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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2 이리 문화예술의거리 영정통 철도관사마을 1만보를 도보로 걷다.
자유인 인생나그네는 익산의 작은 명동이라 불리던 곳, 영정통 문화예술의 거리를 걷다.
내가 이리중학시절!
익산역의 아침은 호남선상하선 전라선 군산선 통학생들과 장사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 였지.
1960년대 "낮에는 10만, 밤에는 6만"이라는 찬사가 있었던 익산의 영정통거리는 익산의 상업과 금융의 중심지였고, 1990년대 영등동이 개발되면서 막을 내리고 지금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여, 시에서 문화예술의거리로 지정, 관광객 유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나 여전히 사람들의 발길이 많지가 않다.
영정통 이라 함은 일제 강점기에 익산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라는 의미에서 영정(榮町)이라 했다 한다.
내가 1960년대 이리중학을 통학하며 익산역에서 내려 학교 가는길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말 구루마, 소구루마가 참으로 많았다.
당시 익산역에서 하역한 화물과, 철도관사 부근에 연탄공장과 목재소 공장이 있어 우마차가 성업을 이룬듯하다.
그시절 육상 교통수단이 말과 소구르마였으니 많기도 많았지.
뜻도 모르고 말구르마라는 명칭을 사용했는데, 일본말로서 우리말로 하면 “차” 또는 ‘수레’라는 뜻이라네요.
걷는 것은 아주 평범한 일상이지만 두다리에 힘이 있어 영정통 문화예술의거리의 변화한 모습을 구경한것에 만족하고,
흘러가는 시간이 아쉬운 나그네는 시간을 붙잡아두고 싶은 심정으로 변화무쌍하게 흐르는 세월의 여정속에 감사한 마음으로 세월을 낚으니 행복하였다.
그누가 속세를 가리켜 잠깐의 꿈속세상이라 했던가?
인생은 한조각 뜬구름 같은것이며 자연에 순응하며, 오직 한번의 인생 소중한 시간을 즐겁게 살자.
☛도보시간 및 거리 : 8:30-11:00(2:30) 도보1만보
☛도보코스 : 영신교회-E편한세상APT-모현육교-서동시장(중앙시장)-구두수선거리-익산역-문화예술의거리(영정통)-삼천리자전거-이리극장-철도관사마을-익산역-서부금고 1만보
➡익산시의 변천과정
1931년 11월 1일 익산읍을 이리읍(裡里邑)으로 개칭
1947년 2월 23일 익산군 이리읍을 이리부로 승격
1949년 8월 15일 이리부를 이리시(裡里市)로 개칭
1995년 5월 10일 이리시와 익산군의 합의에 의해 익산시가 됨
➡2018현재 익산시 인구 : 305,354명 ※솜리의 어원 공부 : 솜리는 한자 “이리”의 속리가 변화된 말 솜리는 안쪽 마을이란 뜻입니다. '이리'의 '이'는 속, 안을 뜻하는 한자어입니다.(속→솜으로 부르기 좋은 발음으로 됨) 이리를 언제부터 솜리라 한지는 자세히 모르나 나의 어머님이 이리가 친정인데 동네아주머니들이 솜리떡이라고 부릅디다. 익산의 전통시장 중앙시장(일명 서동시장)을 지나다. 1947년에 개설된 익산 중앙시장은 의류, 침구, 건강원, 통닭, 약초 그리고 1차 식품의 전문시장으로 익산의 제일가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전통시장 옛 추억 속으로, 전통시장의 따뜻함과 상인의 열정, 맛과 멋이 살아 있는 우리네 전통시장, 지친 삶에 활기를 주는, 삶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바로 익산 중앙시장이다. 중앙시장을 지나며 옛친구 황희백이가 옷가게를 하던 청자상회가 생각이 났다. 소식을 알수 없는 그도 어디에선가 황혼의 인생을 살아가겠지. 역전앞 구두수선거리를 지나다. 구두수선거리를 지나는데 조금 이른시간 9:30분이라 한사람만 일찍나와 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신고 있는 금강캐쥬얼구두가 뒤굽이 닮아 수선을 의뢰하여, 마음에 들게 잘해 주었다. 내가 첫 마수를 하여 수선을 마치고 나니 두사람이 구두수선을 맡기러 오고 있었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첫 마수가 중요하다고 하는 속설이 있는데, 내가 첫 손님이어서 그런지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내구두를 수선한 이사람은 일평생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역전앞 노상 구두수선거리에 자리를 잡아 구두를 수선하며 청춘이 흘러갔고, 아직도 집에 있으면 답답하다고 하시며 구두수선을 하고 있었다. 