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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6천년의 성경역사 원문보기 글쓴이: 새상의 빛
누구를 신뢰하는가?
주여, 나의 종말과 내 날들의 분량이 어떠한지 나로 알게 하시어 내가 얼마나 연약한지 알게 하소서. 보소서, 주께서 내 날들을 손 너비만큼 주셨으므로 내 연수가 주 앞에서는 없는 것 같사오니 진실로 가장 좋은 상태에 있는 모든 사람도 다 헛될 뿐이니이다. 셀라. 진실로 사람마다 헛된 그림자같이 걸어다니며 진실로 그들이 헛되이 분주하니 재물을 쌓으나 누가 그것을 가질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기다리겠나이까?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나의 모든 죄과에서 나를 구하소서. 나로 어리석은 자의 질책이 되지 않게 하소서.(시 39:4-8)
1. 들어가는 말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연약하고 죄인으로 태어난 우리는 스스로 속제함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2. 전개되는 말
본문은 네 가지로 인간의 전체적인 삶을 조명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인간의 한계와 문제점들을 실제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1) 네 자신의 종말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1) 죄의 삯으로 인간의 영이 죽었다.
『주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의 동산에 두시고 그것을 관리하고 지키게 하시더라. 주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명령하여 말씀하시기를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네가 마음대로 먹을 수 있으나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네가 거기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5-17)
다윈의 이론이 아닌 성경의 계시에 따르면 인간의 최초의 직업은 농부 혹은 과수원지기였다(아마 다윈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면 최초의 "인간"은 그것이 원숭이 인간이든지 어쨌든 간에 동굴에다가 벽화를 그리고 잇었을 것이다). "남편"(husband)이란 말은 아담이 농부(husbandman)로서 동산의 과수를 관리했던 것처럼 열매맺는 아내를 돌보는 남자를 칭하는 말이 되었다(시 127:3; 128:3).
어린 아이들은 야채보다는 과일을 더 좋아한다. 이 말을 못 믿겠으면 아이들에게 사과와 콩을 간식으로 주어보라. 아니면 복숭아(혹은 건포도)와 삶은 당근을 주어보라. 어떤 것이 빨리 없어지나 지켜보라. 아니면 잘익은 포도를 감자사이에 섞어보라. 어떤 것이 빨리 없어지나 지켜보라.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는 명제가 진실이라면 성경은 창세기 첫 세 장의 역사에서 모든 인간의 성장 단계를 정의 내려주고 있다.
① 네가 마음대로 먹을 수 있으나 (16절).
이 말씀에서 아담이 영원히 살게해 줄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는 허락을 받은 사실을 주목하라(계 22:14, 창 3:22 참조). 아담에게는 자유로운 결정에 따라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다. 이 사실을 미루어 보아 아담은 당시 피를 갖고 있지 않았음이 입증된다고 하겠다. 만일 인간이 피가 없었다면 인간이 영원토록 생명을 유지할 수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물은 영생"인데 이 선물은 율법이전 양심시대, 모세의 율법시대, 환란시대 및 천년왕국시대에는 어떤 조건에서만 주어지도록 되어 있다. B.C.4000년부터 B.C. 1450년까지 (거의 3000년간) 이 영생은 거져 주는 선물이었으며, A.D 38년부터 거의 2000년까지도 조건 없이 받는 선물이다. 오늘날 은혜시대에는 영생이란 거저 받는 선물임이 분명하다. 한 사람의 의로 말미암아 값없는 선물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여(롬 5:18), 그 값없는 선물(롬 5:15), 만약 이 시대에 그 어떤 다른 구원계획을 제시한다면(위에 언급된 구절들은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하고 있는 문맥을 주목하라.) 그것은 이브의 반항적 태도에 입각한 "어머니 이브의 구원계획"일 뿐이다. 왜냐하면 이브가 창세기 2:16을 사탄에게 인용한 창세기 3:2을 보면 그녀는 "freely"(마음대로, 값없이, 임의로, 거저)를 빼어버렸던 것이다. 이브는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선물을(롬 6:23) 중상 묘략했으며 이로써 은혜에다 행위를 덧붙이는 이 시대의 모든 교회들의 어미가 된 것이다. 이브는 알렉산더 캠벨(Alexander Campbell), 메리 엘렌 G, 화이트(Mary Ellen G, White), 러더포드(Rutherford), 러셀(Russel), 교황 레오(Leo), 교황 요한(John), 조셉 스미스(Joseph Smith), 그리고 마귀가 성경을 잘못 인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행위로 구원받음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빼먹고 인용한 것이다.
②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지 말라(17절).
