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도 (離於島) - 바다가 힘만으로 지켜질까 ··· - 이어도 노래한 시인 · 문인들이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일초(一超)라는 법명의 스님이었던 고은 시인은 1962년 10여 년의 절집 생활을 청산하고 환속했다. 갓 서른 나이. 이듬해 제주도로 건너가 3년간 체류했다. 제주도로 가는 선상에서 취기를 빌려 바다에 뛰어내리려 했지만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아 포기했다(고은과 함께 술 마시던 문인들은 죄다 먼저 저세상에 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주량이 엄청나다). 허무주의에 빠져 있던 시절이었다. 제주에서도 자살할 마음을 품고 돌과 밧줄을 실은 조각배를 타고 술 취해 바다를 떠다니기도 했다. ‘…아무도 간 일이 없다 / 그러나 누군가가 갔다 / 가서 돌아오지 않을 뿐 / 저기 있다 / 저기 있다 / 아니다. 파도뿐이다. 숨막히는 파도뿐이다’ 라고 노래한 그의 시 ‘이어도’ 는 이런 체험 없이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은보다 여섯 살 연하인 작가 이청준(1939~2008)은 중편소설 ‘이어도’ 에 등장하는 제주 지역신문 편집국장 양주호의 입을 빌려 고은을 극찬한다. “이어도라는 시예요. 정말 굉장한 십니다. 어디에 있나, 어디에 있나, 나 이 작자한테 완전히 반했습니다. 고 아무개 이 작자 아마 이 섬에서 나간 친구가 틀림없어요. 이어도를 알고 있는 친구란 말입니다. 이어도를 모르는 자가 이렇게 가슴을 울릴 수가 없어요.” 소설 ‘이어도’ 는 또 술집 여인의 목소리를 통해 이어도 민요를 소개한다. ‘이어도하라 이어도하라 / 이어 이어 이어도하라 / 이어 하멘 나 눈물난다 / 이어 말은 말낭근 가라.’
제주대 조성윤 교수(사회학)에 따르면 이어도를 소재로 한 소설 중 가장 먼저 나온 것은 김정한의 ‘월광한’(1940년)이다. 1944년에는 제주농업학교 교사 이시형이 일본어 소설 ‘イヨ島(이요도)’를 발표했고, 정한숙도 1960년 ‘IYEU도’를 내놓았다. ‘이어도 처녀’(이용상) 등 시 작품도 다수다. 그러나 이어도를 널리 알리고 이미지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역시 이청준의 ‘이어도’라고 한다. 중국은 고작 『산해경(山海經)』의 의미조차 분명하지도 않은 구절을 따와 이어도를 ‘쑤옌자오(蘇巖礁)’라고 우기고 있다. 콘텐트의 질과 양 측면에서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허남춘 교수(제주대·국문학)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신화 · 전설 · 민요에 더해 ‘이어도 연구회’ 같은 현대 학술단체의 연구 성과, 끊임없이 생산되는 예술작품들을 통해 이어도는 우리 의식 속에 튼튼하게 자리 잡았다”고 지적한다.
우리 강역은 무기와 국제법만으로 지킬 수 있는 게 아니다. 제3국 사람들이 보기에 『산해경』의 빈약한 한 구절과 오랜 시간에 걸친 우리의 문화적 축적물 중 어느 쪽 손을 들어주고 싶을까. 이어도를 노래한 소설가 · 시인들이 새삼 고맙기만 하다.
- 중앙일보 [분수대] - 바다가 힘만으로 지켜질까 2012.03.13
| 이어도 …
이청준의 소설 ‘이어도’(1974년)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긴긴 세월 동안 섬은 늘 거기 있어왔다. 그러나 섬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섬을 본 사람은 모두가 섬으로 가버렸기 때문이었다.”
