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파는 사람
셀러(seller) 힙합 공연예술가 팝핀현준
셀러유형 셀프디벨로퍼(self-developer)
대표상품 팝핀댄스
최신상품 국악인 아내와의 크로스오버 퍼포먼스
셀프디벨로퍼의 셀링 포인트
1)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고 숙성시켜라.
2) 나만의 원천기술로 다양한 장르와 크로스오버하라.
3) 배짱과 고집으로 나를 차별화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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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 아차 싶었다. 노랗게 물들인 모히칸 스타일(양옆을 밀고 가운데 부분만 살린)의 머리, 목과 팔뚝의 여러 문신들, 시종일관 춤추듯 건들거리는 몸짓…. 이 인터뷰 자리는 내가 아니라 대학생인 내 딸이 마주하면 어울릴 것 같았다. 그런데 이 남자,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매력적이다. 외모는 힙합인데 생각은 산전수전 다 겪은 고집 센 늙은이다. 34세가 아닌 50대에나 나올 법한 통찰과 연륜이 묻어났다.
길거리에서 노숙하며 혼자 익힌 춤
이름 넉 자가 브랜드이자 대명사
얼마 전 MBC 주말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에서 조관우의 구슬픈 노래보다 그 옆에서 춤을 추던 한 청년에게 관심이 쏟아졌다. 그가 바로 팝핀현준(본명 남현준)이었다. 슬픈 발라드에 힙합이라…. 뭔가 엇박자일 것 같지만 상상 외로 무대는 대성공이었다.
팝핀댄스(Poppin Dance), 말 그대로 온몸의 관절과 근육을 ‘튕기듯’ 사용하는 스트리트 댄스의 일종으로 팝핀현준은 팝핀의 대명사다. 지난 4월 28일 늦은 밤 서울 홍익대 앞의 한 카페에서 직접 만나본 그는 말투도 스타일도 ‘popping’ 그 자체였다.
“저요? 이 바닥에서는 거의 신이죠.(웃음)”
팝핀현준은 스트리트 댄스계에서 팝핀댄스의 대중화를 이끈 창조주, 그의 말처럼 댄서들에게는 ‘신(神)’과 ‘옹(翁)’이라는 수식어로 통칭된다. 어디 이뿐인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각 문화공연 및 행사에 빠지지 않는 아이콘이요, 국악과 양악 등 여러 분야의 공연에서 러브콜을 보내는 공연예술가다. 2006년에는 한국의 비보이 문화를 널리 알린 ‘비보이코리아’의 안무를 감독했고 최근엔 평창 스페셜 올림픽의 홍보대사가 됐다. 인터뷰 며칠 전에도 오스트리아에서 공연 초청을 받았다고 한다. 무엇이 그를 댄서에 머물지 않고 국가 브랜드적 공연예술가, 그것도 크로스오버 퍼포먼스의 대가로 꼽히게 했을까?
팝핀현준. 나는 그에게 ‘셀프디벨로퍼(self-developer)’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다. 제도권 밖에서 자가발전한 사람. 그는 머리가 아닌 몸으로 길거리에서 스스로 무르익은 아티스트다. 팝핀현준이 어린 시절부터 춤을 배운 곳은 댄스학원이 아닌 거칠고 척박한 길거리였다. 그의 최종 학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졸이다.(올해서야 뒤늦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홀로 3년여간 노숙생활까지 했다. 여름엔 한강 시민공원에서 자고 겨울엔 교회나 병원 응급실, 아파트 단지 보일러실에서 추위를 피했다. 배가 고파 슈퍼마켓에서 빵을 훔쳐 먹으며 살아야 했던 시절, 그의 유일한 탈출구는 춤이었다. 거울 대신 쇼윈도를 마주보면서 스스로 춤을 만들고, 또 연습했다. 세상의 시선과는 아랑곳없이 20년 가까이 자신만의 춤 세계를 만들어온 팝핀현준은 국내 댄스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특별한 존재가 됐다.