주님께서는 먼저 긍정적인 명령, 즉 먹을 수 있는 특권을 주신 후에 이번에는 부정적인 명령, 즉 금지하는 명령을 내리신다. 금지의 이유는 아담이 뭔가를 알지 못하도록 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아담이 명령을 어길 경우 그에게 발생될 그 불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 이 계명은(십계명의 제일 계명처럼) 아담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지 아담을 좌절시키고자 함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이야 말로 이 지구상에서 향후 6000년 간 일어나게 될 모든 싸움의 전쟁터가 어딘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지구상의 죄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기를 거절하거나, 믿기를 거절하거나, 혹은 그 말씀에 근거해서 행동하기를 거절함으로부터 나오게 된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뭔가를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아주 쉬운 말로 말씀하셨으므로 아담은 그 하신 말씀을 "해석"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아담이 해야 할 것은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근거해서 행동하는 것뿐이었다. 첫째 아담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 근거해서 시험을 받았으며 마지막 아담도 같은 근거에서(눅 4:1-13) 시험을 받으셨다. 인류의 전쟁터는 하나도 변한 것이 없이 여전히 동일하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가장 분명한 증거는 성경이 전 세계에 걸쳐 영원한 이슈와 관련된 문제들 그리고 이 문제점들의 해결책 등을 분명히 제시함으로써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대해 취하는 세 가지 태도 중 하나로부터 나오게 된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은 불완전하니, 덧붙이라." 바로 이브가 취한 태도였다(창 3:2-4). 그녀의 뒤를 따라 조셉 스미스가 "몰몬경"을 , 마호메트가 "코란"을, 로마 카톨릭이 "외경과 위경"을, <안식교>와 안식교에서 분리된 초교파 단체 <생애의 빛SOSTV> 강병국 목사는 "안식일과 십계명"을, 여호와의 증인은 "신세계역 성경"을, 장로교는 "칼빈주의 5대 강령"을, <감리교와 성결교>는 신약성도의 구원상실론의 대표 교리인 "알미니안주의"를, <은사주의자들>은 "방언", "병고침", "꿈", "성령충만", "불세례", "악령쫒기", "천국과 지옥체험 간증",을, 구원파(유병언,박옥수,이요한)는 "깨달음"을, 정동수는 "흠정역"을, 박만수는 "권위역"을, 서달석은 "KJV완역한글판"을, 존 멕아더, 아더핑크, 존 파이퍼, 마틴 로이드 존스, 폴 워셔, 오은환, 김성철, 성충정, 박형룡, 간하베 교수, 덴버신학교 정성욱 교수는 "개혁주의 언약신학"을, 워치만 니는 "신비주의적 체험"을, 유대인들은 "탈무드"를, 빛과 흑암의 역사 http://www.aspire7.net/카페지기이며 <신세계 질서의 비밀>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762653 이란 책을 쓴 저자 장화진, 회복교회 김관운 전도사, <굳게서라 카페지기 http://cafe.daum.net/echrist > 굳게서라,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평신도이단대책협의회 카페 http://cafe.naver.com/anyquestion/42197 > 이인규 권사는 자신들이 배운 개신교단신학 사적해석들을 성경에 덧붙였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에는 불결한 것들이 있으니, 그것들을 빼버리라." 이 태도 역시 이브가 취한 태도이다. (창 3:2-4). 그녀의 뒤를 따라 ASV와RSV, NIV, 개역성경, 개정판, 표준새번역, 현대인의 성경은 마태복음 12:47; 21:44; 23:14, 마가복음 7:16; 9:44,46; 11:26; 15:28, 눅가복음 24:12; 24:40, 요한복음 5:4, 사도행전 8:37 등을 빼버렸고 유대인의 구약 전체를, 카톨릭은 그들의 교회를 묘사한 구절(신 32: 31,32, 마 23:14)을, <확대역본>은 "now"(지금은)이란 단어를 요한복음 18:36에서 빼버렸다. 자유주의자들은 산상설교와 시편 23편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제거한 다음 산상설교에서도 "주기도문"과 "팔복"만 남기고는 다 제해버린다. 캠벨파(그리스도의 교회)들은 마가복음 16:16의 반과 베드로전서 3:21의 반을 삭제해 버린다. 공산주의자들은 사도행전 2:44만 빼고 다 없애버리고 근본주의자들은 로마서 8:1의 절반과 요한일서 5:7 전부를 빼버렸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은 문자적이 아니므로 비유적으로 취하라." 이 역시 이브가 취한 태도였다(창 3:2-4). 이브의 뒤를 따라 <여호와의 증인>은 지옥을 "무덤"으로, <카톨릭>은 지옥을 "연옥"으로, <근본주의자들>은 지옥을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로, <개혁주의자들>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약속을 교회에게 주셨다는 "이스라엘 대체신학"으로, 로마 교황들은 "바빌론 큰 신비"를 로마 카톨릭이 아닌 이교도 로마제국으로 만들어 버렸다. <신정통주의 주석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루살렘의 파괴로, <크리스찬 사이언티스트>들은 하늘과 지옥을 "심적 상태"로, "물질적" 빵과 술을 그리스도의 영적 몸으로 만들어 버렸다.
(2) 죄의 삯으로 인간의 몸은 실제로 죽음을 맞이한다.
①『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뒤에는 심판이 있는 것같이』(히 9:27).
히브리서의 많은 구절들은 질긴 고기와 같아서 우유만 먹는 많은 사람들이(히 5:13-14) 소화해내지 못하고 걸려 넘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구절도 바로 그러한 예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잘못 이해해서 이 구절 하나로 성경의 전체 교리를 덮어버리려고 한다. 히브리서 9:27은 일반적인 진리로서, 아담 이래로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특별히 이 원리가 본문에서 제시되는 목적은 28절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것같이 그리스도께서도...』(27,28절). 하지만 많은 근본주의자들에 의해서 이 구절은 모든 사람에게 예외없이 적용되곤 한다. 만약 이 구절이 모든 사람에게 예외없이 적용된다면 이 말은 모든 사람이 반드시 한 번은 꼭 죽어야 하며, 두 번 죽어서도 안된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죽었다 살아나서 두 번째로 다시 죽는 사람들을 성경에서 본다. 예를 들어 엘리사가 살려준 수넴 여인의 아들이나(왕하 4장) 예수님께서 살려주신 나인성 과부의 아들(눅 7장), 그리고 나사로(요 11장) 등은 모두 한 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다. 그들이 다시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들은 분명히 두 번 죽은 것인데, 그렇다면 그들은 히브리서 9:27의 예외가 되는 것이다.
② 특별히 이 구절의 예외가 되는 사람들 중에 교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세 사람이 있다.
㉠ 에녹 : 이 사람은 “모든 사람이 한 번 죽는다.”는 일반적인 원칙에서 첫 번째의 예외가 되는 사람인데, 그는 한 번도 죽지 않았다. 그는 죽지 않고 “휴거”되었다(창 5:24). 이 사람은 환란 전에 휴거되는 성도들, 특별히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죽지 않고 살아서 주님을 맞을 성도들(요 11:26)의 예표가 된다. (그는 대환란의 예표가 되는 “노아의 날”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 들림받았다.) 이 성도들은 에녹처럼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고전 15:53-54). 교회가 환란을 통과한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은 에녹이 무엇의 모형이 되는지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에녹은 홍수의 끝에 들림받지 않았다. 그는 홍수가 나기 전에 들림받은 것이다.
㉡ 모세 : 이 사람은 한 번 죽었으나 그의 무덤은 이 땅 어디에도 없고(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다. 신 34:5-6, 유 9절), 그로부터 약 1,500년 후에 한 번 모습을 나타냈으며(마 17:2-8), 대환란 때 다시 이 땅에 돌아와서 죽을 것이다(계 11:1-6과 그 주석을 보라). 즉 그는 두 번 죽는 것이다. 이 사람도 히브리서 9:27의 예외이다.
