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행록(甲午行錄)갑오행록(甲午行錄)선조 27년(1594)에 중국 군대의 파병과 광해군(光海君)의 세자 책봉을 주청(奏請)하러 중국에 갔을 때의 시를 모은 것이다. 이때 주청사(奏請使)는 윤근수(尹根壽), 주청 부사는 간이(簡易) 최립(崔岦), 서장관(書狀官)은 신흠(申欽)이었다.
길을 가다가 광녕(廣寧)의 동 총병(董摠兵) 일원(一元) 이 고평(高平)에서 대첩(大捷)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듣다.
저물녘 변방 경보(警報)에 조시(朝市)가 소란하였는데 / 邊遽朝喧日色薄 찬란한 별빛을 밤에 이고 대첩의 소식이 전해졌네 / 捷書夜戴繁星過 흉노가 방추의 요새를 범한 게 몇 번이었던가 / 匈奴屢犯防秋塞 명장이 지금 막 예락하의 기세를 꺾어 놓았도다 / 名將新摧曳落河 용무늬 털옷을 버렸으니 선우(單于)의 도주가 확실하고 / 蟒龍裘棄覺王走 준마의 안장이 비었으니 수급(首級)이 많은 걸 또 알겠네 / 駿馬鞍空知級多 오랑캐 운세는 지금부터 한 해를 넘기지 못할 텐데 / 虜運從今無竟歲 왜구가 설치는 남쪽 바다는 언제나 물결이 잠잠할꼬 / 南溟安得尙鯨波
[주D-001]방추(防秋) : 중국의 북방 유목 민족들이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가을철에 자주 남침(南侵)을 하였으므로, 중국의 변방에서 특별 경계를 펼치고 방어하던 것을 말한다. [주D-002]예락하(曳落河) : 돌궐(突厥)의 언어인 elaha의 음역(音譯)으로 건장한 사나이라는 뜻이다.
아 〈오호가〉를 부르나니 / 嗚呼歌 남주의 소식 지금 어떠한고 / 南州消息今如何 섬 오랑캐가 제멋대로 남의 땅을 침입하매 / 島夷跌宕入不地 농부는 쟁기 버리고 아낙은 북을 던졌다네 / 農夫釋耒女投梭 진주(晉州)는 예로부터 절제사(節制使)의 진영 / 晉陽從古是巨鎭 인물도 용맹스러운 예락하의 후예들 / 人物豪鷙曳落河 합천 고을이 지척이요 흥안의 접경으로 / 陜郡咫尺接興安 천부로 일컬어지며 산이 높고 험한 곳 / 號稱天府山嵯峨 수백 년 동안 자연히 태평을 누리면서 / 數百年來自大平 옹기종기 모여 살며 일절 재앙이 없었어라 / 閭閻撲地無札瘥
조무래기 왜적이 하루아침에 일어나 / 蕞爾妖寇一朝起 재빠르기가 바람처럼 달리는 낙타 같았는데 / 迅閦卽同風脚駝 공공연히 대낮에 노략질을 자행하매 / 公然白日恣虜掠 도망치느라 바빴으니 누가 대적하였으랴 / 竄匿不暇誰敢訶 합포의 김공은 담이 말만큼 큰 데다 / 合浦金公膽如斗 자기 한 몸을 초개같이 여기는 분 / 視此一身眞么麽 격분한 호통 소리 천지를 울리는 가운데 / 奮髥大呼動天地 천 길 언덕으로 쏜살같이 돌격하였는데 / 衝突直注千丈坡 말이 넘어져 못 일어나 부상을 입었으나 / 馬跪不起仍被傷 손에 창을 비껴 쥐고 왜적을 매도하였어라 / 口猶罵賊手橫戈 여러 장수가 옆에서 보고 얼굴이 검게 변한 채 / 諸將傍觀色發墨 사졸을 퇴각시키고 모두 줄행랑침으로써 / 麾却士卒皆犇波 마침내 백성의 피로 들판을 물들이고 / 遂令齊民血塗野 원기가 뻗쳐 하늘에 이르게 하였나니 / 冤氣直上干大和 내가 듣고는 너무도 슬프고 기막혀서 / 鄙夫聞之慘不樂 두 줄기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오 / 忽有涕淚雙滂沱 아버지뻘 되시는 남파 선생은 / 南坡先生丈人行 백발이 되도록 거안사위(居安思危)하신 분 / 憂明危理鬢皤皤 어떻게 가서 뵙고 이 심정을 아뢸까 / 何當往謁說此懷 그래서 우선 〈오호가〉 한 곡조를 부칩니다 / 且寄一曲嗚呼歌
나의 증조부 찬성공(贊成公)의 휘(諱)는 상의(尙毅), 호는 소릉(少陵)으로, 겸양하기를 힘쓰고 문인(文人)으로서 뽐내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았다. 연경(燕京)에 사신으로 가게 되어서는 지봉(芝峯) 이수광(李睟光)이 부사(副使)가 되었는데, 도중에서 수창(醉唱)하고 나서야 공(公)의 사조(詞藻)가 본디 문필에 종사하는 세상 사람들은 비교가 되지 않음을 알았다. 지봉이 돌아와서 말하기를 “소릉의 문장은 당세에 견줄 만한 짝이 없다.” 하였으니, 아마 매우 탄복한 것이리라. 김 장군 응하(金將軍應河)가 죽었을 때에 공이 다음과 같이 시를 지었다.
