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금방 잊어 버린다.
신 목사님의 죽음이 벌써 우리의 뒷 안길로 사라지려 한다.
우리는 그분의 과거에 우리에게 끼친 사랑으로 인해 몹시 애도 하였다.
하나님은 지금 이런 순간에 침묵만 하고 계시는 것 일까?
아니, 하나님은 우리 중에 계시기나 하는 것 일까?
그 분의 죽음자체가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는 무엇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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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년전 조기 총회가 있던 한 밤중에 고 신계훈 목사님 댁으로 전화를 했다.
사모님이 전화를 받으셨다.
"축하합니다"
"어디, 축하 받을 일인가요? 저희는 십자가를 졌습니다"
"신 목사님 지금 계십니까?"
"아직 회의장에서 오시지 않았습니다."
"사모님, 회의장의 목사님과 지금 연락 할 수 있을 까요?"
"저도 연락을 할 수 가 없는 데요."
"사모님, 신 목사님 연합회장 하시면 안됩니다!"
"목사님이 제 임기를 다 마치지 못 하실 것입니다."
신 목사님의 죽음으로 몹시 우울하다.
순진한 효순.미선이가 거대한 시스템 장갑차에 깔려
죽는 모습이 오버랩 되어서 더욱 그러하다.
브레이크 없는 장갑차를 피할 수는 없었을까?
그 길로 가지 않았으면 피 할 수 있었을 텐데!
왜? 꼭, 그 길로 가려고 했을까?
내가, 그 방정 맞은 소리를 한 이유는 그 장갑차 때문이였다.
오랫동안,
뉴스타트에 참석하는 암 환자들을 관찰 하면서 얻은 것은,
일반적으로 한 인간이 하나의 스트레스는 그런대로 해결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또 다른 스트레스가 겹칠 때는 그 파도를 쉽게 넘기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신 목사님은 그 순간 이 브레이크 없는 장갑차의 운전석에
앉으신 것으로 착각 하셨는 지도 모른다.
브레이크를 제 때 잘 밟고 차도를 잘 다 닐 수 있게 하는
길들인 좋은 장갑차를 만들기 위해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효선,미선이 같이 그 장갑차 앞에 깔린 꼴이 되지 않았는가?
한국 재림교단을 브레이크 없는 장갑차로 표현하는 것,
내가 좀 지나친 얘기를 하는 건가?
2.
지난 2월11일 수요일 쯤 집에 들어오니 전화 메세지가 하나 있었다.
신 목사님의 음성인 데, 나와 전화 통화를 원하시는 것이였다.
그런데 음성이 좋게 들리질 않았다.
나는 가슴이 철렁 거렸다.
모든 것이 잘 되어가는 줄 알고,
전화도 방해 될 까봐,
밤낮 기도 만 했었는 데…
어떻게 되셨다는 말인가!
전화가 연결됐다.
저쪽 편에서 신 목사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예의 그 잔잔한 목소리가 아닌 혀 꼬브라진 목소리라,
처음에는 잘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상태가 아주 안 좋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가슴이 또 철렁 내려 앉는다.
아무래도, 목사님을 뵈야 겠다는 강한 생각에 이끌려,
급히 금요일 나성으로 6 시간을 걸려 내려갔다.
안식일 오후 (2월14일) 목사님 계시는 로마린다를 찾았다.
몹시 여위신 모습이셨다.
목사님과의 단 둘만의 시간 속에서,
이제 괴로운 생애를 마치고 쉬기를 바라시는 목사님의 고백을 들으며,
두시간 쯤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내 생애에 한 영혼과 그렇게 깊은 대화를 다시 나눌 수 있을 지 모르겠다.
목사님을 꼭 껴안고,
“I love you”,
“I love you, too”
그 순간 이것이 마지막 인사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스쳤다.
그리고 앙상한 어깨의 뼈들이 나의 가슴을 불편하게 하는 것을 느꼈다.
아, 이 앙상한 어깨에 한국재림교단의 무거운 짐들을 지우게 했었구나!
이것이 목사님과의 마지막 만남이 됐을 줄이야!
