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넘은 나이에도 매일 사경수행하는
전 뉴욕원각사 여신도회장 이강혜 보살
취재/편집부
이 대덕심이라는 불명으로 뉴욕불교계에서 알려진 이강혜 보살님은 1924년 서울 청파동에서 태어났다. 올해 92살이다. 이제는 베이사이드 집에서 두문불출하고 있지만 1980년대부터 약 30여년간 뉴욕불교계의 대보살이었다.
어린 시절 7~8살 무렵부터 어머니를 따라 절에 다녔고 결혼 직후에 서울 조계사에서 이 대엽스님으로부터 관음성이라는 불명을 받았다. 그리고 1971년도에 남미로 이민을 갔다가 다시 캐나다 토론토로 이사를 가서 살았다. 이 시절 이 보살님이 주축이 되어 이 보살님 집에서 신도들끼리 가정법회를 3년 동안 하였다. 이후 절을 만들고 비구니 광옥스님을 초청하여 1977년 12월 토론토 불광사를 개원하였다.
이 보살님은 이후 1979년 뉴욕으로 다시 이사를 와 당시 법안스님이 주지로 있던 원각사에 나가게 되었다. 원각사에서는 시간이 지나면서 여신도 회장을 맡았고 대덕심이라는 불명을 법안스님으로부터 받았다. 그리고 뉴욕에서 터를 잡고 살았다.
1985년 여성단체가 별로 없던 시기에 재미한국부인회 뉴욕지부를 만들어 회장으로 취임하여 한인사회 발전을 위한 봉사활동도 많이 하였다. 뉴욕한인사회에서 중요한 인사가 되었다. 이렇게 뉴욕에서 터를 잡으면서 많은 스님들과 인연도 맺었다. 법명을 받은 이대엽스님을 비롯하여 토론토 광옥스님, 원각사 법안스님, 혜관스님, 뉴욕 연국사를 창건한 혜영스님, 한마음선원 대행스님, 뉴욕 정명사 길상스님, 보스톤 문수사 도범스님, 필라 화엄사 법장스님, 불승종 종조 설송스님, 능인선원 지광스님 등이 대표적이다. 이를 증명하듯, 화엄사, 원각사, 한마음선원 등 많은 사찰에서 보내 온 달력이 거실과 사경실에 걸려있다. 집과 사경실은 마치 법당 같다. 사경실 맨 앞에는 서경보 스님의 서예 작품이 걸려있고 사경실에는 10년전인 2005년에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스님에게 받은 공로패를 비롯하여, 불화, 사리함, 촛대, 향로, 스님들의 붓글씨, 부처님 일대기 등 다양한 것들이 있다.
이 대덕심 보살님은 제 2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뉴욕에서 불교신자로 수행과 기도도 열심히 하면서 여러 사찰의 불사에 보시도 많이 하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대덕심 보살님도 80대를 넘어 이제는 90이 넘었다. 세월 앞에서는 그 누구도 장사가 없다. 한창 활동하던 시기에는 불교계 뿐만 아니라 큰 애정을 가지고 하던 재미한국부인회를 비롯한 사회활동도 정리하여 후임자들에게 인수를 해줬다. 하지만 세월이 갈수록 사찰에 직접 나가지는 못하지만 불교에 대한 믿음과 수행은 오히려 더 강해졌다. 젊은 시절 활동하느라 할 수 없었던 개인수행을 사경으로 더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다.
사경은 1999년 남편 김현백 거사가 이 세상을 떠난 해인 199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주로 법화경 사경을 많이 하였다. 사경을 한 노트는 연국사에도 갖다 주었고 뉴욕 원각사의 야외에 있는 대불 점안식에는 법화경 사경 노트와 발원문을 써서 복장에 넣었다. 요즈음 오전과 오후에 걸쳐 2시간, 1시간 30분 총 3시간 30분 가량 사경을 하고 있다. 90이 넘은 사람이 쓴 글씨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글씨가 아주 또렷하다.
이 수행 덕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보살님은 90은 넘어 비록 몸은 노쇠하여 걸을 때도 휠체어 같은 기구의 도움을 받지만 그래도 혼자서 걷는다. 뉴욕에서 열리는 행사에 아직은 참석할 수도 있지만 걸을 때 휠체어나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일부러 참석을 안하고 있다. 하지만 기억력도 총총하고 텔레비젼을 통해 뉴스를 많이 보고 또 신문과 잡지도 읽으면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잘 파악하고 있다. 각 사찰에서 보내오는 우편물도 꼼꼼히 챙기면서 자세하게 읽고 있다. 미주현대불교 300호 행사가 실린 7월호, 8월호를 보고 행사를 한 것도 알고 있었다.
앞으로도 이 강혜 보살님이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면서 계속해서 사경수행을 하여 많은 불교인들에게 좋은 모델이 되기를 기원한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