이분은 81세이시며 성암은 박철원님이시고, 5년이상 젊게 보여 젊게 사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무리한 욕심 않내고 긍정적으로 산다고 하였으며, 내가 사는곳에서 불과 100여미터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었다. 40여년을 같은 마을에 살았으나, 오늘 수선하면서 그분의 신상을 알게 되었다. 이런 것을 보고 등잔밑이 어둡다고 하던가, 아니 40여년을 한마을에 살었어도 얼굴을 모르고 살았다니 믿기지 않지만 이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옛 영정통거리 익산문화예술의 거리 인사동갤러리카페 60-70년대 사람들로 꽉 찻던 영정통 문화예술의거리는 오가는 사람도 별로 없고 승용차의 모습도 거의 보이질 않는다. 대부분의 점포들은 문을 닫았거나 사람들의 모습은 별로 눈에 않띤다. 시간이 나서 문화예술의 거리를 거닐때면 옛 동인의원 자리에 자리잡은 유희성작가님이 운영하는 “인사동갤러리전통카페”에 들려 6천원에 쌍화차를 마신다. 조성곤회장과 다사모회원들이 익산에서 모임을 할때면 들러 쌍화차를 주문하여 먹으며 이야기하는곳 인사동카페가 기억에 남는다. 유희성 작가님이 명필로 가훈을 써 주어 방에 걸어놓았지. ⇒유희성(010-7169-6128) 작가님이 써준 나의 방 가훈 : 1. “평범한 일상이 행복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살자.” 2. “거북이처럼 한걸음씩 걷다보면 어느새 이만큼 와 있을거야 최선을 다하자.” 유희성작가님은 익산문인화연구회 이사장으로 왕성히 활동하며 후진양성에 노력하고 있다. 이리극장옆 삼천리자전거 해방후 설립된 이리극장옆 삼천리자전거는 세월과 함께 폐업의 길에 들어서다. 삼천리자전거포는 선대로부터 아들이 이어받아 운영하였으나 두어달전 심근경색으로 70의 나이에 이세상을 떠나 저승에 떠나시었다하여 유심히 가게를 살펴보니 가게문은 굳게 잠기고 헌자전거만 나뒹글고 있었다. 철도관사마을을 지나다 일제강점기 시절 익산시 평화동 창인동에 철도관사촌이 형성 되었는데, 철도관사촌에는 역장관사, 보선소장관사, 기관차소장관사에서부터 조역관사 하급직원관사등 약 30여채가 있었으며, 출퇴근하는 직원들을 위한 공동기숙사도 있었던 것으로 사료되며, 승무원숙사가 있었다. 철도관사는 대부분 개인에 불하되었고 지난날 사용하던 철도승무원숙사가 낡고 누추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철도관사촌은 도로가 비좁아 겨우 차가 편도로 다닐수 있는 낙후된 지역으로 남아 있었으나, 역세권 개발사업으로 정부에서 약 100억원이 지원되여 현재 소방도로도 넓히고 철도경노당을 지여 주민생활이 편리하게 되었다. 익산서부역 선상통로에 진열한 글
⊙皮竭該玉(피갈해옥)
비록 갈옷을 걸쳤지만 속에 옥을 품었구나.
⊙사는일 사는 일이 너무 바빠 봄이 간 후에야 봄이 온 줄 알았네 청춘도 이와 같아 꽃만 꽃이 아니고 나 또한 꽃이었음을 젊음이 지난 후에야 젊음인 줄 알았네 인생이 길다 한들 천년만년 살 것이며 인생이 짧다 한들 가는 세월 어찌 막으리 봄은 늦고 여름은 이른 칠월과 같은 사람들아 피고 지는 이치가 어디 꽃 뿐이라 할까...
인간의 진정한 행복(happiness)이란 무엇인가?
안병욱 교수는 행복이란
첫째는 낙천적 인생관이다.
인생의 모든 것을 밝게 긍정적으로 보고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는 생활 태도다.
인생은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마음가짐에 달렸다.
극락과 지옥은 내 마음 속에 있다.
감사와 기쁨의 눈으로 인생을 보면 모두 즐겁고 기쁘다.
둘째는 사랑이다.
사랑은 인생의 주성분이다.
인간의 주성분은 사랑으로 되어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아무도 없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때, 우리는 견딜 수 없는 허무주의와 고독감과 절망감에 빠져 살아갈 수가 없다. 인간은 빵만으로 사는 동물이 아니고 사랑을 먹고 사는 동물이다.
셋째는 보람있는 일이다.