하늘이 국사를 동해에 내어 / 天敎國士生東海 인륜을 붙들어 세워 만방에 보였네 / 要把彝倫揭萬邦 스물네 개 군 가운데 한 사람이 있고 / 廿四郡中還有一 이천 년 이래 다시 짝할 이가 없도다 / 二千年後更無雙 활 위엄 변새 누르니 모두가 사그라지고 / 弧威壓塞旄頭蝕 칼 기운 하늘 찌르니 오랑캐 간담 써늘하리 / 劍氣衝霄虜膽 하란이 형세를 도와주었다면 / 若使賀蘭能助勢 알괘라 예락하가 절로 와서 항복할 것을 / 應知曳落自來降 양흥은 힘이 다하니 온 몸이 화살촉인데 / 楊興力盡身盈鏃 뇌만춘은 계책 궁하니 배안에는 피가 가득 / 雷萬圖窮血滿腔 장군의 전 후서를 쓰고자 하니 / 欲作將軍傳後敍어느 노련한 솜씨가 훌륭하게 찬미하랴 / 誰家老筆大如杠
서경(西坰) 유근(柳根)이 듣고 평하기를 “문학에 노련하여 고색(古色)이 창연하며 기력과 신골(神骨)이 있다.” 하였다. 공은 평생에 문인으로 이름 얻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고, 후덕(厚德)하여 복록이 당세에 으뜸이었다. 7남 4녀에 잠홀(簪笏 관리를 말함)이 집안에 가득하였다. 한번은 옥등(玉燈)을 바친 자가 있어, 그 등을 중당(中堂)에 달아놓고 자손이 공을 모시고 벌여 앉아 있었는데, 시비(侍婢)가 잘못 부딪쳐서 떨어뜨려 버리니 온 좌석이 조용하여졌다. 이윽고 한 사람이 시비에게 “어째서 살펴보지 않았느냐?” 하니, 공이 또 조용히 말하기를 “네가 쓸데없는 말을 무엇하러 하느냐?” 하였다. 그래서 다른 등을 바꾸어 달고 여전히 즐겁게 놀았다 한다. 그것이 집안의 미담(美談)으로 전해왔다.
[주C-001]소릉후덕(少陵厚德) : 소릉(少陵)의 후한 덕. [주D-001]김 장군 응하(金將軍應河) : 조선조 광해군 때의 무신. 1580(선조 13)~1619(광해군 11). 자는 경의(景義), 본관은 안동(安東). 1618년(광해군 10)에 건주위(建州衛)를 치기 위해 명 나라에서 원병을 요청하자, 선천군수(宣川郡守)로서 조방장(助防將)이 되어 부원수 김경서(金景瑞)의 휘하에 들어갔다. 이듬해 명장(明將) 유정(劉綎)이 부차(富車)에서 패전하자, 조선군은 전세가 불리하여져서, 김응하는 3천의 군사로 고군 분투 끝에 전사하였다. 시호는 충무(忠武)이고, 1620년에 명 나라 신종(神宗)으로부터 요동백(遼東伯)으로 추봉(追封)되었다. [주D-002]국사(國士) : 비상한 인재를 말한다. 《史記 淮陰侯傳》에 “소하(蕭何)가 ‘여러 장수는 쉬 얻을 수 있으나, 한신(韓信) 같은 이는 국사(國士)라 짝할 이가 없다.’ 했다.” 하였다. 여기서는 김응하를 명장 한신(韓信)에 비한 것이다. [주D-003]스물네 개 군 : 김응하의 출신도인 강원도이다. 2천 년 이래 운운한 것은, 한(漢)의 한 신(韓信)과 김응하 당시까지 약 2천 년이 되므로, 한신 이후 김응하의 장재(將才)가 으뜸임을 뜻한다. [주D-004]모두(旄頭) : 성수(星宿)의 이름. 28수(宿)의 하나인 묘성(昴星)으로 호성(胡星)이다. 이 별이 환하게 빛나면 홍수가 지고 호병(胡兵)이 전쟁을 일으킨다 한다. 《史記 天官書》 여기서는 청국의 침입을 모두(旄頭)에 비한 것이다. [주D-005]알괘라 …… 항복할 것을 : 이 말은 당 숙종(唐肅宗) 때의 하남절도사(河南節度使)였던 하란진명(賀蘭進明)이, 윤자기(尹子琦)가 수양(睢陽)을 포위하자, 장순(張巡)이 남제운(南霽雲)을 보내어 급히 구원해 주기를 요구했는데, 하란진명은 장순의 명성을 시기하여 구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수양성(睢陽城)이 함락되고 장순이 전사하였다는 말이다. 《新唐書 卷195 張巡傳》 예락하(曳落河)는 회골(回鶻)말로 건아(健兒)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청국을 지칭한다. 김응하가 분투할 때에 원병이 와 주었더라면 오랑캐 군사들이 저절로 와서 항복했을 것이라는 뜻이다