자가발전한 비주류들의 반란
원천기술의 무한한 가능성 보여줘
지금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는 밤늦게까지 불을 밝히고 있지만, 길거리 한편에서는 스스로 자신을 단 하나밖에 없는 자체 명품으로 키워가는 이들이 있다. ‘가난에 한 맺힌 개천 용(龍)’이 아니다. ‘21세기형 자발적 길거리 용(龍)’들에 가깝다. 얼마 전에는 길거리 용이 만들어내는 선율에 대한민국 전체가 취하기도 했다. 음원 차트를 올킬한 ‘버스커버스커’의 얘기다.
밴드의 리더 장범준은 ‘슈퍼스타K3’로 뜨기 전까지 무명의 길거리 가수였다. 홍대도 아닌 고향 천안에서 혼자 노래를 만들었고, 길거리 공연으로 감성과 목소리를 단련시켰다. 정식으로 화성학을 공부한 적이 없어서 ‘코드는 많지 않게, 멜로디는 쉽게’ 만들었다는 그의 노래들은 인디음악과 아이돌음악 사이에서 독자적 자리를 차지했다. 그 어떤 형식과 틀에 얽매이지 않는 이런 비주류들의 반란은 신선함 그 자체다. 그러나 길거리 용들의 진짜 강점은 딴 데 있다. 그 어떤 콘텐츠와도 멋진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공동작업)을 이뤄내는 ‘원천기술’이 바로 그것이다.
세상에는 두 가지 생각기술이 있다. 원천기술과 가공기술. 원천기술은 콘텐츠를 스스로 창조하는 기술이고, 가공기술은 누군가의 생각을 시장에 팔리도록 가공하는 기술이다. 평생 강의로 먹고살아온 나에게 말 잘하는 능력은 가공기술일 뿐이다. 원천기술은 세상의 모든 재료를 강의 콘텐츠로 만드는 일이다. 가공기술을 배우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때문에 시장에서 싸게 팔린다. 말만 잘하는 강사는 전국에 넘쳐난다. 하지만 청중의 요청에 따라서 어떤 주제든 강의 콘텐츠로 만드는 강사는 손에 꼽힐 정도다. 원천기술을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과 경험, 통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팝핀현준의 춤사위는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현란하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가진 가공기술의 일부다. 그의 진정한 원천기술은 ‘생각하고 느낀 것을 춤으로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항상 미리 선곡을 하고 안무를 짜지만 길거리든 무대든 공연 당시에는 애드리브를 넣어서 변형해요. (동작을 보여주며) 어린아이 앞에서는 친구처럼 보여주고, 할아버지 앞에서는 예의 바르고 수줍은 학생처럼 움직이죠. 그러면 다들 웃으면서 마음을 열어요.(웃음)”
팝핀현준의 원천기술은 누가 심어준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뿌리부터 스스로 만든 것이다. 때문에 얼마든지 자유롭게 변형될 수 있고 크로스오버가 가능하다. 조PD, 인순이 등 당대의 유명 가수들과의 작업은 물론, 때로는 국악, 현대무용, 뮤지컬, 연극, 발레 등 수많은 장르와의 무대에서 함께 어우러졌다.
지난 2006년에는 현대무용과 힙합이 어우러진 ‘닻을 내리다-피터를 위한’이라는 무용극에서 주인공 피터팬을 맡아 대성공을 거뒀다. 독일 주정부의 초청으로 뒤셀도르프와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 초청됐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가 가진 원천기술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 케이스다.
- ▲ 김미경 원장(왼쪽)이 팝핀현준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부인 박애리씨는 MBC 대장금 주제곡을부른 국악인이다.
스스로 가치 높인 콘텐츠에 고집은 필수
최고의 콘텐츠 파트너, 국악인 아내 박애리씨
팝핀현준은 스트리트 댄스의 한국산 뿌리다. 그만큼 댄서로서의 자부심과 길거리 문화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대한민국 비보이(스트리트 댄서) 인구는 약 2000명. 그중 톱(Top)이라 할 수 있는 10여명은 모두 외국에서 활동하고 있단다. 길거리에서 춤을 추면 노는 아이들이지, 예술가로 봐주지 않기 때문이다. TV에 나오는 댄서들은 죄다 아이돌 뒤에 서서 춤추는 백댄서들뿐. 춤이 독자적 예술로 인정받기에 한국은 아직 문화도 의식도 역부족이다.
