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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누정 정원 스크랩 <르포탐방> 안동 임하구곡(臨河九曲) 백운정(白雲亭)에서 만난 백로(白鷺)
이장희 추천 0 조회 181 15.02.05 12:4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오두의 역사산책> 

안동 임하구곡(臨河九曲) 백운정(白雲亭)에서 만난 백로(白鷺)



양반 선비고을이라는 안동에는 백운정(白雲亭)이라는 숨어 있는 정자가 있다.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175호인 백운정은 임하댐 보조댐을 만듦으로써 댐 안쪽 외진 곳에 갇히게 되어 일반인들이 자유 롭게 들어갈 수 없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안동대 정연상 교수를 통하면 방문은 물론 들어가서 며칠을 묵을 수도 있다.


백운정 위치는 풍수에서 가히 정자를 세울만한 높은 언덕과 구비돌아가는 물 그리고 먼 원경으로 문필봉이 보이고 백로가 날아드는 명당 조건들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이곳 일대를 임하구곡(臨河九曲)으로 옛 선비들이 들먹이면서 백운정을 찬하는 것은 아마도 이곳 백운정이 그 제1곡(曲)이기 때문이리라. 임하 앞이 반변천이라 임하구곡은 반변구곡(泮邊九曲)라고도 한다.


안동대학교 건축학과 정연상교수의 특별한 안내를 받은 우리 일행은 백운정의 운치를 '두둥실 구름'이 뜬 청청한 6월 하늘 아래에서 마음껏 만끽할 수 있었다. 정교수는 필자가 지난번 온돌학회에서 만났을 때 이곳 백운정을 소개해주었으며 한번 방문해달라고 해서 이날 방문이 이루어진 것이다. 백운정은 수원관리차원에서 임하댐 보조댐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안동시에서 관리하는 경북지방문화재로 정교수가 관리와 안내를 직접 맡고 있다. 


정교수는 청도 운문사 대웅전을 새로 지을 때 참가한 목수출신이기도 한 건축학과 교수답게 건축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백운정(白雲亭)이라는 정자이름은 관상작명가들도 자주 사용하는 백운이지만 본래 당나라 인물인 적인걸(狄仁傑)이 쓴 '登高山 望白雲 思親在其下(높은 산 올라가 흰 구름 바라보니, 그리운 부모님 그 아래 계시다)'라는 白雲에서 그 연원을 찾는 수가 많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사대적인 것보다 불국사의 청운교 백운교에서 보듯이 신선도가의 흰 구름에서 그 의미와 연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삼척의 육향산 '척주 동해비'를 쓴 미수(眉壽) 허목(許穆 1595-1682)의 '지렁이체 글씨'를 이곳 '白雲亭' 글씨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감회가 깊다. 현판의 '白雲亭' 옆에 '구십노인서(九十老人書)'라고 부기하여 이 글을 쓴 조선시대 문인 미수의 나이를 보여주고 있다. 


앞선 답사 글 <1만년고래나라> 동해안 섬봉우리 탐사 (4) - 삼척 육향산 '척주 동해비'와 만리도 (1)에서도 논한대로 허목이 쓴 글씨는 전서체 즉 '지렁이체'로 그 복사본이라도 가지고 있으면 액운을 막는다는 풍속이 그가 부사로 부임했던 삼척에도 이곳 안동에도 전해져 온다. 


필자가 연구해온 지룡(토룡)과 연관하여 전서체 이른바 '지렁이체' 글씨는 그곳의 지기를 누르는 '지신밟기'의 '지렁이 꺼깨이 지신'을 누르는 의미를 지닌다. 

 

현판을 쓴 미수(眉壽)는 퇴계와 한강(寒岡) 정구(鄭逑)에 이어 성호(星湖) 이익(李瀷)의 학통을 잇는 근기학파(近畿學派)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백운정에는 허목의 글씨 '백운정'외에도 백운정은 정자 마루청에 여러 찬문들이 걸려 있고 퇴계 이황이 쓴 이요문(二樂門)과 조양문(朝陽門) 글씨가 걸려 있기도 했다. 


