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혼례를 올리게 된 사연 / 시련과 용서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눈물의 웨딩드레스>
식이 끝나고 폐백을 드려야 하는데 처갓집과의 마찰에 옥신각신 실랑이가 벌어지고 급기야 서로 간에 언성이 커졌다. 세상에 태어나 가장 행복한 날이어야 하는데 돈 없이 치르다보니 처갓집에도 본의 아니게 결례한 내 탓, 내 잘못이었다. 보다 못한 직장선배가 말려 가까스로 진정되어 폐백을 드릴 수 있었다. 모든 혼례 절차가 끝나고 신혼여행을 떠나야 하는데 찢기고 찢겨진 마음의 상처에 어디론가 훌쩍 도망가고 싶었던 결혼식 날, 그 때의 그 심정이었다.
그래도 아무 불평 없이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따라준 아내가 있기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미안했다. 가여웠다. 사랑은 그 다음이었다. 너무나도 무거운 마음에 모든 게 귀찮아 신혼여행을 안갈 생각이었다. 사정을 훤히 아는 친구 한 명이 앞장서 부랴부랴 부산발 왕복 기차표를 끊어주었다. 십시일반으로 마음과 마음을 모은 친구들의 우정을 저 버릴 수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피난시절 만나 나를 세상에 내보낸 곳, 그래서 막연히 그리워했던 곳, 내가 세 살까지 살았다는 부산에 그렇게 해서 도착했다.
내 지갑 속의 변변치 못한 돈, 호텔방에서 하룻밤 잘 돈도 안 돼 와인잔을 부딪치며 단꿈에 젖는 것은 언감생심 그림의 떡이었다. 역전 바로 건너편 여관장에 투숙했다. 미안해하는 내게 아내는 아무 불평 없이 위로와 격려를 주며 봉투 하나를 건넸다. 새 신부가 가지고 있던 비상금 전부였다. 눈물이 내 볼을 타고 그냥 흘러내렸다. 아내도 따라 울었다. 하염없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던 신혼 첫날밤,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지만 도저히 기분을 낼 수 없어 그냥 잠을 잔 그야말로 눈물의 웨딩드레스 신혼 첫날밤이었다.
<사랑>
"40세가 되어서 미혹하지 않았다"는 공자의 말대로 나 또한 사람인지라 불혹의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남편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한 때 술독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차라리 잔소리를 퍼부었으면 좋으련만 아무 말 없이 눈물로 보듬었던 바보 같은 내 여자…. 돌이켜보면 힘든 고비마다 아무 내색 없이 나를 지켜준 인고의 시간이었다. 만일 그런 아내가 아니었으면 지금의 만보인 내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예나 지금이나 별 불평 없이 묵묵히 나를 감싸고 힘을 주는 영원한 안식처임에 틀림없다. 특히 작은(13평) 다세대주택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동생까지 챙겨 결혼 시켜준 아내이기에 더욱 감사하다. 그렇게 고마운 존재인 아내의 헌신적 사랑을 당연하다는 듯 받기만 했던 지난 시간을 회상하며 회한도 든다.
요즘 동백이는 남편 만보에게 눈빛으로 가슴으로 말한다. “지금 무지 행복하다고…. 그래서 만보를 사랑한다고….” 지난 시간 보다 지금 더 필요하고 중요한 사랑, 분명하게 변한 내 모든 것을 칭찬하는 내 여자의 마음을 잘 알기에 나 또한 행복한 사람, 바로 동백이의 남편 만보가 누리는 행복인 것이다.
어머니 칠순에 맞춰 출간한 첫 번째<만보의 살아가는 이야기> 소제목은 <어머니께 드리는 노래>였다. 그때 내 나이가 50세, 내가 60세 환갑일 때 만약 또 하나의 책을 출간한다면 당연히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만보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될 것 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올바른 생활 속에 진정으로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어야 한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이기에 그때 가봐야 알겠지만, 만보의 동백 사랑이 확신되지 않으면 그건 가식이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 여자 동백이는 <만보살가이> 카페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니, 들어오지 못한다. 회원으로서 자격을 상실했기 때문인데 자기가 들어오면 내가 눈치보며 글 쓰는데 제약을 받을까 하는 염려와 배려의 마음에서다. 주말농장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지낸 일구형님이 내게 한 말이다. “동백이 속 깊은 여자야.”
