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소비가 미덕
우리라나는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시기에는 절약이 미덕이었다. 그러다 경제가 어느 정도 성장을 한 후로는 소비가 미덕이라고 추켜세웠다. 절약과 소비는 양립 불가능한 말이다. 그런데 상황에 따라 서로 미덕의 자리를 차지했다.
물론 소비가 미덕이라고 하니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백화점을 포함해서 다양한 판매점을 찾았다. 그런데 우리의 소비 형태는 꼭 필요한 때에 필요한 상품을 구입하는 것은 아니다. 부를 과시하기 위해서도, 남보다 먼저 신상품을 차지하기 위해서도 소비에 참여한다.
누누 칼러의 『물욕의 세계』는 그런 사람들의 소비 행태를 면밀히 분석해 본다. 도대체 왜 그리고 언제 상품을 구입하는지, 그 상품의 무엇이 소비에 이르게 하는지를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본다. 결국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합리적인 소비일 것이다.
더 나아가 소비가 미덕이 아니라고 강하게 주장한다. 저자는 이런 점에서 소비가 왜 일어나는지를 궁금해 한다. 특히 요즈음은 텔레비전을 통해 하루 종일 상품 광고와 홈쇼핑이 제품 광고를 한다. 진행자들의 다급한 구매 부추김에 자기도 모르게 전화기를 들기도 한다.
저자는 한동안 그린피스 소비자 대변인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그 이전의 소비생활에 대한 연구와 실천이 밑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그에게 좋은 소비는 친환경적인 소비를 말한다. 말하자면 충동구매를 해서도 안 되지만 소비를 할 경우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 소비와 도파민
마음에 드는 제품을 구입하면 강한 쾌감이 밀려든다.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도파민 물결은 물건을 사겠다고 결심한 순간 찾아온다. 도파민 체계는 우리가 돈을 절약하려는 것을 방해한다. 특정 제품을 살지 말지를 고민할 때 우리는 그것이 이성적인 행동인지를 고민하지 않는다.
우리가 쓸데없는 물건을 사게 되는 원인은 이러한 직접적인 충족감 때문이다. 쾌감은 할인 행사장에서 물건을 싸게 구입할 때 더욱 강력해진다. 가진 돈에 비해 기대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얻거나, 상품 가격이 생각보다 저렴하기 때문이다.
물건을 사려는 충동은 자본주의에서 본질적인 문제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기분 좋은 것을 원하기 때문에 뭔가를 소비해야 한다. 이것은 자본주의에 유익한데 사람들이 끊임없이 소비를 늘리지 않으면 자본주의 멸망하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의 일부로 남기 위해서는 소비를 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곳에 계속 머물기 위해’ 점점 더 빨리 소비해야 한다. 우리는 가속화되는 트렌드의 고리 안에 살고 있다. 지금 유행하는 것을 내일 어디서든 보고, 또 새로운 것을 만나기를 원한다.
게다가 이런 경향은 우리 몸의 생화학적 작용과도 관련이 있다. 트렌드가 빠르게 확산되고 우리 눈에 빈번히 노출될수록 제품에 싫증을 느끼는 속도는 빨라진다. 그것이 더는 쾌감을 주지 않으며, 도파민도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나는 무조건 살 것’이라는 충동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면 뇌는 지루함을 느끼고 새로운 자극을 찾게 된다. 빠르게 새로운 트렌드, 새로운 쇼핑 충동을 찾는다. 그것이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다. 좋은 소비와 나쁜 소비
저자는 개성을 중요한 문제라면 좋은 소비를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는 개성과 좋은 소비가 양립가능한가라는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비는 항상 우리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자신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과 관련이 있다.
만일 우리가 오직 환경을 생각하고 사회적으로 공정하게 살기를 바라는 방향으로 소비하되 소비를 절제하지 않는다면, 유감스럽지만 좋은 소비로 가는 길에서 언젠가는 소비주의의 길목으로 빠지게 된다. 이처럼 좋은 소비란 환경문제와 연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사람들은 유명 브랜드 제품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명품 가방을 훈장처럼 들고 다닌다. 그러니 너도 나도 뒤질 새라 명품 가방을 찾는다. 그들에게 소비를 환경문제와 연결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들은 움직이는 제품 광고 노릇에 온 정신이 팔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브랜드와 관련한 좋은 소비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 우선은 브랜드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오로지 상품의 질로만 소비를 한다면 그런 문제는 저절로 해소된다.