㉢ 엘리야 : 사실 이 사람은 히브리서 9:27의 예외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한 번 죽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에녹처럼 살아서 들림받았다(왕하 2장). 그러나 그가 계속 살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모세와 마찬가지로 그도 역시 이 땅에 돌아와 목베임 당해 죽을 것이다(계 11:7-8을 보라). 결국 그는 “한 번” 죽는다.
첫 번째 예외인 에녹은 환란 전에 휴거되는 “그리스도의 몸”의 예표이다.
두 번째 예외인 모세는 환란 때 죽으나 부활해서 천년왕국에서 살다가 다시 죽을 환란성도들의 예표이다. (이 사람들을 위해서는 모세 뿐 아니라 야이로의 딸, 나인성 과부의 아들, 유두코, 나사로, 요나, 도르카, 수넴 여인의 아들 등이 모두 예표가 된다.)
세 번째 사람 엘리야는 환란이 끝날 때 살아서 휴거되어(환란 후 휴거) 천년왕국에서 살다가 죽을 환란성도들의 예표이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가 예표하는 사람들은 구원받은 사람들이지만 백보좌 심판에 선다. 교회시대의 성도들을 제외한 “구원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설 수 없다. 대신 『그 뒤에는 심판이 있는 것같이』라는 말에 따라서 백보좌 심판에 선다. 즉 백보좌 심판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만 서는 자리가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행위에 따라서 심판받을 것이다. 그들이 다시 죽지 않기 위해서는 “생명나무의 권리”를 얻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그들은 지속적인 “행위”를 해야 한다(계 22:14을 보라).
③ 히브리서 9:27을 예외가 없는 절대적인 원칙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요한계시록 11장에서 목베임당해 죽는 “두 증인”을 모세와 엘리야가 아니라 에녹과 엘리야로 해석한다.
왜냐하면 모세는 한 번 죽었기 때문에 다시 와서 죽을 필요가 없으나 에녹과 엘리야는 모두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들려갔기 때문에 언젠가 한 번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구절에 대해 예외가 되는 사람들을 보았다. 예수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 남아 휴거될 신약 성도들은 결코 죽음을 보지 않을 수많은 예외들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예외 없이 맞추기 위해 억지로 모세가 아닌 에녹을 두 증인 중 하나로 채택해야 할 필요는 없다. (“두 증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요한계시록 11장을 참조하라.) 이 구절은 일반적인 원리로서, 28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셔야 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다(『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들을 담당하시려고 한 번 드려지셨고』, 28절). [헬라어나 히브리어 같은 원어적인 지식에 너무 많이 의존하지 말라. 아무리 훌륭한 헬라어 학자라도 이러한 진리는 “원어성경”에서 결코 얻지 못한다. 오히려 변개되지 않은 성경으로 구절과 구절을 비교하여 연구할 때 얻어지는 것이다.]
(3) 죄의 삯으로 인간의 혼은 지옥에서의 형벌과 불못에서의 영원한 둘째 사망에 들어간다.
① 『그러나 만일 너희가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보라, 너희는 주를 거역하여 죄를 지은 것이니, 반드시 너희의 죄가 너희를 찾아낼 것임을 알라.』(민 32:23)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요』(요 16:9)라는 말씀을 보면, 성령께서 죄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되, 침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는가? 아니다. 담배를 피우기 때문이라고 말씀하는가? 아니다. 술을 마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하는가? 아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마디로 딱 잘라 말씀하신다. 불신의 죄는 그 자체로 이미 정죄받은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은 장차 유죄 선고를 받게 되리라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그 자체로 이미 유죄가 선고된 것이라는 얘기다. 이것은 3:18에서 이미 선언되었던 바였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정죄를 받지 아니하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정죄를 받은 것이라. 이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 성령께서 오셔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그분을 거부하며 그분을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는 것이 이미 『죄』로 확정되어 있음을 깨닫게 하시고 가책을 느끼게 하시며 그 앞에서 세상이 꼼짝 못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죄』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아주 단순한 데 있다. 『죄』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는 것,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떤 사람이 구원받지 못한채 죄 가운데 있게 된 이유는 그 사람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다는 이 한 가지 이유뿐이다.
② 그렇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구주로 영접하지 않는 것이 어째서 죄란 말인가? 그것은 이 세상 그 누구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을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그 누구에게도 그분을 거부할 권리를 주신 적이 없고, 그분을 믿지 않아도 되는 선택권을 부여하신 적이 없으며, 그분을 믿지 않아도 될 이유 자체를 원천적으로 허용하시지 않으셨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자신의 삶에서 배제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는 말이다. 당신은 교회 목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그를 당신의 삶으로부터 제거할 권리가 없는가? 교회를 옮겨 버리면 될 것이다. 당신은 부모가 밉다고 그들을 당신의 삶에서 배제해 버릴 권리가 있는가? 따로 살면 될 것이다. 당신은 아내가 보기 싫고, 자녀들이 귀찮다고 해서 그들을 당신의 삶에서 배제할 권리가 있는가? 재판소에 찾아가 이혼소송을 내고 자식들은 양육권을 포기한 채 아동보호소에 보내 버리면 될 것이다. 교회 목사나 부모나 처자식이야 부족한 점이 많고 결점 투성이인데다가, 아닌게 아니라 당신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는 사람들일 수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당신은 그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당신의 삶으로부터 배제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은 사정이 다르다. 당신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 마음대로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그분께서는 이 우주의 주인이시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주인이시다. 당신의 집도, 당신의 직장도, 당신의 가족도, 당신의 생명, 아니, 당신 자신까지도, 그 모두가 그분의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그분을 거부할 수 있는가? 무슨 권리로? 이만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것이 죄요, 그 자체로 정죄되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당신에게는 그분을 거부할 권리가 부여되지 않았다.
③ 계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가증스런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마술하는 자들과 우상 숭배하는 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하시더라.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가증스런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마술하는 자들과 우상 숭배하는 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하시더라』(8절). 말 그대로 불타는 지옥이다! 여러분이 만약 인간 본성은 선하기 때문에 지옥은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생각하도록 한 여러분의 교만이 여러분을 곧장 거기로 데려갈 것이다. 거기에 가는 부류를 주목하라. 곧 “음행하는 자들”과 “거짓말하는 자들”, 그리고 “살인자들”(많은 사람들이 이들에게 “아멘” 했을 것이다.)뿐만 아니라 “믿지 아니하는” 자들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하는 자들과 함께 취급하신다. 이 이단들과 불신자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가 규정한 부류가 아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불신자들을 “이단”으로 간주하여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는 것을 정당화시킨다. 본문에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로마 교회의 전통을 거부하는 거듭난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확실히 아니다. 이 구절은 바로 로마 교회의 전통을 믿지 않는다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말씀하신 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정죄하신다.