퇴계가 쓴 조양문(朝陽門) 이요문(二樂門) 두 현판에서 조양(朝陽)은 어렸을 때 보았던 성냥회사 칭호로도 기억나지만, '봉이 울면 아침해가 솟는다' 즉 지도자가 나타나면 그에 걸맞는 영재들이 따른는 의미로 시경(詩經) 권아(卷阿)에 나오는 '봉명조양(鳳鳴朝陽)'에서 그 의미를 찾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요(二樂)는 <논어論語> 옹야(雍也) 편의 유명한 '지자요수 인자요산(知者樂水 仁者樂山)'이라는 의미의 두 글자 요(樂)를 딴 글씨다. 물도 산도 즐거운 백운정이라는 뜻이다. 아마도 이곳에서 공부를 하고 친구를 만나고 도를 닦는 의미를 새긴다면 그것은 이요(二樂)가 아닌  <논어論語> 학이편의 첫머리인 세 가지 삼요(三樂)를 강조하여 삼요문(三樂門)이라고도 했음직한 것이라 생각되었다. 


백운정은 낙동강이 구비쳐 돌때 천전리(냇강 앞이라는 마을 이름의 내앞의 한자) 의성김씨 마을을 마주하는 강건너 편 언덕 '곶'에 위치하고 있었다. 가파른 언덕 길 위에 세워진 ㅁ자 한옥에 앞으로 정자의 마루가 크게 튀어나오도록 세워진 그 경관은 멀리 동북쪽으로 문필봉이 솟아 있고 앞으로는 흐르는 낙동강을 막은 임하댐 호수가 둘러져 있는 명승의 정자를 보여주고 있었다. 


정교수는 그의 안동대 건축학과 제자들을 대동하고 이곳 백운정을 야외 클래스로 자주 쓴다고 한다. 백운정(白雲亭)은 댐으로 강물의 임하구곡의 굽이가 아니라 임하호 호수를 내려다보며 수몰된 동료 구곡들을 애잔하게 추억하는 잔곡(殘曲)이 되어 있었다.  






*건너편 천전리에서 바라본 백운정(白雲亭).


*백운정에서 임하호를 내려다보면 보이는 개호송 (開湖松) 숲. 

내앞마을(천전리)의 와우형 풍수를 비보(裨補)기 위하여 풍수적으로 조성한 숲.

 본래는 튀어나온 대(臺)를 이룬 지형인데 지금은 물길이 댐 아래로 내려가기 전에 이곳을 한 바퀴 돌아 숨을 돌리는 섬이 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필자는 이 섬 이름을 따로 손님이 바가지 물에 체하지 않게 버들잎을 띄우는 의미가 있다 하여 

'버들잎섬'이라 이름지어 불렀다. 


*백운정에서 오른쪽부터 필자. 영양 석보초등학교 엄경태 교장, 안동대 정연상교수, 안동 복주초등학교 김선주교사.



*조선시대 문인 미수 허목(許穆 1595-1682)이 '지렁이체(전서체)'로 쓴 안동 백운정의 '白雲亭' 현판. 

필자 촬영. 옆에 '구십노인서(九十老人書)'라고 부기하여 이 글을 쓴 허목의 나이를 보여주고 있다. 

관련글: <1만년고래나라> 동해안 섬봉우리 탐사 (4) - 삼척 육향산 '척주 동해비'와 만리도 (1)


*삼척 육향산에 있는 허목이 쓴 '척주 동해비' 비문의 '지렁이체 글씨. 필자 촬영. 



백운정을 제1곡으로 하는 임하구곡(臨河九曲)은 백운정(白雲亭)을 비롯하여 임천(臨川)과 임천서원(臨川書院), 망천(輞川)과 칠탄(七灘), 사수(泗水)의 사빈서원(泗濱書院), 송석(松石), 선창(仙倉), 도연폭포(陶淵瀑布), 선유정(仙遊亭), 표은(瓢隱) 유허(遺墟) 등이 임하구곡을 이루고 있다. 