제주 사람들에게 이어도(離於島)는 환상의 섬, 피안의 섬이다. 이여도 또는 파랑도로도 불린다. 예부터 남편이나 아들이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으면 이어도에 산다고 믿었다. 고은의 시 ‘이어도’ 에서도 “아무도 이어도에 간 일이 없다 / 그러나 누구인가 갔다 한다 / 가서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한다” 고 썼다.
해녀들이 바다에 나갈 때 부른 ‘이어도 타령’이 구전돼 내려온다. “이엿사나 이여도사나” 라는 도입부는 노 저을 때의 여음인데 ‘이어도로 가자’ 또는 ‘이어도에 사느냐’는 뜻이라고 한다. 이어도는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상징하기에 수많은 문화예술 작품의 소재가 됐다. 김기영 감독의 영화 ‘이어도’(1977년)가 유명하고, 최근 가수 이상은이 같은 타이틀의 노래도 발표했다.
전설 속 이어도의 실체가 확인된 것은 1900년 영국 상선 소코트라호가 제주 남쪽 바다에서 암초에 걸려 좌초하면서다. 영국 해군은 1910년 수심 5.4m 아래 암초를 측량했다. 이어도의 국제 명칭이 ‘소코트라 암초(Socotra Rock)’가 된 이유다.
이어도의 위치는 제주 마라도 서남쪽 149km 떨어진 곳이다. 이름은 섬이지만 실제론 4개 봉우리로 구성된 거대 수중 암초다. 1984년 제주대학교 탐사팀이 정상부가 해수면 4.6m 밑에 있음을 확인했다. 평상시엔 보이지 않다가 파고가 10m 이상 돼야 모습을 드러낸다. 그 옛날 누군가 이어도를 봤다면 격랑 속에 무사히 귀환하기 어려웠기에 그런 전설이 생겼을 것이다. 옛 제주도 사람들은 이어도를 이상향 - 아틀란티스 같은 곳 - 으로 생각하는 전설이 있었다. 이어도는 원래 구전되는 전설에 따르면 바다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 어부들이 가는 섬, 어부들이 죽으면 가는 환상의 섬으로 알려져 왔다. 1984년 제주대가 이곳을 탐사한 뒤, 이 암초를 파랑도라고 명명하고 이를 전설상의 이어도와 결부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에서도 오래 전부터 쑤옌자오(蘇巖礁)에 관한 전설이 있어왔는데 중국의 고서 산해경(山海經)에서는 “東海之外、大荒之中、有山名曰猗天蘇山”라고 쑤옌자오를 소산(蘇山)으로 기술하고 있다. 물론 이 소산이 정확히 현재 발견된 이어도와 같은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한편, 1999년 중화인민공화국 탐사단은 이어도보다 대한민국 영해에 가까운 지점에서 암초인 파랑초 (중국명: 딩옌)를 발견했다.
정부는 1995년부터 해저지형 등 준비에 들어가 2003년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를 설치했다. (1995년에 착공해서 2003년 6월 10일에 완공) 하지만 이후 중국 일본 측과 이어도를 둘러싼 마찰이 표면화 됐다. 이어도는 중국 동쪽해안 퉁다오(童島)에서 247km, 일본 남쪽 도리시마(鳥島)에선 276km 떨어져 마라도보다 100km 안팎 멀다. 그럼에도 중·일이 군침을 흘리는 것은 이어도 인근 수역이 황금어장이고 연간 25만척이 지나는 항로의 요충인 데다, 72억t의 천연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놓고 시끄러운 판에 중국이 이어도를 정기 순찰대상에 포함시켜 다시 마찰을 빚고 있다. 한국이 이어도에 훨씬 가깝지만 해군기지 (부산과 상하이)에서 거리는 되레 150km나 더 멀다. 이어도를 영영 돌아오지 못할 섬으로 만들까 걱정된다.
중국은 이어도는 물론 남중국해·동중국해의 수십 개 섬에 대한 관할권을 주장하며 무력시위를 통해 주변국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7월 이어도 해역에 관공선을 보내 침몰한 선박의 인양작업을 하던 한국 선박에 작업 중단을 요구 하고, 12월엔 3000t급의 대형 순찰함 하이젠(海監) 50호를 동중국해로 투입 하면서 이어도 해역까지 순찰하겠다고 밝혔다.
