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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책소개 스크랩 리뷰 다함께 살리는 건강처방전 :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과 함께 하는 의사 34인 씀
민욱아빠 추천 0 조회 59 16.12.12 12:3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환자가 문을 나선 진료실에 앉아 있다보면, 공허함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무언가를 놓치는 느낌, 또는 어떤 일의 마무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느낌..  환자가 들어와 내 앞에 앉아 증상을 이야기하고 진찰을 하고 처방과 설명을 한 다음 환자가 진료실 밖으로 나가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이 마치 들어맞지 않는 퍼즐조각 한 두개를 안고 마무리한 그림판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진단과 처방은 문제가 없고 환자 역시 수긍을 했지만, 그 주변을 맴도는 어떤 아쉬움이 자꾸 내 기분을 미적지근하게 만드는 것이다. 

  증상에서 진단을 내리고 알맞은 처방을 내리는 일련의 과정 이외에, 의사가 환자를 좀 더 살펴보아야 할 것들이 있음은 잘 아는 사실이다.  아프거나 불편한 증상의 이유가 직업이나 환경의 문제에서 오는지를 물어보고, 증상과 처방으로 오고가는 이야기가 깊어지면 수긍과 다독임으로 환자와 공감하기도 한다.  환자가 위안과 만족을 얻고 진료실을 나서는 모습은 의사로서도 만족스럽고 보람있는 일이지만, 여전하게도 무거운 마음은 길게 늘어진 꼬리처럼 뒤따라 남는다.

  배운 것에 경험에서 깨닫는 사람관계의 기술이 더해져 진료실의 풍경은 두텁고 포근해진다.  그러나, 의사와 환자라는 일대 일의 관계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사람을 아프게 하고, 의사는 아픈 사람만을 상대하니 아파하는 사람이나 진료하는 사람이나 지쳐도 이상할 게 하나 없는 악순환의 연결고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 사람을 아프게 하는 세상을 인지하는 순간, 의사의 한계는 분명해진다.  아마도 나의 미적지근하고 무거운 마음은 이 지점에서 기인할 것이다.

  마트에서 종일 서 있는 중년 여성의 아픈 무릎을 보아줄 수는 있어도, 무릎을 아프게 하는 그녀의 열악하고 버거운 직업환경을 나는 어쩌지 못한다.  세멘트 독에 팔의 피부가 부스러지고 염증과 진물이 나는 중년 남성에게 보호구 착용을 강조하지만, 보호구가 소용없이 계속해서 세멘트와 접촉해야하는 그의 사정을 나는 잘 모른다.  기침과 가래가 낫지 않는다고 계속 찾아오는 식당 주방 아주머니의 답답한 사정에 나는 일을 그만 두라 말 할 수가 없다.  힘드시겠어요, 좀 더 신경써보세요라는 몇마디 다독임과 함께 약처방이나 주사로 마무리되는 환자와 의사의 잠깐의 위안은 말 그대로 잠시의 안도와 위안일 뿐인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답답함을 안은 채 다시 진료실 문을 여는 그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세상은 발전하고 의학역시 발전했지만, 진료실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점점 더 아파한다.  그런 아픔들의 특징은 사람들을 신경증에 빠뜨릴 정도로 꾸준하게 괴롭히지만, 교과서적 기준의 언저리에서 특이한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소소하고 자잘한 수준이어서 의학적으로 무시당한는 경우가 다반사다.  세상이 영악해지니 아픔도 이렇게 영악해지나 싶어진다.  영악한 아픔 앞에서 의사인 나는 마주해야 할 세상이 있음을 인지하지만, 마주하는 세상을 어떻게 치료해야하는지 방법을 깨닫지 못한다.  동시에 그것은 나 혼자로는 고칠 수 없는, 의사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상식과 인지자들이 함께 해야 하는 치유의 과정임을 깨닫는다.  이 책에서 나는, 그런 고민이 나 혼자만의 고민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리고 저마다의 노력이, 의료의 현실적 문제들과 갈등은 일단 차치하고 그 너머에서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치료의학이 사회문제의 언저리에서 맴도는 분야가 아니라, 사회문제의 중심에서 인간 근본의 성격을 간직한 채 아픔을 치유하고 아픔이 덜한 세상으로 변화시키는데 일조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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