산다는 것은 일하는 것이요, 일 하는 것은 사는 것이다. 일을 하되, 보람있는 일을 해야 한다. 자기가 하는 일에 아무 보람을 못 느낄 때, 인생은 참을 수 없는 고역으로 변한다.
건강, 돈, 명예, 성공, 신앙,지혜, 자유도 물론 중요하지만, 행복의 핵심적 요소는 아니다.
부자의 대부분은 불행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낙천적 인생관, 사랑, 보람있는 일.
3가지 행복관을 가지고 살면 행복하다.
중국속담에 행복은
할 일이 있는 것,
바라볼 희망이 있는 것,
사랑할 사람이 있는 것, 이 세가지다.
할 일이 없다는 것, 아침에 눈을 떠도 갈 곳이 없다는 것,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는 것만큼 비참한 사실은 없을 것 같다. 죽을때까지 일을 놓지 않는 사람이 건강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일은 행복의 필수조건 중 하나다. 존 록펠러 3세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행복으로 가는 길에는 두 가지 단순한 원칙이 있다. 먼저, 당신이 관심 있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라. 그 일을 찾았다면 당신이 가진 에너지, 야망, 능력 등 모든 영혼을 쏟아 부어라."
행복( happiness)은 어디에!
독일의 철학자 칸트(1724.4.22-1804.2.12)는
" 인간 행복의 3가지 조건으로
첫째 어떤 일을 할 것,
둘째 어떤 사람을 사랑할 것,
셋째 어떤 일에 희망을 가질 것'이라고 했다."
그 세 가지를 충족할 수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으로 일생을 보낸 대철학자가 제시한 행복의 세 가지 조건이 범인들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한 과제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우선 놀라게 되고, 그러면서도 오늘날 우리가 처한 상황이 이 세가지 조건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노동뒤의 휴식은 순수한 기쁨 행복의 원천
노동 뒤의 휴식이야말로 가장 편안하고 순수한 기쁨이다.- 칸트
근로는 매일을 풍부하게 하며, 휴식은 피곤한 나날을 더욱 값있게 한다. 뿐만 아니라 근로 뒤의 휴식은 높은 환희 속에 감사를 불러일으킨다. -보들레르
휴식은 단순히 일을 중단하고 노는 것이 아닙니다. 좀 더 많은 일을 좀 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재충전의 기회가 바로 휴식이라는 사실을 우리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휴식과 행복은 그대가 바라는 것, 그러나 그것은 오직 근로의 결과에서 얻을 수 있다'- 토마스 A. 캠피스 -
花無十日紅 - 人生一場春夢
이 世上에 늙지 않는 사람은 없다
老年은 아무도 避하지 못하는 모두의 切實한 現實이다
그것을 豫見하고 準備하는 사람과
自己와는 無關한 줄 알고 사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老年 四苦'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
나도 반드시 겪어야 하는 바로 나의 일이라는
事實을 알아야 한다
첫째: 貧苦이다
같은 가난이라도 老年의 가난은 더욱 苦痛스럽다
갈 곳이 없는 老人들이 公園에 모여 앉아 있다가
無料給食으로 끼니를 때우는 光景은 이미 익숙한 風景이다
나이 들어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은 解決方法이 따로 없는
그렇다고 그대로 放置 할 수 없는 社會問題이기도 하다
一次的인 責任은 勿論 本人에게 있는 것이지만
그들이 우리社會에 寄與한 努力에 대한 最少限度의 配慮는
制度的으로 保障되어야 하지 않을까?