임하구곡 일대에는 내앞(川前) 의성김씨 가문의 유적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백운정을 시작으로 위쪽으로 올라가 선유정이 그 마지막 曲을 이루고 있다. 임하구곡은 청계(靑溪) 김진(金璡)의 유촉으로 설정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영가지(永嘉誌)』와 『택리지(擇里志)』에 임하구곡이 언급되어 있다.


『영가지』에 따르면 백운정은 부암연 위에 있으며 이조판서에 증직된 김진(金璡)이 지은 것을 아들 김수일(金守一)이 개축하였다고 전한다. 


임하구곡은 명확히 아홉 곡이 어딘지는 불명확하다. 그러나 알려진 곳으로만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곳들이 그 설명과 함께 운위된다. 


임하구곡의 제1곡이 백운정이다. 제2곡은 임천과 임천서원, 제3곡은 망천과 칠탄, 제4곡은 사수의 사빈서원, 제5곡은 송석, 제6곡은 선창의 수석, 제7곡은 낙연현류(도연폭포), 제8곡은 선찰사와 선유정, 제9곡은 표은 유허로 알려져 있다.


맨 위쪽에 있는 선유정은 임하현 동쪽 선찰사 앞에 있고 김진(金璡)이 지은 정자라고 한다. 선유정은 현재 임하면 임하리 932에 위치하는데 원래 도연폭포 상류 약산 남쪽에 있었는데 한국 전쟁 당시 소실되어 1987년 현 위치에 복원한 것이다.


신선이 노닌다는 선유정의 동쪽은 봉일산, 뒤에는 무학산, 앞에는 장륙산, 왼쪽엔 옥병산, 오른쪽 취병산의 다섯 봉우리가 있다 했다. 그 취병의 봉우리는 도경봉이고, 옥병의 봉우리는 탁천봉이라고 했다. 취병산(翠屛山)은 삼척의 할미바위가 떠내려왔다는 삼척 서쪽 산 이름이기도 한데 '비취 병풍'이라는 의미가 있어 옥병과 짝을 이루어 자주 표현된다. 


임천서원은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 912-2에 위치하며, 사빈서원은 임하면 임하리 226-1에 있다. 임천서원은 본래 임하면 사의동 동구에 있었으나 마을이 임하댐으로 수몰되어 현 위치로 이건되었다.


송석재사는 현재 임하면 임하리 226-1에 위치하지만 댐 수몰지가 되어 본래 있던 임하면 악사리에서 옮겨온 것이다. 


표은 유허비는 길안면 구수리 174에 있는데 본래는 길안면 용계리 도연폭포 상류에 송정, 와룡초당(臥龍草堂), 숭정처사(崇禎處士) 유허비와 함께 있었는데 옮겨져 와 있다. 


망천은 현재 임동면 망천리에 위치하는데 본래 몽선각(夢仙閣) 주변에 있었지만 댐 건설로 몽선각과 함께 인해 수몰되었다. 몽선각(夢仙閣)은 임하면 천전리로 옮겨져 있다. 


임하구곡 중에 칠탄은 현재의 임하댐 본 댐과 호계서원 부근의 여울을 의미한다. 수몰된 송석은 임동면 박곡동 아기산 서남쪽에 있다. 마찬가지로 수몰된 선창은 송석에서 상류로 5리 지점에 위치한다. 도연폭포는 길안면 용계리에 있었으나 역시 댐으로 수몰되었다. 


임하댐의 물이 줄면 도연폭포 좌측의 옥병산과 건너편 약산남쪽의 선유정 옛 자리는 수면 위에 드러나 볼 수도 있다고 한다. 


