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콜
공재동
엎어져 자고 있는
아이 곁에
동화책 한 권도
엎어져 있다.
숙제도
잔소리도 없는
동화 속 세상을
아이는
새처럼
날고 있을까.
콜콜,
코 고는 소리
참 정답다.
-《열린아동문학》 (2024 여름호)
초승달
구옥순
하느님의
낚싯바늘인가 보다
해 질 녘
붉게 물든 서쪽 하늘
쳐다보는
내 마음
훅
채 가는
-《아동문예》 (2024 여름호)
눈치 없는 소매
김순영
할일이 많이 생기면
옷은
소매를 걷고 나선다
힘써 청소할 때
걷어 올리고
운동장 뛸 때도
걷어 올린다.
소매도 가끔
눈치 없을 때가 있다
싸우는 목소리보다
앞서 나서서
싸움판을 더 키운다.
-《동시 먹는 달팽이》 (2024 여름호)
모기에게
박승우
난 네가 보고 싶고
밤새도록 너랑 놀고 싶지만
많이 바쁠 테니 올여름엔
나한테 올 필요 없다
그래도 꼭 오겠다면
빈손으로 오기 그럴 테니
모기장이나 하나 사서 오너라
네가 온다면
모기약과 모기향을 준비해 두마
실컷 마셔도 된다
오든지 말든지는
네가 결정해라
-『제3회 우리나라 좋은동시』 (2024 열림원어린이)
나는 틈이다
박행신
나는 아빠와 엄마 사이의
작은 틈이다.
-민이야, 아빠 식사하시려나 물어보렴!
엄마가 이리 부르시면.
-민이야, 엄마한테 넥타이 어딨나 물어보렴!
금세 아빠가 부르신다.
아빠 엄마가 다투신 날에는
안방과 주방 사이에
조그만 틈 하나 뚫어 놓는다.
-《동시발전소》 (2024 여름호)
몸말
우남희
수십 번의
‘야옹’이라는 말보다
더 오래 기억될
한 마디
덜 마른 시멘바닥에 남긴
고양이 발자국
붉은 고래에게 주는 선물
유하정
붉은 고래에게 날개를 선물하고 싶어서
수영을 배웠거든
네가 잡히기 전에 한 번만
날아봤으면 했거든
내 수영 실력으로 부족하다면
커다랗고 커다란
초록 풍선이나
널 닮은 빨간 풍선을
달아줘도 되니까
힘껏 부풀어 오른 파도에
올라타도 되니까
-『붉은 고래에게 주는 선물』 (2024 초록달팽이)
스피노자는 셈이 빠르다
윤형주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스피노자
벌, 새, 나비, 바람이 덤으로 오는 걸 안 거지
덕분에 마당도 환해질 걸 아는 거지
절대!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라는 걸 믿은 거지
셈 하나는 기막히게 한 거지
-《시와 동화》 (2024 여름호)
더위를 잊은 개미
윤희순
흙담에
햇살이 자리를 넓히고
돌계단에
나무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졸고 있던 구름은
기지개 켜며 몸을 부풀리고
아무리 더워도
베짱이가 되기 싫은 개미가
삼삼오오 흙 마당에 기어다닌다.
나뭇잎에서
초록 바람이 부채질하여
개미 땀방울을 식혀주는
그림자도 바람도 응원하는 한 낮
-《아동문학평론》 (2024 여름호)
멀티플레이어
채경미
내 이름은
감자칼
하지만
당근
오이
고구마
무
배
다 깎는다
한 가지만 해선
살아가기 힘든 세상
멀티플레이어는
선택 아닌 필수
-『입속으로 사라진 UFO』 (2024 가문비어린이)
출처: 한국동시문학회공식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이묘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