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서림(西林)은 충청남도 서천군(舒川郡) 일원의 옛 이름으로 백제시대에는 설림군(舌林郡) 또는 남양(南陽)으로 불렀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서림군(西林郡)으로 바꾸고, 남포현과 비인현을 관할하였다. 1018년(고려 현종 9) 가림현(嘉林縣: 부여군 임천면 일대)에 예속되었다가 후에 감무를 두어 독립했고, 1314년(충숙왕 1)에는 이 고을 사람 이언충이 충선왕에게 공로가 있다 하여 서주(西州)로 승격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서천군으로 명명되어 조선시대 동안 명맥이 이어졌다. 서주(舒州) 또는 남양(南陽) 등의 별호가 있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홍주부 서천군, 1896년에 충청남도 서천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비인군(庇仁郡)과 한산군(韓山郡)이 서천군에 폐합되었고, 1917년에 남양면이 서천면으로 개칭되었다가 1979년 서천읍으로 승격되었다.
성씨의 역사
서림이씨(西林李氏)의 시조 이익존(李益存)은 시호가 문충(文忠)으로, 고려시대에 익찬선위정원공신(翊贊宣威定遠功臣) 흥록대부(興祿大夫) 호부상서(戶部尙書)에 올랐다.
일반적으로 이익존의 18세손 효사공(孝思公) 이세공(李世公)이 고려의 공신이 되어서 서림군(西林君)에 봉해졌고, 20세손 이언충(李彦忠)이 또 서주군(西州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따라서 연안이씨(延安李氏)에서 분적하여 이언충을 시조로 하여 후손들이 서림을 관향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무술보(戊戌譜》에 따르면, 이익존을 시조로 하고 이언충을 1세로 하고 있다.
이언충은 자가 국서(國瑞), 호는 운재(芸齋), 시호는 충경(忠敬)으로, 고려조에 보리공신(輔理功臣)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이 되었고 도첨의좌우정승(都僉議左右政丞)에 이르렀으며, 1332년(충숙왕 1) 서주백(西州伯)에 추봉되었다. 서천(西川)의 옛 이름은 서림(西林)으로 모두 동일한 본관이다.
분적종 및 분파
부사공파(府使公派)
부여공파(扶餘公派)
용악파(龍岳派)
원정공파(院正公派)
주부공파(主簿公派)
진사공파(進士公派)
판서공파(判書公派)
호암파(虎巖派)
주요 세거지
충청남도 부여군 남면 일원
충청남도 보령군 천북면 사호리
충청남도 논산군 양촌면 인천리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서림이씨는 423가구 총 1,390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