제산(霽山) 김성탁(金聖鐸)은 『제산선생문집(霽山先生文集)』「백운정 중수기」에서 임하구곡 중에 백운정과 선유정의 풍광을 백미로 꼽았다. 백운정과 선유정은 이곳과 연관한 선비들의 이름들이 오르내린다. 


청계 김진의 아랫대 다섯 형제는 퇴계 문하에서 배운 후학들인데 약봉(藥峯) 김극일(金克一), 귀봉(龜峯) 김수일(金守一), 운암(雲巖) 김명일(金明一),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남악(南嶽) 김부일(金復一)이 그들이다. 이들 중 셋이 대과(文科)에 오르고 둘은 소과인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했다. 


이들 다섯을 ‘김씨 오룡(五龍)’이라고도 불렀다. 생각해보니 허목이 쓴 '지렁이체' 글쓰로 쓴 白雲亭은  이러한 김씨 五龍과 연관한 글씨로 다가왔다. 


백운정 대청마루에 걸려있는 문장들은 청계의 원운(源韻)과 약봉, 귀봉, 학봉, 운천, 표은, 동악 이안눌 시편들이다. 그 중에 청계의 원운에 동악의 차운이 눈에 띈다. 청계(靑溪) 김진(金璡)의 원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절벽을 깎아 정자 세운 푸른 산머리,                       鑿壁開亭翠?頭

강산도 명미하다 사람 눈길 씻어 내네.                     江山明媚拂人眸

한낮의 맑은 물에는 물고기 무늬 얼비치고                 日臨鏡面魚紋動

구름 걷힌 하늘 가운데 기러기 떼 날아가네                雲掃天心雁字稠

고을 원님 노닐 곳으로 일찍부터 알려지니                 百里遊歌曾物色

정자 부근 풀꽃들도 아름다운 덕을 머금었다.              一區花草亦光休

술동이 앞 가없는 풍류 좋은 줄 알거니와                   知有樽前無窮樂

자손들이 유령(劉伶)처럼 취할까봐 걱정일세               祗恐兒孫醉似劉


청계(靑溪) 김진(金璡)

청계의 원운에 차운하여 지은 동악(東嶽) 이안눌(李安訥)의 시는 다음과 같다. 그가 영해부사로 재임할 때 안동을 지나가면서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하에서 일찍이 옛 나루 들머리 지나쳤는데          臨河曾過古津頭

오늘에야 병조(兵曺) 영감을 뵙고 다시 눈을 닦네    今對兵曺更刮眸

정자가 오랜 가문을 좇아 내려오는데                   樹石摠從家世遠

풍월연파 노래한 시편도 많아라                          風煙偏入品題稠

백운이라 편액한 정자에 공이 장차 떠나려하니        白雲有扁公將去

벼슬살이 무심한 나도 따라 쉬고 싶네                   朱?無心我欲休

어찌하면 이웃하여 이로二老 될 수 있을까             安得卜隣成二老

삼은이 못되면 주류朱劉라도 좋겠네                    未容三隱數朱劉


 동악(東嶽) 이안눌(李安訥)


임하 앞을 흐르는 반변천은 안동 동쪽의 와부탄에서 낙동강과 만난다. 알려진 임하구곡의 아홉곡은 안동 고성이씨 종택인 임청각에는 산수유첩 형식인「허주부군산수유첩(虛舟府君山水遺帖)」(『장서각(藏書閣)』제3집, 『청계선생육부자전』)을 참고한 결과이다.  


칠폭 중에 첫 폭의 화제(畵題)로 ‘운정풍범(雲停風帆)’이라 했는데 백운정과 하류의 개호송, 그 건너편 내앞(川前리) 마을의 정경을 그린 그림이다. 


그 다음으로 ‘칠탄후선(七灘侯船)’ 그림, ‘망천귀도(輞川歸棹)’ 그림을 그렸다. 칠탄은 지금의 임하에서 망천 사이의 깊은 여울이며, 망천은 임하댐으로 수몰된 옛 몽선각 주변의 경승이다. 