『두려워하는 자들』(8절).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살인자들” “음행하는 자들”과 함께 취급하신다. 뭐 떠오르는게 없는가? 아마 이 글을 읽는 미국 남부인 가운데는 사람들이 자기를 “위선자로 볼까 봐, 혹은 구원받으면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거나, 그리스도를 고백하면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여러분을 “음행하는 자들”과 함께 취급하신다. 그렇게 분류되지 않을 것 같은가? 필자에게 화내지 말라. 필자가 계시록을 쓰지 않았다. 필자가 여러분을 그런 부류에 넣은 것도 아니다. 성령께서 분류하셨다!.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8절). 그리스도인도 죄를 지을 수 있고 그런 짓을 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이(갈 5:21) 사실이나, 그리스도인은 여전히 그리스도인이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도 죄짓지 않을 수 있지만 그가 구원받지 않은 사실만으로도 죄와 관련되어 있다(고전 6:9,10 참조).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더라도 거짓말쟁이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술 마시지 않아도 주정뱅이이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간음하지 않아도 음행하는 자이다(고전 6:9,10). 그리스도인도 이런 짓을 한다면 보상을 잃고 정죄받는다(갈 5:19-21). 그런 그리스도인은 유업을 잃지만 여전히 그리스도인이다(이것은 조금도 불공정하지 않다! 그리스도인이 범하는 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지불하여 청산되었기 때문에 구원받지 않은 자들과 구별된다).
(4) 『이런 일은 하나님께서 나의 복음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들의 은밀한 것들을 심판하실 그 날에 있으리라』(롬 2:16, 전 12:14).
이 구절에서 그냥 『사람들』이라고 말한 것은 구원받지 못한 이방인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들 이방인들은 율법이 없더라도 『본성으로 율법에 있는 일들을』(14절) 행할 때 그것이 곧 율법이 된다. 이교도들은 이것을 양심의 증거를 통해서 안다. 또한 그들이 양심에 따른다면 그들에게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반드시 받아들이게 된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양심의 소리에 따르지 않기 때문이요, 양심에 따르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정죄된다. 따라서 이들은 율법이 있는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그 날』에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 날』이 언제인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그 날』이다.
무엇을 심판하시는가? 『사람들의 은밀한 것들을』 심판하신다.
누구를 통하여 심판하시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이다.
무엇에 따라 심판하시는가? 바울이 전한 『복음대로』이다.
그런즉, 심판의 그 날, 당신이 도저히 다 상상할 수 없는 별의별 것들이 다 기소되어 불거져 나올 것이다. 당신만 알고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를 줄 알았던 모든 은밀한 죄악들이 낱낱이 들춰지고 그 하나 하나에 대해 아주 타당한 심판이 떨어질 것이다. 그 심판에서 모든 죄악들이 과연 “타당하게” 재판될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걱정하려면 오히려 심판이 너무 타당하고 공평하리라는 점을 걱정하고 있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5) 이러한 죄들을 제거할 하나님의 구속계획이 없다면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 없으며 우리는 절망 상태로 하루하루 살 것이다!
『이런 연유로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이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죄한 것들을 구속하시려고 죽으심으로써 부르심을 받은 자들로 그 영원한 유업의 약속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라』(히 9:15). 많은 사람들은 이 새 언약을 이스라엘과 맺으시는 새 언약과 같은 것으로 여기는데, 그들은 이스라엘을 향한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것이다. 그들은 교회를 위한 새 언약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맺으시는 새 언약도 교회에 관한 언약으로 가져와 버린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는 완전히 단절하시고 교회와 완전히 합하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대체신학"이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언약을 구속의 과정에만 맞추어 해석한다. 그들에 따르면 언약(covenant)이란 처음부터 두 개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것은 “행위의 언약”과 “은혜 또는 구속의 언약”이라 불린다. 그들에게 노아의 언약이라는 것은 없다. 아브라함의 언약도 없으며 다윗의 언약도 없다. 단지 두 개의 언약만이 있을 뿐이다. 물론 그들의 말처럼 하나님께서 교회와 완전히 합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신 것은 결코 아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미래에 반드시 다시 회복시키실 것이다. 그때 새 언약(new covenant)이 유대인과 맺어지는 것이다.
또한 새로운 언약(new testament)이 맺어진 목적은 첫 언약 때에 범죄한 것들을 구속하시기 위함이었다. 첫 언약에 속했던 사람들은 동물의 피로 정결케 되어야 했고, 그들의 양심에 관해서는 결코 깨끗케 되지 못했기 때문에 매년 반복적으로 이 피를 흘려야 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분의 영원하신 피를 흘려주심으로 말미암이 이 새 언약에 속한 사람들은 더 이상 어떠한 피도 흘릴 필요가 없게 되었다.
2) 자신의 연약함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1)【11 내 기력이 어떠하다고 내가 소망을 가지겠느냐? 내 끝이 어떠하다고 내가 내 생명을 연장하겠느냐? 12 내 힘이 바위의 힘이겠느냐? 아니면 내 육신이 놋쇠의 육신이겠느냐? 13 내 도움은 내 안에 있지 아니하냐? 지혜가 내게서 아주 쫓겨갔느냐?】(욥 6:11,12).
<킹제임스성경>의 본문에서는 이 탄식이 너무나 생생하기 때문에 “최신” 언어로 바꿀 필요가 없다. “내 힘이 다 사라졌는데 내가 무엇을 바랄 수 있겠느냐? 그 끝이 바르게 드러날 수 없는데 내가 내 생명을 왜 연장해야 하는가? 너희는 내가 놋이나 쇠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느냐? 나는 육체다. 하나님이 나를 도우려 하지 않으시니 내가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곳은 나 자신뿐이다. 너희들은 내가 이것을 모른다고 생각하느냐? 지혜가 내게서 완전히 떠났다고 생각하느냐?”
