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만나길 어려운 황금연휴가 닷새간이었다. 시골 형님 댁 농사일손을 좀 돕고 와도 되는데 그렇게 바쁜 일이 없어 뒤로 미루었다. 전화를 넣어보니 지난 가을 심어 둔 마늘 거두는 일은 아직 이르다고 했다. 나는 연휴기간에 그간 못다 다닌 창원근교 산에 오려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리 사흘 걸었더니만 왼쪽 무릎관절이 좀 시려왔다. 높은 산에 오르거나 오랜 시간 산행은 않으려고 했다.
아파트 단지 상가에서 김밥을 사서 버스를 한 번 더 갈아타고 북면으로 향했다. 오월은 계절의 여왕다웠다. 신록만이 싱그러운 것이 아니라 하늘까지 아주 쾌청했다. 산자락이 품은 암자에선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둔 축등이 절간 입구에 줄지어 걸려 있었다. 야산 어디나 흔한 아카시나무 꽃들은 바람에 뒤척일 때마다 은물결로 일렁거렸다. 시내버스는 굴현고개를 넘어 북면 온천장으로 가고 있었다.
60번 지방도를 가면 동전삼거리 지나 중리 마을 앞에 삼거리가 한 번 더 나온다. 바로 가면 온천장이고 왼쪽으로 꺾어 한참 가면 함안 칠원으로 넘는 고개가 나온다. 나는 그 삼거리 정류소에서 내렸다. 차들이 혼잡하게 다니는 길을 걸어 중리에서 현천까지 갔다. 아직 고개까지는 꽤 남았지 싶었다. 현천마을 구멍가게 주인장 노인에게 길을 물었다. 현천마을 뒷산에서도 마금산 오르는 길이 있었다.
여말 왜구 섬멸에 공이 큰 최윤덕장군의 생가 터가 가까이 있다는 표지판이 있었다. 마을 가운데 주민참여 복지공간으로 현대식으로 공동빨래터를 잘 만들어 놓았다. 시골이라 인적이 골목길을 빠져나와 감나무 과수원을 지나니 희미한 오솔길이 나왔다. 우거진 솔숲을 조금 더 오르니 길은 끊어졌다. 그래도 빤히 올려다 보이는 산마루를 가늠해 오르니 고개에서 오는 길을 만날 수 있었다.
콘크리트건물과 아스팔트거리만 보다가 야외로 나오니 가슴이 확 트였다. 너럭바위에 앉아 쉬면서 가져간 얼린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우거진 숲 사이로 간간이 내려다보이는 들판과 마을이 참 평화로워 보였다. 마음 느긋하게 걷는지라 땀이 날 정도는 아니었다. 날씨도 쾌청했지만 산에 오르니 공기까지 맑아 좋았다. 조금 더 나아가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옥녀봉에서 가져간 김밥을 먹었다.
옥녀봉부터 등산로는 사람들이 더러 다닌 듯했다. 잘록한 산허리를 지나 비탈진 오르막을 올랐다. 맞은편에서 챙이 큰 모자를 눌러 쓴 한 여자가 바쁜 걸음으로 내려왔다. 나는 바위를 손으로 짚어가며 장상에 올랐다. 나보다 먼저 오른 산행객이 다섯이었다. 이들은 해발 270미터라는 마금산 표석 앞에 모여서서 나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카메라를 건네받아 꼭지를 눌러주었다.
들판 가운데 있는 산이라 그리 높지 않아도 멀고 가까운 곳이 시야에 다 들어왔다. 낙동강 건너 화왕산 바위가 보였다. 밀양 화악산에 이어진 능선 끝이 가지산이지 싶었다. 수산대교는 강을 가로지고 삼랑진 뒷기미가 보이고 그 아래로 금정산 고모당이 아슴푸레했다. 정병산은 바로 건너이고 그 뒤로 불모산 송신탑이 보였다. 진영택지개발 아파트 뒤 봉화산 아래에 노무현대통령집이 있지 싶다.
코앞엔 삼국유사에 성불한 두 도반 이야기가 전하는 백월산이었다. 정상 뒤로는 강마을에 그림 같은 학교가 보였다. 창원시내 벽지학교인 하천초등학교였다. 교감 직을 눈앞에 둔 대학 여자 동기가 교무부장으로 있는 학교다. 건너편에 상천마을을 바라보다 문득 무학상가 어느 주점 주인아낙이 떠올랐다. 친정이 마금산 뒤로 오라비하고 어린 시절을 그곳 시골에서 보냈다는 이야길 들은 기억이 났다.
산꼭대기 이정표에 동쪽으로 가면 천마산이 나온다고 되어 있었다. 바라다 보이는 앞산에 올라 내려서면 낙동강이다. 산에 가끔 동행하는 친구와 훗날 같이 오르려고 남겨 두었다. 정상에서 내려오니 다시 갈래 길이 온천초등학교와 북면우체국으로 나뉘었다. 북면우체국 방향으로 내려오니 마금산온천 원탕 정문이었다.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도 나온다는 유서 깊은 온천에 잠시 몸을 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