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에 있는 인각사는 일반인들에게 낯선 절 이름이다. 일연스님이 말년에 머물며 <삼국유사>를 집필한 곳이라는 설명이 더해지면 다들 머리를 끄덕이게 된다. 하지만 기대는 갖지 말 일이다. 그 정도 배경을 가진 절이라면 으레 그윽한 분위기에 당당한 위용의 대찰이겠거니 짐작하겠지만 그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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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각사 가는 길의 저수지. | 인각사는 울도 담도 없는 작은 절이다. 깊은 산중도 아닌, 도로변 길가에 처연한 모습으로 자리잡은 그 곳은 신경쓰지 않고 달리다 보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절이다. 오히려 절집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앞에 위치한 학소대라는 아름다운 절벽이다. 위천의 맑은 물에 몸을 담근 학소대는, 그 옛날에 백학이 둥지를 치고 서식했었다는 이야기가 실감날 정도로 아름답고 신비롭다. 그러나 허물어지는 절집 툇마루에 앉아 텅 빈 가슴으로 찬찬히 주위를 바라보면 천년 전의 햇살과, 바람과, 공기와 그리고 노승의 꼿꼿한 집념이 고스란히 숨쉬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쓸쓸한 부도탑 위로 쏟아지는 봄 햇살 속에 가물가물 소멸되는 시간의 아름다움이 그 곳에 있다.
인각사는 군위군과 영천군의 경계에 우뚝 솟은 화산(828m)의 서쪽 산자락을 드리운 고로면 화북리에 자리하고 있다. 화산의 화려하고 기품있는 모습이 마치 상상의 동물 기린을 닮았고, 절이 들어선 자리가 기린의 뿔에 해당하는 지점이라 하여 ‘인각사(麟角寺)’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신라 선덕여왕 11년(642) 의상대사가 창건(한편으론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기록도 있다)한 절로, <삼국유사>의 산실이자 일연스님이 만년을 보낸 곳이다. 오늘의 인각사는 일연스님의 명성이나 <삼국유사>의 가치, 오랜 내력과 화려한 이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길가에 바짝 다가앉아 변변한 일주문 하나 갖추지 못한 채 여기저기 몇몇 집채가 짜임새없이 흩어져 있는 쇠락한 풍경이 전부다. 하나같이 온전치 못한 석탑, 석등, 석불 따위에서나 겨우 고찰의 희미한 흔적이 읽혀질 따름이다.
일연은 1206년(고려 희종 2년) 경산 장산군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는 무신들의 권력다툼이 끊이지 않던 시기로, 밖으로는 몽고군이 침입해 왔고 안으로는 삼별초의 난이 일어나는 등 나라 안팎으로 혼란이 가중되고 있었다. 일연은 흩어진 민심을 수습하고 백성들에게 정신적 지표를 설정해주기 위해 불교에 입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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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온전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인각사 극락전. | 77세에 승려로서의 최고 위치인 국존에 오른 일연은 호화로운 궁궐생활을 마다하고 노모가 홀로 계신 고향으로 내려 온다. 이 때 왕은 인각사를 일연의 하안지지(下安之地)로 정하고 100여경의 토지를 하사했다고 한다. 이 때가 바로 일연이 <삼국유사>를 집필한 시기다.
<삼국유사>는 고려 충렬왕11년(1285)에 일연스님이 지은 5권 2책의 역사책이다. 인종23년(1145)에 김부식을 비롯한 11명의 편사관이 왕명에 의해 편찬한 50권 10책의 기전체 사서(紀傳體 史書) <삼국사기>와 더불어 우리 고대사 연구에 가장 귀중한 책으로 꼽힌다. 고조선부터 후삼국까지의 역사는 물론 수많은 이야기를 싣고 있어 우리나라 고대사 연구뿐 아니라 지리, 문학, 종교, 미술, 민속 등 문화 전반에 관한 정보를 캐내는 데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책이다.
삶의 덧없음을 일찍이 깨달은 일연선사는 <삼국유사>에 조신의 꿈 이야기를 쓴 후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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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천의 맑은 물에 몸을 담근 학소대. | 즐겁던 한 시절 자취없이 가버리고 시름에 묻힌 몸 덧없이 늙었에라 한끼밥 짓는 동안 더 기다려 무엇하리 인간사 꿈결인줄 내 인제 알았노라.
인각사에는 일연스님의 부도탑인 보각국사탑이 극락전 앞마당에 자리하고 있다. 일제시대 때 훼손돼 뒷산에 뒹구는 것을 이 곳에 옮겨 복원한 것이다. 일연선사의 일대기가 상세하게 기록된 보각국사비 또한 온갖 수난을 겪고 절 한 켠에 서 있다. 눈여겨 볼 일이다.
*찾아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군위 인터체인지에서 빠져 나와 5번 국도를 타고 병천교 못미쳐 3거리에서 좌회전해 지방도 919번을 탄다. 우보면사무소 3거리에서 우회전해 28번 도로를 따라 영천 방향으로 향하면 고로교 3거리를 만난다. 다리를 건너면 오른쪽으로 인각사가 보인다. 혹은 5번 국도 군위 방면 - 동명저수지 부근 3거리 - 908번 지방도 - 부계면사무소 3거리에서 우회전 - 908번 지방도 화수리 - 고로교 - 인각사 코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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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각국사탑. |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