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포에니 전쟁 당시 불운한 패장이었던 카르타고의 장군 하밀카르 바르카는 에스파니아로 건너갑니다. 그리고 '카르타고 노바'라는 도시를 남쪽 해안에 만들어 강력한 육군을 양성했습니다.
하밀카르는 8년에 걸쳐 에스파냐 대부분을 식민지화 하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하밀카르는 기원전 228년 전투에서 전사하였습니다. 후임으로 그의 사위 하스드루발이 7년간 통치하였고, 또 그 뒤를 이어 27세의 젊은이인 한니발 바르카가 이어 받았습니다.
하밀카르의 장남인 한니발은 아버지와 매형을 따라 여러 전투에 참여한 경험이 있었으며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병사들 사이에서의 한니발에 대한 지지는 높았습니다.
기원전 218년, 한니발은 스페인을 출발하여 해상이 아닌 육지로 대장정을 하게 됩니다. 사군툼, 피레네산맥과 론강을 통과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산넘고 물건너 코끼리부대와 함께 계속 진격하였지요.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기로 결정하자 병사들은 공포에 질렸습니다. 그러자 한니발은 자신감에 넘치는 연설로 병사들에게 용기를 준 뒤, 코끼리부대와 함께 알프스를 넘는 전대미문의 일을 감행하였습니다.
알프스산맥을 보병, 기병 그리고 코끼리부대와 함께 넘어 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원주민들과 전투하면서 큰 피해를 입었지만 이탈리아반도의 북쪽으로 한니발의 군대는 18일만에 마침내 도착합니다.
로마군은 전혀 예상치 못한 한니발의 알프스 등정에 완전히 허를 찔리고 주도권을 뺏기게 됩니다. 로마의 군대는 한니발을 당해내지 못하고 연전연패 하였습니다.
게다가 이탈리아 북부지역 갈리아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전투는 더욱 어려워지는데 한니발의 군대는 로마중심부를 향해 계속 진격을 하였습니다.
2차 포에니전쟁의 전반전은 한니발군대가 이탈리아지역 북부및 중부를 쑥대밭으로 만든 카르타고의 압승 이었습니다.
한니발군대의 위력은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210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가 스페인의 로마군을 지휘하게 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듭니다. 마침 한니발의 한쪽 눈이 실명됩니다.
이례적으로 젊은 나이에 두각을 드러낸 스키피오의 등장으로 카르타고군은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스키피오는 세심한 전략과 전술로 단 하루만에 카르타고 식민지의 주요 거점이었던 카르타헤나를 함락시켰습니다.
사실상 스페인 식민지의 수도였던 카르타헤나를 빼앗기면서 스페인의 카르타고 세력은 매우 큰 타격을 입었고 더이상 본국이나 한니발 원정대에게 보급을 보낼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후 스키피오는 이베리아 반도의 전투에서 계속 승승장구하여 이베리아 반도의 카르타고 세력을 거의 지워버렸고 바이쿨라 전투에서 하스드루발 바르카의 군대를 격파하였습니다.
또한 일리파 회전에서는 마고와 기스코가 이끄는 카르타고 군과 마시니사가 이끄는 누미디아 연합군을 크게 격파하였고 마시니사와 협상을 벌여 그를 로마의 편으로 만들었습니다.
오랜전쟁으로 병참선이 길어지고 그나마 본국이 위협을 받는 상황이 되자 한니발은 송환명령을 받게 됩니다.
한니발이 휘하 군대를 이끌고 카르타고 본국으로 돌아온 후 스키피오와 한니발의 군대는 자마에서 만났고 여기에서 최후의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한니발의 군대 수는 로마군보다 많았고 기병의 수에서 열세였으나 보병의 질은 로마보다 우위였으며 전투코끼리를 80마리나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스키피오의 로마 보병은 한니발의 직속보다는 떨어지더라도 나머지 카르타고 보병보다는 숙련도가 높았고 기병에서는 우위를 점하고 있었습니다.
기병 전력으로 포위섬멸을 펼친 스키피오의 승리로 전투는 마무리되었고 한니발은 간신히 목숨만 건져 달아날 수 있었습니다.
명장 스키피오는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라는 작위를 받게됩니다. 이 전투를 지켜본 카르타고가 결국 항복하면서 2차 포에니 전쟁도 로마의 승리로 끝나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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