주석가들, 개정자들, “단어 연구가들”이 단어들을 잘 차려 입혀서 자기들 생각대로 욥의 말을 바꾸는 것은 기름에 튀긴 쇠비름이며 삶은 당아욱이다. 욥은 “내가 어떻게 도움을 찾을 수 있을까...”(NEB), “내가 계속 하는...”(칠십인역), “내 안에는 도움이 없다”(제미에슨과 포셋과 브라운), “나에겐 도움이 없는가”(ASV, 1901)라고 말하지 않았다. 또한 욥이 말하지 않은 것을 말했다고 어떤 바보가 말한 그런 어떤 어리석은 말을 욥은 하지 않았다. 욥은 이렇게 말했다, 『내 도움은 내 안에 있지 아니하냐?』 믿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진지하게 성경을 공부했는데도 이것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성경을 개정하는 것은 고사하고 욥기를 설교하거나 주석을 쓰거나 가르쳐서는 안된다.
(2) 『다만 자기에게 붙은 살이 아프고 자기 안에 있는 그의 혼이 애통할 뿐이니이다." 하니라.』(욥 14:22).
① 로마 카톨릭 교회와 국제 공산주의자와 유럽 연합에서 하는 모든 노력을 다 합쳐서 유엔과 외계에서 온 우주인과 연합해서 거기다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의 모든 연구 단체를 합치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다. 다음 사항을 기억해 두라. 위에 열거한 모든 단체나 사람들은 “동료 인간을 위한 해결책을” 얻기 위해서는 “동료 인간”에 대항해서 육체적 정치적 폭력을 사용해야만 했고 지금도 사용하고 있고 앞으로도 사용할 것이다. 어떤 정치 정당이나 교회 - 나찌도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 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체포, 전복, 소환, 힘, 고문, 투옥, 수술, 세뇌 기술, “정신 병동,” 재산과 부동산 몰수 등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이미 거기서 주장하는 어떤 가치있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권위를 스스로 박탈하는 것이다.
② 사람의 인생은 보면 항상 몸의 고통을 당하든지 아니면 혼의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두 가지 중한 가지의 고통도 당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3) 인간의 연수는 주님 앞에서는 거의 없는 것과 같다.
(1) 【14 만약 그분이 그의 마음을 인간에게 두신다면 만약 그분이 그의 영과 호흡을 자신에게로 모으신다면 15 모든 육체는 함께 멸망하고 인간은 다시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 16 만일 당신에게 지금 명철이 있다면 이것을 듣고 내 말소리에 경청하라. 17 의를 미워하시는 분이 통치하시겠느뇨? 당신이 지극히 의로우신 분을 정죄하겠느뇨?】(욥 34:14-17).
모든 인간이 "함께 멸망했던"(창 6:3) 창세기 6:5와 시편 104:29,30의 의미에서 인간에게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것이다. 【 3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영이 항상 사람과 다투지는 않으리니, 이는 그도 육체임이라. 그래도 그의 날들이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4 그 당시에 땅에는 거인들이 있었고, 그 후에도 있었으니, 즉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 들어와서 그녀들이 그들에게 자식들을 낳았을 때며, 그들은 옛날의 용사들로 유명한 사람들이 되었더라. 5 ○ 하나님께서 사람의 사악함이 세상에 창대해짐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상상이 계속해서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주께서 땅 위에 사람을 지으셨음을 후회하셨으니, 그 일이 그의 마음을 비통케 하였더라.】(창 6:3-6)
『29 주께서 얼굴을 숨기시면 그들은 곤란해지며, 주께서 그들의 숨을 거두어 가시면 그들이 죽어서 그들의 흙으로 돌아가나이다. 30 주께서 주의 영을 보내시어 그들이 창조되었으니 주께서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시 104:29,30).
(2) 하나님께서 사람의 영(창 2:7)을 자신에게로 모으시고(전 3:21) 사람의 호흡을 그의 몸에서 거두시면 인간은 자신이 취했던 흙으로(창 3:19) 다시 되돌아 가며 육체의 생명은 끝나게 된다.
(3) 『세상에 사는 인간에게는 정해진 시간이』(1절) 있다.
① 이것은 신약의 사도행전 17:26과 구약의 시편 79:11과 일치한다. 이런 정하심은 베드로전서 2:8과 누가복음 12:46, 사도행전 17:31에서 너무나도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성경을 거부하는 근본주의자(축자적으로 영감을 받은 원본을 믿는)만이 클라크와 경쟁을 할 수 있었다. 인간의 날들은 “품꾼의 날들과 같다”(1절). 그가 일한 삯이 그에게 지불되기 때문이다(롬 6:23). “인간”은 종으로서 명령을 받았다(출 20장). 그래서 인간은 법을 어긴 것에 대해 형벌을 받는다(도덕적, 자연적, 사회적, 경제적, 혹은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에 대해). 인간은 구원을 받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일한 것에 대해 삯을 지불받는다(고전 3장, 고후 5장, 롬 2:1-5). 인간은 상을 얻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상을 얻기를 구한다(눅 12:43-44, 고전 3:1-14).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무한 날들”과 “지루한 밤들”(3절)을 경험한다. 욥은 자신이 받아야 할 몫보다 더 많은 것을 받았다. 그러나 처음 두 절에 나오는 것은 모두 교리적, 영적, 역사적으로 옳다.
4절과 5절에서는 다시 예언이 나온다. 이것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할 때 이스라엘이 받게 될 저주이다(신 28장, 레 26장). 벌레로 옷 입혀진 육체와 역겨운 피부(5절)는 해 아래서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닥터 스탠리 파빌라드(그는 “크와 강 위의 다리”를 건설하고 있었다)가 마라야에서 영국인과 미국인에게 사역을 했을 때 열려진 상처가 감염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방부제로 구더기를 사용했으며, 그의 “동료들”이 “파리들과 구더기 더미” 아래서 물이 촉촉하게 젖은 물질로 용해되어 가는 것을 종종 목격했다. 욥의 날들은 “베틀의 북보다도 더 빠르다”(6절). 마치 “베틀”을 가로질러 실이 짜여지는 것과 같다. 아담 클라크는 이렇게 말한다, “욥의 시대에 그런 기구가 사용되었는지 의심스럽다”. 칠십인역에도 “북”이 삭제되었기 때문에 테일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② 『그 음성이 말하기를 “부르짖으라.” 하였더니 그가 말하기를 “내가 무엇을 부르짖으리이까?” 하였느니라. 모든 육체는 풀이요,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라.』(사 40:6)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도 짧습니다. 우리는 하루살이 같은 인생이다. 『너희가 내일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하나니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니라.』(약 4:14)
③ 『전도자가 말하노라.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한글킹제임스성경>의 『헛되도다』라는 말은 두 가지 것을 나타낸다. 첫째로는 쓸모 없고 무익한 것을 나타내며, 둘째로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딤후 3:1-2), 즉 “허영심”과 관련된다. 신약적인 의미에서, 자기를 위해 행한 일들은 시체를 위해 한 일들이므로(골 3:3)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다 타버릴 것이다(고전 3장). 경험으로 얻은 법칙이 있는데, 바로 1611년에서 1982년까지 <킹제임스성경>의 모든 판본은 기독대학의 모든 교수들과 졸업자들이 추천한 온갖 현대 역본의 모든 판본보다 훨씬 탁월하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NASV와 비교하여 그러하다.