2003년 이어도에 해양과학기지를 세워 ‘실효적 지배’ 라는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한국과의 EEZ 협상에 대비한 차원이라는 분석도 있다. EEZ는 각국 연안에서 200해리 내의 모든 자원에 대해 독점적 경제권리를 인정하는 유엔해양법상의 수역이다. 그러나 한 · 중 양국 사이 바다는 400해리가 안 된다. 중첩되는 부분이 나온다. 한국은 중간선을 경계수역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경우 마라도에서 149㎞ 떨어진 이어도는 우리 EEZ에 포함된다. 반면 중국은 해안선의 길이, 대륙붕의 연장선 등을 감안해 획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이어도 문제는 제주 해군기지(건설 중인 강정마을) 건설의 필요성을 설명 하는 논거도 된다. 이어도 해역에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 부산 해군작전사에서 함대가 출발하면 21시간30분이나 걸리지만, 제주에서 출발하면 7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가치도 크다. 이어도를 포함한 동중국해 일대엔 최대 1000만 배럴의 원유와 72억t의 천연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한국이 해상으로 수입하는 물동량의 90%가 이어도 남쪽 해상을 통과한다.
- 오형규 논설위원 2012-03-12
터무니없는 중국의 이어도 관할권 주장 중국 정부가 이어도(중국명 쑤옌자오 · 蘇巖礁)를 중국 관할 해역의 일부라고 주장하며, 해양 감시선과 항공기를 동원한 정기순찰 대상에 포함시킨 것으로 보도됐다. 장관급인 류츠구이(劉賜貴) 중국 국가해양국장이 이달 초 전국인민대표대회 개막 직전에 관영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새로울 것은 없지만 장관급 인사까지 나서 이어도에 대한 관할권 주장을 노골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예사롭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단호한 대응이 요구된다.
제주도 서남쪽 해상에 위치한 수중 암초인 이어도는 한국 영토에서 가장 가깝다. 마라도에서 149㎞ 거리에 있다. 반면 중국의 가장 가까운 섬과는 247㎞나 떨어져 있다. 해안선으로부터 200해리까지 인정되는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기준으로 하면 중국도 관할권을 주장할 수는 있지만 인접국과 EEZ가 겹칠 경우 적용되는 국제해양법의 중간선 또는 근거리 우선 원칙에 따르면 이어도는 당연히 한국의 관할 해역 안에 있다. 한국이 2003년 이곳에 해양과학기지를 건설해 실효적 지배권을 행사했음에도 중국은 한동안 별다른 이의 제기를 하지 않았다. 그랬던 중국이 2006년 갑자기 관할권을 주장하며 관공선을 보내 우리 선박의 합법적이고 정상적인 활동에 경고를 하고, 3000t급 해양감시선까지 투입해 주변 해역에 대한 감시 활동에 나서고 있는 것은 이어도를 분쟁수역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이어도 주변의 풍부한 에너지 자원과 어족자원도 탐이 나겠지만 그보다는 동중국해에 대한 지배권 강화라는 전략적 목적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맞먹는 대국으로 굴기(大國堀起)하기 위해서는 해상 수송로와 보급로 확보가 중국으로선 필수적이다.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중국이 동남아 국가들 및 일본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것도 경제적 실리 못지않게 전략적 포석의 성격이 강하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중국은 항공모함 바랴크호를 건조해 올해부터 실전에 배치하는 등 해군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미국에 개입의 빌미를 제공하고, 분쟁국들의 대미(對美) 의존을 심화함으로써 중국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중국은 직시해야 한다. 주변의 모든 바다에서 벌이는 영유권 분쟁이 중국의 장기적 국익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냉정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문제는 해군력의 절대적 열세에 처한 우리의 대응이다. 중국이 이어도까지 넘보고 있는 마당에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정부도 발벗고 나서야 한다. 이어도 문제로 인한 한·중 갈등이 더 확산되기 전에 조속히 해양경계 획정 협상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 누가 보더라도 정당성이 우리 측에 있는 만큼 오래 시간을 끌 사안이 아니다. 자칫 방심하다 이어도가 제2의 독도나 센카쿠(尖閣) 열도가 되는 사태가 없도록 단호하고 신속하게 대응하기 바란다.
