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베 동굴 벽화 - 3만년 전
쇼베 동굴 벽화
쇼베 동굴 벽화 - 동물 가죽을 쓴 사람
예술의 기원을 찾아가면
깊숙한 동굴, 햇빛 한 줄기 스며들지 않는 곳에 어둠과 적막이 세월의 흐름도 잊은 체 잠들고 있다. 바닥에는 진흙이 옅게 깔려 있고, 그 위에 사람들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다. 검게 거슬린 돌 등잔도 버려져 있다. 동굴의 벽에는 동물 그림들이 무질서하게 그려져 있다.
구석기 시대라고 하는 아득한 옛날에 우리의 조상들은 여기서 그림을 그렸고, 무슨 행위의 흔적인지는 모르지만 발자국도 남겼다. 이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을까? 그림은 분명히 그렸을테고---,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었을까? 그림과 노래와 춤이라면 오늘의 개념에서 예술 행위이다. 이것을 예술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왕에 미술 공부를 할 바에는 조금 어렵더라도 ‘예술의 기원’을 더듬어 보기로 하자.
우리는 가슴 속에 무언가를 담고 있을 때 표현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수필을 쓰는 사람이라면 수필이라도 한 편 쓸 것이다. 화가라면 그림이라도 그리고 싶어 할 것이다. 만약에 우리의 조상들도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였다면 그림을 그리든, 기록을 하든 그때의 방식으로 표현하였을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그림 중에 제일 오래 된 것은 3만 년 전에 그렸다는 쇼베 동굴 벽화이다. 1994년 12월 18일에 동굴 탐험가인 쇼베 등은 프랑스의 남부에 있는 한 동굴에서 3만 년 전의 동굴 벽화를 발견하였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크롱마뇽인이라고 하며, 현생 인류의 조상이라고 하였다. 당시에는 유럽에 거주하는 주 인종이 네안델탈인에서 크롱마뇽인으로 교체가 된 시기라고 하였다. 그래선지 이 동굴 벽화는 인간이 그린 그림 중에 제일 오래 된 것이다. 쇼베 동굴의 벽화는 생동감이 넘쳐난다. 동굴 벽화 전문가가(장 클로트) 이 그림을 보고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위대한 예술가이다.’라며 감탄하였다. 그림이 예술 작품이라면 이미 그때 예술은 탄생하였다. 장 클로트의 말대로라면 그때 이미 예술가가 있었고, 예술작품이 만들어졌다.
쇼베 동굴의 벽화는 3만 년 전에 인류가 남긴 최초의 동굴 그림이다. 장 크로트 말처럼 예술이라면 쇼베 동굴 벽화의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에서 인류가 예술을 하게 되는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어떤 이유로 쇼베 동굴의 벽화를 그렸을까?
앞에서 우리는 동굴 속에 그려져 있는 벽화도 보았고, 돌이나 상아로 다듬은 조각품도 보았다. 우선 그림만을 생각해보면 바위는 인류가 사용한 최초의 캔버스이다.
160여 개의 나라의 노천이나 동굴에 남아 있는 유적들은 7만 여 곳이고, 수백 만 점 이상의 작품들이 남아 있다. 다시 말하자면 아득한 선사시대에 우리의 조상들이 어떻게 살았으며,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를 엿볼 수 있는 자료가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조상은 돌에만 자료를 남겼을까? 물론 아니다. 석기 시대에 인류가 사용하였던 생활 매체는 주로 나무였다. 꼭히 동굴 안에만 삶의 지문을 남긴 것이 아니고 동굴 밖에도 남겼을 것이다. 이런 것들은 오랜 세월을 이겨내고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만날 수가 없다. 남아 있는 자료들을 우리는 선사 예술이라고 부르고 있다. 예술은 문자가 탄생하기 전까지 특정한 메시지나 생각을 기억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오늘의 원시부족들이 이와 같은 예술을 탄생 시키는 과정을 살펴보면 선사 예술이 남아 있는 곳은 종교적인 의식이나 정보 전달, 교육 혹은 사회화 과정을 겪고 훈련하는 장소였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선사 시대의 유적이 남아 있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역할을 한 곳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알타미라 동굴과 라스코 동굴에서 볼 수 있듯이 비교적 일찍부터 구석기 동굴이 발견되므로 프랑스는 이 분야의 연구에 단연 앞서 나간다. 구석기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가장 큰 관심은 구석기인들이 어떤 동기로 유물과 유적을 남겼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예술의 기원을 풀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하다. 이것은 단순히 ‘열려라 참께’만으로는 열릴 수 없는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열쇠가 등장했고, 각각의 열쇠는 나름대로 일부의 기능을 발휘하기도 했지만 절대의 해결책은 아니었다. 이제 우리는 미술 공부를 하면서 예술의 기원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난 것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서구인들이(테일러 등) 생각한 구석기인은 돌맹이를 깨뜨려서 도구로 사용하였고, 하루 종일 사냥을 다니느라 피로에 지쳐 있었다. 다른 부족을 만나면 서로 죽여서 살점을 뜯어 먹기도 하는 동물적인 삶을 영위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그들도 인간적인 삶을 누린다고 믿는 학자들도 있었다. 텔레비전의 다큐멘터리 프로를 보면 원시인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보내면서 그들의 삶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학자들이 있다.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들의 평가가 옳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구석기 시대는 풍부한 식량 자원과 살기 좋은 기후에 생존에 급급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여유로운 삶과 감성적인 행위와 유희를 즐겼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유희 생활에는 실생활과 관련이 없는 작품도 만든다. 즉 ‘예술로서의 예술 이론’인 것이다.