왕은 말하노라. 문과 무를 병용하는 것이 국운을 장구하게 하는 계책이다. 삼대의 융성하던 시절은 비할 바가 없거니와, 진(秦), 한(漢) 이래로는 비록 영명하고 의로운 군주라 하더라도 문무를 병용하는 계책을 시행한 이가 희소하니, 그 까닭은 무엇이냐? 6국(國)을 병탄한 진시황(秦始皇)은 선비를 매장하고 서책을 불사르는 행동을 하여 역년이 겨우 이세(二世)에서 끝났으며, 위엄이 사해를 덮은 한 고조(漢高祖)는 “어찌 시서(詩書)를 일삼으리오.”라는 말을 하여 한 나라의 도가 삼대에 이르지 못하였다. 한 무제(漢武帝)는 유술(儒術)에 연연하기만 한 채 궁병 독무(窮兵黷武)하기를 그치지 않다가 자칫 패망한 진(秦) 나라의 전철을 밟을 뻔하였으며, 당 태종(唐太宗)은 문황(文皇)이란 호칭이 있었으나 끊임없이 정벌을 감행하다가 한쪽 눈을 상실하는 화를 당하였으니, 이처럼 무를 숭상하던 군주는 문을 숭상하는 정치를 겸할 수 없는 것인가? 몸소 현묵(玄默)을 닦은 한 문제(漢文帝)는 매번 흉노가 한 나라를 가벼이 여기는 것을 우려하여 해마다 황금과 비단을 실어 보냈고, 앉아서 노자(老子)와 장자(莊子)를 강송하던 양 무제(梁武帝)는 후경(候景)의 핍박을 어찌하지 못하여 옥축(玉軸)에 먼지를 날렸으며, 동진(東晉)과 서진(西晉)은 청담(淸談)으로 묘모(廟謨)를 삼으면서 변방의 수비를 허술히 하여 마침내 신주(神州)가 함몰되게 하였고, 남송(南宋)과 북송(北宋)은 도학으로 문명을 창도하였으나 무략(武略)을 떨치지 못하여 마침내 향해(香孩)의 사직을 상실하고 말았으니, 이처럼 문을 숭상하던 시대는 무를 진작하는 계책을 겸할 수 없단 말이냐? 만약 인재를 가지고 말한다면, 주발(周勃)과 관영(灌嬰)은 문한이 없었고 수하(隨何)와 육가(陸賈)는 무략이 없었으며, 왕안석(王安石)은 장수의 지략에 익숙하지 못하였고, 마무(馬武)는 명검(鳴劒)만 일삼았다. 장자방(張子房)은 선비의 기상이 있었으나 싸움터에서 훌륭한 공훈을 수립하였고, 이위공(李衛公)은 장수의 재간이 있었으나 학사의 대열에는 선발되지 못하였다. 방차율(房次律)의 예락하(曳落河)의 설은 단지 문인의 우활한 이야기이며, 태위(太尉) 당진(黨進)의 둔박한 대답은 가소로운 무인의 추솔한 기개이니, 예로부터 지금까지 문무의 재주를 겸전하기가 어쩌면 이렇게도 어려우냐? 두원개(杜元凱 원개는 두예(杜預)의 자(字))는 무제를 도와 강남을 토평하였으나 《춘추(春秋)》에 대해 집착을 보였으니 무인으로서 문한에 능하였다고 할 수 있으며, 조 한왕(趙韓王)은 태조를 보필하여 천하를 평정하였으나 《논어(論語)》에 종사하였으니 문인으로서 무에 능하였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대저 문한과 무략의 도란 서로서로 이용되어 마치 거허(駏驉)와 공공(蛩蛩)이 단독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것과 같다. 예로부터 현명한 군주와 능력 있는 신하가 시대마다 결핍되지는 않았지만 결코 문무를 겸하여 아울러 사용한 이는 없으니, 어쩌면 문한과 무략의 도란 마치 물과 불처럼 상반되어 서로 조제하고 협동하여 사용될 수는 없어서 그러한 것이냐? 아니면 인재가 옛날 같지 않고 기량이 국한되어 이것에 능하면 저것에 능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냐? 우리 동방은 작은 중국이라고 칭하니, 의관의 찬란함에 있어서는 “성대하도다, 그 문화여. 나는 주(周) 나라를 따르겠다.”고 한 공자의 말에 부합된다. 