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오늘 각 신문의 일면을 장식했던 망월동 묘지앞에서의 한총련기습
시위.그리고, 정부의 강경대응방침.한겨레 신문의 사진속에 들어있는 근
사의 식구들.그곳에 함께 있던나.5월 17일 광화문에서의 시작된 7시부터
의 촛불시위를 참가한후에 행진하려 했으나 정말이지 많은 전경들에 막
혀 그냥정리한후 미리 준비된 버스를 타고 광주로 향했다.동연으뜸,버금
빛,정보통신국장님과 새세대 6명,근사 4명,그리고 나 -문학회식구들과 같
이가자고 말을 하지 못해서 같이 가지 못한게 무척이나 아쉽게만 느껴
진다.-서울산업대 34명중에 동연이 14명.정말이지 낯설은 이들과의
동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4시간여 걸려 새벽 2시가 다되어
도착한 조선대학교.그곳에서 결의대회를 6시까지 하였는데 한반도와
우리나라라는 민중가수와 왔었고,밤이라그런지 너무 추웠다.
6시에 대학강의실에서 종이박스 깔고 잔지 한시간후에 일어나서 대충
씻고 망월동으로 향했다.그곳에서 구묘역을 참배한후에 우리는
천천히 걸어서 모이기 시작하였다.전경들은 신묘역후문을 겹겹이 막고
있었고,우리들은 그 대형에 맞춰서 3줄로 맞춰섰다.그 순간 누군가 외쳤
다.오른쪽뚫어.그 소리와 함께 일산분란하게 먼저 움직인건 우리였고,
뒤늦은 전경들은 막으려 했으나, 너무 쉽게 밀려버렸고, 전경과 우리들
은 서로 달리기 시작했다.전경들은 100m앞에 가서 막아라는 소리가 들렸
고,우리는 그보다 빨리 달리기 위해 열심히 뛰었고, 정말이지 100m를 누
가 먼저 가는야 하는 사투였다.사복경찰들은 각학교짱님들을 타켓으로 잡
고 그 사람들만 잡으려고 뛰어다녔다.우리는 서로그렇게 달려서 신묘역
정문앞에서 다시 대면하게 되었다.가는 동안
우리학교 여학우는 전경한테 맞아서 울고,새세대 식구중한명은 옷이 찢
기고,모두들 땀에 범벅에 된채였다.곳곳에서 주먹다짐이 일어날듯한
긴박한 상황의 연속이였다.그런 상황에서 잠시 소강상태가 이어졌고,
몇시간동안의 집회가 이어졌다.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의사표현방식은
정부에 의해 특별공무집행방해가 되었고,노무현 대통령은 후문으로 사라
지듯행사에 참가했고,우리는 그곳에서 해산후 광주시내를 가로질러금남로
에서 뜨거운 햇볓아래
민중대회에 참가한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상경하였다.
이틀동안 버스안에서의 새우잠을 제외하고는 1시간밖에 못자고
먹은거라고는 점심때 자르지도 않은 김밥뿐일만큼 힘들고 고된 시간이
었지만,총화할때 말했던 것처럼 이 시대를 이끌어나갈 청춘이라면
알아야 할 사건이고,느껴야 할 사건이기에 후회가 없다.아쉬운게 있
다면 많은 식구들이 함께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정말이지 할말이 많아서
조급하게 쓴 느낌이 없지않지만.그래도 잘들 읽어주었으면 합니다.
요즘 신문들을 보면 가슴이 쓰릴때가 많습니다.우리가 하려했던,우리가
표현하려해던 것들은 그런것들이 아닌데 말이다.정부의 마녀사냥이 시작
되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친미적 ,굴욕적 외교에 대한 목소리는 점점
묻혀가는 것을 보면서 정치는 정말 머리가 좋고, 교묘해야 한다는걸
새삼다시 느낀 그런 시간들이였다.왜 사람들은 그 행위 자체에 대한
판단만 하는것일까?왜 편견을 갖고 보는것일까?다들 자기 용돈 털어서
자기 시간쪼개서 그 먼곳까지 간 한총련 학생들이 표현하려 했던 것들
은 왜 모르는 것일까?난 아직도 시위나,집회에
거부감을 가지는 것이 사실이다.하지만 조금씩 노력해야 할것이다...그리
고조금씩 알아야 할것이다.우리에 대해,우리 역사에 대해 그리고 나에 대
해...
카페 게시글
나는야 재학생
낯선이들과의 동행
해~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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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5.20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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