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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시 63:1-11절
제 목 :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일 시 : 2019. 8. 25.
시편 63:1-11/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2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3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4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 5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나의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6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 7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 8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9 나의 영혼을 찾아 멸하려 하는 그들은 땅 깊은 곳에 들어가며 10 칼의 세력에 넘겨져 승냥이의 먹이가 되리이다 11 왕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리니 주께 맹세한 자마다 자랑할 것이나 거짓말하는 자의 입은 막히리로다/
전도서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전3:12-13/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13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고 했으며, 전5:18-19/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 19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요약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사람이 일생동안 먹고 마시며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행복하게 사는 것과 만족한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불행과 고통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만약 삶이 불행하고 고통스럽다면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셔서 날마다 먹고 마시고 낙을 누리도록 하시는 분이신데 삶이 행복하지 않고 만족하지 않다면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다.
본문말씀 5절에서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정말 행복하고 날마다 만족하며 삽니다. 시인은 어떻게 만족한다고 했습니까?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골수란 헤레브라고 하는데 가장 살찐, 최상의 기름(짐), 가장 훌륭한, 지방, 골수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기름진 것이란 데쉔이라고 하는데 지방, 살진 것, 비옥함, 풍부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는다는 것은 영양가 높고 살찐 짐승을 잡아 잔치를 벌이는 일을 상기시킵니다. 즉 우리의 육신이 진수성찬을 배불리 먹으면서 만족해 하는 것처럼 그렇게 자신의 영혼이 만족해 한다는 뜻입니다. 굶주리면서 만족한 삶을 살수는 없습니다. 맛 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고 배가 불러야 만족하는 것처럼 자신의 영혼이 그렇게 만족하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방금 소개한 시인의 아름다운 고백과는 다르게 그 앞부분을 보시면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라고 호소합니다. 앞에 나오는 극도로 만족한 삶과는 다르게 영육간에 몹시 굶주린 상태라고 호소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만족한다고 말합니다. 과거에는 몹시 굶주렸으나 지금은 만족하다는 뜻입니다.
1.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굶주린 영혼이 만족하게 되었을까요?
이것은 우리의 삶이 어떻게 항상 물댄 동산처럼, 또는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항상 잎이 청청하며 때를 따라 많은 열매를 맺는 형통하고 복된 삶을 살 수 있는지 그 비결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메마르고 고통스러운 삶에도 그만한 이유가 있고, 형통하고 복된 삶에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하면 항상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같이 행복하고 만족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만약 지금의 삶이 마치 광야를 통과하는 것처럼 메마르고 불행하고 어떤 만족도 없는 삶이라면, 그런 삶을 어떻게 행복하고 만족한 삶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그 비결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행복하고 만족한 삶을 사는 첫 번째 비결이 있습니다.
1) 다윗은 내가 주를 앙망하며 주를 바라보았다고 했습니다.
1-2절을 보시면 시63:1-2/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2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라고 했는데, 여기까지의 고백을 보면 시인은 아직 하나님을 만났습니까? 못 만났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한다고 했습니다. 지금 시인의 육체와 영혼은 몹시 메마른 광야에서 사는 것처럼 그렇게 메마르고 고통스럽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라고 했으며, 또한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윗이 자신의 메마른 영혼을 표현하는 세 문장에 집중해야 합니다.
①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한다는 문장입니다.
갈망하다란 짜메라고 하는데 갈망하다, 갈증나다, 목이 타다라는 뜻으로 목이 타 들어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앙모하다란 카마라고 하는데 열망하다, 사모하다 라는 뜻입니다. 영혼과 육체가 몹시 목이 마르고 갈증이 나서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갈망과 목마름을 표현한 것입니다. 저는 2010년도 6-8월까지 약 두 달 동안 주암산 기도원 산 위에서, 우리가 월요일마다 올라가서 기도하는 바로 그 장소 즉 무덤 옆에 텐트를 치고 먹고 자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서입니다. 오로지 기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오전에는 성경 읽고 오후부터 밤새도록 주여 주여를 외치면서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나를 만나 달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 때는 미친 사람처럼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거기에서 계속해서 있었으면 육체적으로 너무나 탈진해서 죽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래서 사모님이 기도 그만하고 내려오라고 만류했습니다. 그 때 탈장이 왔습니다. 멀쩡하게 건강하던 사람에게 탈장이 오고 몸이 망가질 정도로 그렇게 몸부림을 치면서 하나님을 만나려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주를 갈망하고 앙모하는 것입니다.
