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의 죽음 후 난생처음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힐 하우스로 온 엘리너. 그녀는 이곳이 자신의 지긋지긋한 삶을 바꿔 줄 환상적인 장소라고 믿는다. 하지만 힐 하우스에서의 생활은 그녀가 상상했던 것과는 점점 달라지고, 힐 하우스의 광기는 엘리너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든다.
『『힐 하우스의 유령』은 기괴한 저택에서 일어나는 초자연 현상을 소재로 하는 고딕 호러 소설이다. 배경으로 쓰인 폐쇄적인 공간이 ‘살아 있다’는 점 때문에 평범한 공포 소설과 다른 인상을 심어 준다. 지어질 때부터 집 스스로 어둠과 음울함을 추구했을 것이라는 서술을 비롯하여, 힐 하우스는 처음부터 ‘악한 의지를 고집하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밝은 햇살이나 상쾌한 바람은 물론이고 집을 밝게 만들어 보려는 사람들의 노력을 집 스스로 거부한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심지어 사람들의 의지를 비웃기라도 하듯 힐 하우스의 정면은 마치 악마가 웃고 있는 얼굴처럼 보인다.
힐 하우스의 악한 의지는 거주자들도 피해 갈 수 없다. 이 오래된 저택은 일단 사람이 안으로 들어오면 밤새도록 문을 두드리고 냉기를 흘려 보내고 방 전체를 뒤흔들면서 거주자들을 괴롭힌다. 힐 하우스가 일으키는 초자연 현상은 주인공이 어릴 적에 겪었던 폴터가이스트 현상과 아주 유사하기 때문에, 주인공은 힐 하우스의 악의가 이런 현상을 자아내는 것인지 자신의 불안감이 이런 현상을 자아내는 것인지 구별하지 못한다.
힐 하우스의 공포는 여기서 시작된다. 이 공포는 다른 공포 소설처럼 생명에 대한 위협 때문이 아니다. 신체가 훼손되는 것은 가장 노골적인 수준의 공포이다. 『힐 하우스의 유령』이 제공하는 공포는 보다 심층적이다. 강력한 악의를 가진 힐 하우스는 인간의 불안을 자극하여 무너지게 만든다. 집이 흔들리는 현상을 자꾸 겪고, 벽에 피로 씐 자신의 이름을 발견하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부르는 듯한 소리를 들으면서 결국 주인공은 힐 하우스에 굴복하게 된다. 특히 주인공의 정신과 외부 세계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일인칭과 삼인칭을 오가는 서술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를 읽는 독자는 실제로 힐 하우스가 주인공을 습격한 것인지 힐 하우스의 습격을 주인공이 상상하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점점 광기로 치닫는 주인공을 따라가면서 독자는 자신의 불안마저 자극받는다. 힐 하우스에서 파멸을 맞은 주인공처럼, ‘누군가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혹은 ‘아무도 날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일단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 생각을 멈출 수 없다. 『힐 하우스의 유령』이 선사하는 궁극적인 공포는 바로 이것이다.
힐 하우스의 유령, 셜리 잭슨, 김시현, 392쪽, 12,800원, 엘릭시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