그러나 남북의 융적(戎狄)은 봉홧불로 서로 경각시키니, 군병을 단련하며 무략을 강론하여 불의의 사태에 대비함을 어찌 조금이나마 소홀히 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문인은 안일만 추구하고 무인은 즐기기만 하여 게으름만 피우고 잔약하다. 새 울음과 벌레 소리가 생용(笙鏞)의 다스림에 아무 보탬 될 게 없으며, 바람 소리와 학의 울음에도 겁을 집어먹기는 전쟁터나 다름없다. 재상은 장부나 문서로써 작록의 자료로 삼고 장수는 훈련을 하잘것없는 것으로 여기니, 문한이 땅에 떨어지고 도가 상실되었다는 탄식을 한 지가 하루 이틀이 아니다. 만약에 변방의 독수리가 다시 오고 바다의 고래가 또 움직여 사납게 날뛰기를, 불행히 임진란 및 병자란과 같이한다면, 비록 지혜로운 자가 있다 하더라도 어떠한 계책을 세워야 할지 모를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어찌 한심하지 않겠느냐. 어떻게 하면 국가를 다스리는 계책에 있어서는 문무를 병용하는 실상을 다하고 인재를 등용하는 방안에 있어서는 문무를 겸전한 재목을 얻어서, 문무의 도에 부합하고 장구한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겠느냐? 아, 그대들은 격식에 구애하지 말고 모두 편(篇)에 기록하라. 내가 다시 열람하리라.
[주D-001]향해(香孩) : 송(宋) 나라 태조를 지칭하는 말로, 송 태조의 출생시 병영 중에 3일 동안 기이한 향기가 넘쳤으므로 낙중(洛中)의 사람들이 응천선원(應天禪院)을 향해 아영(香孩兒營)이라고 불렀다. 《孔氏談苑 香孩兒營》 [주D-002]마무(馬武) : 자는 자장(子張)이고 남양(南陽) 사람인데, 술을 좋아하고 성품이 활달하였고 과감한 말을 잘하여 옳지 못한 것을 보면 면박을 잘하였다. 이오(伊吾)의 북쪽에서 검을 울리기도[鳴劒] 하였다. 왕망(王莽)의 말년에 도적이 되었다가 후에 광무(光武)를 도와 공을 세우고 양허후(楊虛侯)에 봉해졌다. 《後漢書 卷22》 [주D-003]방차율(房次律)의 예락하(曳落河)의 설 : 방차율은 당 나라 사람으로, 이름이 관(琯)이고 자가 차율이다. ‘예락하’란 회흘어(回紇語)로 건아(健兒)라는 말이다. 차율은 빈객을 좋아하고 담론을 잘하였으나 용병술은 그의 장기가 아니었다. 출정에 앞서 그는 “반역의 무리 중에 ‘예락하’가 비록 많다고 하나, 어찌 우리 유질(劉秩) 등을 당할 수 있겠느냐.”라고 하였다. 《舊唐書 卷111》 [주D-004]태위(太尉) …… 대답 : 당진은 송 나라 사람으로, 송 태조를 도와 공을 세웠다. 군중에서 나무판을 홀(笏)처럼 사용하여 예하 군병의 수를 기록하여 가지고 있었는데, 태조가 담당하고 있는 군병이 얼마인가를 묻자 그는 글을 모르므로 그 나무판을 들어 보이며 모두 여기에 있다고 하니, 태조는 그의 질박하고 솔직함을 좋아하였다. 《宋史 卷260》
첫댓글좋은 내용입니다. 문제는 "예락하"란 말의 근원에 대해 여러가지가 있다는 것이지요. 몽골어이냐? 회흘(위그루)어이냐? 또는 만족어이냐? 또는 투르크어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에 따라 그 근원지가 전혀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전번역원의 주석을 보아도 통일되지 않은 이곳 저곳의 언어라고 말하고 있는데, 우선은 그 말의 어원이 누구였는가가 중요할 것 같군요. 만족이란 서융(유럽)을 통털어 말하는 것이며, 몽골과 회흘(위그루)과는 또 다른 것이며, 투르크족이면 또 다르기 때문입니다. 좋은 것을 소개해 주셔 감사드립니다. 더운 여름,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위의 제 주장은...예락하"란 용맹(勇猛)을 뜻하는 용어가...여러민족과 문화권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용어였으니... 예락하가 어느 특정민족의 용어나 제도가 아니요...어느 특정지역을 시원으로하는 각개 다민족들의 공통언어격였단 겁니다. 또한 그들의 주 활동지도...중원(천산주변)의 상황에 따라선...그 중간이 단절돼어 동서가 전혀 다른 인종구성으로 바뀌게도 됀단 겁니다. 주체는 한가지나...그 속지의 토인들이 엄연히 만리나 떨어진 지역이기때문이지요. 그걸 지적한 글였습니다.