또 하나는 ‘감응주술 이론’이라는 것을 주장한다. 구석기 시대에 남긴 작품의 대부분은 동물을 대상으로 한다. 이때 표현한 동물은 거의가 식량으로 이용하였던 먹이 감이었다. 이들이 그림으로 남긴 곳도 예술 작품을 감상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다. 어둡고, 깊은 동굴 속이다. 이런 이유로 사냥과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주술용이다, 라고 하였다. 이 이론은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지만 오늘에는 그가 제시한 세 가지 조건을 벗어난 그림도 많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역시 성능이 완벽한 열쇠는 되지 못한다.
오늘에는 그림에 그린 동물이 잡혀지기를 바라는 감응주술이기 보다는 단순히 성공적인 사냥을 바라는 주술행위이다 라는 주장이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심마니들이 산삼을 캐러 입산할 때는 가볍게 산신제를 올린다. 이 정도의 해석만 하자는 주장이다.
동굴이 의례를 베풀었던 장소라면 오늘의 의미로는 성당 같은 신전이다. 벽면에 그려진 그림은 성당 벽면을 장식하는 그림 같은 역할을 하였으리라는 주장을 한다. 이처럼 구석기 시대의 그림을 두고 수많은 설명을 한다. 정답이 아닐 수도 있고, 또 정답일 수도 있다. 앞으로도 수 많은 해석이 더 나올 것이다.
처음에는 둥굴의 그림을 미술이나 종교적인 차원에서 주로 연구했다. 그러나 차츰 다른 분야에서도 관심을 가지면서 심리학이나 종교학, 역사학에서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의견도 다양해지면서 인간의 우연한 행위가 흔적으로 남아 있는 것일 뿐이다, 라는 주장도 있다. 구석기인들이 갖고 있던 신화나 설화를 그림으로 남겼다는 주장도 있다. 이것은 예술의 기원을 신화에서 찾으려는 가설과 맞물려 있는 이론이다. 성적인 것을 상징한다는 이론도 있다. 성은 생산과 관련이 있으므로 이 이론은 한 때 굉장한 관심을 끌었다.
선사시대의 샤머니즘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조하고 있다. 다산과 여성성을 기원하기 위해서 대모신(大母神-대지의 여신과 신들의 어머니)을 숭배하거나 여성의 성기를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행위의 표현이다, 라는 주장도 상당히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의견들이 구석기 미술을 총체적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신석기를 거치고, 현재에 이르기 까지 여성 성기는 숭배의 대상이 되어서 끊임없이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예술의 기원을 연구하는 근본 목적은 예술작품 속에 어떤 메시지가 들어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이다. 이럴 경우에 그림이라는 시각 예술이 독립적으로 존재한 것인지, 음악이나 춤 등과 연계되어 있었는지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1850년에 영국의 요크서에서 태어난 여성 고전학자인 J. 해리슨은 1913년에 재미있는 책을 발간하였다. 예술의 기원은 고대인들이 행하였던 제의에서 유래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동굴에 남아 있는 그림을 보면 사냥이라는, 그들의 삶과 직결되어 있는 것을 다루고 있다. 해리슨은 삶이 예술로 바뀌는 과정에 제의가 관여한다는 것에서 예술의 기원을 찾으려 하였다. 예술이 삶에서 직접 유래하는 것은 아니다. 집단생활을 영위하면서 인간이 올리는 제의는 집단적인 삶의 욕구와 욕망을 어떤 형식에 의하여 표출해 낸다. 따라서 제의에는 삶의 본질적인 활동들, 즉 수렵과 채취, 목축과 영농이라는 생산 활동을 흉내 내고, 생명이 태어나고, 종족을 이어가야 한다는 필요성에 의한 성행위를 모방하고, 신화적인 상상력을 현실화하려는 환상 등이 표현 형식이 된다. 제의는 되풀이하여 이어오는 동안에 세속화되어 놀이로 바뀌면서 예술이라는 양식을 탄생시킨 것이다.
이 주장은 그리스 시대의 축제를 설명하는 좋은 이론이 되었다. 축제 때에 행하였던 연극과 놀이라는 행위들을 설명할 수 있었다. 동굴에 그려져 있는 그림은 삶과 직결된 행위이었다는 데는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당시의 사람들이 오늘의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의 개념으로 그림을 그렸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구석기인들이 남긴 흔적들이 예술의 기원이었음은 분명하다.
고대 미술은 고대인이 남긴 언어이고, 지문이다. 고대 미술의 연구는 그 지문을 읽어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들의 언어를 해리슨의 말대로 종교-제의라는 문법으로 읽기를 해보면 읽어지는 것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 읽기가 바른 읽기인지, 아닌지는 물론 알 수 없다. 그러나 단순히 제의를 위하여 만들었다면 전문가들이 ‘이것은 예술이다.’라고 감탄을 자아내도록 사실적인 들소를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무덤에 수많은 상아 구슬을 부장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 구슬을 만들기 위해서는 당시의 조건으로는 일만 시간이 소요되는 엄청난 작업량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예술의 기원을 따지기 이전에 인간은 예술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슬기에 구멍을 뚫어서 꿰어 만든 목걸이를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매장한 시신의 두부에는 머리띠 모양의 장식품이 둘러싼 이유도 같을 것이다.(사진) 머리 띠 장식을 두고 단순히 더 많은 생산을 더 많은 출산을 위한 주술적인 것이라고 믿기는 어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