- 부산일보 [사설] 2012-03-12
이청준의 중편 - ‘이어도’ 줄거리 이청준의 ‘이어도’는 한 사내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추리극이다. 그의 죽음의 이유를 우리는 작품의 후반부에 가서나 알 수 있다. 그에게 있어 어이도란 지독한 삶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도피처일 뿐만 아니라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환상의 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는 죽은 사내의 여자를 통해 하나씩 밝혀진다.
죽은 사내의 여자가 부르는 이어도 노랫가락은 책을 읽는 동안에 실제로 듣고 있다는 착각이 들 만큼 리얼해서, 읽는 이의 가슴을 저리게 만들기도 한다. 섬은 현실이자 이상향이다. 섬사람들 그리고 바닷가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런 이중성은 더욱 심하다. 이청준에게 있어서 섬은 그섬이 거기 있다는 믿음을 통해서만, 그리고 그 믿음이 삶의 희망이 되는 한에서만 사람들의 한 부분으로 인식되는 가상 현실이다.
해군 함정까지 동원한 파랑도 수색작전은 작전 개시 2주일 만에 완전히 끝이 났다. 섬은 없었고, 배들은 항구로 돌아왔다.
해군작전사령부의 정훈장교 선우 현 중위는 남양일보사를 찾아갔다. 편집국장에게, 작전에 동행했던 사회부 천남석기자의 실종 사실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양주호 편집국장은 천기자의 실종 사실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대신 선우 중위를 이어도 라는 이름의 허름한 술집으로 데리고 가서, 한 여자를 소개시켜 주었다.
그 여자는 천기자와 기묘한 형태로 동거하고 있었다. 여자가 눈 먼 점쟁이처럼 창연하고 요기스럽게 이어도 노래를 거푸 부르자 양국장은 천기자는 이어도를 발견했으며 황홀한 절망을 맛 본 탓에 자살한 것이라고 중위에게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이어도는 습습한 바람의 섬 제주도에서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죽음의 섬, 구원의 섬, 꿈 의 섬이다.
천기자는 이 섬이 규정하고 있는 꿈의 한계를 저주했으나, 어쩔 수 없는 제주 사람이었던 탓에 역설적으로 이 가상의 섬, 꿈의 섬 에 대한 사랑은 더 컸다.
그래서 수색작전으로 섬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이어도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자살을 택했다는 것이다.
중위는 국장의 이 놀라운 비약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날 밤 천기자가 살던 집에서 술집 이어도의 여자와 기이하고 신비한 정사를 나눈 뒤 이어도의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깨닫기 시작했다.
그것을 국장은, 이 섬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이어도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처음에는 이어도를 두려워들 하지만 이내 그 이어도를 사랑하고 이어도를 노래하기 시작한다. 이어도가 없이는 이 섬에선 삶을 계속할 수가 없다는 걸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다 마침내 어느 날은 그 이어도를 만나 이어도로 떠나간다. 그것이 이 섬사람들의 숙명이자 구원이다, 라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천기자는 섬사람들의 각성으로 하루하루 생명을 잃어가는 이어도의 허무한 꿈을 위해서, 섬을 본 사람은 모두가 섬으로 가버렸다 는 전설의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났다. 이어도로 갔다던 천기자의 시체가 오랜 표류에도 불구하고 상처 하나 없이 섬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 시체는 아직도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처럼 아침 해가 돋아오를 때까지도 그 심술궂은 썰물 물끝에 얹혀 용케도 다시 섬을 떠나가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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