 정신으로 시조를 더욱 갈고 닦아 명품(名品)을 생산함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모쪼록 180년 전 오늘, 다산 정약용이 고민했듯이 다산 사상이 깊이 밴 공직자 박봉주 시인의 나라사랑 고민 『광화문 촛불』이 시대의 아픔을 위로하고, 미래를 인도하는 등대이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2017년 4월
초록마을 㝢居에서
첫댓글 잘 보았어요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