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비 제막식을 보고
심 현숙
난생 처음 시비 제막식에 참여했다. 써리 시청과 시비 건립위원회공동으로 주체해서 만든 늘샘 반병섭 목사의 시비이다. 간밤부터 쏟아지던 비가 오후가 되면서 보슬비로 바뀌더니 식이 시작되자 멈추었다. 아침에 일어나 창 밖에 비가 내리는 걸 보고 걱정했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이민의 땅에서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었던 한인들과 써리 시민들이 어림잡아 270명 정도 모인 가운데 시비 제막식이 거행되었다.
2009년 9월 9일 수요일 오후 4시에 시작했는데 날짜에 ‘9’라는 숫자가 세개나 겹쳐 더욱 기억되는 날이기도하다.
반목사와 사모 그리고 6명의 한인들이 시비에 덮어씌워 있던 까만 천을 걷어 내었다. 시비가 단정하게 얼굴을 드러내자 모두들 하나가 되어 기뻐하였다. 반병섭 목사는 '캐나다 한인 문학'하면 떠오를 정도로 문단의 거목이다.
이번 시비는 써리의 베어크릭 파크(Bear Creek Park) 아시안 가든에 세워졌다. 킹 죠지 하이웨이와 88애비뉴가 만나는 사거리 한 모퉁이에 써리 아트센터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그곳을 돌아가면 입구가 있고 10분 정도를 공원으로 더 걸어 들어가면 예쁘게 새로 조성된 가든에 그분의 대표적인 시 '나는 그저 물이면 된다'를 조각한 시비가 편안하게 자리하고 있다.
어찌 보면 동물이 앉아있는 것 같기도 한 모양의 화강암에 왼쪽에는 한글로, 오른쪽에는 영문으로 시 전문이 새겨졌다. 시비 맨 왼쪽에 그분 친구가 붓글씨로 크게 쓴 '물'이라는 글씨가 인상적이었다. 돌의 무게가 무려 4만 파운드라고 한다.
이 시비 건립은 일년 전부터 예정되었으나 시비가 설 공원을 정하여 놓고 일주일만에 반 목사는 심장수술을 받게되었다. 수술 후 열흘만에 퇴원하여 아직 환자 상태인데도 밤낮 마음속에서는 시를 새길 바위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결국 두 달 후 칠리왁 수마수 마운틴의 채석장에서 암석을 고르게 되었다. 아직 제대로 걷지 못한 상태라 차안에서 멀리 있는 돌들을 관찰하다가 큰 바위덩이 하나를 손가락으로 찍었다한다. 얼마나 시비건립이 절실했으면 아직 회복되지도 않은 몸을 끌고 그 험한 채석장까지 갔을까.
사실 반목사는 2년 전 동네 공원을 산책하다 어느 날 숲 속에서 바위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바위에 시를 새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고 큰딸이 아버지의 뜻을 써리시에 약력, 업적 등과 함께 알렸다. 그게 발단이 되어 동네 공원이 아닌 베어 크릭 파크에 그분이 원한 뜻을 이루었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반 시인은 85세의 고령인데도 문학에 대한 열정과 집념이 젊은이를 능가한다. 그 강한 의지가 만 일년만에 병상을 떨쳐내고 일어서게 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장 맨 앞자리에 사모와 나란히 앉아 큰 딸 성혜씨가 한국어로 시비 건립과정을 소개했는데 흐믓하게 듣고 계셨다. 그 모습은 자혜로운 여느 아버지 그대로였다. 그분은 연령과는 상관없이 꾸준히 문학에 도전하고, 제자를 양성하고, 좌절하는 자에게 용기를 주고 또 칭찬으로 사람을 키우는 마력이 있다. 남에게는 한없이 인자하나 자신에게는 엄격한 외유내강의 분이다.
반목사는 지난 1997년에도 시비를 세운바 있다. 밴쿠버의 밴두센 공원에 세워진 첫 번째 시비는 밴쿠버 총영사관과 한인회가 주체가 되어 건립했다. 그곳에는 우리 고유의 건축물인 팔각정이 있어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이번이 두 번째인 시비건립은 한국인의 위상을 더욱 드높이는데 한 몫을 한 셈이다. 캐나다는 곳곳이 공원이지만 아직까지 어디에서 시비를 본 기억이 없다. 그런데도 두 차례나 한국인의 시비를 건립하였다는 건 우리의 기쁨이요, 자랑이다. 또 우리 민족의 문학 사랑이기도 하다.
시 '나는 그저 물이면 된다'에는 그분의 인생관 내지는 철학관과 평소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분의 시에는 어떤 강한 혼이 베어있다. 나는 이번 행사에서 그분의 시를 낭송하는 행운을 얻었다. 존경하는 어른의 시를 어떻게 낭송할 건지 염려가 되었지만 전심을 다 했다. 캐나다인 여자시인이 내 뒤를 이어 영어로 읊었다. 문화가 다르다보니 가슴에 덜 와 닿았겠지만 조용하게 시에 담긴 의미를 잘 전한 것 같았다. 캐나다인 시인과 나란히 서서 우리말로 시를 낭송한 기분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좋았다. 20년 전 우리 가족이 이민 왔을 때에 아이들은 공공장소에서 한국말 사용을 조심했다. 캐나다인이 듣기라도 하면 'Speak English in Canada'하고서 야단치는 경우가 가끔씩 있었다. 강산이 두 번 바뀐다는 세월이 지나고 보니 세상도 많이 바뀌었다. 이제 캐나다 사회는 우리 한인을 자기들의 구성원으로 동등하게 대우한다.
이 행사를 위하여 써리시와 써리 아트센터에서는 많은 준비를 치밀하게 하여 도와주었다. 당일 안내부터 시작하여 프로그램 배부, 제막식때의 사회, 건립과정 소개, 감사패 증정 그리고 축가까지 자기들의 행사라 여기고 최선을 다 한 것 같았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이렇게 시비를 건립해주는 사례는 북미사회에서 처음이라고 한다. 우리 대한민국의 국력이 그만큼 커졌다는 증거일 것이다.
앞으로 이 공원을 드나드는 한인과 캐나다인 그리고 타민족들이 이 시비에 새겨진 시를 읽게 될 것이다. 하나의 시를 함께 공유한다는 건 서로가 하나로 통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은 이곳에 반 목사 시인의 시비가 있는 한 대한의 얼을 본받고 영원히 그를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