교회에 가면 "아멘"이요, 절에 가면 두손 모아 합장하는 무신론자 아내의 '사랑'하는 마음은
아래의 내용을 많이 닮아 감히 옮겨본다.
사랑은 오래참고 / 사랑은 온유(溫柔)하며 / 투기(妬忌)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 교만하지 아니하며 / 무례(無禮)히 행치 아니하며 / 자기의 유익(有益)을 구치 아니하며 / 성내지 아니하며 /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 진리(眞理)와 함께 기뻐하고 / 모든 것을 참으며 / 모든 것을 믿으며 / 모든 것을 바라며 /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 사진 속에는 만보카페 회원
(거브기~버들~우성~소머리~산도~한가위) 6명의 친구가 있다 고인이 된 (와누리)도 있는데 영원한 만보살가이 회원이다
1986.4.6 / 완이형 가족과 강화 보문사 다녀온
그날 밤 부부 합심하여 동백 임신, 형님! 맞죠? ㅋㅋ 큰녀석 준이 1987년 3월生
OB맥주콘테스트 사진 & 사연의 글을 띄워 우수작 2회
동백이와 준이 사이에 보이는 스탠드 조명등
만보가 결혼을 바로 앞둔 어느 날 (女)고딩동창 세명이
만나자고 해 명동의 어느 분위기 좋은 찻집에서
받은 결혼 선물~ 그 중 한명 만보카페 회원
바로 사랑초
동백이와 맞짱 뜰 만큼 착한 뇨자 ㅋㅋ
근데 이름이 동백이와 같다는...
생전 아버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다고 누누이 말씀하신 두 손자와 며느리
일구농장~
요즘 발이 아파 농장에 가지 못하는 동백 때문에
▼ 일구형님 걱정이 태산
우리는 사형제 막내 만보
가족 모두 모여야 7명~ 무지개 가족
만보보다 키 큰 동백이의 배려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 하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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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말 맘씨 좋은 아내를 두셨군요. 또 아내의 좋은 점을 가슴깊이 느끼고 있는 샘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구요.~~~ 부러워요 ^__^
근데 고집은 떵고집에 정리를 잘 못해 만보가 채워 주면서 살아요. 살아염
마눌님 좋은 점만 보고
장가두 잘가셨구 시집두 잘오셨구...에헤라디여~~
요즘은 역전 만보가 쬠 밑지는 장사를 하고 있는 듯 싶네염 믿거나 말거나
그래서 동백이가 이문이 많다는 야그
리마인드 웨딩이 기대된다는~
그래요~ 지난 눈물의 웨딩드레스를 추억하며 동백에게 멋진 선물을 주고 싶은
만보의 애틋한 마음이기도 합니다.
오늘 맛사지는 좀 하셨남요~ 동백이는 복도 많어~^^
넵, 엄니가 해 주셨구요 광태형님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만보이기에 행복한 사람
형수님은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가 기대 됩니다.^^ 사람살이 사연 없는 가정이 없다지만 참 눈물겹고 아름답습니다. 아마도 만보 님이 글쟁이기 때문에 그 사랑이 더 애틋하게 느껴지는지도요.^^
동백이와 약속한 미래의 꿈 중에 하나 분명 자굴산 아름다운 친구 래려님 댁 방문해서 하룻밤 묵는 남편 형님과도 술잔을 기울이고 자굴산 산행도 하고 생각에 따라야지염 감사해요 우리는 칭구
것이지요. 인상 깊었던 친구 옆지기
그 Daum 계획은 래녀님
그러세요. 우리 집은 대문도 없답니다.^^ 지금은 숲이 더 우거진데다 바깥일로 바빠서 울 집은 완전 풀밭입니다.^^ 어제 아들이 외박나왔다가 하는 말, '엄마, 이러다 우리 집이 숲이 되는 것은 아닐까?' ㅎㅎ
와아~~~~저 바다에서 여인네를 번쩍 들어올린 변강쇠는 누구당가? 돌아오지 않을 옛 시절이 새삼 그리워지는 사진들입니다. 항상 젊고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기를....
네, 형님~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