② 두 번째는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성소란 성전을 의미합니다. 성소란 코데쉬라고 하는데 거룩한 장소 또는 물건, 구별된(것), 봉헌된(것), 성소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과거에 성소에서 하나님과 교제했던 과거사(過去事)를 회상하고 있는데 특별히 압살롭에게 쫓기기 전에 성전에 있을 때를 회상합니다. 다윗은 정말 하나님의 성전을 그리워하고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성전을 지으려고 했습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성전을 그리워했던 사람이 다윗입니다. 다윗은 평소에도 성전에서 즉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고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있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바라보나이다란 하자라고 하는데 주시하다, 바라보다, 예언하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저는 삼년 동안 새벽에 세 기간 정도를 주님을 바라보면서 말씀을 암송하고 묵상하고 주님만을 상상했습니다. 날마다 주님이 나 때문에 고난 당하신 삶을 상상을 통해서 바라보면서 주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동안에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 주시는 교훈이라는 진리를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삼년 동안 오로지 혼자서 주님과 일대일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새벽기도회가 없었던 것이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누구의 방해도 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주님은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 때 주신 회복의 은혜와 복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영혼이 회복되면서 육체적으로 물질적으로도 회복되었고 이제 마지막으로 전도를 통해서 부흥의 복을 부어 주시고 계십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부어 주실지 상상이 안됩니다.
③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리니 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주를 가까이 따르는 것이 무엇일까요? 거기에 대한 해답으로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른다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밤과 새벽에 주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하나님이 영이라고 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는 육체가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영이시다라는 말은 하나님은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하나님을 가까이 따른다고 할 때 마치 육체를 가진 사람을 가까이 있는 것처럼 그렇게 육체적으로 가깝게 지냈다는 뜻이 아니라 영으로, 말씀으로 가깝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영이시고 말씀이신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는 뜻입니다. 즉 쉽게 말씀드리면 말씀을 날마다 묵상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외에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뜻입니다. 어떤 분은 예배당에 나와서 폰으로 게임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친구들과 문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몸은 성전에 앉아 있는데 그의 마음을 누구와 가깝습니까? 친구나 사람과 가깝습니다. 하나님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찬양에 주목해야 합니다. 찬양은 일종의 신앙고백이며 기도입니다. 말씀에 곡을 붙여서 노래하는 것이 찬양입니다. 그러니까 찬양을 부르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성도들은 성전에 들어오면 폰을 진동으로 해 놓든지 꺼야 합니다.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이 영이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다윗의 영혼은 드디어 만족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2. 따라서 영혼의 만족함을 누리는 삶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1) 먼저 육신적이고 환경적인 궁핍함을 느껴야 합니다.
즉 물질적으로 가난하고 육신적으로 병이 들어야 합니다. 이처럼 육신이 병들고 물질적으로 가난하게 되면 드디어 그 사람의 영혼도 굶주리고 가난하고 궁핍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시42:1-3/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시편 42편을 기록한 시인이 영혼의 갈급함을 느끼게 된 것은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핍박하기 때문입니다. 3절에 보시면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환경적으로 육신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니까 드디어 자신의 영혼의 갈급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궁핍함과 가난함 그리고 연약함과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것은 영혼의 곤고함과 궁핍함을 느끼라고 주시는 신호입니다. 물질적으로 가난함을 통해서 자신의 영혼이 얼마나 가난한지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연약함을 통해서 자신의 영혼이 얼마나 쇠약해져 있는지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시42:5-11/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6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7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8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9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10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시인이 경험하는 극심한 영적인 목마름과 고통과 낙심과 좌절은 주위에서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자신의 영혼이 너무나 나약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혹시 여러분이 지금 겪고 있는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고통과 사람들을 통한 고통은 바로 여러분의 영혼의 연약함을 대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영적으로 너무나 나약하고 가난하다는 뜻입니다. 내 영혼은 거지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돈이 많고 건강할 때는 그것을 못 느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환경적인 고통과 어려움을 주시고 질병을 허용하셔서 자신의 영혼이 얼마나 비참하고 가난하고 형편이 없는지를 깨닫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몸이 병들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영혼이 병이 들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물질적으로 가난합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영혼이 너무나 가난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말씀이 없다는 뜻입니다. 가끔씩 뉴스에 보면 북한이나 소말리아 같은 데서 먹지를 못해서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이들의 사진을 본적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빨리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육신이 병든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물질적으로 가난한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병들었고, 여러분의 영혼이 가난하기 때문에 육체적인 연약함과 질병이 왔고 물질적으로 가난함이 왔습니다. 