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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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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슈~! 스크랩 최영미 시인, 생활보조금 관련 기사는 대부분 오해다
개마고원 추천 0 조회 58 16.05.20 16:3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답게 조금 더 영민해져야 한다.

시인 최영미 씨가 근로장려금 좀 받는다고 언론과 네티즌들이 호들갑을 떠는데, 잘못 생각하는 것같다.

난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기를 바란다. 

일단 연합뉴스 기사 보고 적는다.



1. <저소득층을 위한 근로장려금>이란 말은 틀렸다. 저소득층이 아니고 소득이 일정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근로자에 대한 근로장려금이다. 올해 딱 한 번만 주는 것이지 해마다 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것도 올해 매달 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올해에 한해 약간의 돈을 한 번만, 그것도 낸 세금 범위 내에서 돌려주겠다는 뜻이다.


2. <연간소득이 1천300만원 미만이고 무주택자이며 재산이 적어 빈곤층에게 주는 생활보조금 신청대상> 난 이 말이 뭔지 모르겠다. 생활보조금이라면 세무서에서 통지 받는 게 아니라 구청이나 동주민센터에서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세무서는 단지 간단한 서식을 갖춰 내면 일정한 금액을 1회에 한 해 돌려주는 제도일 뿐이다.

기초생활수급자는 있지만 이 경우는 해당이 없다. <복지로 사이트로 가서 보기>


이제 팩트를 말한다.

국세청에서는 근로소득자의 소득이 기준 이하일 경우 복지 차원에서 근로장려금이란 돈을 돌려준다. 액수도 많지 않다.

아래표를 보면, 일단 최영미 씨의 전년도 소득 기준금액이 1300만원 미만이라는 걸 보니 단독가구인 것같다. 그러면 겨우 70만원의 근로장려금이 나올 뿐이다. 그것도 1억 이상의 주택을 소유하면 절반만 나온다. 즉 최영미 씨가 굳이 뉴스거리로 내볼만한 사안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쯤이면 근로장려금이 대단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또한 최영미 씨가 국민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는 뜻도 아니다.


그러면 예술인 소득 문제를 살짝 건드려보자.

나는 1991년 전업작가가 된 이래 이런 일을 딱 한 번 겪었다. 어떤 달은 수입이 백만원 밖에 안될 수도 있고, 어떤 달은 몇천만원이 될 수도 있고, 그 이상 혹은 그 이하가 될 수도 있다. 작가는 정해진 월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달 그 달 저작권료를 계산해서 받고, 그것도 출판사마다 지급일이 다르고 액수가 다르다.


또한 국세청 기준소득은 원천징수를 한 경우이고, 계약금(책을 못내거나 여러 사유로 흐지부지되는 수가 많다)이나 기타 주먹구구로 이뤄지는 소득은 이에 합산되지 않아서 실질 소득은 이보다 많은 경우가 허다하다. 요즘은 거의 자동으로 세금신고가 돼서 실질소득과 신고소득이 같지만 10년 전만 해도 실질율이 많이 떨어졌다.

또 작가는 기준경비율이 70%나 되기 때문에 과세대상금액이 뚝 떨어진다. 요즘처럼 수입금액이 정확이 통지되지만 전에는 기준경비를 뺀 나머지, 즉 수입금액의 30%를 과세대상금액으로 삼아 이를 통지하고, 종합소득신고 기준으로 삼는 바람에 은행에서 늘 구박을 당했다. 소득금액증명을 떼봐야 30% 밖에 안나온다. 인세수입이 1억원이 돼도 과세소득은 3000만원 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네티즌들이 최영미 씨 경우를 놓고 베스트셀러 시인이 어쩌다가...하는 반응인데, 시집은 판매유효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 소설도 베스트셀러가 되면 약 2년 정도 의미 있는 판매량이 나오는데, 그 다음부터는 그야말로 용돈 수준이다. 그의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1994년에 나왔으니 그 시집으로 2016년까지 버틸 수는 없다.(참고로 1992년에 출간한 내 <소설 토정비결>은 현재 연간 약 200만원 정도의 저작권료 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것도 많은 편이다.)


2016년에는 2016년의 일을 해야 한다. 

후배들에게 글 써서 먹고 살 자신 없으면 든든한 직업을 따로 잡아놓고 글은 아마추어로서 쓰라고 나는 권한다. 프로 작가, 프로 시인으로 살아남기는 정말 어렵다. 내가 좋아하는 한 여성 시인은, 이 페이스북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정말 좋은 시를 쓰고 열심히 쓰고 질도 참 우수하지만 늘 힘들게 살고 있다. 이런 시인은 국가보조가 정말로 필요한데 수백억원이나 되는 문화진흥관련사업비 등은 용케 그를 피해다니는 것같다.


나는 1991년부터 전업 소설가로서 잘 버텨왔다. 그러기 위해 열심히 쓰고, 독자들에게 다가갈만한 좋은 소재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런 중에 사전을 약 10종 만들어 부가소득을 얻었고, 잉여소득을 모아 26년간 바이오코드 연구비로 투자했다. 어떻게 보면 전업소설가로서 분에 넘치게 살았다. 난 내 처지가 그런대로 견딜만하고, 이만하면 그럭저럭 만족스럽지만 글쓰는 후배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안타깝다.


요즘 한강 씨의 맨부커상 수상을 다 같이 기뻐하는데, 그 작가의 아버지가 내 19년 선배이자 존경하는 한승원 씨다. 이 분은 젊은 김동리 선생을 스승으로 삼아 무수한 역작을 남기셨고, 나는 노년의 김동리 선생으로부터 소설을 배웠다. 따라서 한강 씨는 어려서부터 아버지 영향을 받아 문학의 기초를 배울 시간이 충분했으리라고 본다. 부친의 후원이 적잖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그렇듯이 대부분의 작가들은 부모의 후원없이 홀로서기를 해야만 한다. 대한민국에서 비인기 예술인 문학으로 자주독립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최영미 씨는 더욱 힘내시고 그럴수록 창의적이고 감동적인 글을 많이 써주시기 바란다. 그러다 보면 독자들께서 감응해주실 거다. 내년부터 밝은 빛이 든다(건성으로 하는 말 절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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