네번째로 '사수범주(泗水泛舟)’ 그림은 사의동(思義洞) 동구와 사빈서원 앞에 배를 띄우고 거슬러 올라가는 풍경이다. 이 사수 상류, 경출산 남쪽에 임하구곡을 세운 청계 김진의 묘소가 있다. 


다섯 번째 폭에는 ‘선창계람(仙倉繫纜)’이고  여섯번째 폭에는 ‘낙연모색(落淵暮色)’을 그렸다. 그것은 도연폭포의 저녁 풍경이다. 


일곱째 마지막 폭에는 ‘선사심진(仙寺尋眞)’을 그렸는데 배를 탄 선유(船遊)의 종착점으로 선유정에 배를 대고 유객들이 청계 김진의 영정(影幀)을 감상하는 장면을 그렸다. 


청계 김진의 증손자인 표은(瓢隱) 김시온(金是?)은 그의 시집인「한거잡영(閑居雜詠)」 에 네 수의 시를 남겼는데 다음과 같은 시구가 있다. 


산그늘 속에서 꾀꼬리 울고  ?歌山影裏 

여울물 소리 속에 백로가 섰네  鷺立水聲中 


표은(瓢隱) 김시온(金是?)


우리 일행이 백운정을 찾은 이날도 백로 한 마리가 정각 뒷산 소나무 위로 날아와 앉았다. 적암(適庵) 김태중(金台重)은 임하구곡의 산수풍월이 ‘내 집 물건(吾家物)’이라 하였다. 그의 시 「제선유정(題仙遊亭)」(『適庵先生文集 (適庵先生文集)』「선유정차이유봉수갑운(仙遊亭次李幼逢壽甲韻)」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청명한 바람 속에 자갈 길 다 지나니  踏盡晴風亂石川 

석양 비낀 정자엔 계단 길이 가파르네  花宮斜日步層顚 

풍월 찾는 시인 붓에 구름이 일어  騷人覓句雲生筆 

촌로도 바람 타고 신선이나 될 듯해라  野老乘風骨欲仙 

만 리에 가을 들어 온 계곡이 단풍인데  萬里秋容粧絶壑 

보름 달 차가운 빛 하늘에 가득하다  一輪霜月滿諸天 

오늘부터 이 강산은 모두 다 물건이니  江山自是吾家物 

좋은 경치 가져다가 남에게 전하지 마소  莫把奇觀世外傳 


적암(適庵) 김태중(金台重)


산수야 보는이의 눈에 담고 가니 모두가 감상자의 것일 뿐이 아니겠는가. 포헌(逋軒) 권덕수(權德秀)는 적암(適庵) 김태중(金台重)에 대하여 쓴 칠언절구 속에 백운정에 뜨는 달을 누가 차지할 것인지 읊고 있다.  


백운정 물 위에 뜬 달은 옛날과 같건마는  依舊白雲潭上月 

슬프다 오늘 후로 누구 차지되려는고!       可憐從此屬誰家 


포헌(逋軒) 권덕수(權德秀)


정자 마루에서 우리 일행과 정교수가 환담을 나누고 있는데 흰 백로 한 마리가 호수 건너편 솔밭에서 날아올라 백운정 뒷산 소나무밭으로 솟아오른다. 기념으로 주먹시 한 수를 지어본다. 


간밤에 고요한 호수 속 저 아래로 졌던 달이 

다음날 개호송(開湖松) 숲 솔밭에서 백로되어 날아오를 제

운정(白雲亭) 위엔 또 한 층 두둥실 구름정자!


                                      오두 김성규



*백운정에서 바라본 문필봉 옆으로 '4층 누각' 구름이 보인다. 2014년 6월 14일 촬영.

이런 멋진 구름들을 나는 두둥실구름이라 칭한다.


*백운정 위치.