2절은 솔로몬이 다루게 될 첫 번째 철학을 알리는 신호다. 그것은 바로 “비관론”이다(숙명론은 나중에 이 장 15절에서 나타날 것이다). 『모든 것이 헛되』고 또 『가장 좋은 상태에 있는 모든 사람도 다 헛될 뿐』이라면(시 39:5), 최대한 비관적이 된 것이다. 현대의 설교자들 모두는 이런 부정적인 생각의 힘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로버트 슐러는 자기가 사역자로서 성공한(1천만 달러를 버는 사역을 하게 된) 비결이 그저, 자기 메시지 속에 “죄인”이나 “죄인들”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은 것뿐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슐러는, 돈을 긁어들이는 비결은 “사람들이 자기들을 좋게 여기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딤후 3:1-2). 그렇다. 바로 로마서 1,2,3장, 데살로니가후서 1,2장, 스파냐 3장, 이사야 41-48장, 예레미야 23장, 마태복음 23장, 요한복음 8장, 디모데후서 3장, 디모데전서 4장, 유다서, 베드로후서 2장, 마태복음 24장, 누가복음 17장, 시편 52편에서 하나님이 사람들에 관해 말씀하신 것을 부정하기만 하면 “형편이 좋아질” 거라는 얘기다. 유다가 했던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거금을 모을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은 연방 학교제도에 속한 학생들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텔레비전 시청자들과 모든 라디오 청취자들에게도 그 교리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 4가지 거짓말은 다음과 같다.
㉠ 물질은 영원하다.
㉡ 인류는 우연히 자연발생했다.
㉢ 새로운 출생을 하거나, 또는 심판하실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할 필요가 없다.
㉣ 모든 세계 종교에 순응할 수 있는 “중성 신”만이 있다.
4) 인간은 하나님께 그 도움을 받아야 한다.
(1) 인간의 "자기의 의"가 문제다.
①『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벌거벗었다고 누가 네게 말해 주더냐? 내가 네게 먹지말라고 명령했던 그 나무의 과실을 네가 먹었느냐?” 하시니 그 남자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있도록 주신 그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내게 주기에 내가 먹었나이다” 하더라.』(창 3:12, 4:9)
잘못된 죄의 ‘전가’다. 하나님께서 하신 질문은 아담에게 있어서는 실로 소름이 끼치는 질문이었음에 틀림없다. 아담은 자기가 “벌거벗었다”고 고백함으로써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만 셈이다. 자기에게 아무 잘못도 없다면 무엇때문에 그런 고백을 하겠는가? “누가 네게 말해 주더냐?” 우리 조상에게 하나님께서 던지신 이 질문은 얼핏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뒤이어 매우 불길한 질문이 던져짐을 잊지말라. “네가 먹었느냐?” 이 질문에 당황한 아담은 책임을 전가한다. 12절에 보면 군대에서 흔히 발생하는 그 사건이 벌어진다. 대령은 중령에게, 중령은 소령에게, 소령은 대위에게, 대위는 중위에게, 중위는 소위에게, 소위는 상사에게, 상사는 중사에게, 중사는 하사에게, 하사는 병장에게, 병장은 상병에게, 상병은 일병에게, 그리고 일병은 이병에게 잘못을 전가시킨다. 마지막 이병은 애꿎은 깡통을 발로 걷어차면서 욕지거리를 퍼붓게 되는 것이다.
②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있도록 주신 그 여자가” 자, 이 발언을 주목해 보자. 아담은 실로 매우 “고상”한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그는 여자만 비난하는 것이 아니고 그 여자를 자기에게 주신 창조주를 먼저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첫눈에 반했던” 그 사랑은 신혼여행과 더불어 사라지고, “오, 하나님, 저를 용서하시고 주님의 사랑스러운 친절과 부드러운 자비를 따라 긍휼을 베푸소서...저의 허물들을 지워주소서...”와 같은 기도대신에 “그 여자가 그렇게 했어요. 주님께서 그녀를 만드셨으니 책임지세요” 라고 하면서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뭔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
우리는 여기서 또한 보편적인 사실을 접하게 된다. 한 가정에서 형제 자매들간에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어린아이들은 하지말라고 경고를 받은 그 일을 저지른 후 도망가서 숨는다. 그러다가 들키면 핑계를 늘어놓는다. 그러니까 모든 아이들은 창세기의 처음 세장의 유형을 그대로 따라 행하고 있는 셈이다. 입, 먹는 것, 벌거벗음, 벌거벗음과 동반된 술(합 2:15, 애 4:21), 숨어버림, 거짓말, 자기의 등과 같은 보편적 상징들과 예표들이 성경 처음 세상에 너무도 잘 다루어져 있다.
인간은 그들이 겪는 고난에 대해 다른 사람을 탓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까지도 비난하고 나선다(롬 9:19-21). (러시아의 경우는 더 극단적으로 나아가 아예 하나님을 불법화 시켰으며 알티저는 그의 우상 니체를 신봉한 나머지 하나님께서 심장마비에 걸려 그 어딘가에서 죽었다고 선언했다). 니체는 한때 지나치게 대담성을 발휘한 나머지 벽에 이렇게 썼다. “하나님은 죽었다. 니체씀” 그런데 1년도 못되어 니체는 죽었고 한 재미있는 사람이 니체가 쓴 것을 지워버리고 거기에다 “니체는 죽었다. 하나님씀”이라고 써 넣었다.
