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사내들이 소위 ‘물 좋은’ 나이트클럽에 가면 '삐까번쩍한' 외제차는 물론이요, 지갑에 현금, 하다못해 카드라도 두둑해야 대접받을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울룩불룩 가슴’으로 대변되는 건장한 몸매와 매끈한 얼굴을 기본적으로 갖춰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는 상식이다.
그렇다면 나이트클럽에서 선호하는 여성상은?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 역시 ‘당신의 경제적 능력’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긴 하지만, 여자들은 특히 ‘쭉쭉 빵빵’ 몸매를 기본으로 ‘예쁘기만 하면 모든 게 용서’되는 게 대세라고들 한다.
이는 비단 나이트 클럽만의 문제가 아니라 입사 면접이나 일상 생활에까지 그대로 적용되는 ‘인생 원리’로, 남자든 여자든 바야흐로 ‘페이스’가 잘나고 봐야 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여기, 못생길수록 대접받는 인물들이 있다. 비단 얼굴의 전체적인 모양새뿐만 아니라 피부는 웬만하면 얽어야 하고, 치아는 드문드문 나가고, 눈은 짝짝이요 입은 비뚤어져야 인정을 받는 것이다. 분장한 <개그콘서트> 출연진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바로 우리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장승’이 그것이다.
천하대장군들이다. 남한산성 동남편의 경기도 광주 일대에는 우리 나라에서 나무 장승들이 많기로 유명한데, 비교적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이었으나 요즈음 들어 보존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
머리에 표현된 사모관대가 몸에 비해 커 보여 무거워 보이기까지 한다. 우리 나라 장승의 기원은 고려시대로 추정되는데, 대장군들은 대부분 사모관대를 쓴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치켜 뜬 눈과 깊게 패인 입이 인상적인 천하대장군이라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사모관대를 잃은 지 오래고 풍화되는 운명에 놓였다
간혹 삼끈으로 수염을 표현한 것들도 눈에 띤다. 새 장승을 깎아 세울 때에도 옛 것을 바로 없애지 않는 관용을 보여주는 등 대접이 비교적 좋았는데, 너무 오래되어 심하게 썩어 제 구실을 못하게 되면 마을 뒷산에 무덤을 만들어 묻음으로써 제사의식을 치러주기도 했다
장승의 적은 바람과 비와 눈, 모든 자연현상이다. 특히 나무 장승은 수명이 채 10년이 못되어 2~3년에 한번씩 새 장승을 깎아 함께 세워준다. 햇빛이 들지 않는 곳에는 사진과 같이 버섯이 피어오르기도 했다
청동기 시대의 해방구였던 소도(蘇塗)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는 ‘솟대’다. ‘짐대’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이상세계를 향한 날갯짓을 의미하는 듯 하다. 그러나 사진의 솟대는 이미 머리 부분을 잃어, 희망이 꺾인 것은 아닐까 염려스럽다
지하여장군은 천하대장군에 비해 크기도 약간 작고 사모관대도 쓰지 않아 다소 작아 보인다. 그러나 역시 뚜렷한 입 모양이나 치켜 뜬 눈은 보는 사람을 주눅 들이는 위엄이 서려있다.
사람에게 일생이 있듯 장승에게도 일생이 있는 것은 아닐까. 쓰러져 자연으로 되돌아갈 날만은 기다리는 이 장승은, 개울을 통해 들어올 수 있는 잡귀를 물리치고 허(虛)한 지맥을 보(補)해주는 등 인간을 위한 삶을 살았다
예전에는 장승이 인간들의 삶을 보호해 주었다지만 이제는 처지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철망에 의해 보호받는 엄미2리 천하대장군은 이제 더 이상 그 옛날의 카리스마적인 장승이 아니다
상태가 불량한데 바로 길옆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결국 인간은 옛 은혜마저도 저버리는 것일까?
지하여장군 세 기가 나란히 서있다. 보통 여장군과 대장군은 이처럼여울을 사이에 두고 따로 떨어져 있는데 인간도 아닌 것이 마치 내외를 하는 듯하다. 하기사 제작 당시 성인식도 치르고 합궁식도 거쳤는데 내외라고 못할까
인간은 그래도 연약한 존재여서 이제는 그 의미를 많은 부분 상실한 장승에게도 북어 한 마리 올리고 소원을 빈다. 특히 엄미2리 지하여장군 주변엔 돌을 쌓아 정성을 보였는데, 그 앞에 북어 한 마리가 누군가의 소망을 안고 놓여 있다
지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솟대를 사이에 두고 정답게 서있다. 그러나 이 장승들만은 덤불 속에 있기에 잎이 무성한 여름보다는 낙엽이 진 겨울에 찾는 것이 나을 듯 하다.
‘동그랑땡’ 눈이 상당히 인상적인 하번천리 장승들. 여태껏 봐왔던 장승들의 근엄이나 권위와는 거리가 멀고 해학이 절로 묻어나는 듯하다. 그런데 지하대장군은 뭐에 저리 성이 난 걸까?
장승 아랫부분에는 “이천 오십리, 서울 팔십리”라는 글이 적혀 있다. 길손을 위한 이정표 구실을 하는 것으로, 조선 태종 14년인 1414년 들어 관인들이 이용하는 도로에 일정 거리마다 노표(路標)를 설치하는 안이 실행된 적이 있다. 물론 지금 하번천리 장승에 쓰여 있는 것들은 상징적인 의미만은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솟대는 나무를 ‘Y'자 모양으로 깎아 몸통을 만든 뒤, 거기에 ’ㄱ‘자로 만든머리 부분을 끼워 완성한다. 그런데 머리 부분이 종종 몸통에서 떨어져 나와 머리 없는 새가 되기도 한다. 하번천리 솟대는 몸이 굵어 듬직해 보인다
잡귀가 이 앞에 서면 겁을 내 도망가기보다는 함께 앉아 장난이라도 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정겹고 귀엽게 생겨먹은 놈이 하번천리 장승이다. 아 장승들이 아가씨들을 홀릴 지도 모를 일이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무갑리 장승들. 생김새 하나하나가 저녁 어스름에 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무섭게 생겼다.
장승은 대개 '벽사'를 의미하기 위해 황토를 칠하는데, 무갑리 장승은 여기서 더 나아가 붉은 페인트칠까지 했다. 강렬함 그 자체다. 한편 여느 장승들과는 달리 치아를 일일이 표현했다
혹시 아이섀도를 바른 것은 아닐까? 무갑리 장승이 얼굴 생김과는 달리 눈만은 크기도 크고 속눈썹까지 길어 예쁘기만 하다. 옛 사람들의 해학이란 것이 이런 걸까?
그런데 장승이 자라면 어떡하죠? - 장승이 ‘얼큰이’가 된 사연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들진 않는가? 나무로 만든 장승이라면, 혹시 잎이 나고 뿌리가 돋아나 다시 자랄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얼치기가 만든 장승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제대로 만든 장승은 다시 자라지 않는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장승은 아랫부분보다 윗부분이 더 넓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장승을 깎을 때 아예 뿌리 부분이 위를 향하게끔, 즉 머리 부분을 새기게 된다. 이는 자칫 장승을 다 만들어 세운 뒤 뿌리가 나올 수도 있어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일반적으로 나무 밑동이 윗부분보다 굵기에 얼굴을 새기기가 더 수월한 점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장승들은 다 ‘얼큰이(얼굴이 큰 사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