“댄서면 댄서지 왜 백댄서냐고요…. 아, 오늘 말하면서 왜 자꾸 화가 나지?”
세상과 1 대 다수로 배틀을 벌여온 그는 영락없는 ‘힙합전사’다. 묻고, 따지고, 싸우려는 의지가 보통이 아니다. 실제로 예전에는 한때 ‘방송국 출입불가’ 통보를 받기도 했다.
“모 가수의 요청으로 제가 안무 짜서 후배들 데리고 방송국에 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가수가 좀 늦게 와서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니까 감독이 화풀이한다고 우리 애들한테 욕을 하더라고요. 백댄서라 만만하다 이거죠. 같이 욕하면서 싸우고 그 길로 애들 데리고 나왔죠, 뭐.(웃음)”
지금도 그에게는 공연 러브콜이 끊이지 않지만, 정작 20% 정도만 간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행사 분위기나 띄우라’는 식의 공연은 사절이다. 돈은 적어도 취지가 좋거나, 자신이 기획에 참여할 수 있는 공연 위주로 잡는다. 아티스트로서, 크리에이터로서 남는 게 있기 때문이다.
“고집 세죠?”
“네…. 저 진짜 고집 세요.”
대놓고 물어봤는데 의외로 순순히 인정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하지 않나? 지금의 나를 만든 스승이 이미 내 안에 있는데. 나는 팝핀현준의 이런 배짱과 고집이 맘에 든다. 셀프디벨로퍼들이 승부를 벌이는 데 있어 고집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내 콘텐츠에 자부심과 확신이 있다면, 나만의 색깔을 지켜가야 한다. 돈의 유혹 혹은 유명세가 콘텐츠의 영역까지 거침없이 침범하기 시작하면 나만의 독특한 차별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돈에 초연해지는 일이다. 받을 때는 한두 가지 이유로 받지만 거절하려면 100가지도 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팝핀현준은 시장이 부르는 가격을, 갑(甲)의 논리를 거부했다. “내 가치는 내가 정한다”는 똥고집이 없었다면, 당장의 돈 때문에 유명 가수의 뒤에서 병풍처럼 춤만 췄다면 오늘의 팝핀현준은 없었을 것이다.
이날 인터뷰에는 그의 아내이자 국악계 스타인 박애리씨도 자리를 함께했다. 미안한 얘기지만 한눈에 봐도 참 ‘안 어울리는(?)’ 부부다. 국악과 힙합만큼이나 스타일도 극과 극이다. 자유분방하면서 고집 센 남편과 참하고 지성적인 아내라…. 화목한 가정에서 귀한 막내딸로 자란 박씨는 국립창극단의 차세대 대표주자다. MBC드라마 대장금의 불멸의 히트송(!), ‘오나라’를 부른 장본인으로 팝핀현준과도 무대 위에서 만났다.
“극단 선배님들이 힙합에 대한 편견이 있으셨는데, 어느날 단체로 제 신랑 공연을 보러 오신 거예요. 다음날 출근했더니 제 예술감독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애리야, 네 신랑은 진짜 인간문화재다. 성격이 좀 까다로워도 네가 이해해!’(웃음)”
어려운 환경에서도 춤으로 자신만의 예술을 만든 남편을 진심으로 존경한다는 아내. 그리고 아내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어쩌면 저렇게 맑고 투명하게 노래할 수 있는지 신기하다는 남편. 얼마 전 딸 ‘예술’이를 낳고도 두 부부는 연애 초기의 커플마냥 서로를 칭찬하기에 바빴다.
남극과 북극만큼이나 머나먼 이들이 이토록 서로에게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둘 사이에는 남녀, 부부의 애정보다 더 진한 무엇이 있었다. 서로의 콘텐츠에서 부족한 점은 채워주고 장점은 키워주고 싶은 일종의 ‘스승 본능’이랄까. 부부는 때로는 스승이다. 우리 부모들이 완제품으로 만들어서 보내준 게 아니기 때문에 살면서 서로 가르치고 키워가야 한다. 그런 면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완벽한 스승이다. 집안 한쪽 벽을 커다란 화이트보드로 만들어놓고 5개년 계획을 함께 적어간다는 팝핀현준 부부. 두 사람은 지식사회에서 서로의 생각을 키워가는 이상적인 콘텐츠 파트너였다.