한편, 식료품에는 비친환경적인 것들이 상당하다. 그러나 비친환경적인 제품이 식료품에만 머물지 않는다. 섬유산업은 세계적으로 기후에 최악의 영향을 끼치는 주범들 가운데 하나다. 거기에 많은 의류들이 저개발국가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과 과도한 노동으로 만들어진다.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친환경적인 소비생활을 위해서는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한동안 유행했던 ‘아나바다’ 운동이 생각난다. 이렇게 쓴다면 지구의 자원 고갈 문제도 상당 부분 유예할 수 있을 것이고 미세플라스틱 같은 문제도 조금은 완화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로 인해 관련 기업은 존폐의 기로에 놓일 것이며, 그곳에서 근무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은 거리로 나설 것이다. 나쁜 소비를 막아야 하는 것은 당연해 보이지만 무작정 아나바다를 고집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것은 지구적 차원의 산업 생태계와 맞물린 문제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기업에서도 지속 가능성 문제에 대해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런 말을 사용할 때조차 그들은 뒤로는 그와 관련한 마케팅을 생각한다. 미세플라스틱 문제를 제기하자 미세플라스틱을 거를 수 있는 세탁기 그물망을 홍보하는 식이다.
그러나 그렇게 걸러낸 미세플라스틱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는 소비자의 몫으로 돌리고 입을 닫는다. 가정에서는 십중팔구 그 그물망을 수돗물로 세척할 것이다. 결국은 하수구로 미세플라스틱이 휩쓸려가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저자는 소비자들이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말한다. 소비자가 지갑을 닫으면 기업에서 아무리 제품을 개발해도 판매를 할 수가 없다. 물론 소비자의 구매 의욕을 한꺼번에 꺾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목소리는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좋은 소비로 가는 길은 더 적게 사야하고, 산다면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것을 사야 한다. 그러나 기업들은 깨끗한 환경을 바라는 우리의 소망까지 마케팅과 광고를 통해 인정사정없이 이용하고 있다는 점에 저자는 분노한다.
라. 좋은 소비를 위한 캠페인
저자는 좋은 소비를 위해서 캠페인을 진행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러한 캠페인은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운송이 인간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개선하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본다.
값싼 노동력으로 시장은 소비재 가격을 끊임없이 하향 평준화해 왔으며, 이는 세계화와 자본주의 때문이다. 거기에 사람들은 이미 편리함에 익숙해져 있다, 이러한 점을 노려 기업은 우리에게서 돈을 원한다. 그들은 우리의 안녕과 건강과 행복이 목적이 아니다.
이 말은 결국 우리가 지출한 모든 돈으로 어떤 시스템을 지지할지 결정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우리가 왜 그들의 광고에 넘어가 돈을 주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몇 번 사용하지 않는 기기들은 대여점에서 빌려 사용할 수 있다면 굳이 비싼 돈을 기업에게 가져다 줄 일이 없다.
저자는 좋은 소비를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시당국은 그 지역에 상주하는 수리 센터와 기기에 대한 정비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요즈음은 대도시에 친환경 자전거가 등장해서 가까운 거리는 일정금액을 내면 애용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중고매장을 운영하는 것도 있고, 자기 집에서 쓸모가 없어진 것들을 판매하는 반짝 시장이 열리기도 하고, 물물교환 장터가 열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매매는 현재로서는 극히 제한적이다. 정부가 역할을 확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은 이미 대부분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대중적으로 이용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홍보의 부족일 수도 있고, 시민들의 인식의 부족일 수도 있다. 대중매체를 이용한 보다 적극적인 캠페인이 필요한 시점이다.
소비는 개인적이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은 기업가와 정치인이 자신들의 책임을 인식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때 효과가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소비 방식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지속 가능한 소비 순환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저자가 우리 자신을 위해, 환경을 위해, 연대를 위해, 그리고 우리 자신의 자긍심을 위해 적게 소비하기, 기업가와 정치인이 더 많은 책임을 지기, 우리 스스로를 더 이상 소비자가 아닌 시민이자 인간으로서 다시 이해하기 같은 호소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소비를 없앨 수는 없지만, 소비를 신분 증명의 근거가 아닌 무너진 자본주의 체제를 바꾸는 도구로 이해해야 하며, 그럴 때 소비는 좋은 것이 된다고 본다. 그것을 온전히 개인적으로 의식하면서 성찰할 때 소비는 좋은 것이 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