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바 은사대로 행하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12:6-8).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肢體)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4) 하고 말씀한 사도는,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恩賜)가 각각 다르니”(6상)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신 은사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어떻게 활용해야만 하는가를 말씀합니다.
①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6상) 합니다.
㉠ 6-8절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데 필요한 은사들에 대한 구체적인 목록들인데, 예언하는 사람, 섬기는 일을 하는 사람, 가르치는 사람, 권위하는 사람, 구제하는 사람, 다스리는 사람, 긍휼을 베푸는 사람 등을 들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은사의 전체적인 목록은 아닙니다.
㉡ 6절에 “은혜와, 은사”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둘은 어떻게 다른 것입니까? “은혜”는 원천적(源泉的)인 것이고, 은사란 구체적인 선물들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이를 쉽게 설명하자면 성령님께서 교회에 은혜라는 선물 보따리를 주셨는데, 풀어 보니까 성도 각 사람의 이름이 써 있는 은사들이 들어 있었다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 예를 들어 목수라는 직책을 맡기셨다고 합시다. 맨손으로 하라고 하십니까? 아닙니다. 그에게는 톱이나 망치 대패 등이 주어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에게나 은사는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은사를 주시기 않았다”,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은사란 그 사람 자랑하라고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건설을 위해 필요해서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② 로마서에는 7가지 은사가 열거되어 있습니다만, 고린도전서 12장에는 9가지 은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 은사의 목록은 성경에 등장하는 것이 전부라든가, 또는 수자적인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엄밀히 말한다면 똑같은 두 사람이 없듯이 그야말로 은사는 천 사람이면 천 사람의 은사가 다르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사도는 은사들 중에서 로마교회, 고린도교회, 에베소교회의 특성에 따라 특별히 권면할 필요가 있는 것들을 거론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 그러므로 신령한 척하는 고린도교회에는 신유나 방언에 대한 권면이 있는 반면, 세계의 중심인 로마교회에는 가르치는 것과 봉사적인 은사가 강조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③ 제일 먼저 들고 있는 것이,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6하) 하고, “예언”을 들고 있습니다.
㉠ 사도행전에 의하면 아가보가,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행 11:28) 하고 예언하고 있고, “빌립의 딸 넷이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행 21:9) 하는 것을 보면, 초대교회에는 미래에 되어질 일을 말하는 “예언”의 은사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이는 사도행전이라는 특수성에서 이해되어야 할 말씀입니다.
㉡ 왜냐하면 교회가 충족된 계시인 성경을 갖게 된 이후로는, “예언”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점을 사도가 고린도전서에서,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德)을 세우며 권면(勸勉)하며 안위(安慰)하는 것이요”(고전 14:3) 하고 예언의 효용(效用)성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가 있습니다.
㉢ 성경이 말씀하는 궁극적인 예언이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1:2)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언의 은사”란 선지자들로 미리 기록케 하신 성경말씀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하여서 회중들에게 전달하는 직무인 것입니다.
㉮ 예를 들면 주님은,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 24:37)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증거하고 있는 설교자는 예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오늘날 예언 은사의 오용에 대해서 경계해야만 합니다. 이를 예견했기 때문에 사도는 예언에 대해서 경계하기를, “믿음의 분수대로”(6하) 하라고 한정 짓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④ 다음으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7-8상) 하라고 말씀합니다.
㉠ 사도는 은사들에 관하여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반복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도가 설명할 말이 모자라서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이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섬기는 일, 가르치는 일, 권위(勸慰)하는 일이 무엇을 하는 직분인지 모르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설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은사를 주신 분의 본래 의도에서 이탈함이 없이 그 목적대로 수행하라는 뜻입니다.
㉮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하라는 것입니다.
㉡ 얼마나 명쾌한 가르침입니까? 오늘날 은사를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3하) 활용하지 못하고 남용함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덕을 세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습니까?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끝이고, 그것으로 족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서울에 있는 난지도는 쓰레기 매립장인데 그래서 물이 귀합니다. 어느 선교 단체에서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식수를 공급해 주었더니 거절하더랍니다. 그들이 하는 말이, “물 좀 갖다 주고 사진 찍어 선전하려는 거지요” 하더랍니다.
㉣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지나치지도 말고, 모자라게도 말라는 뜻입니다. 또한 “네게 주신 은사는 섬기는 일이다. 이것이 네가 해야 할 직무다. 이에 만족하고 충성을 다 하여라 가르치는 일, 권위(勸慰)하는 일 같은 다른 사람의 은사에 대해서 시기하거나, 또는 간섭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이런 뜻이 있습니다.
⑤ 중요한 것은 3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섬김의 자세(姿勢)와, 6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분수”입니다.
㉠ “마땅히 생각 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分量)대로”(3) 하는 것이 섬기는 자의 자세요,
㉡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 따라, 믿음의 분수(分數)대로”(6) 섬기는 것이 자기 분수를 아는 자입니다.
⑥ “구제하는 자는 성실(誠實)함으로”(8중) 하라고 말씀합니다.
㉠ 성실함의 반대는 인색(吝嗇)함이나 억지로 하는 태도일 것입니다. 이런 마음은 내 것을 가지고 한다는 자기 소유의식 때문에 비롯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소유를 관리하고 있는 청지기라는 고백적인 신앙이 성실함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하고 권면합니다.
⑦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8중) 하라고 말씀합니다.
㉠ 잠언 27:23절에서는,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 마음을 두라” 하십니다. 영국 웨체스터의 주교 휴 래티머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한 가지 생소한 질문을 하고자 한다. 영국 전역에서 자기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다른 모든 사람을 능가하는 가장 부지런한 사역자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그는 바로 사탄이다”(현대 목회와 설교),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탄의 사자들에 비해서 얼마나 나태하고 게으릅니까?
⑧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8하) 하고 말씀합니다.
㉠ 사도 당시는 지금의 병원이나 사회사업 기관에서 맡고 있는 일들을 교회에서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열악한 환경과 비참한 형편에 처해 있는 자들에게 긍휼을 베푸는 사람은 즐거운 마음으로 행하여, 그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 형제에게 주신 은사는 무엇입니까? 많은 성도들이 받은바 은사를 활용하지 않고 묻어두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불과 몇몇 사람들만이 은사를 독점이라도 한 듯이 분수를 모르고 행동하기도 합니다.
⑨ 형제여, 주님께서 원하시는 아름다운 교회 상은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하여 돌아보아”(고전 12:25) 섬기는 교회일 것입니다. 어느 청년이 스펄죤 목사님에게 완전한 교회를 소개해 달라고 했더랍니다. “젊은이 그런 교회가 있으면 나에게 소개해주시오. 나도 그 교회의 일원이 되기를 원하오. 그러나 그런 교회를 찾거든 당신은 제발 그 교회의 회원이 되지 마시오. 왜냐하면 당신 때문에 그 교회의 완전함이 깨어질지도 모르니까요”.
㉡ 완전한 교회를 찾아다니지 말고 형제가 속해 있는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도록, 형제에게 주신 은사 따라 믿음의 분량대로 섬기십시다. 이것이 교회의 머리 되시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