그 날 있었던 목사님과의 대화들을 말하고 자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가능하면 교단, 교회 등의 얘기들은 하지 않으려 했었다.
그러나 한가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마지막까지 한국재림교단을 향한 그분의 마음에 있었던 부담들은;
“집단 이기주의”,
“누가 더 크냐?” 그리고
“세상 정치 풍토와 같은 재림교단의 선거 풍토”
를 걱정하고 계셨다는 것이다.
그분의 마지막 말씀에도 잘 나타나 있다.
“낮에도 울고, 밤에도 울었습니다.
총회를 치르면서 표출된
우리의 현실이 너무도 슬퍼서 울고
모든 것이 암담하고 사방이 막막한 때
힘이 없고 부실한 제게 지워진 짐이
너무 무거워서 두려워 울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예수님의 마지막 고뇌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의 지상 생애가 끝나 갈 때
제자들은 서로 "누가 크냐, 누가 지도자가 되느냐"는
리더쉽 논쟁에 몰두해 있었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교회에 약속된 마지막 성령은 지체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나라의 정치풍토 같다면
어떻게 성령이 교회에 임하시겠습니까!
지역적 편견으로 나뉘고,
개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리저리 엉키어 서로 담이 막힐 때,
성령은 결코 임하실 수 없습니다.”
그 분이 남긴 마지막 말씀에서나, 돌아가시기 전 바로 며칠전의 대화를 통해,
힘없는 효선이.미선이를 뭉게고 지나간 브레이크 없는 장갑차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리라.
3,
그러나, 우리를 서럽게 하고 분노하게 하는 것은
브레이크 없는 장갑차가 도로를 질주해도,
아무도 막으려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저것이 앞으로 가면 어떻게 될 것을 빤히 알고있는,
교회 내의 지도자들, 행정자들, 대학교 교수님들,
그리고 목사님들은 보고 만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참을성 있게 침묵을 잘 지키시는 분들이다.
이런 분들은 대개 노련하고 잘 연마 되어서 절대 나서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덕이라고 들 생각하는 모양이다.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면 병이 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스도인이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면 그 또 한 잘못이다.
문제는 그 스트레스 상대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라면,
그 스트레스를 넘긴다는 것은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사랑하면 할수록 그 스트레스의 강도도 높아 지기 때문이다.
재림교단이 사랑하는 어머니이고,
그 어머니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길거리의 문둥이 처럼 취급 당하여,
내동이 쳐있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며,
그 어머니가, 중병에 걸려 고통스러워 신음하고,
자식들의 다툼으로 그 마음이 갈갈이 찢겨 신음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어찌, 올바른 자식이라면, 그 어머니의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 날 수 있겠는가?
신 목사님에게는 한국 재림농원이 상징적인 어머니가 아니라,
어머니의 아픔이 바로 신 목사님의 아픔이 되였던 것이다.
신 목사님이 생애에 남긴 가장 큰 메세지가
“어두움이 빛을 이기지 못하더라”라고 한다면,
돌아가시면서 남긴 또 하나의 더 큰 메세지는
“어머니로 알고 사랑하던 장갑차에 깔려 죽었다”는 메세지이다.
마치 예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십자가라는 장갑차에 깔려 죽었듯이 말이다.
(신 목사님을 예수님과 같이 승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원리가 같다는 것이다.
이 점 분명 오해 없기를 바란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선언하고 싶으신 하나님의 가장 큰 메세지는
마귀에게 사로 잡힌 우리와 사단의 본 모습이 무엇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참으로 우리로 회개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신 목사님의 죽음으로 선언하고 싶으신 하나님의 가장 큰 메세지는
우리 재림교단의 본 모습이 무엇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참으로 재림교단으로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리라!
(멜 깁슨이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 “예수의 수난”을 그렇게 잔인한 영화로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재림성도들의 울며, 금식하며, 탄원하는
기도를 응답하셔서 신 목사님을 병에서 낫게 하시고
그런 후 신 목사님을 통해 가장 하고 싶으신 일이 있었다면,
재림교단의 참다운 회개를 하게 하는 것이 였을 것 이다.
