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성취도 국제비교』(PISA 2003) 발표에 즈음하여
올 한 해, 우리 교육발전을 위해 항상 깊은 관심과 애정으로 때로는 따끔한 질책으로 정책의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저와 교육인적자원부를 도와주신 많은 분들께 이렇게 紙面으로나마 먼저 고마움에 대한 인사를 드립니다.
수능부정으로 얼룩진 연말이라 우리 교육계 모두가 통절한 반성을 하고 있는 때이지만, 우리 교육과 관련한 반가운 소식이 있어 이를 국민 여러분과 나누기 위해 이 글을 드립니다. 오늘은 며칠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전 세계 41개국을 대상으로 만 15세 학생(고1)의 학업성취도를 평가한 결과와 관련해서 그것이 지니는 의미와 앞으로의 정부 정책방향에 대해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고자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미 언론매체를 통해 접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만, OECD가 주관한 '2003 학업성취도 국제비교'(PISA 2003)에 따르면, 한국 학생들은 문제 해결력 영역에서 1등, 읽기 영역에서 2등, 수학과 과학 영역에선 각각 3등과 4등에 올랐다고 합니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최하위 학력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 학력 부진아 비율이 OECD 전체로는 21.7%이었는데 비해 우리의 경우는 6.8%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상위 5% 안에 드는 최상위 학력그룹 학생의 점수도 2000년도에 비해 읽기는 21위에서 7위로, 수학은 6위에서 3위로, 과학은 5위에서 2위로 상승하는 등 최상위층의 그룹도 이전 보다 더 두터워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대다수 고등학생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골고루 일정실력 수준 이상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지난 40년간 우리 경제발전을 지금 수준으로 견인해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이었는지도 간접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과는 청소년 시기에 인성교육과 함께 창의성 신장 등 국민의 기초교육 강화에 주력해 온 우리의 의무교육이 국제적으로도 괜찮은 수준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저 또한 반가운 마음을 굳이 숨기고 싶지 않습니다. 특히 이번 결과는 우리의 평준화정책이 학력저하로 이어지고 있다는 우리 사회 일부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PISA 결과로 나타난 우리 교육의 현주소에 대해서 우리 모두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듯 합니다.
그렇지만 이번 PISA 결과를 지켜보면서 남들보다 조금 앞섰다고 해서 미리 샴페인을 터뜨리면서 마냥 즐거워하거나 자만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번 PISA 결과는 우리 국민 모두에게 희망의 메시지도 던져 주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대적 과제도 함께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번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결과에 대해서 '예상 밖'이라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분들은 아마도 "고1까지는 잘 할지 몰라도 과연 그 이후 우리 대학의 경쟁력은..."이라는 의문을 아직 머릿속에 떠올리고 계실지 모릅니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우리 교육을 뒤돌아보면 현재 고교 졸업생의 80% 정도가 대학에 진학할 정도의 '과(過)교육' 상태를 質的으로 제어하기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대학의 질은 떨어지고 양만 팽창하다 보니 여기서 키워진 사람들의 지식·기술이 사회의 요구조건과 맞지 않고 이런 사람들이 사회에 나오면 취직하기도 쉽지 않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이제 더 이상 개인적인 문제로 방치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우리에게 새로 주어진 시급한 과제는 바로 대학의 구조개혁을 효과적으로 추진하여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이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의지와 이를 바탕으로 한 실천이 매우 중요하며 국가적인 차원의 역량집중도 필수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 PISA 결과가 우리 교육에 주는 또 다른 시사점은 상위권 학생들의 잠재력을 보다 발전시키기 위한 수월성 교육을 확대하고 심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수학과 과학에 있어서 수월성 교육의 심화는 국가경쟁력의 강화에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침 교육부에서는 '창의적 인재 양성을 위한 수월성 교육 종합대책'을 마련 중인데 올해가 가기 전에 우수인재 양성을 위한 종합적인 프로그램을 국민 여러분께 선보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PISA 결과는 우리 학생들의 성취도는 높지만 학업에 대한 흥미는 낮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학교를 마치 놀이터처럼 여기고 공부를 취미처럼 재미삼아 하지 않으면 학업 성취도가 계속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없습니다. 교육부는 올해 제시한 혁신비전의 하나로 '행복한 학교'를 설정한 바 있지만 이것이 구두선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의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겠습니다.
우리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PISA 결과를 보면서도 우리가 마냥 즐거워 할 수만은 없는 이유는 아마 작금에 터져 나오고 있는 수능부정 사건이 우리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직과 신뢰가 살아 숨쉬는 학교'를 만들지 못하면 높은 성취도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앞으로 우리 교육정책의 방향을 초등교육에서는 인성교육을 중심으로 하면서 창의성의 씨앗을 뿌리는 단계로, 중등교육은 인성교육과 함께 창의성 신장에 주력하는 단계로, 그리고 대학에서는 창의성과 수월성을 무한히 추구하는 단계로 설정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더불어 사는 인간의 양성', '정직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사회' ,'모두가 뛰어난 인재가 사는 나라'를 만드는데 우리 모두의 힘을 쏟고자 합니다.
이제는 교육이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안겨줄 수 있도록 교육의 본령에 입각한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습니다. 작고 조용한 변화가 큰 물결이 될 수 있도록 과거를 거울삼아 차근차근 한 걸음씩 교육혁신을 실천해 나갈 생각입니다. 우리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날마다 이런 소식만 전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 모두의 힘을 모아 그런 날이 언젠가는 올 수 있도록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으면 합니다. 여러분 가정에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04. 12. 11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 안 병 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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