(2) 인간은 하나님보다 더 영리하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존재를 아예 부정해 버리기도 한다.
①『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나타나 있기 때문이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들에게 보이셨음이라』(롬 1:19).
하나님께서는 눈앞에 보이는 모든 피조물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시고 또 사람의 내면에서도 자신을 계시하신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그들 속에 나타나 있다는 말씀은 이것을 뜻한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들을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도 본다. 눈으로 보이는 것을 당신이 이해하게 될 때, 눈으로 보이는 것 이상 무엇인가를 당신의 마음은 읽게 된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이셨다고 말씀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다음 20절에서 이것을 밝힌다.
② 『세상의 창조 때부터 그분에 속한 보이지 않는 것들이 분명히 보여졌고 심지어는 그분의 영원한 능력과 신격까지도 만들어진 것들에 의해 알려졌으므로 그들이 변명하지 못하느니라』(20절).
당신은 세상의 창조 때부터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들을 눈으로 볼 수 있다. 이것들은 자신들만을 나타내는 게 아니라 그분께 속한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도 드러낸다. 그래서 하나님께 속한 보이지 않는 것들이 이제 당신에게 『분명히 보여졌고』라고 말씀한다. 어떻게 해서 『보이지 않는 것들』이 분명히 보일 수 있게 되었는가? 지어진 것들을 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이해하게 됨으로써이다. 무슨 말인가? 예를 들어 보자.
가령, 솔로몬의 노래 6:10에 『달』이 나오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나타내는 그림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달만 보고도 그리스도의 몸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어떻게 말인가? 달은 태양을 따른다. 그리스도의 몸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달이 태양을 따르는 것과 같다. 태양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그림이다. 시편 19편을 보거나 말라키 4장을 보더라도 그분은 태양으로 불려진다. 태양과 달은 지구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지구는 태양이나 달과 반대로 움직인다. 그러므로 당신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 들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한다면, 당신은 필연적으로 지구(세상)와는 반대로 움직이게 된다. 당신이 그리스도의 몸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마땅한 행로인지 눈으로는 볼 수 없다 할지라도, 눈으로 볼 수 있는 달을 보고 그것을 이해하고 볼 수가 있는 것이다.
또한, 당신이 만약 그리스도인으로서 죄인들의 혼을 그리스도께로 이겨오는 구령활동에 열심이라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영원토록 빛나는 존재로 간주하신다.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묻고 싶다면 창공에 빛나는 별들을 본다. 다니엘 12장에 보면 『별들』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성경에서 별들은 “혼을 이겨오는 구령자들”의 예표다(단 12:3).
그렇다면 하나님의 『신격』은 어떻게 보고 이해할 수 있는가? 태양을 보고 알 수 있다. 태양은 세 가지의 광선을 방사한다. 가시광선은 우리가 볼 수 있는 빛인데, 바로 볼 수 있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또 적외선이라는 열선은 볼 수는 없되 느낄 수는 있는데, 성령 하나님께서 바로 그러하시다. 그 다음에 자외선이라는 화학선은 우리 몸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되 우리는 그것을 볼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는데, 바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러하시다.
또한 태양이 질 때 보면 붉게 물들어 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에 다시 떠오를 때 보면 태양은 다시 붉게 물들어 있다. 이것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질 때 붉게 물들어 있는 것은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실 때 흘리신 그분의 피를 보여준다. 또한 뜰 때 붉게 물드는 것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아침에도 그분께서는 피에 적신 옷을 입고 계실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재림에 대해서 말할 때 성경은 『진노함 속에서 그들을 짓밟으리니 그러면 그들의 피가 내 옷에 튀어서 내가 내 의복을 모두 얼룩지게 할 것이라.』(사 63:3)고 말씀하셨다.
③ 시편 19편을 보라. 그리고 『그분에 속한 보이지 않는 것들이 분명히 보여졌고 심지어는 그분의 영원한 능력과 신격까지도 만들어진 것들에 의해 알려졌으므로 그들이 변명하지 못하느니라.』는 말씀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라. 시편 19편은 이방인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에 대하여 언급한다. 『하늘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1절), 하늘들이 하나님의 영광에 대하여 당신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창공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1절). 창공만 바라다보아도 하나님께서 행하신 창조의 대역사를 알 수가 있다. 『낮은 낮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보여주니』(2절), 뜨는 해, 지는 해가 말하고, 밤하늘의 달과 별들이 지식을 전해준다. 『말도 없고 언어도 없으며 그들의 음성도 들리지 않으나』(3절) 그들은 말하고 당신에게 설교한다. 당신은 그것을 듣는다. 당신의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들의 선율은 온 땅을 질러 뻗어 나가고 그들의 말은 세상의 끝까지 다다랐으니...』(4절), 그들의 말은 세상 끝까지 전파되고 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지으신 세계 안에 살고 있다. 그런데도 그분을 모른다고 말할 텐가? 사람들은 모른다고 변명하지만, 사실은 그 지식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구원받지 못한 죄인은 들나귀와 같다(욥 11:12). 구원받지 못한 남자는 개와 같고 구원받지 못한 여자는 돼지와 같다(벧후 2:22). 사역자들은 곡식을 밟아 떠는 소와 같고(고전 9:9), 기도의 용사는 날개로 치솟아 오르는 독수리와도 같아 달려도 피곤치 않고 걸어도 곤비치 않는다(사 40:31).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초림하셨을 때 어린 양이셨고 재림하실 때에는 사자로 오신다. 마귀는 뱀으로 불리고, 바리새인들은 독사들의 세대라 불리며(마 3:7), 거짓 교사인 삯꾼 목자는 이리라 불린다(요 10:12). 이처럼 당신은 주변을 돌아보기만 해도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④ 욥기 12장을 보라. 『그러나 이제 짐승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이 너를 가르치리라』(7절). 무엇인가 알고 싶은가? 옆에 앉아 있는 개에게 물어 보라. 개가 당신에게 가르쳐 줄 것이다. 개가 없거든 소에게 물어 보라. 소가 가르쳐 줄 것이다. 『공중의 새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이 너에게 말해 주리라』(7절). 무엇인가 모르는 게 있는가? 앵무새도 좋고, 까마귀도 좋고, 참새도 좋으니 새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이 가르쳐 줄 것이다. 『아니면 땅에게 고하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에게 가르쳐 주리라』(8절). 삽을 들고 뒷마당에 나가 땅을 파 보라. 고생대가 어쩌고 신생대가 저쩌고 하는 지질학자들이 얼마나 멍청한 자들인지를 가르쳐 줄 것이다. 『또 바다의 고기들도 네게 선포하리라』(8절). 물고기가 양서류로 진화했느니, 포유동물로 진화했느니 하고 떠벌리는 진화론자들의 말이 사실인지 알고 싶다면 물고기한테 직접 물어 보라. 진화론자들이 얼마나 얼간이 거짓말쟁이들인지를 물고기들이 낱낱이 이야기해 줄 것이다. 『이것들 중 그 어느 것이 주의 손이 이 일을 이루신 줄 알지 못하겠느냐? 모든 생물의 혼과 모든 인류의 호흡이 그의 손 안에 있느니라』(9,10절). 이처럼 인간은 자연을 공부하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자신이 지으신 모든 것들을 통하여 자신에 관한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도 보여주신다. 그런즉, 누구라도 자기는 주님을 알지 못하였노라고 변명할 수가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3) 『이는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하며 도리어 그들의 상상들이 허망하여지고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이 어두어졌기 때문이니』(롬 1:21).