4.
효선이,미선이가 장갑차에 깔려 죽은 후,
하나 둘 켜기 시작한 분노의 촛불은 온 세상을 덮기에 이르렀다.
우리도 분노의 촛불을 하나, 둘 켜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장갑차를 막아서야 하지 않겠는가!
당을 짖고 파를 형성하여
“서로 ‘누가 크냐, 누가 지도자가 되느냐’는
리더쉽 논쟁”들을 없애야 하지 않겠는가!
선거때마다 자기의 세력들을 몰아주고,
뒷거래 하는 “교회가 나라의 정치풍토 같”은 일들을 몰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장로파, 호남파, 영남파, 충청파, 지회파, 학원파, 병원파,
삼육동파, 그리고 이름 없는 파…
“지역적 편견으로 나뉘고,
개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리저리 엉키어 서로 담이 막”히는 일들을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는 이러한 일들을 일삼는 자들을
우리는 능력있는 지도자로 보지말고,
그러한 지도자들을 향해 NO! 할 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민초들이여!
마음의 성령의 촛불을 켜고,
우리도 촛불 시위를 시작하자!
내가 있는 작은 교회로부터 시작하자!
죽어가는 형식적인 예배들을 용납하지 말자!
성령 하나님이 직접주시는 은혜의 참 예배로 돌아가자!
우리 가운데 있는 모든 담을 헐자!
그리고 불꽃 같은 성령의 눈으로,
파와 당을 짖는 지도자들이 이 재림농원에 다시는 서지 못 하도록 하자!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으로 지도자를 세워야지,
파에 따라 지도자를 안배하는 일을 그만두자!
투표를 할 순수한 이성이 우리 가운데 없으면, 제비를 뽑아서라도 하나님께 맡기자!
양과 같이 순한 사람도, 바보 같이 어진 사람도
하나님의 뜻대로 마음대로 일할 수 있는 터전으로 만들자!
촛불시위는 어느 탁월한 지도자가 나와서 지도하는 것이 아니다.
촛불시위는 민초들이 하나, 둘 시작해서 힘을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촛불시위가 재림농원의 참다운 개혁과 부흥을 일으킨다면,
브레이크 없는 장갑차에 깔려 죽으신 신 목사님의 죽음이,
얼마나 값 있는 죽음이 되겠는가!
위대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참으로 Radical 한 방법으로,
지금, 한국 재림 성도들의 기도를 응답하고 계신 것이다!
첫댓글신계훈 목사님의 염려를 알게 됐다는 것이 저에게는 큰 충격입니다~지도자들의 형편이 그 정도로 심각했었다니요! 우리 성도들의 신앙이 바리새인들의 길을 따르지나 않았는지! 우리들의 회개하지 못한 심령이 이토록 커다란 짐이 되어 버리다니~ㅠㅠ;; 주님 저희들이 주님뜻 따르기를 온전히 할수있도록 도우소서~ ㅠㅠ.
"내가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예수께서.최후의 만찬에서 유다의 말을 씻기려 하자 절대로 씻기기를 거부했다.. 스승의 낮음이 바로 자신의 더낮음을 인정해야 했기때문이다.. 절대적 크기와 높임을 ..종이며 섬김을 거부하는.
첫댓글 신계훈 목사님의 염려를 알게 됐다는 것이 저에게는 큰 충격입니다~지도자들의 형편이 그 정도로 심각했었다니요! 우리 성도들의 신앙이 바리새인들의 길을 따르지나 않았는지! 우리들의 회개하지 못한 심령이 이토록 커다란 짐이 되어 버리다니~ㅠㅠ;; 주님 저희들이 주님뜻 따르기를 온전히 할수있도록 도우소서~ ㅠㅠ.
"내가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예수께서.최후의 만찬에서 유다의 말을 씻기려 하자 절대로 씻기기를 거부했다.. 스승의 낮음이 바로 자신의 더낮음을 인정해야 했기때문이다.. 절대적 크기와 높임을 ..종이며 섬김을 거부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