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 참판 윤공 묘갈명(贈參判尹公墓碣銘)
참판 윤각(尹愨,1665~1724)이 무장(武將)으로 신임사화에 죽으니, 나라 사람들이 슬퍼하였다. 그 백형(伯兄) 윤원(尹愿,1662~1707)은 자가 자후(子厚)로, 사람됨이 중후(重厚)하고 기개와 절의를 좋아하였다. 젊은 시절 학교에서 공부할 때에 지론(持論)이 준엄하고 올발랐다.
부친 진사공(進使公)이 일찍이 우암(尤菴,송시열) 선생을 위해 원통함을 호소하였는데, 선생이 사약을 받자 공 또한 제생(諸生)들과 함께 상소하여 신변(伸辨)하고 또 여러 날을 대궐 밖에 엎드려 울부짖었다. 이에 기사년(1689, 숙종 15)의 흉당에게 미움을 받아 얼마 뒤에 함부로 비방을 날조했다는 무고로 이성(利城,함경남도에있는 옛지명)에 유배되었다.
이성은 영북(嶺北) 수천 리 밖에 있는 고을로, 황량하고 추워서 사람이 살 곳이 아니었으나, 공은 이곳에 이르러 태연하게 시를 짓고 술을 마시며 시름을 달랬다. 갑술년(1694, 숙종 20) 유배에서 풀려나 가솔을 이끌고 공주(公州) 요당촌(蓼瑭村)으로 돌아가 한가로이 시를 읊으며 생을 마쳤다.
정승 이이명(李頤命,1658~1722)이 공의 집을 유안재(遺安齋)라고 명명하였다. 숙종 정해년(丁亥年,1707, 숙종 33) 세상을 떠나니 향년 46세였다. 아! 공의 집은 장수의 집안으로 불렸으나 사론(士論)을 좋아하여 남에게 미움을 받았으며 공은 일개 평민인데도 화를 면치 못했으니 참판공의 형으로 알맞다고 하겠다. 가령 공이 자신을 감추려 하지 않고 또 혹여 오래 살면서 세상의 변고를 겪었다면 또한 필시 아우와 함께 화를 겪었을 것이다.
공의 선조는 파평백(坡平伯) 관(瓘)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후손 돈(敦)이 함안(咸安)으로 출진(出鎭)하여 마침내 함안 사람이 되었다. 진사공의 휘는 익상(翊商,1644~1682)으로, 대사헌에 추증되었다. 진사공의 부친 욱(㮋)은 선전관을 지내고 승지에 추증되었고, 조부 우진(又進)은 사복시 정에 추증되었다. 진사공의 생부는 지사(知事) 천뢰(天賚,1617~1695)이고, 외조부는 풍천(豐川) 임질(任耋,1612~1676)로 군수를 지냈다.
공은 7세에 모친을 잃고 성인처럼 슬피 울부짖었으며 장성하여 부친상을 당해서는 한결같이 고례(古禮)대로 거상(居喪)하였다. 제사는 정성을 다해 재계하고 정결하게 지냈으며 날마다 새벽에 반드시 사당에 배알하였다. 형제들과 우애롭게 지내고 자질(子姪)을 엄하게 가르쳤다.
또 베풀기를 좋아하여 공에게 의지하여 끼니를 잇는 이웃 사람들이 많았으며 더욱 남의 어려움을 급히 구제하였다. 이 때문에 향리의 인심을 얻어 공이 죽었을 때에 농사짓는 자들이 노래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공주(公州)의 독정(獨亭)에 안장하였다.
공의 원배(元配) 순흥 안씨(順興安氏)는 정랑 지(至)의 딸로, 공이 배소(配所)에 있을 때에 세상을 떠났는데 이때에 합장하였다. 계배(繼配) 용인 이씨(龍仁李氏)는 홍모(弘模,1675~1740)의 딸로, 공보다 2년 뒤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은 태정(台鼎), 상정(象鼎), 명정(命鼎), 몽정(夢鼎), 택정(宅鼎)이고, 딸은 이덕일(李德一,1561~1622)에게 출가하였는데, 원배의 소생이다.
손자는 경연(景淵), 구연(九淵), 수연(洙淵), 낙연(洛淵), 시연(時淵), 복연(復淵), 부연(溥淵), 재연(在淵), 병연(秉淵)인데, 구연은 선전관이다. 택정이 지금 삼도통제사가 되었기에 규례대로 봉증(封贈)되었다. 내가 이미 참판공의 무덤에 명(銘)을 지었는데, 또 공을 위해 명을 짓는다. 명은 다음과 같다.
불선한 자에게 미움 받으니 / 惡於不善
선한 자가 아니고 무엇이랴 / 非善而何
웅덩이를 만나 멈추었으니 / 坎而能止
또한 지혜롭다 말할 수 있네 / 亦可謂智耶
그러나 재주는 쓰이지 못하고 나이는 단명을 면치 못했네 / 然才不克見用年不免稱夭
하늘의 뜻이니 탄식하지 마오 / 天也無嗟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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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脚註]
[주01] 증 …… 묘갈 :
이 글은 윤원(尹愿, 1662~1707)의 묘갈이다. 윤원의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자후(子厚)이다.
[주02] 기사년의 흉당 :
기사환국으로 정권을 잡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주03] 내가 …… 지었는데 :
본서 제29권에〈참판 윤공 신도비(參判尹公神道碑)〉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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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04] 웅덩이를 만나 멈추었으니 :
험난한 때를 만나서는 벼슬하지 않고 은거한다는 뜻으로,《한서(漢書)》권48〈가의전(賈誼傳)〉에 “흐름을 타면 흘러가고 웅덩
이를 만나면 멈춘다.[乘流則逝, 得坎則止.]”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 최예심 장유승 권진옥 이승용 (공역) |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