빨리 이것을 깨닫고 다윗처럼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성소에서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영혼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영혼이 회복되면 육체와 함께 환경도 회복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주위에 여러분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고통을 주고 아픔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것은 자신의 영혼이 얼마나 비참하고 가난하고 병들었는지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여러분의 영혼의 모습을 보라고 붙여 주시는 교사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회복되면 여러분을 괴롭히는 사람들도 없어지고, 가난도 없어지고, 질병도 다 떠납니다. 그래서 잠16:7/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 주위에 있는 원수같은 사람들을 친구로 바꾸어 주십니다. 여러분을 돕는 자로 바꾸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그 일을 하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사람과 환경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먼저 자신을 바꾸는데 힘을 쓰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롭고 거룩한 삶으로 바뀌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의 환경을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왜 내가 여러분에게 성경을 읽고 설교 말씀을 읽으라고 합니까? 말씀은 거울입니다. 말씀의 거울로 자신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탓하지 마세요. 자신의 거지같은 모습을 발견하고 통곡하고 울어야 합니다.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산에 가서 두 시간 동안 부르짖어 기도하고, 교회 안에서 매일 두 시간 동안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 할 일이 없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연약하고 나는 부족하고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모든 환경을 열어 주시고 사람을 바꾸어 주셔야 하기 때문에 부르짖어 기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마침내 다윗처럼 내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는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모든 일들이 잘 되고 형통하게 되어서 내 영혼의 만족함을 누리기 위해서는 힘써서 하나님을 찾고 성전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영혼의 건강과 영혼의 부요함을 위해서 힘을 써야 합니다. 결국에는 요삼1:2/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했습니다. 영혼이 잘 되야 범사가 잘 되고 범사가 잘 되야 육신도 건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이 건강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겪고 있는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궁핍과 가난과 연약함은 모두가 영혼의 가난함과 연약함 때문에 나타난 현상입니다. 영혼이 회복되지 않으면 결코 육신이 회복되지 않고 물질적으로 부요하게 되지 않습니다. 성전에서 살다시피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굶주리고 메말라 있는 영혼을 배부르게 채워야 합니다. 그러면 마침내 내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는 고백이 나오게 되고 모든 것이 회복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또한 삶이 불행하고 고통스럽다는 것은 여러분의 인생이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행복을 주는 삶, 즉 이기는 삶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로부터 스트레스를 받는 삶, 즉 실패하고 지는 삶이라는 뜻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시편 75:8/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 거품이 일어나는도다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이 쏟아 내시나니 실로 그 찌꺼기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잔은 다름 아닌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속에 술 거품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술을 마신다는 뜻입니다. 실제로도 술이고 상징적으로도 세상죄악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마음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이 쏟아 내시나니 실로 그 찌꺼기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악한 사람을 붙여 주어서 괴롭힌다는 말입니다. 그 속에 섞인 온갖 죄악의 찌꺼기들까지 악인이 다 기울여 마신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그 사람 속에 있는 모든 죄악의 찌꺼기들이 없어지고 빠져나갈 때까지 악인들로부터 계속해서 괴롭힘을 당한다는 뜻입니다. 죄악이 없어지고 대신 말씀으로 충만하게 되면 그부터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복을 나누어 주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만족하게 되면 결코 주위 사람들로부터 나쁜 것을 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복을 나누어 주는 자가 됩니다. 이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댓글 ▣ 홀로 앉으십시오.
1. 시편 63:1-11절을 읽고 자신의 삶이 황폐하고 메마른지 만족한지 성찰해봅시다.
⊙ 함께 나누십시오.
1. 전도서를 보시면 정상적인 그리스도의 삶은 어떠해야 합니까?
2. 다윗이 자신의 메마른 영혼을 표현하는 세 가지 문장은?
3. 육신적이고 환경적인 궁핍함을 느끼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4. 주위에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을 때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5. 영혼이 회복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면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십니까?
6. 삶이 불행하고 고통스럽다는 것과 행복하고 만족하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게 어떤 사람이라는 것입니까?
할렐루야 아멘
아멘아멘
1. 날마다 행복하고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 함.
2. 1)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한다, 2)성소에서 주를 바라보나이다, 3)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라.
3. 자신의 영혼이 굶주리고 가난하고 궁핍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4. 자신의 영혼이 얼마나 비참하고 가난하고 병들었는지 깨달아야 함.
5. 원수같은 사람들을 친구로 바꾸어 주시고 우리의 환경을 좋게 바꾸어 주심.
6. 삶이 행복, 만족하다는 것: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행복을 주는 삶, 즉 이기는 삶을 사는 사람.
삶이 불행, 고통스럽다는 것: 주위 사람들로부터 스트레스를 받는 삶, 즉 실패하고 지는 삶을 사는 사람.
1.나의 영혼이 만족하는 삶입니다
2.1)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육체가 주를 앙모한다 2)성소에서 주를 바라보나이다 3)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3.자기 영혼의 곤고함과 궁핍함을 느끼라고 주시는 신호
4.자신의 영혼이 얼마나 비참하고 가난하고 병들었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5.하나님께서도 우리 주위에 있는 어려운 환경을 바꿔주십니다
6.삶이 불행하고 고통스럽다는것은 주위사람들로부터 스트레스를 받는삶 즉 실패하고 지는 삶을 사는것이고 행복하고 만족하다는것은 주위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행복을 구하는삶 즉 이기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1. 행복하고 날마다 만족하며 살아야 함
2. ①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한다는 문장, ②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나이다, ③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3. 영혼의 곤고함과 궁핍함을 느끼라고 주시는 신호이다.
4. 자신의 영혼이 얼마나 비참하고 가난하고 병들었는지를 깨달아야함
5.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환경을 바꾸어 주실 것이다.
6. 행복하고 만족하는 삶: 내 인생이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행복을 주는 삶, 이기는삶
삶이 불행하고 고통스럽다는것: 주위 사람들로부터 스트레스를 받는 삶, 즉 실패하고 지는 삶이라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