현 지구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앵글로색슨이...지구 어디에나 기틀을 틀고 있긴 하나... 그 출발은 하잘것 없는 지구 맨 서쪽 구탱이의 해적집단였듯이... 고대에는 어느 특정지역에서 고도로 발달한 문명을 습득한 여러 부족들은...세계 각지로 퍼져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었기에...그 출발지도 유사지역였을 것이란 얘기입니다. 전 그곳을 바이칼로 예상하는 글이고여... 다인종 부족들이 바이칼과 예니세이에 존재하다가...고도의 무기체제와 문명을 습득해 세계 각지로 퍼져 원시인 수준였던 고대 각처의 원주민들을 주도했을 것이라 보는 것이고... 그러기에 각기 인종과 부족이 다르더라도...유사 언어를 쓰는 것이란 겁니다.
첫댓글 좋은 내용입니다. 문제는 "예락하"란 말의 근원에 대해 여러가지가 있다는 것이지요. 몽골어이냐? 회흘(위그루)어이냐? 또는 만족어이냐? 또는 투르크어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에 따라 그 근원지가 전혀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전번역원의 주석을 보아도 통일되지 않은 이곳 저곳의 언어라고 말하고 있는데, 우선은 그 말의 어원이 누구였는가가 중요할 것 같군요. 만족이란 서융(유럽)을 통털어 말하는 것이며, 몽골과 회흘(위그루)과는 또 다른 것이며, 투르크족이면 또 다르기 때문입니다. 좋은 것을 소개해 주셔 감사드립니다. 더운 여름,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위의 제 주장은...예락하"란 용맹(勇猛)을 뜻하는 용어가...여러민족과 문화권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용어였으니...
예락하가 어느 특정민족의 용어나 제도가 아니요...어느 특정지역을 시원으로하는 각개 다민족들의 공통언어격였단 겁니다.
또한 그들의 주 활동지도...중원(천산주변)의 상황에 따라선...그 중간이 단절돼어 동서가 전혀 다른 인종구성으로 바뀌게도 됀단 겁니다.
주체는 한가지나...그 속지의 토인들이 엄연히 만리나 떨어진 지역이기때문이지요.
그걸 지적한 글였습니다.
현 지구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앵글로색슨이...지구 어디에나 기틀을 틀고 있긴 하나...
그 출발은 하잘것 없는 지구 맨 서쪽 구탱이의 해적집단였듯이...
고대에는 어느 특정지역에서 고도로 발달한 문명을 습득한 여러 부족들은...세계 각지로 퍼져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었기에...그 출발지도 유사지역였을 것이란 얘기입니다.
전 그곳을 바이칼로 예상하는 글이고여...
다인종 부족들이 바이칼과 예니세이에 존재하다가...고도의 무기체제와 문명을 습득해 세계 각지로 퍼져
원시인 수준였던 고대 각처의 원주민들을 주도했을 것이라 보는 것이고...
그러기에 각기 인종과 부족이 다르더라도...유사 언어를 쓰는 것이란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