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힘.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 홍한별 옮김
‘발 없는 새가 있지. 날아가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평생 딱 한 번 땅에 내려앉을 때가 있는데 그건 죽을 때지.’ 영화 ‘아비정전’에서 주인공 아비가 한 말이다. 발이 없어 평생 허공을 헤매다 죽어서야 땅에 내려앉는 새는 아비 자신을 두고 한 말이었다.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는데 주인공 빌 펄롱의 모습에서 헛헛한 표정의 아비가 떠올랐다. 아일랜드의 삭막하고 추운 11월과 12월을 배경으로 한 빌 펄롱의 삶과 폭우가 쏟아지는 무더운 홍콩의 여름을 배경으로 한 아비의 삶. 누구와도 척지지 않으며 가정에 충실하고 성실한 빌 펄롱과 끊임없이 애인을 바꾸며 공허한 눈빛으로 앉아있던 아비는 전혀 다른 인물인데, 왜 자꾸 겹쳐 보였을까? 영화 ‘아비정전’에서 주인공 아비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기에 혹 빌 펄롱도 그런 결말을 맞이할까 봐 책을 읽는 내내 조마조마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빌 펄롱은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고 12살에 어머니가 갑작스레 돌아가셨지만, 미시즈 윌슨을 보호를 받으며 반듯하게 자랐고 그 모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금은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지만 미혼모의 아들로 아버지 없이 산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비처럼 엇나간 삶을 살 수도 있었을 텐데 빌 펄롱은 모범적인 삶을 산다. 아내 아일린에게 ‘속이 너무 무르다.’는 핀잔을 들을 만큼 불쌍한 아이들을 보면 차에 태워주고, 가진 돈을 주고, 땔감을 준다. 아일린은 남편이 비교적 넉넉한 미시즈 윌슨의 그늘 안에서 딱히 어려움을 모르고 커서 남에게 호의를 베푼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보기에 빌 펄롱의 호의는 미혼모의 아들로 살아온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왔다. ‘애 잘못은 아니잖아.(21쪽)’ 라는 말에서 그가 자신의 결핍과 약점을 직면했고 극복했음을 볼 수 있다.
그런 빌 펄롱이지만 순간순간 “뭐가 중요한 걸까.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때로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44쪽)을 한다. 중년 가장의 흔한 고민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이 순간 ‘이미 죽어버린 발 없는 새’ 아비가 떠올랐다. 이들은 고독, 외로움에 휩싸인 듯 보이는데, 더 근본적으로 자기 존재에 대한 불안이 있다고 보였다. 아비와 빌 펄롱이 느낀 자기 존재에 대한 불안에 대해 정리해 보려고 한다.
아비는 생모, 생부의 얼굴도 모른 채 자랐다. 아비는 생모에 대해 궁금해 했지만 양모는 내내 침묵했다. 아비에게 이성은 자신을 외면한 생모를 떠올리게 하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아비는 생모에 대한 복수로 자신을 사랑하는 여인들을 떠나보내며 누구에게도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러다 마침내 생모를 찾아 갔다가 거절 당한 후 그의 삶은 완전히 망가진다. 필리핀의 숲길을 걸어가던 아비의 뒷모습은 많은 이들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에 비해 빌 펄롱은 성실한 남편이자 자상한 아버지이다. 다만 그는 아버지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는데 누구에게도 속 시원한 답을 듣지 못했다. ‘아버지를 모른다.’는 것이 어떤 감정일까? 흔히 키운 정이 중요하고, 지금 잘살면 되지 생모가 왜 궁금하고 생부가 왜 궁금하냐고 질문할 수 있다. 더구나 빌 펄롱처럼 ‘미혼모의 자녀’라는 상처도 잘 극복했는데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아버지, 그 존재에 대해 모른다는 것이 40을 바라보는 중년에게 결핍이 될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예전에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방송이나 신문 기사에서 해외로 입양된 입양인이 한국에 와서 생부, 생모를 간절히 찾는 것을 볼 때 한국보다 잘 사는 나라로 입양되어 오히려 더 잘살게 된 그들이 굳이 슬프고 아픈 과거를 찾고 들추려는 마음을 이해알 수 없었다. 알게 되면 마음 아프고 부끄러울 텐데, 차라리 모른 채 덮고 지내는 편이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가 이 부분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는 까닭은 우리 부부에게 생후 2개월에 입양한 아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들은 우리 바람대로 건강하고 밝게 자랐고 우리 가족에게 많은 기쁨과 사랑을 주고 있다. 입양모인 내 입장에서 아들에게 친생 가족에 대해 알려주는 일은 쉽지 않았다. 순간순간 우리 아들의 태생과 관련된 몇 가지 사실을 없는 일로 만들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지우개로 그 순간들을 싹 지워버리고 내가 낳은 것으로 다시 만들고 싶다. 그런데 성인이 된 여러 국내 입양인, 해외 입양인의 경험을 들어보니 덮고 지우는 대신 진실과 직면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나은 해결책이라 했다. 슬프고 아프지만 직면하면 극복하고 건강한 성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했다.