貧苦를 爲한 個人의 準備는 貯蓄과 保險 年金 加入 等
方法은 多樣 할 수 있겠다 결코 老年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지금처럼 平均壽命이 길어진 時代일수록 隱退 後의
삶이 더욱 重要하게 생각된다
두번째: 孤獨苦다
젊었을 때는 어울리는 親舊도 많고 호주머니에 쓸 돈이
있으니 親舊 親知들을 만나는 機會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나이 들어 收入이 끊어지고 나이가 들면
親舊들이 하나 둘 먼저 떠나고
더 나이 들면 肉體的으로 나들이가 어려워진다
그때의 孤獨感은 生覺보다 深刻하다
그것이 마음의 病이 되는 수도 있다
혼자 지내는 練習이 그래서 必要하다
事實 가장 强한 사람은 혼자서도 잘 보낼 수 있는 사람이다
孤獨苦는 全的으로 혼자의 힘과 努力으로 克服해야 한다
家族이라 해도 도와 줄 수 없는
全的으로 自身의 問題이기 때문이다
세번째가 無爲苦이다
사람이 나이 들어 마땅히 할 일이 없다는 것은
하나의 拷問이다 몸도 健康하고 돈도 가지고 있지만
할 일이 없다면 그 苦痛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老年의 가장 무서운 敵이 無聊함이다
하루 이틀도 아닌 긴 時間을 할 일없이 지낸다는 것은
정말 苦痛 스로 운 일이다
그래서 特別한 準備와 對策이 必要하다
나이가 들어서도 혼자 할수 있는것
特히 自己의 氣質 適性을 감안해서
消日꺼리를 準備해야 한다
혼자 즐길수 있는 趣味生活과 聯關 짓는 것은 必須的이다
가장 普遍的이고 親和的인 것이 讀書나 音樂 感想등 이다
그러나 이런 生活도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다
미리미리 긴時間을 두고 準備하며 適應 할수있도록
努力해야 日常 生活속에 자리 잡을수 있다
書藝나 繪畵도 좋으나 뚜렷한 目標 없이는
成功하기가 어렵다
소외계층 고령자님을 모시고 컴퓨터 교육장으로
生踈한 分野이기 때문에 어렵다고 지레 겁먹고 接近을
주저 하는것은 自身에 대한 抛棄라고도 할수 있다
初等學校 5學年의 知能과 知識이면 컴퓨터도
可能할 程度로 體系的이고 論理的으로 되어 있다
專門家나 有識한 사람만이 쓸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萬人이 쉽게 使用할수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아직 글도 익히지 않은 4살짜리가
혼자서 게임을 즐긴다면 믿겠는가?
그러나 이것은 事實이고 周邊에서 目擊했을것이다
지금은 컴퓨터를 못하면 疎外階層’이 되는 世上이다
e-메일은 勿論, 個人 홈피나 불로그를 開設해서 運營하면
새로운 世界가 펼쳐지는 것을 經驗하게 될것이다
그만큼 다른 世代도 理解할 수 있고
젊게 사는 方法이기도 하다
불로그나 홈피에 글를 올리려면 공부도 좀 해야 하고
많은 情報를 檢索해서 取捨選擇하게 되므로
時間이 그렇게 잘 갈수가 없다고들 한다
無爲나 無聊와는 거리가 멀게 될것이다
老年에 두려워하는 치매豫防에도
이보다 더 좋은 方法은 없다고 한다
사이버세계에는 世代差異가 없다 모두가 네티즌일 뿐이다
마지막: 病苦이다
늙었다는 것은 그 肉身이 닳았다는 뜻이다
오래 使用했으니 여기저기 故障이 나는 것은 當然하다
高血壓 糖尿 退行性 關節炎 류마티즘 心臟疾患 腰痛
前立腺疾患 骨多空症은 世界 모든 老人들이 共通으로
가지고 있는 老人病들이다
늙음도 서러운데 病苦까지 겹치니 그 心身의 苦痛은
이루 말할수 없다 늙어 病들면 잘 낫지도 않는다
健康은 健康할 때 지키고 管理해야 한다
무릅 保護帶도 健康한 무릅에 쓰는것이지
病든 무릅에는 無用之物이다 수많은 老人들이 病苦에
시달리는 것은 不可抗力的인 것도 있겠지만
健康할 때 管理를 소흘히 한것이 原因中에 하나이다
老年이 되어서 持病이 없는 사람도 드물겠지만
體力을 積極的으로 管理해야 한다
나이 들어서도 繼續 할 수 있는 가장 效果的인 運動은
'걷기’이다 便한 신발 한컬레만 있으면 된다
持續的인 걷기는 心身이 함께 하는 運動이다
오래동안 꾸준히 걷는 사람은 아픈 데가 別로 없다
그건 全的으로 自己와의 孤獨하고 힘든 싸움이기도 하다
老年 四苦는 옛날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모든 사람 앞에 있는
避할 수 없는 現實이다 運 좋은 사람은 한두 가지 苦痛에서
避할 수 있을는지 몰라도 모두를 避할 수는 없다
그러나 準備만 잘 하면 最少化 할 수는 있다
그 準備의 程度에 따라 한 人間의 老年은
全혀 다른 것이 될 수도 있다
人間은 그 누구라도 마지막에 ‘혼자’다
▶오는 길이 ‘혼자’ 였듯이 가는 길도 ‘혼자’이다
- 좋은 글 중에서 -
건강글
소금3%가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하듯이
마음 안에 있는 3%의 좋은 생각이
우리 삶을 지탱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향기롭고 맛깔스러운
산해진미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줄지 모르겠지만
건강에는 아주 해롭다.
● 남을 미워하지 마세요. 미움은 피에 독성물질을 만들어 냅니다.
● 웃으세요. 스트레스가 만병의 원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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