예술가로 살아가기 위한 남은 과제
콘텐츠는 물론, 시장까지 창조하라
대중문화, 예술이라는 시장은 무척이나 험난한 곳이다. 대중은 늘 새로운 스타, 신선한 콘텐츠를 욕망하고 트렌드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뀐다. 가수로 시작해서 가수로 죽는 사람이 적고, 배우로 시작해서 배우로 죽는 사람, 춤으로 시작해서 죽을 때까지 춤꾼인 사람이 거의 없는 이유다. 많은 이들이 경제적 이유로 본업과는 상관없는 레스토랑 주인을 택한다. 그러나 세상의 수많은 콘텐츠 중에서도 예술·문화 콘텐츠는 무르익어야 하는 분야다. 20년, 30년 숙성될수록 향기가 강해지는 술처럼 연륜과 경험, 통찰이 무르익을수록 가치 있어지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 때문에 나는 이런 콘텐츠 장인들을 만날 때마다 특별한 능력 하나를 더 키우라고 조언한다.
“콘텐츠 만드는 김에 시장도 같이 창조해 봐요.”
팝핀현준도 자신이 좋아하는 힙합을 평생 하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 힙합을 산업화해서 스스로 시장을 키우는 수밖에. SM엔터테인먼트가 아이돌 댄스음악을 통해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듯이 그도 자기만의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힙합 인재와 콘텐츠를 키우고 이를 시장과 연결해 새로운 수익모델을 창출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한국에서는 장르 자체가 비주류인 댄스, 그중에서도 가장 변두리 취급받는 힙합을 계속하는 것은 힘들다. 그 자신은 물론이고 ‘제2의 팝핀현준’을 꿈꾸며 매일 구슬땀을 흘리는 자발적 길거리 용들의 미래 역시 불투명하다. 스스로 자가발전한 셀프디벨로퍼들은 이미 시장에서 자신의 브랜드를 만든 이들이다. 시장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고, 어떤 콘텐츠가 먹히는지 몸으로 부딪치고 깨지면서 얻은 귀중한 통찰이 있다. 수많은 사람과 장르, 생각을 묶어 공연을 만들 정도의 기획력이면 시장을 만드는 것도 어려운 얘기만은 아니다.
팝핀현준도 스트리트 댄서들의 맏형으로서 나름의 구상을 갖고 있었다. 그가 화이트보드에 적어둔 5개년 계획에는 예술학교 형태의 재단을 설립한다는 목표가 있다. 음악·춤·체육·미술 네 가지 분야를 기초로 한 예술학교다. 재능은 지녔지만 경제적·환경적으로 힘든 아이들을 모아 키우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도 공연으로 바쁜 와중이지만 고양문화재단의 대안교육 프로그램인 토요창의학교에 참여하면서 아이들의 재능을 키워주고 있다.
34살에 이 정도의 콘텐츠와 실행력을 가졌으니 20년 뒤, 그의 모습은 어떨까. 배 나온 아저씨도 좋고 지금처럼 노란머리에 힙합바지도 좋다.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저 형형한 눈빛만 그대로라면.
김미경
스피치 전문가 및 동기 부여 강사. ‘김미경의 아트스피치’ 원장,‘W.insights’ 대표. 연세대 음대 졸업, 이화여대 정책대학원 석사. MBC ‘희망특강 파랑새’, KBS ‘아침마당’ 등 방송 출강. 저서로 ‘한 달에 한 번, 12명의 인생 멘토를 만나다’ ‘내 안의 스티브 잡스를 깨워라’ ‘2012년 자기계발을 위한 트렌드 키워드’ ‘언니의 독설’ ‘김미경의 아트 스피치’ ‘꿈이 있는 아내는 늙지 않는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