수년 전 국내 성인 입양인이 생모를 만난 경험을 나누는 것을 들었다. 30대에 뒤늦게 입양 사실을 알게 되었고, 몇 년 후 생모를 찾게 되었다고 했다. 30년 넘게 만난 적도 상상한 적도 없는 엄마인데 외모가 닮았고 감정선과 행동 습관까지 닮은 생모를 보자 자기 내면의 배터리가 풀(full)로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나로서는 의아하고 당황스러웠다. 좋은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자랐고, 공부도 잘했고 현재 안정적으로 살고 있는 그는 입양 사실을 알기 전부터 자신의 감정 배터리가 방전 직전이라 느끼며 살았다고 했다. 그런데 생모를 만나 감정 배터리가 꽉 채워지고 충만해지는 느낌을 받고보니, 이전에 자신이 방전 직전이었음이 보였고, 다른 이들은 충전 상태로 살다가 가끔 방전쪽으로 이동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고 했다. 입양한 아들을 키우는 나로서는 이해도 안 되고, 부인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나의 사랑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였다. 생부, 생모와 분리된 아픔은 오래 전 일이고 그 아픔은 입양부모의 사랑으로 흔적도 없는 사라졌다고 말하고 싶은 나에게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 혹 우리 아들도 절반도 남지 않은 배터리를 가지고 사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되었다. 본적도 기억도 없는 생부와 생모의 존재가 그렇게 큰 것인가 질문이 생겼다. 이후 여러 성인 입양인을 만나면서 조금씩 생각을 정리해갔다. 그들 대부분은 생부, 생모를 찾고 싶어 했고 자신의 출생과 입양 전 상황을 알고 싶어 했다. 생애 초기 사실을 모른다는 것은 자신의 뿌리를 모른다는 것이고, 바닥을 알 수 없는 곳에 서 있는 기분이라고 했다.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지점을 알고 살아가고 싶다고 했다. 아! 우리 가족의 사랑과 별개로 우리 아들에게는 생부, 생모로 인한 빈자리가 있구나, 그 자리를 채워야 아이가 충만해지겠구나.. 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소설에서 아버지에 대해 궁금해하는 빌 펄롱의 마음을 슬쩍 언급했을 때, 친생부모를 찾고 싶어하는 입양인들의 갈망이 떠올랐고, 아비가 말한 죽어서야 땅에 내려 앉는 발 없는 새의 고단함과 서러움이 연상되었다. 그러자 아이랜드의 겨울이 더 차갑게 다가왔고, 가족과 크리스마스 준비를 하면서 웃고 있는 빌 펄롱의 시린 가슴 한 켠이 느낄 수 있었다. 우울한 날씨 때문도 아니고, 어려운 경제 상황 때문도 아니다.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 시린 아픔이 삶의 기쁨을 꾹꾹 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빌 펄롱은 수녀원에서 ‘사라’를 만났다. 사라에게서 미혼모였던 어머니가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극복해야 할 현실의 벽은 높았다. 아내도 지지하지 않을 선택 앞에서 그는 고뇌에 빠졌다. 그 때 빌 펄롱에게 갑자기 아버지의 존재가 등장했다. 더구나 그 아버지는 자신의 곁에서 내내 따뜻하고 좋은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 사람이었다. 생부가 높은 신분의 인물일지 모른다는 추측을 심어주며 자신을 숨긴 네드. 빌 펄롱은 자신의 40년 인생에 네드의 존재를 하나하나 새롭게 자리매김하면서 내가 아는 그 입양인처럼 자신의 배터리가 완전히 충전되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자신을 누르던 불안과 외로움이 제거되자 그의 가장 좋은 부분이 마구 밖으로 나오면서(120쪽) 세상의 어떤 반대도 이겨낼 용기로 충만해졌을 것이다. 그 용기로 빌 펄롱은 세라와 함께 가볍고 당당하게 걸을 수 있었다.
모든 이에게 자신의 존재가 시작된 지점이고, 존재를 지탱하는 곳이며, 성장이 가능하도록 양분을 공급하는 뿌리가 있다. 빌 펄롱에게 어머니의 사랑과 미시즈 윌슨의 보호는 그를 세우는 뿌리였다. 늘 곁에 있던 네드가 생부임을 알게 된 것은 있으나마나한 뿌리처럼 보이고 사소해 보였지만 빌 펄롱에게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사라’를 구출하면서 야기된 수녀원과의 갈등을 걱정하는 이도 있겠지만 아버지라는 존재를 품고 살아갈 빌 펄롱은 원하는 곳 어디든 갈 수 있는 힘을 가졌다. 그의 인생 후반을 응원하며, 매일 쑥쑥 자라는 우리 아들에게도 생부모, 입양부모 모두의 축복과 사랑 안에서 원하는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힘으로 충만해지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