다음에 이어지는(24-31절) 모든 죄들은 바로 여기 21절이 원인이 되어 생긴 현상들이다. 본문에 따르면 모든 배교 행위들과 진리에 거역하는 모든 악한 행위들과 모든 죄악들은 최초의 두 걸음을 잘못 내딛는 데서 출발하는데, 그 첫걸음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는 것이고, 그 다음 걸음은 『하나님을 알되... 감사치도 아니』하는 것이다.
(4) 인간의 길은 종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길은 구원이다.
① 성경은 인간이 악하다고 말하고 있으며 인간은 성경을 싫어 한다.
마 3:11-12『나는 정녕 회개시키기 위하여 너희에게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분의 신을 들 만한 자격도 없느니라. 그분은 성령으로 또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시리라. 그분은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철저히 정결케 하시며, 자기의 알곡은 모아서 창고에 들이실 것이나,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로 태우시리라."고 하더라.』
침례인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하실 지를 말해주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또 불로 침례를 주시는 분이요, 손에 키를 들고 타작마당을 정결케 하시는 분이다. 타작마당은 온 세상, 또는 이스라엘인데, 그는 알곡과 쭉정이의 분리 작업을 통해서 알곡에 속한 사람들은 구원하시고 쭉정이에 속한 사람들은 심판하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기서의 알곡과 쭉정이들은 일차적으로 유대인에게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마태복음 19:16-22에서는 영생을 얻으려면 계명들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시편 1편에서는 복있는 사람을 주의 율법을 지키는 사람으로 묘사하는 반면, 율법을 지키지 않는 악인은 ‘쭉정이’로 묘사하고 있다. 유대인은 율법과 관계된 백성이고, 왕을 받아들이는 것은 이러한 율법적인 의와 관계된다.
이 상황은 왕국이 임하기 직전의 상황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국을 세우실 때 그분은 야곱에게서 불경건한 것을 제하여 버리실 것이다(롬 11:26, 사 59:20). 이 날은 “대환란”이라고 말하기도 하는 “야곱의 고난의 때”(렘 30:7)인데, 그분은 이 날을 통해 그의 백성 이스라엘의 허물을 씻으실 것이고, 그 환란의 때에 알곡과 쭉정이는 분리되어, 이 심판을 통과하는 사람들이 그분의 왕국으로 들어갈 것이다. 요엘 2:29에 나타난 대로 주님은 주의 영을 부어주셔서 주님의 백성을 성령으로 보호하시지만, 자신들의 행위로 끝까지 견디지 못한 자들은 결국 쭉정이로 분류되어 불 가운데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물론 영적으로 적용한다면 교회 시대의 구원받은 성도들도 알곡이라고 말하고 구원받지 않은 사람을 쭉정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실제적으로 침례인 요한이 말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유대인의 왕으로서의 사역이기 때문에 유대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고 율법의 행위를 지키는 사람(계 12:17), 좀더 예언적으로 말하면 환란 시대에 끝까지 견디는 유대인(마 24:13)이 알곡의 범주에 들어간다.
② 『오 독사들의 세대야, 악한 너희가 어떻게 선한 것을 말할 수 있겠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이 말하기 때문이라.』(마 12:34)
독사들의 세대”로 묘사되고(마 3:7; 23:33, 눅 3:7), “이 악한 세대”(마 12:45), “악하고 음란한 세대”(마 12:39)로 묘사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왕되심을 거부하는 사람들로서, 구체적으로 말하면 바리새인들을 포함하여 백성들을 잘못 이끌고 가는 종교지도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서는 나쁜 열매를 맺는 나쁜 나무로 설명되고 있다(마 7:16,17). 천국을 가로막은 일차적인 책임은 이들에게 있다(마 23:13). 이들은 예수님의 사역 전반에 걸쳐서 그를 거부하는 반대의 세력으로 등장하며, 베드로후서 2장에는 마지막 때에도 이와 같은 무리들이 거짓 선지자와 거짓 교사로 등장할 것이라고 말한다.
(5) 하나님을 알고 인간의 연약함을 알게 되면 감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어리석음이나 연약함을 자랑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가장 깨긋한 선이나 고귀한 의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더러운 걸레(사 64:6)와도 같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위해 자신의 길을 버려야만 한다. 우리는 참으로 위대하신 하나님을 알고 주님께 의지해야 한다.
① 『보라, 이는 산들을 짓고 바람을 창조하며 인간에게 자기 생각이 무엇인가를 선포하는 분, 아침을 어둡게 하며 땅의 높은 곳들을 밟는 분, 만군의 하나님인 주가 그의 이름임이라』(암 4:13).
『보라, 나는 주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어려워서 못 할 일이 있겠느냐?』(렘 32:27).
②『그러므로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 이는 하늘 아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을 인간에게 주신 적이 없음이라."고 하더라』(행 4:12).
③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사람을 신뢰하는 사람과 육신을 그의 무기로 삼는 사람과 그의 마음이 주로부터 떠난 사람은 저주를 받으리라.』(렘 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