우리를 안내한 정연상교수는 이곳 백운정을 쓸고 닦고를 자처하여 정말 스스로 백운정을 '자신의 것'처럼 사랑하고 있다. 풍월은 보고 지니고 읊는 자의 것을 넘어 자주 가서 아끼고 쓸고 닦는 자의 것이라는 것을 정교수의 문화재를 대하는 자세에서 느낄 수가 있었다. 


아마도 포헌(逋軒) 권덕수(權德秀가 적암(適庵) 김태중(金台重)을 일컬어 생전에는 백운정이 그의 차지였는데 그가 죽고나니 풍월의 주인이 없다고 탄식했다더니 포헌이 지금 살아 있다면 백운정은 안동대 정연상의 것이라 하지 않겠는가!


『논어』에는 “도가 있으면 나아가고 도가 없으면 숨는다(天下有道則見 無道則隱 邦有道 貧且賤焉 恥也 邦無道 富且貴焉 恥也)"고 했고 또 "숨어살면서 자신의 지향을 추구하며, 의를 행하여 자신의 도를 달성한다(隱居以求其志 行義以達其道)고 했으며, 또 "사람들이 알아주지 못해도 담담하다면 그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好)"라고 했는데 지방문화재는 지방의 청렴한 선비들이 오늘날도 지키고 가꾸고 있다. 


안거낙업(安居樂業)하며 은일청유(隱逸淸遊)의 선비사상은 문화재가 보존되면서 함께 보존되어 내려와야함이 아니겠는가! 


흥미롭게도 필자가 최초로 흥미로운 주제로 연구하는 지룡산과 지렁이 꺼깨이 신화와 연관한 청도 운문사의 대웅전을 새로 지을 때 참가한 정연상 교수가 이곳 허목의 '지렁이체' 글씨 현판인 '白雲亭' 글씨가 있는 백운정을 안동시 문화재 담당자들을 대신하여 책임을 맡아 관리하면서 우리를 안내하는 것은 여러 상징적 의미로 다가왔다.  


건축학을 하는 정교수에게 필자가 창설하고 회장으로 있는 시카고 박람회 당시 세워졌던 한옥집 Corea Exhibit 복원을 추진하는 1893한국전시관복원기념사업회의 팔각정 건축에 참여해 도와달라고 요청을 했더니 흔쾌히 도와줄 수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  


다음번엔 이곳 백운정에서 1박을 하기로 하고 정교수와 작별하고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이날따라 병산서원 가는 길에서 유교문화 달빛걷기 축제의 밤에 아는 분들이 여럿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중간에 있는 안동유교종합안내소에서 개최된 유교문화 달빛걷기 축제의 밤에 우리일행이 참석하여 공연을 보며 막걸리 타임을 가지고 달집태웠다. 광흥사에 들러 훈민정음대학 건립을 위한 네번째 모임을 갖고 이어 백운정에 들렀던 낮엔 백로를 보고 밤엔 이곳 병산서원 가는 길목엥서 달을 본 하루였다. (06/14/14 오두 김성규. 코리안신대륙발견모임 )













*백운정. 대청마루 반대편 입구


*백운정 대청마루. 



*정연상 교수가 백운정 문을 연다. 


*백운정 ㅁ자 건물 안에서 정연상교수


*ㅁ자 정자 안의 작은 마루 세 개 중의 하나. 





*두 그루의 보호수가 백운정이 300년이 넘었음을 보여준다. 


*백운정에서 바라본 내앞(천전리) 마을


*백운정엥서 바라본 내앞(천전리) 마을. 의성김씨 문중이 살아오고 있으며 특히 독립운동을 한 인물이 20여인이 되어 따로 독립기념관이 있다. 



*백운정 간판을 닦고 있는 필자. 





*오른쪽의 작은 건물에 퇴계선생이 쓴 朝陽門이 있다. 



*퇴계선생이 쓴 朝陽門(조양문)


*퇴계선생이 쓴 二樂門(이요문).













*백운정에서 물건너 백운정유원지 솔숲이 있다. 


*백운정은 임하댐 보조댐 댐길을 건너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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